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성북구 석관1동 202-8 소재. 1978년 3월 15일 이문동(里門洞) 본당과 장위동(長位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부활. 관할 구역은 석관1 · 2동, 이문3동 전역과 상월곡동 일부 지역. 〔교 세〕 본당 설립시 1,320명, 1981년 3,581명, 1985년 5,920명, 1989년 8,737명, 1993년 3,804명, 1997년 3,584명. 〔역대 신부〕 초대 박노헌(朴魯憲) 요한 그리소스토모(1978. 3~1982. 2), 2대 이종효(李宗孝) 글레멘스(1982. 2~1987. 8), 3대 이기헌(李基憲) 베드로(1987. 8~1990. 2), 4대 장강택(張康澤) 필립보(1990. 2~1993. 11), 5대 홍인수(洪仁壽) 요한(1993. 11~1998. 9), 6대 박선용(朴先用) 요셉(1998. 9~현재).
1970년대 중반까지 석관동 일대의 신자들은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관할 본당인 장위동 본당 대신 이문동 본당이나 청량리 본당의 미사에 참석하였다. 이처럼 타본당의 주일 미사에 참석함으로써 지역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자 장위동 본당 2대 주임 호간(J. Hogan, 강) 신부는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지원을 받아 석관동 119-15번지 일대의 부지 310평을 매입하고 본당 신설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 부지가 준공업 지대인 탓에 건축 허가를 받지 못하자 교구에서는 1977년 초에 석관동 본당 설립을 계획하고, 같은 해 6월 현 본당 부지 324평을 매입하는 대신 위의 부지를 교구로 귀속시켰다. 이어 1978년 1월 16일 신축 부지에서 미사가 집전되었으며, 2월 1일에는 이문동 본당 보좌인 박노헌 신부가 본당 신설 준비 책임자로 임명되었고, 3월 15일에는 '석관동 본당' 이 설립됨과 동시에 장위동 본당에서 192세대 592명, 이문동 본당에서 216세대 728명의 교적을 이관받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2일 첫 미사와 신축 성당 기공식을 가진 후 9월 10일에 본당 사목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이듬해 1월 5일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을 마련하였고, 7월 1일에는 438평 규모의 성당과 부속 건물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한편 1981년 12월 27일 본당 신자들에 의해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보금자리인 '사랑의 집' 이 문을 열었으나, 1988년 11월에 이 집이 논산(論山)으로 이전됨에 따라 운영권을 이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4대 주임 장강택 신부 때인 1990년 11월에는 소성당과 부속 시설의 개 · 보수 공사를 실시한 데 이어 성당 확장을 위해 주택 2채를 추가로 매입하였고, 신자수의 증가로 1992년 9월 24일에는 '월계동(月溪洞) 본당' 을 분리함과 동시에 1,510세대 4,089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사목 활동 중 근검 절약을 몸소 실천하였던 5대 주임 홍인수 신부는, 특히 1998년 1월부터 신자 개인별 교무금 통장을 갖게 함으로써 보다 체계적인 본당 운영을 추진하였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李裕林]
석관동 본당
石串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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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