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조 때의 학자 신후담(愼後聃, 1702~1761)이 1724년(경조 4)에 이익(李翼)으로부터 처음 서학에 대해 들은 뒤 관련 서적을 구해 읽고 지은 척사론서. 원명은 《둔와서학변》(懸窩西學辨)으로, '둔와' 는 저자의 호(號)이다. 필사 원본은 국립 중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가 최근에서야 발견되었으며, 내용은 '기문편' (紀聞編)과 '서학변' (西學辨)으로 나뉘어 있다. 이 중에서 서학변은 《둔와선생문집》 권7에서 따로 발췌하여 기문편과 한데 묶은 것으로, 끝 부분에는 편자이자 제자의 글로 생각되는 부기(附記)가 붙어 있다. 한편 이만채(李晩采) 편의《벽위편》(闢衛編) 권1에도 '신둔와서학변' 이란 이름으로 기문편이 없이 서학변 부분만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안설(按說)이 원본과 약간 차이가 있다.
기문편에는 1724년 봄부터 1729년 가을까지 근기(近畿) 남인의 산림들인 안산의 이익(李翼), 이천의 이식(李栻) , 상주의 이만부(李萬數) 등을 방문하고 서학에 관해 토론한 6편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또 1724년에 저술한 서학변에는 삼비아시(F. Sambiasi, 畢方濟)의 《영언여작》(靈言蠡勻) 마테오 리치(M. Ricci, 利瑪竇)의 《천주실의》(天主實義) 알레니(J. Aleni, 艾儒略)의 《직방외기》(職方外紀) 등에 대해 비판한 글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신후담은 서양의 영혼설, 천주의 개념이나 속성과 같은 보유론의 논리, 영혼 불멸설 · 천당 지옥설 · 동정설 등의 교리, 서양의 학교 제도와 천하 일가설(天下一家說)과 같은 내용을 전통 유학자의 입장에서 배척하였는데, 특히 이기론(理氣論)에 바탕을 두고 《영언여작》에 나타난 서학의 영혼론(anima, 亞尼瑪)을 조목별로 논평한 점은 훗날의 어느 척사론에서도 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 다만 그는 천주의 속성을 설명하는 가운데 "천지 만물을 주재하고 안양한다"는 점에서는 유가의 상제와 같음을 인정하고 있으나, 이 또한 보유론(補儒論)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배척하려는 데 궁극의 목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스승 이익과는 달리 《직방외기》를 무조건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지리관을 갖거나 중화주의(中華主義) 세계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 후 신후담의 《서학변》은 강준흠(姜浚欽) 등 남인 공서계(攻西系) 인물들과 영남 산림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특히 이익과 안정복의 학통을 이은 허전(許傳, 1797~1886)은 그 내용을 높이 평가했으며, 1903년에 영남학파의 허칙(許伐) · 곽한일(郭漢一) 등은 《대동정로》(大東正路)를 편찬 간행하면서 그 안에 《서학변》 일부를 수록하였다. (→ 신후담 ; 척사론)
※ 참고문헌 慎後聃, 《遜窩西學辦》 李晚采 편, 《闢衛編》 許É.郭漢一 편, 《大東正路》 崔東熙, (慎後聃의 西學辨에 관한 연구>, 《亞細亞研究》 5권 2호, 高麗大學校 亞細亞問題研究所, 1972/ 朴鍾鴻, 〈西歐思想의 導入 批判과 攝取〉, 《韓國天主教會史論文選集》 1집, 韓國敎會史研究所, 1976/ 車基真, 〈星湖學派의 西學 認識과 斥邪論에 대한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 학위 논문, 1996. 〔車基真〕
《서학변》
西學辨
글자 크기
7권

<벽위편> 권1에 수록되어 있는 '서학변'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