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說敎

〔라〕sermo, homilia · 〔영〕sermon, ho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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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복음 선포의 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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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복음 선포의 정점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모임에서 설교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사람이 성서에서 뽑아 낸 교의의 요점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삶에 적용시켜 가며 행하는 연설.
교회가 미사 중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설교의 전례적인 특성을 새롭게 긍정하면서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있어서 설교라는 형식에 각별한 가치를 제공하였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미신자나 예비 신자들에게 구원을 선포할 때에는 설교를 하지 않는다. 또한 설교가 신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유일한 방법도 아니다. 복음 선포(praedicatio)의 다른 형식들은 설교를 선행(先行)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설교를 보완하고 연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먼저 설교와 복음 선포의 또 다른 형식들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복음 선포의 다른 형식들을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대
한 정설은 없다. 다만 논리적으로 볼 때 설교 이전의 복음 선포를 두 가지로 논할 수 있는데, 어떤 형태의 복음선포이든 그것은 교회의 선교 사명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복음 선포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형식들을 모두 포괄하여 지칭하는데, 이 용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전통의 것이며, 특히 이 용어는 선포된 내용과 전해지는 사실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복음 선포에는 다음 세 가지 기초적인 형식이 있다. 첫째 '선교적 복음 선포' (praedicatio kerygmatica, Evangelizatio, Kerygma)는 그리스도를 믿도록 전해 주는그리스도에 대한 첫 번째 것 모두를 가리킨다. 둘째 학습적 복음 선포' (praedicatio catechetica, catechesis)는 이미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보다 깊고 체계적인 복음 선포이다. 셋째로는 '신비적 복음 선포 (praedicatio mystagogica, mystagogica, homilia)를 들 수 있는데, 이는 특히 전례 집전시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복음 선포로, 말씀과 성사(특히 성체성사)와 각별한 관계가 있다. 이를 설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설교는 복음 선포 의 정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I . 용어 고찰
설교에 해당하는 서양어는 '세르모' (sermo)와 '호밀리아 (ὁμιλία)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리스어에 어원을 둔 '호밀리아' 와 라틴어인 '세르모' 를 같은 뜻으로 사용한 적도 있고 둘을 구별하여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현재는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 우리말 사전에서는 강론(講論)을 "사물의 이치를 강해하고 토론함" 또는 "천주교에서 '설교' 를 이르는 말" 등으로 풀이하였고, 설교는 "종교의 교의나 종지(宗旨)를 가르치는 것" 또는 "여러 말로 타일러 가르침, 또는 그 가르 침" 등의 뜻으로 풀이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강론이 '세르모' 의 번역이고, 설교가 '호밀리아' 의 번역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강론도 설교도 모두 '세르모' 나 '호밀리아' 의 번역어이다. 그런데 가톨릭에서 강론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게 된 까닭은 1917년 교회법전의 영향때문이다. 이 교회법 1344~1345조에서는 설교 때 "성서나 그리스도교 교의에 대한 설명"을 하라고 본당 신부들에게 명하고 있는데 "그리스도교 교의에 대한 설명"이라는 구절 때문에 설교가 일종의 교리를 가르치는 강의처럼 이해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가톨릭에서는 강론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호밀리아' 와 '세르모' 의 구별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교회 공식 문헌에서도 '호밀리아' 라는 단어만 사용되었다. 이는 '세르모' 가 특별히 정해지지 않은 때에 장황하고 교훈적이며 때로는 호교론적인 연설을 할 경우 사용되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호밀리아' 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세르모' 에 내포되어 있는 어감을 없애려고 노력한 것 같다. 어원적으로 볼 때 '호밀리아' 는 함께하는 것, 친교 혹은 사교를 의미하는데 마음과 정신으로 뭉쳐진
모임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와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대화를 나누며, 어떤 모임의 청중들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연설한다는 뜻을 연상하게 한다. 따라서 설교란 어떤 그룹의 사람들과 허물없이, 아버지와 같은 자애로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성서에서도 '호밀리아' 의 동사형인 '호밀레인'(ὁμιλεῖν)이 사용되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는 "(그 동안의) 모든 사건에 관해서 서로 이야기하였다"(루가 24, 14). 사도 바오로는 트로아에서 유디코라는 청년과 "동틀 무렵까지 오래 이야기하다가 떠나갔다" (사도 20, 11). 바오로가 가이사리아 감옥에 갇혔을 때 펠릭스 총독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도 24, 26). 그 밖에도 여러 곳에서 '호밀레인' 이라는 동사가 쓰였으며,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35~107)도 폴리카르포69~155)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동사를 썼다. 그러나 라틴 교부들은 '세르모' 라는 단어를 '호밀리아' 대신 사용하였는데, 교리 교수적이고 주석적이며 권고적인 형태의 복음 선포를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사용한 용어가 '세르모 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교회 초기에 우리가 설교라고 이야기하는 개념이 동방에서는 '호밀리아' 라는 용어로, 서방에서는 '세르모' 라는 용어로 표현되었다고 볼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그리스 문화권에서 활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헬레니즘의 웅변술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해오던 대로 자유롭고 친숙하며 꾸밈 없는 강연 형식을 취해 왔기 때문에 호밀리아' 라는 단어가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나름대로 강론과 설교를 구별하여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설교는 미사때 이야기하는 것으로 제한하여 사용하고, 강론은 교회의 예식과 관련해서 하는 모든 강연이나 연설로 규정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강론은 설교보다 넓은 의미를 지니게 되어 피정 때 하는 '피정 강론' 이라든가 장례식 때 필요에 따라 죽은 사람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면서 한다거나 또는 경축 행사 등과 같은 특별한 사건을 기념하면서 하는 '특별 강론' 이라는 용어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II . 정 의
설교의 정의는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다음과 같이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즉 설교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모임에서, 설교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사람이, 통상적으로 어떤 성서적인 사건에서 뽑아 낸 교의의 요점을 그곳에 모인 회중들의 삶에 적용시켜 가며 행하는 연설이다. 이때 설교자는 회중을 감동시키기 위해 이야기식의 비유법을 쓰거나 다른 수사학적인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회중들로 하여금 그 내용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거기에 바탕을 두고 생활할 수 있 도록 해야 한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모임: 설교란 전례에 참석한 신자들에게 하는 것이며, 실제로 전례의 한 부분이다(전례 52항, 35항). 예배 중에 행하는 설교는 사람을 찾아 다녀야 하는 선교적 복음 선포나 전례적인 틀이 없는 교리 교수와 구별된다. 그렇더라도 복음을 선포하고 신앙에 대해 가르치는 일 모두를 설교에서는 하게 된다. 그러나 설교의 대상은 보통 신자들 즉 교회의 구성원들이다. 성령으로부터 선물을 충만히 받고 있고 성체로 양육되는 신자들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우선 적어도 지성적 · 신앙적으로 설교를 받아들 일 준비가 되어 있다.
