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여수시 선원동 145-3 소재. 1981년 1월 16일 서교동(西校洞)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과달루페의 성모 마리아. 관할 구역은 여수시 안산동, 소호동, 화장동, 여천군 소라면, 화양면, 화정면 전 지역과 선원동, 학동 일부 지역. 설립 당시 본당 이름은 '쌍봉(鳳) 본당' 이었으나, 1986년 1월 1일에 '여천(麗川) 본당' 으로 변경되었다가 1992년 11월 30일에 '선원동 본당' 으로 다시 바뀌었다. 〔교세〕 설립 당시 269명, 1983년 769명, 1987년 1,787명, 1993년 2,387명, 1997년 3,381명. 〔역대 주임〕 초대 아리아가(F. Arriaga, 민) 프란치스코(1981. 2~8) , 2대 라라(S. Lara, 나) 야고보(1981. 9~1986. 1), 3대 프랑코(M. Franco, 김) 마우릴리오(1986. 2~1992. 6), 4대 가르자(I.Garza, 우진수) 이냐시오(1992. 6~1994. 2), 5대 이영수(李榮守) 요한(1994. 2~1996. 2), 6대 정대영(鄭大榮) 모세(1996.2~현재).
1970년대에 여천 지역에 석유 화학 공업 단지가 조성되면서 지역 인구수의 증가와 함께 신자수가 늘어나자, 관할 서교동 본당에서는 1980년 9월 29일에 '쌍봉 공소 (쌍봉면 선원리)를 설정함과 동시에 아파트 내의 노인회관을 빌려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대주교의 집전으로 첫 미사를 봉헌했다. 당시 쌍봉 공소 신자수는 127세대 170명이었다. 이어 서교동 본당 주임 박영웅(朴英雄, 가브리엘) 신부는 개인 집에서 예비자 교리를 실시하고 토요 특전 미사를 집전하는 한편,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을 파견해 주었다. 그러는 동안 본당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신자들은 교구에 본당 설립을 건의하였고, 그 결과 1981년 1월 16일 '쌍봉 본당' 이 설립되면서 과달루페회에 사목권이 위임되었다.
이듬해 2월 14일 성당 건립 기공식을 갖고 '인보 성체 수도회' 를 초청한 본당에서는 1983년 6월 6일 신축 성당을 완공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으며, 1986년 1월 1일 여천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본당 이름을 '여천 본당 으로 바꾸었다. 또 1988년 2월 29일에는 '신기(新基) 공소' 부지로 860여 평을 매입하여 그 해 10월 30일 조립식 강당(50평)을 완공하였으며, 1992년에는 본당 이름을 다시 '선원동 본당' 으로 바꾸었고, 1994년 2월 4일에는 본당 사목권이 교구로 이관되었다. 1997년 8월 31일에 지하 교육관을 완공한 선원동 본당에서는, 신자들이 대 부분 타지역 사람들이거나 신앙 경력이 짧은 점을 감안하여 본당 설립 이래 중점을 두어 왔던 신자 재교육과 공동체 의식의 함양에 더욱 노력하고 있다. (→ 광주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보유편/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년사》, 1990. [편찬실]
선원동 본당
仙源洞本堂
글자 크기
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