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도르트문트(Dortmund)에서 태어나 1907년 한 학기 동안 뮌헨에서 예술사와 독문학과 심리학을 공부한 후 전공을 바꾸어 1912년까지 예나(Jena), 베를린,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베를린 대학에서는 하르나크(A. Harnack), , 하이델베르크에서는 트릴치(E. Troeltsch)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17년 스텔천도르프(Stelzendorf)의 목사, 1925년부터 도른도르프(Dorndorf)에서 목회하면서 예나 대학 신학부의 조직신학 강사, 1931년에 브레슬라우 대학 교수, 1935년부터 1955년 은퇴하기까지 괴팅겐의 교수로 있었다.
〔주요 주제〕 고가르텐은 보누스, 트릴치 외에 부버(M. Buber), 에브너(F. Ebner), 그리스바흐(J.J. Criesbach) 등에게서 신학적 영향을 받았다. 1915년경 이후 루터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였으며, 1945년 이후는 계속 헤르만(W. Hermann)의 영향을 받았다. 한때 바르트(K. Barth)의 변증법적 신학에 동참하였으나 다시금 에브너, 그리스바흐, 부버의 영향을 받아 변증법적 신학의 초자연주의를 거부하고, 국가 사회주의적 종교 철학을 지지했다. 특히 하이데거(M. Heiddeger)의 영향을 받아 실존 철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53년에는 《비신화화와 교회》에서 불트만(R. Bultmann)의 그리스도교의 비종교화' 를 간접적으로 옹호하였다.
고가르텐의 신학은 하나의 통일성을 갖고 있다. 그는 그의 신학을 '하느님의 말씀이 각 개인의 종교적 체험 속에서 어떠한 역사적 현실성(Wirklichkeit)을 갖는가?'하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개인의 종교 체험 속에서 '율법과 복음' 으로 경험될 수 있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이러한 고가르텐의 일관된 신학적 관심사, 즉 말씀의 역사적 '현실성 이해' (Wirklichkeitverständnis)는 구체적인 신학적 주제에 따라 일반적으로 세 시기로 구분되는데, 타이센(K.W. Thyssen)은 그 시기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1914~1925년 : 그의 신학 초창기에는 트뢸치가 주장한 하느님의 역사적 내재주의를 거부하는 대신 하느님의 초월성을 주장하면서, "종교의 핵심은 신과 인간의 일치(ldentität)이고, 구원은 이 일치를 인지(認知)하는 데서 일어난다"면서 주장했다. 그러나 신과 인간의 일치를 인식하는 것은 신비적 종교 체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계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즉 "인간이 하느님의 삶 안에서 받아들여질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전적 타자' (全的他者 : ganz Andere)로서 우리에게 질문을 제기하는 분이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 즉 종교 체험을 통해서는 인식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인간의 자율을 거부하고, "우리냐 아니면 영원이냐"는 인간의 실존적 결단을 촉구했다. 이러한 고가르텐의 초창기 신학을 우리는 '역사주의에 의해서 주장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규정에 대한 변경' 으로 특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학적 특징 속에는 "하느님과 인간의 본질적 합일이 어느 정도 가능한지" 묻는 현실성 이해' 가 그 기초를 이루고 있다.
1925~1937년 : 이 시기에는 '진리에 대한 인식과 하느님의 윤리적 요청' 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율법을 통하여 하느님의 심판을 경험하는 것과, 일반적인 진리를 인식하는 것을 구분했다. 그는 이상에 의한 일반적인 진리 인식 내지는 본질 인식과, 시공간 안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전달(Botschaft)의 인식을 구별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역사적 사건과 관계되고 이 사건에 관한 전달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느님의 계시는 결코 일반적인 진리가 아니라 '특수 계시'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 '특수 계시' 로부터 영원한 하느님의 계시와 인간의 현실성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이 특수 계시' 의 역사적 '현실성 이해' 로부터 자신의 윤리학을 정립했다. 그는 인간 존재를 '고유한 존재' (ein Für-sich und Aus-sich-sein)로 이해하지 않고 타자로부터 나온 자' (Vom-anderem-her-sein)로 이해하려 했다. 즉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여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참된 존재를 타자 속에서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존재 방식을 그는 '예속'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윤리적 요청은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는 바, 즉 '사람은 스스로 이것 저것을 행한다'(Man tut dies und das)와 '너는 ~해야 한다' (Du sollst)이다. 그런데 그에 의하면 '너는 ~해야 한다' 의 당위성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진리와 가능성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에 대하여 주체성을 지닌 인간의 자
율을 배척하고 신율(神律, Deonomie)을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고가르텐은 하느님의 심판의 경험, 즉 율법의 제2용법(usus secundus legis - 율법은 인간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지시해 줌으로써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루터의 주장)에서 자신의 윤리학을 정립했다.