설교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사람 : 설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설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주교와 사제 그리고 부제들만이 할 수 있다(교회법 764조). 왜냐하면 "전례 집전에서 성직자이든 평신도이든 각자 자기 직무를 행하는 데 있어서는 예식의 성질과 전례 규정에 따라 자기에게 관계되는 모든 부분을 그리고 오직 그것만을 행해야 하기"(전례 28항)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신자들은 신앙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할 의무가 있으나, 설교는 성직자들의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 라도 성직자 개인의 지식을 설파하는 것이 아니고 공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말씀이나 성체가 같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 인데, 이러한 두 식탁' 의 일치는 미사를 거행함에 있어 단지 예절상으로 하나이기 때문만이 아니고 교회가 말씀과 성찬을 맡긴 성직자들의 직무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서적 사건에서 뽑아 낸 교의의 요점 : 복음 선포가 모두 필연적으로 성서 본문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선교적 복음 선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기 위하여 인생사의 사건들과 큰 문제점들에 근거하여 말할 수 있고, 학습적 복음 선포인 교리 교수는 성서에 기초를 두지만 나름대로의 순서에 따라 계시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설교는 전례의 독서를 따른다는 것이 특징이다. 신자들은 성서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알고 성령을 받아들이도록 귀가 열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전례에서는 성서 본문을 읽는 것이다. 또한 교회만이 성서를 오류 없이 읽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현존하고 그 신비를 이루는 모임 중에 성서를 읽고 이에 대한 해설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성서 봉독과 설교를 통한 해설이 함께 어우러져 완성으로 향하는 것이다.
회중들의 삶에 적용시켜 가며 행하는 연설 : 설교는 회중을 위해 존재하고 회중은 설교의 말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회중들의 현실을 모르고는 회중들에게 적합한 상황 묘사나 어휘들을 구사해 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가 현실적이 되기 위해서는 설교자 자신이 현장 속에 뛰어들어 삶의 현장이 살아 있는 잠재된 상을 유출해내야 하고 발생하는 사건들을 포착해 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회중들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한 적용을 시도하여 회중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가슴 깊이 받아들여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하는 것이다.
회중을 감동시키기 위한 설교 방법 : 회중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이야기식의 비유법을 쓰거나 다른 수사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설교에서 회중을 설득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무기는 완벽한 논리 전개보다는 오히려 비유법과 실례를 들 수 있는데, 이로써 회중은 쉽게 감동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설교자는 친구들에게 말을 하듯이 그리고 구원의 말씀으로 친구들을 돕고, 비취 주고, 강하고 견고하게 할 의지를 갖고 실제로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친구로서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회중들로 하여금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거기에 바탕을 두고 생활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는 회중들의 일상 생활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설교자는 지성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感性)에도 호소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회중들은 전례에 보다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고 그 내용이 삶 속으로 이어져 하느님의 자녀답게 이를 생활화할 수 있는 것이다.
Ⅲ . 역 사
<사제 교령> 4항에는 "하느님의 백성은 우선 생활한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서 모이게 되며, 이 말씀을 사제들의 입에서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 원칙은 비록 말씀을 하는 주체들이 다양하다 하더라도 하느님은 설교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당신 백성에게 계시하시고 당신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이다. 설교를 전례 거행 중 하느님 말씀이 예절화되지 않고 교류(comunicaio)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하느님 백성의 풍부하고 다양한 전통에서 설교가 갖는 형태와 성격을 찾아보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초대 교회〕 설교의 가장 오래된 기원은 유대교 회당의 예배에서 성서를 읽고 해설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구약성서에도 설교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구절들이 있다(아모 7, 12-17 : 예레 28장 : 36장). 바빌론 유배에서 귀향한 백성들은 설교를 책임진 레위인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레위인은 하느님의 법이 적혀 있는 책에서 한 구절을 택하여 읽고 그 의미를 설명해 줌으로써 그 성서 말씀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이렇게 하느님의 백성은 전해 오는 구원 사건들을 기념하며 묵상하고, 때로는 고통스럽 게 체험하는 새로운 상황을 통해 성숙된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들 안에서 만나게 되고, 또한 주님이 실제로 행동하고 말씀하는 것을 통해 백성과 교류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만나게 되어 회개하고 법에 따라 살며 주 하느님을 찬미하여 왔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였기 때문에(루가4, 15) 사도들도 회당의 예배에 참석하고 그 관행을 따랐을 것이 틀림없지만 설교 형식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즉 유대교의 설교 형식은 교훈적이고 설명적이 었는데 반하여 그리스도교의 설교는 성서 구절을 기초로 한 권고 형식을 취하거나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 성서 구절을 적용시키는 형식을 취하였다.
