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아킴. 1911년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旺場里)에서 태어나 용산 예수성심신 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39년 6월 24일 졸업과 동시에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인천 제물포(濟物浦, 현 답동) 본당 임종국(林鍾國, 바오로) 신부의 보좌로 임명되어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1941년 가을부터 악성 임파선종으로 성모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채 1942년 1월 13일 3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여 용산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1994년에 사망한 베네딕도회의 서상우(徐相瑀, 요한) 신부가 그의 친동생이며, 인천교구 소속의 서병섭(徐丙燮, 베드로) 신부는 그의 조카이다. (→ 서상우)
※ 참고문헌 《경향잡지》 943호(1942. 2)/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부록, 가톨릭출판사, 1984. [李裕林]
서상필 (1911~1942)
徐相秘
글자 크기
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