1945~1967년 : 말기에는 인간 행위의 자율을, 율법의 제1용법(usus primus legis - 율법은 인간의 행위를 제한하고 인간의 죄를 심판하는 역할을 한다는 루터의 율법 이해)에 근거하고 정당화했다. 즉 하느님의 윤리적 요청은, 인간의 자율을 전제한다는 스콜라주의자들의 휴머니즘으로 되돌아갔다. 그래서 그는 말씀의 역사적 '현실성 이해'를 성서와 루터 연구를 통하여 새롭게 전개했다. 그는 '역사적 예수 문제' 에 새로운 관심을 갖고, 신약성서의 케리그마와 예수의 선포 사이에 어떠한 역사적 현실성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에 의하면 성서적 케리그마에 앞서는 것은, 오히려 역사적 예수의 현실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책임성 내지는 그 사건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고 했다. 이러한 응답은 바로 예수에 대한 신앙 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세상에 대하여 갖는 책임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현실성은,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세상에 대하여 갖는 예수의 책임성과 같은 것으로서, 그것은 동시에 예수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인간의 응답 그 자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느님의 자유로운 통치에 대한 응답이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의 역사적 현실성을, 율법과 복음에 의하여 결정되는 하나의 사건으로 보았다. 즉 루터가 주장한 율법의 제1용법과 제2용법을 인간의 두 가지 책임과 연관하여 이해하였다.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대하여 갖는 책임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 앞에서 갖는 신앙의 책임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삶 속에서 역사적으로 현실화시킴으로써 세상은, 신적인 것도 악마적인 것도 아닌 "단지 세상일 뿐이다" 라는 세속화(Säkularisierung)론을 전개했다. 고가르텐의 제3시기 신학을 특징짓는다면, 그는 신앙 개념을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인간(Coram Deo)이, 역사 속에서 세상에 대하여 갖는 인간의 책임성과, 인간의 행위에 앞서있는 하느님의 행위에 대한 신앙을 구분하여 전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그는 그리스도인의 행위를 신앙적 자율로 특징지었다.
〔영 향〕 고가르텐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역사적 현실성과 관련하여 그의 신학의 주제로 삼고, 신과 인간과의 관계 및 신앙을, 인간이 세상과 갖는 관계성으로 세속화시켰다. 이러한 고가르텐의 신학적 사고는 윤리학, 정치학, 사회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의 자연에 관한 이해는 가톨릭 신학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사건으로서의 율법과 복음의 해석, 하느님 앞에서 세상에 대하여 갖는 그리스도인의 책임성으로서의 신앙 해석은 비판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 왜냐하면 율법이 이데올로기화 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주요 저술은 다음과 같다.
〔저 서〕 Fichte als rel. Denker, Jena, 1914/ Die rel. Entscheidung, Jena, 1921. 2, Aufl, 1924/ Ich glaube an den dreieinigen Gott, Eine Unters. über Glauben u. Gesch, Jena, 1926/ Politische Ethik, Vers. einer Grundlegung, Jena, 1932/ Gericht oder Skepsis, Eine Streit-schr. gegen Karl Barth, Jena, 1937/ Die Verkündigung Jesu Christi, Heidelberg, 1948. 3, Aufl, 1967/ Der Mensch zwischen Gott u. Welt, Heidelberg, 1952. 4, Aufl, 1967/ Entmytholo-gisierung u. Kirche, Stuttgart, 1953. 4, Aufl, 1967/ Verhängnis u. Hoffnung der Neuzeit. Die Säkularisierung als theol. Problem, Stuttgart, 1953. 2, Aufl, 1958 / 맹용길 역, 《우리 시대의 절망과 희망》, 대한기독교서회, 1977/ Jesus Christus Wende der Welt. Grundfragen zur Christologie, Tiibingen, 1966, 2. Aufl, 1967. 1 프로테스탄트 신학)
※ 참고문헌 H. Fischer, Christl. Glaube u. Gesch. Vorausetzumgen u. Folgen der Theol. Friedrich Gogarten, Gütersloh, 1967/ F.W. Garf, Friedrich Gogartens Deutung der Moderne, 《ZKG》 100, 1989, pp. 169~230/ P. Henke, Gogarten, 《TRE》 13, 1984, pp. 563~567/ M. Kroeger, Friedrich Gogarten liest über, die Frage nach Gott, Göttingen, 1967/ G. Gloege, Der theol. Personalismus als dogm. Problem. Versuch einer Fragestellung : ders. Heilsgeschen u. Welt . Theol. Traktate 1, Göttingen, 1965/ C. Naveillian, Strukturen der Theol. Friedrich Gogartens, München, 1972/ K- W. Thyssen, Begegnung u. Verantwortung. Der Weg der Theol. Friedrich Gogartens v. den Anfángen bis zum 2. Weltkrieg(HUTh 12 ; Tübingen, 1970/ R. Weth, Gott in Jewuw. Der Ansatz. der Christologie Friedrich Gogartens. Mit einer Gogarten-Biblior, München, 1968 / 홍정수, 《다종 교와 기독교》, 조명출판사, 1990/ 박봉랑, 《신의 세속화》, 대한기독 교출판사, 1990. 〔金在鎭〕
고가르텐, 프리드리히 (887 ~ 1967)
Gogarten, Fried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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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프리드리히 고가르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