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dhyāna · 〔팔〕jhā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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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서 세밀하게 사유하는 것이다.

선은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서 세밀하게 사유하는 것이다.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서 세밀하게 사유하는 것. 산스크리트어 '디야나' (dhyana)와 팔리어 '쟈나'(jhana)를 음역한 선나(禪那)의 약칭이며 정려(靜慮) ·사유 수습(思惟修習) · 기악(棄惡) · 공덕 총림(功德叢林)등으로 의역된다. 흔히 한 가지 대상에 몰입된 정신 상태를 뜻하는 '정' (定)과 합쳐져 '선정' (禪定)으로 불리기도 한다.
① 선의 기원과 전래
〔기 원〕 '선' 은 본래 불교 용어가 아니라 고대 인도의 요가(yoga)에서 쓰이던 말이다. 곧 마음을 자유자재로 제어하는 경지인 요가 수행의 제7 단계가 '디야나' 인데, 이것이 불교에 채용되어 오늘날 아시아의 불교 문화권에서는 대체로 불교의 전문 술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불교의 선은 석가모니의 깊은 깨달음을 상징하는 한송이의 꽃과 미소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즉 남송(南宋)의 무문혜개(無門慧開) 선사가 편찬한 《무문관》(無門關) 제6칙 '세존 염화' (世尊拈花)에는 "영산(靈山)에서 설법하시던 세존께서는 대중들에게 한 송이 연꽃을 들어 보였다. 대중들은 그 영문을 몰랐으나 오직 가섭(迦葉)존자만이 홀로 미소를 지었다. 이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진리에 관한 바른 안목〔正法眼藏〕과 열반으로 향하는 미묘한 마음〔涅槃妙心), 형상을 벗어난 실상〔實相無相)과 지극히 미묘한 진리의 문〔微妙法門〕,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不立文字], 경전의 법을 넘어선 가르침〔敎外別傳〕을 가섭에게 전한다' " 라고 하여 선의 기원을 소개하였다. 이처럼 선 불교는 한 송이의 연꽃을 들어 보인 석가모니와 이를 바라보고 홀로 깨달음의 미소를 지은 가섭의 '이심전심' (以心專心)에서 시작되었다. 즉 석가모니는 언어의 설법보다는 한 송이의 연꽃을 말없이 들어 보임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였고, 가섭은 자신이 직관한 부처의 지혜를 미소로써 대답하였던 것이다.
〔전 래〕 부처와 가섭 존자의 설화에서 비롯되는 불교의 선 사상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것은 후한(後漢) 때였다. 그러나 《능가경》(楞伽經)에서 말하는 이타적 능동적인 선은 북위(北魏) 때 인도 승려 보리달마(菩提達磨)에 의해 전래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달마의 사상은 그의 저서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에서 볼 수 있듯이 벽관(壁觀)으로 유명한데, 이것은 외부로부터 오는 번뇌인 객진(客塵)과 작위적 망념(作爲的 妄念)이 침입하지 않는 것을 벽에 비유하여 본래 청정한 마음을 직관한다는 뜻이다. 이 선법은 가섭 이래 28조(祖)가 이어져 내려와 달마에 이르렀으며, 달마가 중국에 전하면서 초조 달마→2조 혜가(慧可)→3조 승찬(僧璨)→4조 도신(道信)→5조 홍인(弘忍)→6조 혜능(惠能)' 으로 이어지는 선의 법맥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수용된 중국의 선은 일체 중생의 제도에 전념하는 여래선(如來禪)으로, 일상 생활 속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행(行) · 주(住) · 좌(坐) · 와(臥)의 생활선(生活禪)으로 전개되었다. 곧 중국 선의 근본 기치인 불립문자(不立文字) . 교외별전(敎外別傳) · 직지인심(直指人心) · 견성성불(見性成佛)은 이러한 입장의 반영인 것이다. 또한 선의 체험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 선의 지도에 있어서는 개별성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점이 부각되어 중국 선종에서는 사자(師資, 스승과 제자)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이에 조사(祖師, 一宗 또는 一派를 연 사람)의 권위는 경우에 따라서 여래(如來) 이상으로 중시되어 그 선을 조사선(祖師禪)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따라서 제자들은 조사의 언어와 행동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고 그것을 수단으로 하여 좌선(坐禪)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 많은 공안(公案, 또는 話頭)이 생겨났는데, 이 공안을 참구(參究)하는 것을 간화선(看話禪)이라고 한다.