〔교부 시대〕 초기~3세기 : 현존하는 설교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교황 글레멘스 1세(90/92~101?)의 《제2 고린토 서간》에 나오는데 그 내용은 단순하고 매우 교훈적이다. "사제가 우리를 교훈할 때만 믿고 정신차리지 말고 집에 돌아간 후에도 주님의 계명을 기억하도록 합시다."이것은 "독서가 끝난 후에 주례자는 이와 같은 좋은 모범을 본받으라고 가르치고 교훈하기 위하여 설교를 한다" (Apologia I, 67)는 유스티노(100~16)의 설명과도 통한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스미르나의 폴리카르포
에게 "부정직한 선생들을 반대하여 설교할 것"을 청하였으며(《폴리카르포에게 보낸 편지》 5, 1), 이레네오(130~200)는 폴리카르포가 스미르나에서 행한 설교에 대하여 언급하였다(에우세비오, 《교회사》 5, 20, 6). 또한 이레네오 자신도 설교를 하였는데 그 내용이 책으로 남아 있다(에우세비오, <교회사> 5, 26). 이러한 설교는 성서 봉독 후에 성서말씀에 기초를 두고 이루어졌으며성서의선택과 길이는 주례자가 정하였다.
그 후 테르툴리아노(160~223)는 두 가지 사례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하나는 '신자들은 기도를 하고 성서를 봉독하기 위하여 모이는데 거기서 훈계도 함으로써 신자들을 굳세게 하였다' 는 것이고(Apoloeticum 39 : CSEL 69),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 성대하게 예배를 드리는 동안 설교를 하였다' 는 보다 명확한 예를 들었다(De Anima ; CSEL20, 310). 북아프리카 교회에도 이러한 관행이 있었음이 분명히 증명되었고, 이와 비슷한 증거가 소아시아에서도 있었음이 사르디스 주교인 멜리토(?~190)의 수난 설교에서 발견되었다.
한편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150~215)가 작성한 설교로서 마르코 복음 10장 11-31절에 나오는 성서 구절에 관하여 쓴 <부자들 가운데 구원을 받을 자가 누구인가?>(Quis dives salvetur?)가 있다. 학자들은 글레멘스가 사제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설교문을 가지고 실제로 설교하였다면 다소 긴 이 설교는 초대 교회 때에는 사제가 설교하였음을 증명하는 증거가 될 수있다. 어쨌든 3세기 초반에는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다같이 설교한 사례들이 있다. 로마에 간 오리제네스(?~ 254)는 히폴리토(170~236)가 그리스어로 <구세주이신 주님을 찬미함>이란 제목으로 설교하고 있던 교회에 참석하였는데(Hieronymus, De viris illustribus, 54, 61), 이 설교문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215년이전에 사제가-그때는 히폴리토가 아직 주교가 되지 않았던 때였다-로마에서 설교하였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오리제네스는 로마에 잠시 머무른 후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와서 215년에 팔레스티나로 떠나기 전까지 머물렀다. 오리제네스는 팔레스티나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는데, 그는 서품되기 이전에도 설교를 하였지만 서품된 후에는 유명한 설교가가 되었다. 오리제네스의 설교는 서론이 있은 다음, 우화적인 해석을 통해 성서 구절을 실제적으로 적용하고, 이어 권고의 말을 한 뒤 마지막으로 영광송(doxo-logy)을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때 그가 수사학적으로 장식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그리스어가 전례 언어였을 때 라틴어를 사용하는 지방에서는 라틴어가 성서 봉독과 설교의 언어였을것이다. 북부 아프리카에서는 그리스도교 라틴어가 생겨났는데 이것은 설교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러한 증거는 오늘날 별로 남아 있지 않으며, 남아 있는 증거들도 북부 아프리카 교회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락탄시오(250?~321?)가 테르툴리아노는 설득력 있는 연설가가 아니었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테르툴리아노도 설교를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Divinae institutiones 5, 1 ; CSEL 19, 402). 락탄시오는 치프리아노(?~258)가 신자들을 위하여 열심히 설교를 준비한다고 극구 칭찬하였지만, 그의 설교들은 지금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는 신앙을 로마의 정신 세계에 접목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리스 교부 : 4~6세기의 유명한 주교들은 현대에도 본받을 만한 모범을 제시했는데, 설교 형태의 복음 선포에서는 웅변가의 모습을 보였고 한편으로는 중요한 교의의 내용을 보여 주고 있다.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329/330~389/390)와 바실리오(329~379) 그리고 요한 그리소스토모(347~407)는 4세기의 그리스 설교에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는 시인이자 웅변가로 이름을 떨쳤는데, 그 이유는 그가 찬양 연설문과 전례 설교 및 장례식 연설에 능숙하였기 때문이다. 또 바실리오는 성서 주석 설교에 그리스 수사학의 화려함을 도입함으로써 성서 주석 설교가 발전하는 데 지대한 공 헌을 하였다. 이런 예술적인 효과가 극치를 이룬 것은 바실리오가 사제로 있을 당시 사순 시기 때 한 <6일 창조에 관한 설교)(Hexaemeron)에서 바실리오의 동생인 니사의 그레고리오(335?~395?)는 주교가 되기 전에 수사학 선생이었는데 그의 장례식 연설은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에는 못 미치지만 거론될 만하다. 안티오키아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에서도 설교가로 이름을 떨친 요한그리소스토모는 그리스 설교의 황금기에 살던 다른 어떤웅변가들보다도 많은 연설을 남겼다. 그의 웅변술은 성서 주석 설교, 교의 설교, 논증 설교(polemical homily)를 비롯하여 세례받을 사람들을 위한 교리 교육, 도덕에 관
