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신부. 세례명은 알렉시오. 1909년 2월 8일에 태어나 수류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1923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하여 1935년 6월 15일 졸업과 동시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전주(全州, 현 전동)본당 보좌로 임명된 서정수 신부는 본당 청년회의 활성화를 위해 6인조 악단을 조직하였으며, 애국 운동의 일환으로 '조선어 학회' 에서 발간하는 잡지 《한글》의 보급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이 잡지사의 전주 지사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이듬해 5월 정읍(井邑, 현 시기동) 본당 5대 주임으로 전임된 서정수 신부는 옛 신성리(新城里)성당과 부지를 매각한 뒤 정주읍 수성리 명덕동(明德洞, 현 수성동)으로 거처를 옮겨 임시 성당과 사제관을 마련하는 한편, 새 성당 신축을 위해 부지 418평도 확보해 두었다.
그러나 건강 때문에 1940년 봄부터 약 1년 동안 주교관에서 휴양하다가 이듬해 3월 금산(錦山) 본당 4대 주임을 거쳐 1947년 4월에 고산 수청(水淸) 본당의 2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되재(升時) 본당 관할 구역까지 사목하였다. 6 · 25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군종 신부로 임명된 서정수 신부는, 1951년 4월부터 약 3년 간 육군 제1사단 기병 학교 · 헌병 본부 · 수도 육군 병원 등지에서 활동하였으며, 제대 후에는 군산(群山, 현 둔율동) 본당 7대 주임(1954. 7)을 거쳐 1956년 9월 6일에 주교 비서 및 성심여자고등학교 종교과 담임 신부 겸 무주(茂朱) 본당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이어 신태인(新泰仁) 본당 8대 주임(1960. 7. 8) , 황등(黃登) 본당 5대 주임(1967.6. 12)으로 사목하였으며, 1970년 3월에는 아가페 농장을 마련하기도 하였으나 건강 악화로 1975년 12월 3일 현직에서 은퇴하였다. 그리고 73세 때인 1985년 1월 26일 고혈압으로 사망하여 치명자산에 있는 전주교구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 참고문헌 김구정 · 김영구, 《天主教湖湖南發展史》, 천주교 전주교구, 1964/ 호남교회사연구소, 《전주교구사 연표》, 1993/ 전동 성당 100년사 편찬위원회 . 호남교회사연구소, 《전동 성당 100년사》, 천주교 전주교구 전동 교회, 1996. [李裕林]
서정수 (1909~1985)
徐廷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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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서정수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