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

選民

〔그〕γένος ἐκλεκτόν · 〔라〕genus electum · 〔영〕chosen 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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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 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택했다" 는 유대교의 선택 사상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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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 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택했다" 는 유대교의 선택 사상에 근거한다.

선택(選擇)된 백성 혹은 선택된 민족. 여기서 '선택'이란 하느님이 자신의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어느 특정한 사람 혹은 집단을 골라 특수한 역할과 의무를 부과하였다는 의미이다.
이슬람교에서도 무슬림들이 최후, 최상으로 선택된 백성이라는 선민 의식이 있다. 넓은 의미에서는 자기 민족을 세계의 중앙에 위치한 문명국으로 여기는 중국의 중화(中華) 사상이나 일본의 황국 신민(皇國臣民) 사상, 독일의 나치즘(Nazism)이나 이탈리아의 파시즘(fascism) 등도 세속적 민족주의와 결탁한 일종의 선민 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선택된 백성, 즉 '선민' 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보다는 집단 특히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뽑았다는 유대교의 집단적 선택 사상 내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그리스도인의 선택 사상을 주로 일컫는다.
〔구약성서〕 '선민' 의 개념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였다" 고 하는 유대교의 선택 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때 '선택' 과 관련된 히브리어의 어근은 '바하르'( בָּחַר, 택하다, 뽑다)이며, 선택의 주체는 하느님이다. 옹기장이가 자유롭게 진흙을 빚듯이(예레 18, 4 : 로마 9, 21) 성서에서 말하는 선택은 무엇보다 하느님의 자유로운 행위이다.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선택될' 뿐이다. 하느님이 누구를 무엇 때문에 선택하는지에 대하여, 구약성서는 세세하게 이유를 언급하기보다는 단지 야훼가 이스라엘을 택하였다고만 하였다(신명 7, 6 : 14, 2). 그것
도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보다 우월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보잘것없고(신명 7. 7) 착하지도 않고(신명 9, 4) 야훼께 거역하는(신명 9, 7-8) 고집 센 민족(신명 9, 6. 13)인데도 선택하였다고 한다. 오히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택하였다는 것이다. 보잘것없는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의로움을 행하고 계명을 지킨다면, 이것이야말로 야훼가 나약한 인간과 언제나 함께해서 올바르고 강대하게 바꾸어 놓는 하느님이라는 표지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형(에사오)이 동생(야곱)을 섬기게 되리라"(창세 25, 23)는 말처럼, 보잘것없는 낮은 민족을 뽑아 번성하게 함으로써 야훼의 능력을 만천하에 보이리라(신명 7, 13-14)는 것이 선택 사상이 지닌 기본 의미이다.
하느님의 '선택' 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신명기(기원전 7세기경)이다. 그런데 어떤 개념이나 사상이 문헌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 개념이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 토양이 독자들 안에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였다는 믿음은 사실상 신명기 이전의 사건들에 기원을 두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가령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였다든지(창세 12장),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였다든지(출애 19장) 하는 하느님의 약속이 그 예이다. 모세 시대에 일어났던 이러한 극적인 사건들과 신명 기 이전의 사건들과 관련된 종교적인 설화나 해석들 속에 선민 사상의 뿌리가 놓여 있었던 셈이다. 이와 함께 '신(神)이 왕을 선택해 세운다' 는 주변 지역의 전통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이러한 영향을 배경으로 신명기계 저자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에게 "야 훼께서 뽑으신 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1사무10, 24). 다윗 역시 하느님에 의해 이렇게 뽑힘을 받았다(1사무 16, 8-10).
그런데 이러한 선택은 개인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예언자 이사야 · 예레미야 · 에제키엘 등도 모두 하느님에 의해 개인적으로 선택된 사람들이었다. 하느님이 왕이나예언자 같은 특정인을 선택하였다고 하는 개인 선택 사상이 남부 유대가 멸망(기원전 586)한 후에도 야훼와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집단적인 선민 사상으로 굳어져 갔다. 집단적인 선민 사상에 따르면, 별 볼일 없는 이스라엘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이 선택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며, 하느님의 선택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느님이 보잘것없던 이스라엘을 선택하였다고 하는 것은 다분히 신앙적인 반성에 의한 신학적인 개념이다. 즉 하느님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당신의 특별한 소유로 삼았다고 하는 이스라엘 초창기의 신앙을 신명기 저자가 '바하르' 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신학적으로 표현 하고 선민 사상으로 통합시킨 것이다. 이러한 선민 사상은 모세 이후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이었다. 또 이스라엘이 2,000년 이상 나라를 잃고 떠돌면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선민 사상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선민이란 하느님이 언제나 함께한다는 하느님의 선함과 의로움에 대한 신학적 반성으로 인한 유대인의 자기 정체성의 규정이었던 것이다.