한 설교, 전례 설교, 찬양 연설문 및 특별 설교(occasionaldiscourse)에서 특히 뛰어났다. 라틴 교부 : 밀라노의 암브로시오(340~397)는 유명한 그리스 설교가들과 견줄 만한 최초의 라틴 설교가였다. 그의 설교들은 노련한 수사학자들로부터도 인정받는 수준이었는데, 그는 성서 주석 설교에서 대단히 뛰어났을뿐만 아니라 라틴어로 하는 그리스도교 장례 연설의 개척자이자 대가였다. 5세기 라틴어권 설교의 대표자는 아우구스티노(354-430)였는데, 그의 설교 경력은 391년에 사제 서품을 받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많은 지역에서는 사제가 주교 앞에서 설교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지만 히포(Hippo)의 주교 발레리오(Valenus)는 그에게 설교직을 위임하였다(Hieronymus, Epistola, 52, 7). 아우구스티노는 주교 서품 후에도 자주 설교하여 때로는 하루에 두 번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청중들에게 성서 주석 설교를 비롯하여 구원의 주요한 신비들과 성인 축일에 성인들을 기념하는 특별 설교 및 여러 도덕적인 주제들에 대한 연설들을 하였는데, 이러한 설교들은 고도의 수사학
적인 표현으로부터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일상 대화체 형식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총망라한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노의 《그리스도교 교리》(De doctrinachristiana)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설교 안내 지침들을 언급하고 있어 설교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수사학선생이자 훌륭한 웅변가였지만 설교가들에게 웅변술의 기교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청중에게 유익하기 위해서는" 우아하게(eloquenter) 하기보다는 지혜롭게sapienter)말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로니모(343~420)는 베들레헴에 있는 자신의 수도원 공동체 회원들에게 성서 주석 설교들을 하였다. 아우구스티노의 경우처럼 현재 남아 있는 예로니모의 설교들이 들어 있는 책은 서기들이 청중들 틈에서 속기로 받아쓴 것이다. 한편 교황 레오 1세(440~461)는 용의 주도하게 설교를 준비하였다는 점과 설교문에 있어서 각 조항들끼리 서로 맵시 있게 균형을 이루게 했다는 점, 그리고 전개(cursus)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점 등이 예술적인 감각 면에 있어서 아우구스티노에 필적한다. 그가 한설교들의 주제는 주로 전례 주년에서 뽑은 것들이었다.
[6~9세기] 529년은 서방 교회의 설교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해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해에 제2차 베종(Vaison) 교회 회의가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이 교회회의에서 승인한 두 번째 조항에서는 설교할 수 있는 권한을 사제들에게도 허락하였는데, 그것은 "모든 교회를 일으켜 세우고 도시는 물론 시골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유익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만일 사제가 병이 나서 설교를 할 수 없을 경우에는 부제들이 교부들의 설교집을 낭독하도록" 한 규정이다. 교회법적으 로 볼 때 이 조항으로 말미암아 서방 교회에서 주교만이 설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사제들도 실제로(de facto) 서방 교회에서 설교하긴 하였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는 590~591년에 40편의 설교를 집필하였는데, 이 중 20편은 교황 앞에서 비서가 신자들에게 낭독하였고 나머지는 교황이 직접 설교하였다. 그의 설교들은 웅변술의 모범으로 인정받아중세기 때 널리 보급되어 읽혀졌으며, 에제키엘서를 설명한 22편의 다소 긴 설교들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 쓴 《사목자들을 위한 규범》(Regulaepastoralis)은 설교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저서이다. 왜냐하면 이 책 제3부에 설교를 위한 실질적인 지침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폭 넓은 인기를 얻어 교황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리스어로 번역되기도 한 이 책에서 교황은, 설교를 전개하는 방법으로 여러 부류의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적용시켜야 한다면서 52종류의 사람들을 열거하였다.
9세기에는 알쿠인(Alcuin, 740~804)과 마우로(RabanusMaurus, 780~856)와 옥세르(Auxerre)의 하이모(Haymo, +853)가 만든 설교와 설교 모음집들이 설교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모음집들의 공로가 지대하긴하였지만 설교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813년에 열렸던 제3차 투르(Tours) 교회 회의와 제2차 랭스(Reims) 교회 회의였다. 투르 교회 회의에서 결정된 제17항에서는 모든 주교들이 신자들을 교육하는 데 필수적인 훈계들이 들어 있는 설교집들을 가지고 있을 것을 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국어로 이러한 설교들을 번역할 것을 주교들에게 지시하였다. 랭스 교회 회의에서 발표한 제15항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교부들의 설교들을 자국어로 하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약 30년이 지난 뒤인 847년에 열린마인츠 교회 회의에서 투르 교회 회의의 제17항이 재언급되었다(Mansi 14, 51 : 14, 78 ; 14, 903).
