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동 본당

瑞雲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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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소속 본당.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서운동 90-1 소재. 1932년 10월 고마리(叩馬里, 현 증평) 본당의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 설립 당시에는 '청주 본당' 또는 '북문로 본당' 으로 불렸으나, 1962년 3월 12일에 현 소재지로 이전되면서 본당 이름을 '서운동 본당' 으로 바꾸었다. 관할 구역은 탑동, 대성동, 문화동, 서운동, 용담동, 용암동, 남주동, 서문동, 남문로, 북문로 1가, 석교동, 산성동 일대. 〔교 세〕1937년 1,211명, 1958년 1,644명, 1963년 1,320명, 1967년 2,156명, 1976년 2,444명, 1981년 3,166명, 1987년 2,330명, 1991년 3,160명, 1997년 3,586명. 〔역대 신부〕 초대 박일규(朴一圭) 안드레아(1932. 10~1940. 5), 2대 임종국(林鍾國) 바오로(1940. 5~1941. 6), 3대 정원진(鄭元鎮) 루가(1941. 6~?), 4대 이삼복(李三馥)요한(1941. ?~1947. 6), 5대 김유룡(金裕龍) 필립보(1947.6~1953), 6대 기본스(J. Gibbons, 노) 요셉(1953. 9~1955.9), 7대 맥노튼(W. McNaughton, 羅吉模) 굴리엘모(1955. 9~1957. 7), 8대 설리반(H. Sullivan, 薛) 헨리(1957. 7~1958.9), 9대 설리반(R. Sullivan, 반예문) 라이문도(1958. 9~1960. 7), 10대 루먼(F. Luhmann, 유) 프레드릭(1960. 7~1964. 8), 11대 길리간(J. Gililgan, 길의간) 야고보(1964.8~1973. 4) , 12대 이한구(李漢求) 라우렌시오(1973. 4~1976. 5), 13대 경덕수(慶惠秀) 레오(1976. 5~1983. 5), 14대 김홍렬(金洪烈) 시몬(1983. 5~1988. 8), 15대 이범수(李範洙) 요셉(1988. 8~1994. 7) , 16대 신성근(申成根) 야고보(1994. 7~1997. 4), 17대 전명수(全明洙) 아브라함(1997. 4~현재).
〔설립과 변모] 지금의 청주와 청원군 지역에 있던 초기 공소들은 1896년 10월 이래 장호원(長湖院, 현 감곡)본당 소속이었다가 1920년 9월부터 고마리 본당(괴산군 소수면 고마리) 관할이 되었다. 반면에 청원군의 동남부 지역 공소들은 1906년 5월 이래 옥천(沃川) 본당에 속해 있다가 1914년 4월에 비룡(飛龍) 본당(청원군 남이면 비룡리), 1919년 11월부터는 대전 본당으로 그 사목 관할이 변경되었다. 그중 1898년에 설립된 '지게바위 공소' (청원군 오창면)와 1909년에 설립된 '비룡 공소' 가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며, 청주 지역에서는 '새뜸 공소' (청주시 율양동)가 1913년에 처음으로 설립되었다. 이 밖에도 청원군의 북일면 · 강서면 · 강외면 · 미원면 등지에 여러 공소들이 설립되었다.
그러던 중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는 이 지역의 중심지인 청주에 본당 설립을 모색하기 시작하였으며, 1932년 10월에는 마침내 고마리 본당에서 청주 본당을 분리 · 설립함과 동시에 박일규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박일규 신부는 부임 직후 청주시 북문로(北門路) 3가(현 교구청 자리)의 부지 1,600여 평을 매입한 뒤 이듬해 봄부터 성당과 사제관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12월 1일에 봉헌식을 가졌다. 이 때문에 '북문로 본당' 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임 신부의 잦은 교체로 잠시 침체되었다가 4대 주임 이삼복 신부 재임기에 이르러 비로소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본당의 신자수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은 한국 전쟁 이후였다. 그 결과 7대 주임 맥노튼 신부 때인 1957년 4월에 부강(芙江) 본당이 분리된 것을 시작으로 그 해 7월 31일에는 내덕동(內德洞) 본당이, 그리고 1960년 9월에는 오송(五松) 본당이 각각 분리되었다. 그런 다음 10대 주임 루먼 신부가 부임하여 서운동에 1,300여 평의 부지를 새로 매입한 뒤, 1962년 3월 12일에 본당을 그곳으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25일 성당(170평)과 사제관(68평)을 완공하여 봉헌하는 한편, 예수 성심 시녀회를 초청하였다. 이어 서운동 본당에서는 계속되는 신자수의 증가로 1964년 9월 6일에 수동(壽洞)본당을, 같은 해 12월 28일에는 미원(未院) 본당을 분리하였다.
〔성장과 현재〕 11대 주임 길리간 신부는 부임 이듬해인 1965년에 '성심유치원' 을 개원하였으며, 1967년 5월에는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를 초청하였다. 그 뒤를 이어 12대 주임 이한구 신부는 1973년 11월에 현 유치원 건물을, 이듬해 8월 9일에는 성모 동굴을 조성하였고, 1975년 5월 4일에는 유치원 건물을 증축(30평)하였다. 그러면서 1980년대에 들어와 신자수가 3,000여 명으로 증가하자 성당 신축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동시에 13대 주임 경덕수 신부는 1982년 6월 3일에 신축 성당 기공식을 거행하고 그 건립에 노력하여 이듬해 7월 25일 240평 규모의 성당 봉헌식을 가졌다.
한편 이에 앞서 본당에서는 같은 해 5월 1일자로 수곡동(秀谷洞) 본당을 분리하면서 297세대 860명의 교적을 이관하였었는데, 그럼에도 본당의 교세는 꾸준히 증가하였다. 이에 본당에서는 성당 신축을 예상하고 서운동 89-1번지(28.7평)와 89-11번지(35평) 일대의 부지를 추가로 매입하였으나, 1987년 5월 3일 영운동(永雲洞)본당의 설립과 동시에 637세대 1,791명의 교적이 이관되면서 일단 성당 신축 계획은 미루어지게 되었다. 15대 주임 이범수 신부 때인 1992년 11월 25일에는 예수 성심 회관(100평)을 완공하여 축성식을 갖는 한편 본당 설정 60주년 행사를 개최하였다.
이처럼 서운동 본당은 청주와 인근 지역의 모 본당으로서 모두 7개의 자 본당을 분할해 오는 동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발전과 더불어 교세가 꾸준히 신장되고 있으며, 신심 단체들의 활동과 본당의 내실화 작업도 충실히 이어져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97년 6월부터는 본당 운영에 전산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체계적인 사목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속적인 본당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 청주 본당 ; →청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신문> 385호(1963. 8. 4), 3면/ 《경향잡지》1132호(1962. 7),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 15/ 감곡 본당 90년사 편찬위원회 편, 《감곡 본당 90년사》, 천주교 감곡 교회, 1986/ 천주교 청주교구청,《청주교구 연감》, 1995.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