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 라는 말의 히브리어 표현은 'aron(אָדוֹן)이다. 이말은 구약성서에서 201번 사용되었으며, 그중 세속적 용례로 사용된 헌금 상자(2열왕 12, 10. 11 = 2역대 24, 8. 10. 11)나 관(창세 50, 26)을 의미하는 6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궤를 의미하였다. 한편 구약 성서에서는 궤의 명칭이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궤(출애 25, 14 ; 31, 7 ; 민수 10, 35 등 62회), 야훼의 궤 또는 하느님의 궤(여호 3, 13 ; 4, 5 ; 1사무 3, 3 ; 4, 11 등 81회), 이스라엘 하느님의 궤(1사무 5, 7. 8 등 8회), 계약의 궤( 여호 3, 6. 8 등 6회), 야훼의 계약의 궤(신명 10, 8 ; 31, 9 등 30회), 하느님의 계약의 궤(판관 20, 27 ; 1사무 4, 4 등 4회), 주의 계약의 궤(1열왕 3, 15의 1회), 증거의 궤(출애 25, 22 ; 26, 33 등 12회), 권능의 궤(시편 132, 8 ; 2역대 6, 41의 2회), 거룩한 궤(2역대 35, 3의 1회), 나무 궤(출애 25, 10 ; 신명 10, 1. 3 등 3회).
〔형 태〕 궤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었으며, 길이가 2.5규빗(약 125cm), 너비와 높이가 1.5규빗(75cm) 정도의 크기이며, 궤의 안팎은 금으로 입혀졌다. 금고리를 한쪽 면에 두 개, 또 마주보는 면에 두 개를 달았다. 금으로 멜대를 만들어 고리에 끼워서 궤를 멜 수 있게 했다. 궤 속에는 증거판('edut)을 넣어 두었다. 그 위에 길이가 2.5규빗, 너비가 1.5규빗의 금 덮개를 만들어 덮었다. 이 덮개를 속죄판(kapporet)이라 불렀다. 또 그 위에 두 거룹이 마주보고 앉아 있다(출애 25, 10-22 ; 37, 1-9 참조).
이 기록은 제관계 저자의 보도로서 구체적이며 상세하지만 그의 보도를 모두 실제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그는 많은 부분을 전승 요소에서 끌어왔으나, 자신의 신학적 견해가 담긴 첨가 부분도 있다. 덮개(속죄판)는 제 관계 문헌에만 나오는 부분으로서 속죄 사상에 대한 발전과 함께 궤와 결합되었다. 금 장식과 증거판에 관한 부분도 제관계 저자의 몫으로 돌려야한다. 신명기계 문헌(Dtn/Dtr)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기록된 (두) 돌판에 대해 언급한다. 이로써 궤는 법궤라는 명칭을 가질 만하다. 이 돌판을 제관계 저자는 증거판이라 개명하였다.
〔기 원〕 신명기계 문헌과 제관계 문헌에서는 모세가 하느님의 명령을 따라 시나이에서 만들었다고 전한다. 이것은 신명기 이전 문헌에서는 궤의 기원에 관한 정보를 전하고 있지 않음을 말한다. 따라서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 사울과 다윗 시대에는 의심할 바 없이 궤가 이스라엘에 있었다. 궤가 실로 성소에 있었음을 전하며 (1사무 3, 3 ; 4, 3), 블레셋과의 전투에도 궤가 등장하였으며(1사무 4, 5 이하), 전투에서 빼앗겼으며(1사무 4, 11), 또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왔다(1사무 6장). 다윗에 의해 궤가 다윗성에 옮겨 왔으며(2사무 6장), 솔로몬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옮겨 왔다(1열왕 8, 1 이하). 다른 한편 족장 시대에는 궤에 대한 언급이 없다. 따라서 궤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모세 시대, 혹은 가나안 땅 정착 이후 시대로 귀착된다.