〔10~13세기〕 설교할 때 자국어로 하라는 법령이 공포된 후 십자군의 등장, 스콜라 학파의 융성, 탁발 수도회 설립 등은 서방 교회의 설교에 영향을 주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중요한 설교가들이 활동하였던 시기는 10세기부터 13세기 초까지였다. 이 시기의 설교책들은 라틴어로 저술되어 전해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설교를 라틴어로 하였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베르나르도(Bernardus de Clairvaux, 1090~1153)는 신자들에게 자국어로 설교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콜라 학파의 설교가 : 12세기 말경에는 스콜라 학파의 교수 방법이 설교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강의실에서 가르치는 논리학과 변증법이 설교 주제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신학 강의에서 하는 방법인 문제를 제시하고 결론을 변호하는 방식에 맞추어 설교가들도 자신의 설교 주제를 전개해 나갔다. 그런 다음에는 정의(definitio), 구분(divisio), 세분(subdivisio) , 구별(disinctio)의 단계로 옮아가면서 수많은 성서 구절과 교부들의 가르침을 인용하기도 하고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증명하기 위하여 전제로부터 논거를 추가하였다. 그런데 스콜라 학파의 설교는 주제 중심이 대부분이었고 성서 본문은 거의 인 용하지 않았으며, 전체적으로는 분위기가 대중적이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반동으로 실제적인 예문과 이야기 전개 등을 통해 백성의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생활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대중 설교가 등장하게 되었다.
대중 설교 : 12세기 말에 이르자 대중들을 위한 설교는 전반적으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에 따르면 당시 교구 성직자들 가운데 읽기와 쓰기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이러한 실력 부족 현상을 메우고자 교회의 인정을 받지 않은 설교가들과 평신도들이 나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미 제3차 라테란 공의회(1179) 때 교황 알렉산델 3세(1159~1181)는 평신도들도 신앙을 시험해 본 후 사제의 요청이 있을 때 지정된 장소에서 설교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주교들에게는 데살로니카 전서 5장 19절을 인용하며 논박하였었고, 이어 1210년에 교황 인노첸시오3세(1198~1216)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들에게 설교를 허락하였다.
도미니코 수도회와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설립됨에 따라 이러한 상황은 점점 효과적으로 수습될 수 있었다. 몇몇 수사들은 보다 학문적인 양식을 갖춘 설교를 하여 이름을 떨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수사들은 신자들에게 사도적인 설교를 하는 데 전심전력하였다. 그들은 구체적인 주제들을 자국어로 설교하면서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실질적인 방법으로 일상 생활에 적용시켰으며, 성서와 성인들의 삶, 그리고 소박한 표현과 예를 자유자재로 이용하였다. 비엔 공의회(1311~1312)는 이러한 형식
의 설교가 시의 적절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문학 : 다양한 양식의 설교들이 발전함에 따라 엄청난 양의 설교 문학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문적인 저술들 즉설교법(artes praedicandi)은 설교의 준비와 전달에 대한 지침들을 제공하였는데, 특히 훔베르트(Humbert de Romans, +1277)가 쓴 작품과 몇몇 설교법들은 '설교 백과 사전'이라고 할 만하였다. 설교 내용을 제공해 주는 가장 유명한 중세기 자료로는 비테르보(Viterbo)의 야고보(1255~1308)가 쓴 《모범 사례집》(Exempla)과 보라진(Voragine)의 야고보(1230~1298)가 쓴 《이야기집》(Legenda Aurea)을 들 수 있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두 명의 프란치스코회 수사가 쓴 《모범 사례집》(Liber Exemplorum)과 《평신도들의 거울》(Speculum Laicorum), 그리고 도미니코회 수사요한이 쓴 감동적인 《설교 전집》(Summa Predicantium)도 이에 필적할 만한 작품이다.
옥외 설교 : 중세기에는 설교가 반드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동안에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1311년에 열린 비엔 공의회에서는 도미니코회 수사들과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옥외 설교를 할 수 있도록(m plateis com-munibus) 허락해 주는 동시에, 고위 성직자들과 사제들 한테는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다 하더라도 수사들의 이러한 설교 방법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명령하였다(Conciliorum Oecumenicorum Decreta 342항, 344항).
〔14~15세기〕 14세기에는 설교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가장 뛰어난 작품은 니콜라스(Nicholas Lyrae, 1270~1349)가 쓴 <문자의 주석>(PostillaeLitterales, 1322~1333)으로, 이 논문은 1세기 동안에 700편이나 복사되었는데 성서를 자의(字義)적인 의미와 신비주의적인 의미로 명확하게 구별지었고 그 이후의 설교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다소 지나친 표현이긴 하지만 이 책이 루터(M. Luther)에게 준 영향이 명언집에 다음과 같이 단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리라가 장단을 치지만 않았어도 루터는 춤추지 않았을 것이다" (Si Lyranonlyrasset Lutherus non saltasset) .
15세기에 들어서는 설교 모음집들의 출판이 괄목할 정도로 늘어났다.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은 《편안하게 잠자라》(Dormi secure)라고 하는 직설적인 제목으로 출판된 요한네스(Johannes v. Werden, +1437)의 설교 모음집이었다. 이 모음집이 1세기 동안 거의 90판을 거듭했던 것으로도 그 대중성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 시대의 설교 상황에 대한 의미 심장한 논평이 실려 있었던것 같다. 이 모음집보다 조금 덜 대중적이었던 작품은 익명의 작가가 집필한 《설교 준비》(Parati sermones)인데, 17판이나 거듭된 이 책에는 모든 주일과 몇몇 성인들의 축일에 할 수 있는 설교 몇 개가 실려 있다.