이러한 선 사상이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나말여초(羅末麗初) 때이며 그것이 고려의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과 조선의 서산(西山)을 거치면서 한국 불교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 결국 선의 기원은 인도에 있지만 선이 완전히 꽃을 피운 곳은 중국이었으며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불교의 선은 경전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지만, 당대(唐代) 승려인 종밀(宗密)은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 卷上)에서 선을 외도선(外道禪) · 범부선(凡夫禪) · 소승선(小乘禪) · 대승선(大乘禪) · 최상승선(最上乘禪) 등 5가지로 구분했다. 이 중 '외도선' 은 인도 일반에서 행해지던 선으로 생천(生天)을 목적으로 한 것이며, '범부선' 은 오계 십선(五戒十善)을 행하는 범부들이 실천하는 선이다. '소승선' 은 아공(我空)의 이치를 깨닫고 닦는 것이요, '대승선' 은 아(我)와 법(法)이 다공(空)한 이치를 깨닫고 닦는 것이다. '최상승선' 은 달마가 전한 선을 일컫는데, 여래 청정선(如來清淨禪)이라고도 하며 훗날 조사선(祖師禪)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선은 한마디로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곳, 즉 마음의 깨달음을 중시한다. 그래서 선적 깨달음의 경지를 "문자에 의존하지 말고, 경전의 법을 넘어선 가르침" (不立文字敎外別傳)이라고 말하며, 그것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以心傳心)라고 표현된다.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선' 또는 '선 사상' 은 중국에서 새롭게 재창조된 선종의 선 사상을 의미한다. (⇦ 달마 ; → 선종)
※ 참고문헌  《불교학 대사전》, 홍법원, 1988/ 一指, 《100문 100답 : 선 불교 강좌 편》, 대원정사, 1997/ 정성본, 《선의 역사와 선 사상》, 삼원사, 1994/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1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 〔鄭柄朝〕
②가톨릭과 선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전 까지 타종교에 대하여 지극히 배타적인 자세를 견지해 왔다. 교회는 타종교인들을 선교의 대상이며 회개의 대 상만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들과의 대화 및 교류는 거의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러한 교회의 입장이 변화를 가져 온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였다. 즉 공의회는 역 사상 처음으로 타종교의 존재 의미와 그 가치를 공식적 으로 인정하였고, 이는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 (Nostra Aetate)을 통하여 구체화되었다. 교회는 이 선언 에서 타종교인들도 자신들의 종교 전통을 통해 그리스도 교적 구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교회는 다른 종교와 대화 및 교류를 갖게 되었고, 나아가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실천적으로 협력할 것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종교간의 대화가 활발해지면서 가톨릭과 불교와의 대 화도 빈번해졌고 이에 가톨릭 신자나 성직자 중에는 불 교의 '선' (禪)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선이란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사유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다. 이러한 선 형태의 기도가 그리스도교적 명상 방법에 도입됨으로써 그리스도교적 명상 방법은 보 다 풍요롭게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선 명상의 실천에 있 어, 불교의 교리와 형이상학적인 토대를 그대로 두고 가 톨릭 신자들이 선의 수행을 실천할 수 있는가가 문제로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불교의 선은 문헌에 기초를 두지 않으며, 스승과 제자 사이의 대화는 언어를 통하지 않고 이루어진다. 또 선에서는 대상이 없는 명상, 즉 만약 길 을 가다가 석가모니를 만나면 석가모니까지도 죽이라고 할 정도로 철저히 중개자를 부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그 리스도교에서는 기도의 원천을 하느님의 말씀에서 찾으 며, 기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 하는 것으로 여긴다.
이러한 가운데 교황청 신앙 교리성에서는 1989년 10 월 15일에 <그리스도교적 명상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 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Oratianis formas)을 발표하였다. 이 서한에서는 인도의 요가와 불교의 선을 '명상의 동양적 방법' 이라고 지칭하면서 이것을 그리스 도교의 기도에 적용하는 데 있어 지나친 과장을 우려하 였다. 즉 그리스도교적 명상을 비그리스도교적 명상과 혼동하는 시도가 많다고 하면서 그리스도교적 명상을 동 양의 명상법과 조화시키려는 방안들이 혼합주의(syncre- tism)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경고를 내렸다. 혼합주의란 종교간의 중요한 본질적 요소를 뒤섞는 것으로 이러한 본질적 요소의 혼합은 바로 종교의 존립과 관계되기 때 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양자를 조 화시키는 방안들 속에는 언제나 지속적으로 검증되어야 하는 고유한 방도와 내용들을 지녀야 한다고 하였다(〈그 리스도교적 명상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 게 보내는 서한> 12항). 결국 신앙 교리성의 이 서한에서는 동양의 명상 방법들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28항) 그러 한 명상법들의 과장된 측면과 편파적인 측면들을 배제한
가운데(26항) 그리스도교 기도의 목적에 도움이 되는 요 소들을 취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16항).
한편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에서도 오늘날 한국의 사 회적 · 종교적 흐름이 건전한 신앙 생활을 위협하는 상황 이라고 전제한 뒤, 이러한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1997 년에 《건전한 신앙 생활을 해치는 운동과 흐름》이라는 자료집을 발행하였다. 이 자료집에서는 유사 종교 · 뉴 에이지 운동 · 종교적 다원주의 등 신앙 생활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경계하는 가운데, '선' 을 요가 · 명 상 · 도(道) · 기공(氣功) · 단전 호흡 등과 함께 '기' (氣) 와 관련된 비술(秘術) · 영술(靈術)의 하나로 간주하였 다. 아울러 이 방법이 심신 수련을 위해 사용되는 것은 무방하지만, '기' 를 신앙의 대상으로, '기' 체험을 성령 체험으로까지 해석하여 가톨릭 신앙의 고유성과 참된 가 치를 희석시켜서는 안된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자료집 에서 제시한 '선' 이 불교 고유의 선, 또는 교황청에서 말 하는 '동양적 명상 방법' 과 동일한 개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비술 · 영술과 관련된 방법으로 간주한 데 서 이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자료집에서 도 종교 혼합주의가 가톨릭 신앙의 고유성과 확고한 가 치를 위협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혼합주의의 위 험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즉 '선' 과 같이 불교의 교리 나 형이상학적 토대를 그대로 지닌 채 가톨릭 신자들이 참여하는 경우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제시되어야 할 것 이다.
※ 참고문헌  Yves Raguin, 《그리스도교 신앙과 禪〉, 《신학 전망》 74호(1986. 가을), 광주 가톨릭대학 전망 편집부, pp. 103~110/ <그리 스도교적 명상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 내는 서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회보》 57호(1990. 3), 한국천주 교중앙협의회/ 오장균, <교회와 타종교>, <한국가톨릭대사전> 2, 한 국교회사연구소, 1995/ 박양은, 《그리 스도교와 힌두교 · 불교》, 가톨 릭 출판사, 1997/ 주교 회의 신앙 교리위원회, 《건전한 신앙 생활을 해치는 운동과 흐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7.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