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교구 신부. 재속 프란치스코회(제3회) 회원. 세례명은 바오로. 일명 윤학(允學) 1899년 5월 16일 전북 함열(咸悅)에서 태어나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한 뒤 1926년 5월 29일 사제 서품을 받고, 이튿날 대구(현 계산동) 본당에서 분리된 남산동(南山洞) 본당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1928년 5월 장수(長水) 본당 2대 주임으로 전임되어 소화학원(小花學院)을 설립하는 등 지역 사회와 융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석종관 신부는, 1935년 5월 16일에 수류(水流) 본당에서 분리된 남원(南原) 본당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어 그곳에서도 소화 학당을 설립했다. 1937년 2월에 다시 수류 본당으로 부임하였으나, 이듬해 6월 김제(金堤, 현 요촌)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어 활동하던 중 일제의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942년에는 잠시 구금되기도 하였다.
1944년 9월 20일 일본으로 건너간 석종관 신부는 재일 교포 신자들을 위해 활동하면서 1946년 6월에 재속 프란치스코회(제3회)에 입회하여 수사 신부가 되었다. 그러다가 20여 년 만인 1967년 12월에 일본 도쿄 대주교도이(土井) 추기경으로부터 정식 초청을 받고 이듬해 4월 18일 초대 한국인 지도 신부로 임명되었으나, 1969년 5월 9일 마산교구 장병화(張炳華, 요셉) 주교의 요청으로 귀국하였다. 그 후 석종관 신부는 문산(文山) 본당을 거쳐 1970년 1월 29일 의령(宜寧) 본당으로 전임되어 사목하던 중 1974년 3월 3일 고혈압으로 사망하여 마산시 우산동에 묻혔다가, 1988년 4월 19일 경남 고성(古城)의 교구 성직자 묘지로 이장되었다. 한편 사망하기 1년 전에 석종관 신부가 성 바오로 수녀회에 기탁한 기금은 '바오로 위문회' 를 통해 불우 이웃 돕기 기금으로 사용되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경향잡지》 567호(1926. 6. 1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p. 17~19/ 김진소 편, 《천주교 전주교구사 연표》, 호남교회사연구소, 1993. 〔李裕林〕
석종관 (1899~1974)
石鍾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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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석종관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