증거 자료에 나타나 있듯이 종교 개혁이 일어나기 바로 몇 해 전 동안에는 설교의 부족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성직자들은 반드시 설교하여야만 했고 신자들은 설교 백과 사전' 들이 급증하게 됨에 따라 설교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설교는 질적으로 개선되어야 할점이 상당히 많았음을 제5차 라테란 공의회(1512~1517)의 제11차 회기에서 공표한 <설교 양식에 대하여>(Circamodum praedicandi, 1516. 12. 19)로 짐작할 수 있다. 이 문헌에서는 설교가들이 청중들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음을 통탄하고 있다.
〔종교 개혁 시기〕 종교 개혁이 일어나자 새롭게 강조된 것이 설교였다. 이 당시의 설교는 하느님께 드리는 쇄신된 예배 가운데 중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사제들은 성서의 자의적인 의미에 바탕을 두고 설교를 했으며, 새로운 신학에서 설교는 복음의 살아 있는 목소리였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도 설교를 새롭게 강조하는 모습이 반영되었으며, <교수와 설교에 대한 교령>(Decre-tum super lectione et praedicatione)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주교와 대주교 및 고위 성직자들이 맡은 임무라고 선언하였다(Conciliorum Oecumeni-corum Decreta, 645항). 사목자들은 적어도 모든 주일과 대축일에 자신이 직접 설교하든지 아니면 적절한 사제들을 시켜서 설교하여야 했다. 트리엔트 공의회 제24차 회기때에는 <개혁에 대하여>(De Reformatione)라는 교령을 통해 이와 비슷하게 설교를 강조하였으며, 대림 시기와 사 순 시기 동안에 특별 설교를 할 것을 권고하였다(739항) 그러나 이러한 공의회의 새로운 가르침에 대해 반대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특히 가니시오(P. Canisius, 1521~1597)가 유명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설교에 대한 의무를 결정한 데이어 더 나아가서는 사제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신학교들을 설립해야 한다고 선언함으로써 훈련을 받은 사람들만이 설교할 수 있도록 하는 또 하나의 조치를 취하였다. 이러한 법령이 제정된 것은 제5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교회가 우려했던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평신도의 설교가 금지되었다. 열의에 가득 찬 설교가였던 보로메오(C. Boromaeus, 1538~1584)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선언들을 이행하고자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기울였고, 아빌라의 요한(Joannes Avilae, 1409/1500~1569)과 그라나다의 루이스(Luis of Granada, 1504~1588)도 마찬가지였다.
〔17~20세기〕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에 이르러 설교는 역사상 보기 드문 발전을 보였다. 사순 시기 설교와 매주 있는 성시간, 그리고 특별 9일 기도 때에는 항상 설교를 하였는데 이것이 정규 본당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대도시에서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지속적인' 9일 기도에 참석하였다. 한편 교황 레오 13세(1878~1903)는 자의 교서 <사크로룸 안티스티툼>(Sacrorum Antistitum,1894. 7. 1)에서 "주제 선정과 설교 형태에서의 남용"을 경고하였고, 교황 베네딕도 15세(1914~192)는 회칙 <후마니 제네리스 레템시오넴>(Humani Generis Redemptionem, 1917. 6. 15)에서 사도 바오로를 설교의 내적 준비나 내용그리고 방법에 있어 설교가의 모범으로 제시하였다.
1917년 교회법전의 제1344~1345조에서는 주일과 축일에 모든 본당 신부들은 신자들이 모인 미사에서 "성서나 그리스도교 교의에 대한 설명"을 하는 설교를 하라고 규정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미사 때 읽은 것 중에서 어떤 것에 대하여" 설교하라고 정하면서 성서나 통상 전례문 또는 고유 전례문에서 하도록 하였는데, 이때의 교회법에서는 "그리스도교 교의에 대해서" 하라고 하여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까지 지속되어 미사 중 설교가 일종의 교리 교수를 하는 강의가 되었는데, 이는 아마도 미사가 신자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비로소 본래 의미의 설교, 곧 성서와 거행되는 신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설교가 논의된 것은 전례 운동 기간에 와서였다.
Ⅳ. 교회 공식 문헌에서의 설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설교라는 용어 자체와 그 의미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전례 헌장>(Sacrosanctum Concilium) : 여기에서는 설교를 "전례 자체의 한 부분" 으로 이해하면서 "주일과 파공 축일에 신자들과 함께 거행하는 미사에 있어서, 설교는 중대한 이유 없이 생략해서는 안된다" 고 하였다. 또 "전례 주년 동안 거룩한 글에 의하여 신앙의 현의들과 그리스도인 생활의 규범들을 해설하여야 한다" 고도 하였으며(52항), "설교는 전례 집전의 한 부분이니 만큼 예절이 허락하는 한, 가장 좋은 자리가 예규에 명시되어야 한다"면서 "설교의 직책은 가장 성실하고 정확하게 수행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설교는 특히 성서와 전례에서 취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설교가 구원의
역사 즉 그리스도의 신비에 있어 하느님의 기묘한 업적들을 선포하기 때문이며 이 신비는 우리 안에 항상 현존하고 특히 전례 집전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35항).