모세 기원설 : 그레스만(H. GreBmann)은 성서의 전승을 면밀히 검토하여 궤는 야훼의 명령에 의해 모세가 시나이에서 만들었을 수 있다고 보았다. 출애굽기 33장 5절과 7절 사이에 궤를 만들라는 야훼의 명령이 소실(消失)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주장을 일명 '소실 테제'라 한다. 소실 테제의 근거는 첫째 민수기 10장 33절, 14장 44절과 여호수아서 2-4장에서 이미 궤의 존재를 전제하며, 둘째 출애굽기 33장 7-11절에서의 장막 성전은 그 속에 궤가 있을 때 의미가 있다. 특히 모세가 떠난 후에 여호수아가 혼자 장막에 남은 것은 사무엘이 실로 성소에서 궤를 지킨 것과 같이 그도 궤를 지키기 위함이라 보아야 한다. 소실 테제는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잃어버린 부분은 증명할 수 없다. 둘째, 모세 오경과 여호수아서에서 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은 전승사적으로 모두 후기의 것으로 궤의 실제를 이미 전제하고 있는 저자에 의해 형성되었다.
가나안 기원설 : 디벨리우스(M. Dibelius)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비로소 궤를 알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첫째, 궤가 가나안 땅 정착 이전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성서적 근거가 희박하다. 다른 전승들, 예를 들어 출애굽기 17장 8-16절, 민수기 21장, 여호수아서 8-10장, 판관기 4-5장 등에는 궤에 대한 언급이 없다. 둘째, 기술적인 측면에서 궤 제 작은 광야 유랑 시절보다는 가나안 정착 시절이 더 적합하다. 셋째, 사무엘 전서 3-6장에서는 궤가 주로 하느님의 궤로 명명되다가, 사무엘 후서 6장 2절에서 만군의 야훼의 궤로 불리워졌다. 즉 이스라엘화되었다.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을 부인하는 이도 많다. 모세 오경과 여호수아서 속에 나타난 궤에 대한 전승은 전승사적으로 후기의 것이지만, 궤의 실제를 경험한 이의 회상을 담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R.de Vaux).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두 견해 모두 문제가 있다. 궤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국가 형성 이전 시대에 대한 이해와 결부되어 있다. 최근 연구 경향에 의하면, 가나안 땅으로의 점진적 이주설(W. Thiel)과 야훼 신앙이 이스라엘 역사 발전과 함께 점진적으로 발전했다는 주장을 편다(Perlitt, Lang). 따라서 가나안 기원설이 더 타당하다.
〔기 능〕 이스라엘 역사의 발전과 함께 궤의 기능도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전쟁 수호 성전(Kriegspalladium) : 궤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옮겨지기 전에는 전쟁 수호 성전의 기능을 하였다. 고대 사람들의 사유에 따르면, 전쟁은 거룩한 전쟁, 즉 신들의 전쟁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내재를 상징하는 궤를 항상 전장(戰場)에 가져 갔다. 전투에서 하느님께서 도와주신다고 믿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 궤를 가져 갔으며(1사무 4, 3 이하), 암몬과의 전투에 궤가 언급되었으며(2사무 11, 11), 다윗이 망명할 때도 궤를 가져 가려 했다(2사무 15, 24 이하). 궤가 전쟁의 수호 성전으로 이해되는 한, 궤는 이동 성전이었다. 이 점에서 민수기 10장 33절 이하와 여호수아서 3-4장에 언급된 이동 성전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궤는 길 안내자로 이해되었다.
야훼의 옥좌 : 궤가 솔로몬에 의해 예루살렘에 안치되면서, 궤는 이동 성전으로서의 기능이 끝난다. 이제 궤는 야훼가 머무르는 곳, 즉 야훼의 내재를 상징하는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 야훼는 거룹 사이에 계신 분으로 이해된 것(판관 6장 ; 2열왕 19, 15= 판관 37, 16 ; 시편 80, 2 ; 99, 1 ; 참조 : 1사무 4, 4 ; 2사무 6, 2 ; 1역대 13, 6)과 예루살렘을 야훼의 옥좌(예레 3, 16 이하 ; 7장)라 부른 것은 궤를 하느님의 옥좌로 이해했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궤가 비워져 있어야 한다(= 빈 하느님의 옥좌) . 이와 같은 이해는 다윗 왕권의 부강과 영존을 기원하는 시온 전통(신학)과 함께 발전하였다(J. Jermias).
