서문 본당

西門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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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소속 본당. 제주도 제주시 용담1동 260 소재. 1977년 11월 20일 제주 중앙(中央)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셉. 관할 구역은 용담 1~3동, 오라1 ~3동 전 지역과 삼도1동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추자(楸子) 1개소. 〔교 세〕 설립 당시 862명, 1981년 973명, 1984년 1,368명, 1988년 2,321명, 1992년 3,524명, 1996년 3,774명. 〔역대 신부〕 초대 새비지(J.G. Savage, 원) 요한(1977. 11~1980. 4), 2대 페릴리(C. Farrelly, 이석민) 크리스토폴(1980. 4~12), 3대 새비지(1980. 12~1983.2), 4대 이대원(李大元) 미카엘(1983. 2~3), 5대 머피(P. Murphy, 민수왕) 파트리치오(1983. 4~1984. 1), 6대 허승조(許勝照) 바오로(1984. 2~1986. 6) 7대 머피(1986. 6~1990. 6), 8대 홍충수(洪忠秀) 마태오(1990. 7~1995.8), 9대 이태수(李泰壽) 미카엘(1995. 8~현재).
1976년 초 제주교구에서는 초대 제주교구장을 지낸 헨리(H. Henry, 玄海) 대주교 추모 사업의 일환으로 성당 건립 계획을 세운 뒤 부지 물색에 나섰는데, 이때 중앙 본당 관할 지역 중에서 발전이 예상되는 서문 지역에 본당을 신설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곧 헨리 대주교의 은인과 여러 본당 신자들의 후원금을 기반으로 공사가 시작되어 1977년 10월 초에는 부지 221평에 연건평 155평 규모의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그러자 교구에서는 그 해 11월 20일 서문 본당을 설정함과 동시에 설립에 노력한 새비지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고, 같은 날 성당 봉헌식과 본당 설정 축하 미사를 거행하였다.
본당 설립 초기부터 신자들은 각종 신심 단체를 설립해 나갔으며, 1977년 12월 6일에는 사도직 협의회를 결성한 데 이어 이듬해 2월 11일에는 까리따스 수녀회 분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1980년 10월 8일에는 교구 최초로 빈천시오 아 바오로회를 결성하였다. 한편 이 무렵부터 관할 구역 내에 주택과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신자수가 급증하자 본당에서는 교구에 분할을 건의하였다. 이에 따라 1980년 9월 7일 연동 280-19번지 일대의 부지를 마련하고, 이듬해 10월 25일에 128평 규모의 성당이 완공됨과 동시에 신제주(新濟州)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343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서문 본당은 한때 주임 신부의 잦은 이동으로 다소 침체되기도 했으나 6대 주임으로 허승조 신부가 부임한 이후부터는 다시 신자들의 활동도 활성화되어 갔다. 1988년 2월에는 중앙 본당의 추자 공소가 본당으로 편입되었고, 같은 해 10월 14일에는 성당 신축 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는데, 이 위원회는 그 후 해체되었다가 1991년 6월 7일에 재결성되었다. 그리고 2년 뒤인 1994년 3월 19일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성당(연건평 782평)을 완공하여 봉헌식을 가졌다. 이에 앞서 1991년 1월 6일에는 본당 주보가 창간되었고, 1994년 5월 8일에는 지역 사회 노인들을 위한 '현인당' (15평)이 마련되었으며 1996년 2월 4일에는 도내에서 처음으로 '우리 농생활 협동 조합' 이 결성되었다. (→ 제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보유편/ 《서문 성당 20년》, 천주교 제주교구 서문 교회, 1997.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