<전례 헌장 시행에 관한 훈령>(Inter Oecumenici) : "특별히 대림 시기나 사순 시기의 평일과 많은 신자들이 성당에 모인 경우에는 설교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53항)고 하면서 "설교는 봉독된 성서 말씀 또는 그날의 고유 전례문이나 통상 전례문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여 트리엔트 공의회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갔고, "거행되는 신비와 청중들의 관심 사항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고 하였다(54항). 또 "전례 주년의 중요한 전기나 축일 또는 구원 신비와 직접적인 연관이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였다(55항).
전례서 : 모든 전례서에는 설교를 해야 할 때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는데 때로는 그 내용까지도 제시되어 있다. 《미사 경본의 총지침》(Insitutio Generalis Missalis, 1969)은 설교를 말씀 전례의 구조 속에 삽입시키고(33항) ,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의무 사항을 반복하여 말하고 있다(41 ~42항). 1970년에 발표된 《전례 재건을 위한 지침》(Liturgicae Iinstaurtiones)에서는 "우리 시대의 감각에"잘 적응하는 설교가 되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되어있다(2항). 또 1981년에 새로이 반포된 《미사 독서》 개정판의 일러두기에서는 "신자 공동체를 성찬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기 위하여 안내해야 한다"고 하면서 설교는 "묵상의 열매로서, 잘 준비되어야 하고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아야 한다" 고 하였다(24항). 그 밖에 41항에서도 설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어른 입교 예식서》 일러두기에서는 선발 예식이나 도유 등 예절과 상징에 대한 설명을 설교 때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91항, 142항, 161항, 168항, 175항, 185항, 191항, 196항). 《견진성사 예식서》에서는 예절과 성사의 효과에 대해 주교가 설명하도록 하였고(25항), 《혼인 예식서》에서는 그리스도교 혼인의 신비에 대해 설명하는 성서 구절에 대해 설교하도록 하였으며(25항), 《병자성사 예식서》에서도 성서 봉독 후 짧은 설명을 하도록 요구하였고 (71항), 그 밖의 예식서들에서도 설교에 대해 언급되어있다. 또 신자들과 함께 성무 일도를 할 때에는 간단한 설교를 하도록 그 지침에서 언급하였다(47항).
최근의 교황청 문헌 :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Nuntiandi, 1975. 12. 8)에서는 "오늘날 만일 설교가 복음 선
교의 가장 중요하고 적절한 수단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큰 잘못일 것이다" 라고 하면서 그 중요성을 확신하였다. 그리고 사목적인 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도록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알아듣기 쉽고, 간결하고도 명료하고, 솔직하면서도 시기에 알맞아야 하고, 복음 정신에 뿌리박고 교회와 교도권에 충실하며 전교열에 찬 것이라 야 한다" (43항)라고 설명했다. <현대의 교리 교육>(Cate-chesi Tradendae, 1979. 10. 16)에서는 "설교는 성서 본문에 초점을 두되 그 나름대로 신자들이 신앙의 신비 전부 및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규범과 친숙해지게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고 하였다(48항). 한편 교회법에서는 이제까지
다룬 문제를 종합하고 있는데, 새로운 점은 신학생들이 설교법에 관하여 성실히 교육받아야 한다는 조항(256조 1항)이다.
V . 본질과 목적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이나 새로운 예식서들의 '일러두기' 에는 설교의 본질과 기능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그렇지만 설교에 대한 가장 최근의 생각과 쇄신된 관심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은 1981년 1월 21일에 발표된 《미사 독서》 개정판이다. 사실 1969년의 《미사 독서》 초판에는 25개 항에 이르는 '일러두기' 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설교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는데 개정판에서는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본 질〕 《미사 독서》 개정판에서는 설교의 본질에 대해 말하면서 단순히 "말씀 전례의 한 부분"이라고 하였다(24항). 그리고는 각주에서 <전례 헌장> 52항과 <전례헌장 시행에 관한 훈령> 54항을 인용하고 있다. 말씀 전례의 한 부분 :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는 전례가 완성될 수 없고, 말씀의 '전파' (2데살 3, 1)는 말씀을 따를 수 있도록 설명되거나, 그리스도의 신비를 거행하면서 감사를 드린다거나, 말씀을 받아들이는 생활의 증거를 통하지 않고서는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
리고 모든 전례 전례의정점을 이루는성찬에서든, 시간 전례나 성사 집전과 같은 전례 거행에서든 설교에 특별하고 중요한 위치를 두어야 한다. 즉 모든 전례행위는 설교를 전제로 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전례 행위뿐만 아니라 신심 행사들(pii exercit)에서도 설교는 꼭 필요한 것이다.
복음 선포와의 구별 : 설교가 갖는 '전례적' 특성은 다른 형태의 복음 선포와 구별된다. 설교를 더 이상 교리교수를 위한 체계적인 과정과 혼돈해서는 안된다. 전례적 복음 선포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일반적으로 취급하는것이 아니라 전례라는 장에서 거행하는 신비로 취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의 원천은 성서와 전례이다. 그래서 설교의 내용은 성서나 전례를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 전례 주년과의 관계 : 설교의 전례적인 특성은 설교가 전례 주년과 관계됨을 전제로 한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구체적인 시간에 육화하였듯이(갈라 4, 4) 그리고 그 시간을 구원의 유익한 때로 만들었듯이, 설교는 그리스도의 현존함으로 이루어진 유익한 때에 들어가도록 신자들을 이끄는 것이다.