계약의 궤, 증거의 궤 : 계약의 궤는 계약의 돌판(제관계 문헌 : 증거판) 없이는 이해될 수 없는 표현이다. 신명기적 서술에 따르면, 모세가 하느님의 말씀(혹은 계약)을 받아 두 돌판에 기록하여(출애 24, 12 ; 34, 1. 28 ; 신명 5, 22 ; 9, 9. 11. 15 ; 10, 4), 이를 궤에 넣어 두므로 이 궤는 계약의 궤로 불렸다. 포로기에 접어들면서 구두로 선포되었던 하느님의 말씀이 문자로 기록되면서 계명으로 이해되어졌고, 다른 한편 계약 사상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여 포로 전환기 혹은 포로 후기에 와서 계명과 동의어로 이해되어졌다(韓東九). 따라서 모세가 돌판에 받아 적은 것은 하느님 말씀(출애 34, 1 ; 신명 5, 22 ; 10, 4)으로, 계명(출애 24, 12)으로, 계약(출애 34, 28 ; 신명 9, 9 ; 11, 15)으로 혼용하여 사용될 수 있다. 전승사적으로는 계약의 돌판과 함께 계약의 궤는 시나이 산 계약(출애 24, 3-7), 호렙 계약(신명 5, 1-5), 모압 계약(신명 28, 69=신명 29, 1) 혹은 요시아의 계약(2열왕 23, 1-3)을 전제한 아주 후기의 것이다. 제관계 저자는 이 돌판을 증거의 돌판으로 개명했고(출애 25, 16. 21 ; 31, 7. 18 등), 따라서 증거판을 넣어둔 궤를 증거의 궤라 불렀다(출애 25, 22. 26. 33 ; 30, 6. 26 등). (← 결약의 궤)
※ 참고문헌 M. Dibelius, Die Lade Jahves, 《FRLANT》 7/ H. Greßmann, Die Lade Jahves und das Allerheiligste des salomonischen Tempels, 《BWATNF》 1/J. Herrmann, Art ἰλατήςον 1, 《ThWNT》 3/ E. Kutsch, Lade Jahwes, 《RGG》 4/ J. Maier, Das altisraelitische Ladeheilig- tum, 《BZAW》 93, Berlin, 1965/ G. v. Rad, Zelt und Lade, 《NKZ》 42, 1931, pp. 478~498/ ⸺, Gesammelte Studien zum Alten Testament, 《TB》 8, München, 1961, pp. 109~129/ ⸺,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 1, München, 1960, pp. 27~30, 235~238/ R. Schmitt, Zelt und Lade als Thema alttestamenticher Wissenschaft, Gütersloh, 1972 /R. de Vaux, Lebensordnungen 1, Freiburg i B, 1964, pp. 118~124/ H.J. Zobel, Art, אדוֹן, 《ThWNT》 1/ Han, Dong-Gu, Das Deuteronomiumund seine soziale Konstellation, Frankfurt - Diss, 1993/ J. Jermias, Lade und Zion. Zur Entstehung der Ziontradition, in H.W. Wolff(Hg), Probleme biblischer Theologie, FS für G. von Rad, München, 1971, pp. 183~198/B. Lang, Die Jahwe - allein - Bewegung, in der(Hg.), Der einzige. Die Geburt des biblis- chen Monotheismus, München, 1981, pp. 47~83/ L. Perlitt, Bundestheologie im Alten Testament, 《WMANT》 36, Neukirchen - Vluyn, 1963/ W. Thiel, Die soziale Entwicklung Israels in vorstaatlicher Zeit, Neukirchen - Vluyn, 1985. 〔韓東九〕
계약의 궤
契約 — 櫃
[히]אָ' םבָּרִימ T · [라]arca foederis · [영]ark of the coven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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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르나움에서 발견된 계약의 궤 부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