[신약성서] 히브리어 '바하르' 에 해당되는 그리스어는 '에클로게' (ἐκλογή), '에클레크토스' (ἐκλεκτός) 등이다. 신약성서에서는 이 용어들을 통하여 구약의 선민 사상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신약에서의 선민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교회 공동체이다(디도 1, 1 : 1베드 1. 2). 신 약성서에서는 교회 공동체를 "하느님께서 택하신 사람들" (ἐκλεκτοί)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들, 하느님에 의해 '선택된 민족' (γένος ἐκλεκτόν, 1베드 2. 9)이다. 그러나 혈통 중심으로 보던 구약성서의 개념과는 달리 신약성서에서는 조상들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이 예수 안에서 그 자녀들을 위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사도 13, 32-33).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었다(에페 1, 4 : 로마 8, 29). 이런 식으로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의 종족중심적인 선민 사상을 교회 공동체 즉 예수의 추종자들에게 적용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결코 선택된 자들이 선천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1고린 1, 26-29 :야고 2. 5). 그것은 인간적인 자질과 무관하게 이루어진 하느님의 일방적인 사랑의 행위이며 은총이다(로마
11, 5). 교회 공동체의 예수 추종은 추종자 스스로 선택한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이 창세 이전부터 미리 세운 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말이다(1베드 1,2 ; 에페 1, 4).
어떤 사람을 선민이 되도록 하는 것은 영원한 하느님의 행위로 인한 것이다. 동시에 그 사람의 행위에 의해 확증되어야 할 것이다. 즉 자신을 선택한 하느님과 같이 완전해지는 것(1베드 1, 15) 혹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는 것이 선민의 구체적인 목표이다(로마 8, 29). 목표가 있다는 것은, 선택되었다고 그 자체로 완전한 선민이 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선민은 최종 목표를 향해 끝없이 나아가는 사람이다(필립 3, 12). 그러나 이미 하느님에 의해 선택되어 있는 까닭에 그 목표가 전혀 채워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선택 자체에 이미 선택의 목적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선민은 하느님의 목적을 이미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담지하고 있다는 원천적인 사실로 인해 완전한 선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구체화시킬 때에만 비로소 완전히 선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선민은 이미 이루어진 하느님의 선 택을 인간의 결단으로 구체화시킴으로써 비로소 확인되는 개념인 것이다. 생물학적인 특성이나 사회 제도 등으로 하느님의 선택을 보증할 수는 없다. 이미 이루어진 하느님의 부르심에 신앙으로 응답함으로써만 신약성서에서의 선민 즉 선택된 백성이 되는 것이다(로마 9, 6-8).
〔현대적인 의미〕 그렇다면 선민은 보통 사람들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혹은 선택된 백성은 어느 특정한 집단에 제한되는가? 현대와 같은 종교 다원주의적인 현실 속에서 이것은 중요한 신학적 물음이다.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하느님의 선택은 인류 구원을 위한 것이지 멸망이나 저주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은 온 인류의 구원을 원하여(1디모 2, 4) 온 인류를 구원의 길로 가도록 선택하였다. 이 하느님의 선택 자체가 인간에게는 구원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미 구원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원으로서의 하느님의 선택은 인간의 구체적인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도리어 그 행위를 근거 짓는 기초가 된다. 이 기초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것이므로, 하느님의 선택은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것이 아니라 포용적인 개방성을 지닌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이 보편적인 기초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사람 즉 이미 구원되어
있음을 아는 사람이 곧 선민이다(로마 10, 12-13).
그렇다면 사실상 누구나 이러한 의미를 '함축' 하고 있으므로 선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하고 만민이 구원받기를 원하셨듯이, 사실상 모든이가 구원의 길로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해서 혹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하여 구원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선택의 이유와 목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진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선택은 특권이 아닌 봉사와 헌신으로의 부름이다(아모 3, 1-2 : 출애7, 16 ; 이사 49, 1-6). 그렇게 부름받았다는 사실은 그 부 름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로마 3, 1-2). 그러나 그것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행위이고 인간의 역할로 그 하느님의 선택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그 선택을 신앙으로 확인하고 드러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미 이루어진 이 선택이라는 하느님의 자유로운 행위 앞에서 인간은 끝없이 감사하고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구원 ; 유대교 ; 유대인)
※ 참고문헌  J. Blinzler, Volk Gottes, 《LThK》 10, pp. 845~8471 A.S. Martin, Election, 5, pp. 256~261/G.E. Mendenhall, Election, 21 Ellen M. Umansky, Election, 《ER《 5, pp. 75~81/ Dale Patrick · Gary S.Shogren, Election, 《ABD》 2, pp. 434~444/ X. Lèon-Dufour 편, J. Guillet,<선택>,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 1984, pp. 277~281/ Wal-bert Biihlmann, Wenn Gott zu allen Menschen geht -Fiur eine neue Erfah-rung der Auserwählung, Verlag Herder, 1981(정 한교 역, 《선민과 만민》,분도출판사, 1983, pp. 21~100). 〔李贊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