〔기 능〕 《미사 독서》 개정판 24항과 41항에는 설교의 주된 기능이 제시되어 있는데, 이러한 내용을 통해 설교의 기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해석적 기능 : 성서나 전례문에서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을 설명하면서 설교는 이러한 말씀을 이해하도록 하는데, 때로는 말씀 자체가 난해하여 접근하기 어렵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듣는 이들의 "마음이 굳어서" 이해할 수 없기도 하다. 또한 비록 전례에 참여한 회중들의 대부분이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언자의 말들을 믿기에 어리석고 둔했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루가 24, 25)나 "읽은 것을 알아듣느냐" 고 물었을 때 "누가 나를 인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한(사도 8, 31) 에티오피아의 내시와 크게 구별되지 않을 것이다. 먼저 알지 못하고는 주를 믿거나 주를 부를 수가 없다. 그러나 알기 위해서는 교회가 파견한 누군가가 선포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로마 10, 14-15).
설교는 전례에 참석한 신자들의 '아멘' 이라는 응답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만일 "그대가 영으로 찬양의 기도를 드린다면 초심자들의 자리에 있는 이는 그대의 말을 알아들을 턱이 없으니 그대의 감사 기도에 이어 어떻게 '아멘' 하고 응답할 수 있겠습니까?" (1고린 14, 16) 또한 시편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을 설교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희는 야훼의 어지심을 맛들이고 깨달아라" (시편 34, 8).
예언적 기능 : 그리스도인이기 위해 필요한 의무를 다하도록 지침을 주고 격려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대표가 성령의 도구로 교회 구성원들에게 해왔던 기능중 하나이다. 그러한 예는 바오로가 디모테오에게 한 명령에서도 볼 수 있다. "말씀을 선포하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끗끗이 (계속하시오). 관용과 가르침을 다하여 꾸짖고 나무라고 훈계하시오"(2디모 4, 2). 2세기의 순교자 유스티노는 설교의 예언적인 기능에 대해 설명하면서 "주례자는 성서에서 들은 어떤 점에 대해 본받으라 고 권고하고 격려하는 말씀을 했다" 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설교는 그 밑바탕에 "믿음의 말씀" (로마 10, 8)을 두고 가르침으로 결코 그 말씀을 손상시키거나 왜곡하거나 축소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완성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도록 온 힘을 다하는 것이다. 그 첫 목표는 진리를 제시하는 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고 일치하고 가까이 가는 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홀로 성령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끌 수 있고, 우리를 성삼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신비 교육적 기능 : 설교는 신자 공동체를 하느님이 이룬 놀라운 업적에 감사드리고 성체를 향해 마음을 열도록 하는 기능을 갖는다. 여기에서 '신비 교육적' 이라는 표현은 신비에 대한 보다 충만하고 결실이 있는 인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복음을 묵상하고 성찬례에 참석하며 애덕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인데 파스카신비를 보다 깊이 받아들여 항상 실천 생활에 부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설교는 말씀과 성사 사이에서 돌쩌귀나 다리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하느님의 말씀 자체가 가르침을 넘어, 선포되는 사건들이 오늘날 교회의 삶 안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하느님의 능력" (δύναμις, 로마 1,16)이 되게 한다. 말씀은 행동을 하여 구세사의 구체적인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전례 안에서 이러한 신비 교육적인 기능을 이루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으로 당신교회 안에서 현존하고, 효과 있게 활동하여(전례 7항) 미사 봉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가 실제로 실현되는 것이다.
이렇게 신비 교육적인 기능은 말씀을 성사적인 사건과 교류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말씀과 성사적인 사건 그리고 실생활의 세 요소가 서로 교류하도록 하여 전례와 생활 그리고 듣고 거행하는 것과 사는 것 사이에 생기는 균열을 피하도록 한다. 물론 설교가 어떤 주술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사에 현존하는 성령의 행위 안에 있음으로 신앙적으로 볼 때 신비 교육적 기능은 신자들로 하여금 들은 말씀의 능력에 따라 유효하고 실제적인 행위를 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즉 성사와 그리 스도의 봉헌으로 효과 있게 이끌어 신앙으로 받은 것을 생활로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의 미〕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설교는 있어 왔고 또한 종말까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역사가 있고 또 새로운 모습이 기대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날 설교는 예수가 하였듯이 그리고 예수가 한 내용을 주님의 이름으로, 주께서 현존하는 미사 중에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통교가 이루어지고, 인간이 회개하여 자신의 생활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나아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 강론 ; → 독서 주기 ; 설교학 ; 어린이 설교)
※ 참고문헌  D. Grasso, Evangelizzazione, Catechesi, Omelia. Per una terminologia della predicazione, Gregorianum 42, 1961, pp. 242~2671 W.J. O'shea, 《NCE》 7, p. 113/ J.M. Connors, Preaching, 11, pp. 690~ 6971 H. Dressler, History of Preaching, 《NCE》 11, pp. 684~689/ J. Quasten, Patrology 1/ Hefele-Leclercq, Historie des Concilesl L. Della Torre, Nuovo Dizionario di Liturgia, Roma, 1983, pp. 923~926/ O.C. Edwards, 윤민구역, 《설교의 요건》, 수원 가톨릭대학 출판부, 1990/ 윤민구 역,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서간들>, 《수원 가톨릭대학 교수 논문집》, 1989/아우구스티누스, 최민순 역, 《고백록》, 성바오로출판사, 196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9. [尹敏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