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소속 신부. 세례명은 요한. 1928년 4월 1일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旺場里)에 서 태어나 1940년에 덕원(德源) 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그곳에서 중등 과정을 수학하고 서울에서 별과(別科)를 마쳤다. 이어 다시 덕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수학한 그는 1947년 졸업과 동시에 덕원 베네딕도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 동안 수련 생활을 하다가 이듬해 덕원대신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1949년 5월 북한 공산정권의 탄압으로 덕원 수도원이 폐쇄됨에 따라 평양(平壤)으로 피신하였으며, 얼마 후 순안(順安)에서 체포되었으나 탈출하여 평남 진남포(鎮南浦) 본당에 은거하다가 1950년 2월에 월남하였다. 그 후 서울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 성신 교정)에 편입하였으나 2개월 후 6 · 25 한국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피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복
학하여 1953년 3월에 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초 미국 미주리(Missour) 주(州)의 컨셉션(Con-ception) 신학교로 편입하였으며, 1955년에 컨셉션 아빠스좌 수도원의 스테파노 샤플러(S. Schappler) 아빠스 앞에서 종신 서원을 한 후, 1956년 6월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컨셉션 수도원에서 존 코디(J.P. Cody)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56년 11월에 귀국한 서상우 신부는 이듬해 2월부터 왜관 순심고등학교에 근무하다가 그 해 11월 20일 교장으로 임명되어 이후 10년 간 교육 사업에 헌신하였다. 또 1959년에는 왜관 성 마오로 기숙사 2대 사감으로 임명되었고, 1961년에는 순심중학교 교장까지 겸임하였다. 그 후 1967년 3월부터 부산 오륜대에 있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소속의 부산 원장좌 예속 수도원의 수련장 겸 피정 지도 신부로 활동하다가 1970년 9월 백령도 본당 임시 주임으로 약 3개월 간 사목하였으며, 서울 성가 소비녀회의 생제(P. Singer, 成載德) 신부가 휴가차 본국으로 떠났을 때에는 수녀회의 임시 지도 신부를 맡기도 하였다. 이어 부평 성모병원 원장(1971.9~1973)과 한강 성심병원 기획실장(1973~1975) 등을 거쳐 1975년 10월에 신동(新洞) 본당 4대 주임으로 임명되어 1년 동안 사목한 후 왜관 본당 16대 주임으로 전임되었다. 그리고 1982년부터는 순심 교육 재단 이사직을, 이듬해부터는 동 재단 상임 이사직을 겸임하면서 학교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고, 1986년부터는 대구 파티마 병원 지도 신부와 원목 신부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당뇨 합병증이 악화되어 이를 회복하지 못한 채 1995년 7월 1일 왜관 수도원에서 68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왜관 수도원 묘지에 묻혔다.
※ 참고문헌 <가톨릭 신문> 1961호(1995. 7. 9), 2면/ 《신동 본당 25년사》, 천주교 신동 교회, 1993/ 《왜관 반세기》, 왜관 천주교회, 1978. 〔宣智勳〕
서상우 (1928 1995)
徐相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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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서상우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