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본당

舒川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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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 307-7 소재. 1936년 금사리(金寺里)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어 1943년 12월에 장항(長項)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가 1967년 12월 29일에 다시 본당으로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 관할 구역은 서천읍 화양면, 한산면, 마산면, 문산면, 기산면, 시초면, 비인면, 판교면, 서면 일대이고, 공소는 월산 · 한산 · 마산 · 수암 · 신농 · 비인 · 판교 · 도둔 · 부사 · 원두 등 10개소. 〔교 세〕 1968년 1,500명, 1973년 1,360명, 1978년 1,441명, 1982년 1,451명, 1987년 1,573명, 1991년 1,516명, 1994년 1,494명, 1996년 1,498명. 〔역대 신부〕 초대 조인원(趙仁元) 빈천시오(1936~1939), 2대 김영식(金永植) 베드로(1939~1942. 1), 3대 조병기(趙炳起) 바오로(1967. 12~1971.7), 4대 김기룡(金基龍) 요한(1971.7~1974. 11), 5대 윤인식(尹仁植) 바오로(1974. 11~1980. 9), 6대 김기(金基) 바오로(1980. 9~1984. 11) 7대 백승옥(白承玉) 이시도로(1984. 11~1989. 8), 8대 방윤석(方潤錫) 베르나르도(1989. 8~1992.3), 9대 쿠브레르(P.Coumeur, 고광의) 바오로(1992. 3~1993. 8), 10대 나기순(羅基淳) 루도비코(1993. 8~현재).
〔공소 시대〕 서천 일대는 일찍부터 복음이 전파된 지역 가운데 하나로, 이곳 산막골에는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순교한 성 황석두(黃錫斗, 루가)와 김 요셉 회장 등이 거처하였으며, 공주 순교자인 박 요한 회장과 그의 아들 박운서(바오로)도 서천 정수동 출신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이웃인 비인 출신의 임 바오로가 공주에서, 김 펠릭스, 김 가브리엘과 요셉 형제 등이 서울에서 순교하였다. 이처럼 순교자들이 탄생하면서 서천의 신앙 공동체는 일시 와해되었으나, 박해가 끝난 뒤 다른 지역의 신자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오거나 순교자의 후손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면서 여러 곳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박해 후 서천 지역에 형성된 공동체 가운데에서도 1884년에 공소로 설정된 독뫼(문산면 수암리)와 작은재(판교면 금덕리), 1890년에 공소로 설정된 용아실(마서면 덕암리) 등이 유명하였는데, 이 공소들은 1897년 이래 공주 본당 소속이 되었다. 그러다가 1901년 4월 27일에 공주에서 부여 본당이 분리 · 설립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공베르(J. Gombert, 孔安世) 신부가 임명되었다. 이후 공베르 신부는 용아실과 갈덕리 공소(부여군 옥산면 가덕리)에 머무르면서 본당 중심지를 물색하였고, 마침내 소양리 공소(부여군 구룡면의 金寺里)에 거처를 정하였다. 이로써 서천 지역의 공소들은 모두 부여 금사리 본당에 속하게 되었다.
〔설립과 변모〕 서천의 공소들은 이후 일제 시대 초까지 계속 유지되어 오다가 신자들의 이주로 폐쇄되고 말았다. 대신 서천읍의 신자수가 증가하면서 1934년에 금사리 본당 관할 '서천 공소' 가 설립되었으며, 2년 뒤인 1936년에는 '서천 본당' 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조인원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2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영식 신부는 서천 인근의 장항이 교회 발전에 더 요지라고 생각하고 그곳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 결과 1941년에 부지 2,400평을 매입한 뒤 작은 건물 한 채를 신축하였으나, 김영식 신부는 이듬해 1월 강릉(현 임당동) 본당으로 전임되고 말았다. 그 후 서천 본당은 1943년 12월 15일자로 장항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그 관할 공소가 되었으며, 성당 부지는 매각되었고 사제관은 공소 건물로 사용되었다. 1955년에 들어 서천 공소 신자들은 공소 강당을 건립한 뒤 이듬해 라리보(Lamibeau, 元亨根)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당시 장항 본당 주임은 유봉운(俞鳳雲, 야고보) 신부였다.
서천 공소 신자수가 1950~1960년대에 걸쳐 꾸준히 증가하자 공소 신자들은 본당 승격을 추진하는 한편 1967년 8월 10일에는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그 결과 그해 12월 29일자로 본당으로 다시 설정되면서 조병기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본당에서는 그 터전을 닦는 데 노력하면서 전교 활동을 전개해 나갔으며, 5대 윤인식 신부 때인 1976년 5월 23일에는 성모상을 축성한 데 이어 6월 9일에는 수녀원을 건립하였다. 6대 주임 김기 신부 이후 본당에서는 성당 신축 계획을 수립한 뒤 전 신자들의 노력으로 1984년 7월 2일 현재의 성당을 신축 봉헌하였다. 이에 앞서 1981년에는 사제관과 교리실(60평)이 완공되었었다. 그리고 1985년 4월 20일에 성당 복도를 확장하였고 8월 20일에는 성당을 증축했으며, 10월 15일에는 조경 공사를 실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1992년 6월 30일에는 교리실로 사용하기 위해 15평의 조립식 건물(2층)을 건립하였다. 1996년 이후 본당에서는 매년 관할 구역 내의 노인들을 위하여 경로 잔치를 여는 등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을 구현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 대전교구 ; 금사리 본당 ; 장항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보유편/ 천주교 대전교구 홍보국 편, 《대전교구 30년》, 천주교 대전교구, 1988.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