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들이 계속 존재하도록 지지해 주고 행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며 완성으로 이끄는 하느님의 보살핌. 만물은 창조주 하느님에 의해 완결된 상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마련한 궁극적인 완전성을 향한 진행의 상태(in statu viae)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하느님 께서는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후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시 고, 오히려 만물을 섭리하시는 것이다.
〔성서의 내용〕 성서에서의 개념 : 구약성서 안에서 섭 리의 개념은 하느님이 창조한 피조물들을 돌보고 다스린 다는 뜻이다. 이 개념에는 창조된 질서를 통해서뿐만 아 니라 그분이 친히 모든 것을 보살핀다는 적극적인 의미 를 내포하고 있다(창세 8, 21-22 : 예레 5, 22-24 ; 시편 103편). 또한 이것은 창조된 모든 것의 보존과 다스림을 통한 하느님의 계속적인 창조라는 의미로 이해되기도 하 였다(출애 34, 10 : 민수 16, 30 : 이사 43, 1 : 48, 7).
섭리의 대상 : 하느님의 섭리는 자연의 질서 안에 있 는 모든 사물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특별한 의미로 인간 을 포함한다(시편 104, 29-30 : 이사 42, 5 : 욥기 10, 8-
12). 또한 특수한 역할과 기능을 위해 하느님이 일부 사 람들을 선택하는 일과 관련이 되어 있다(창세 12, 1-3 : 18, 19 ; 출애 3, 1-12 : 민수 17, 18-20 : 아모 7, 15). 하느 님의 섭리는 특히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 안에서 분명해 지는데,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예외적이고 특별한 보살핌 을 받았으며, 하느님의 섭리적 배려에 대한 역사적인 증 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의 섭리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들까지도 포함한다는 사 상이 점차 나타나게 되었다(아모 1-2장 ; 이사 7, 17-19 ; 10, 5-14 ; 예레 25, 9-14).
섭리의 유일한 원인이요 주인인 하느님 : 신명기 전체 내용은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보살펴지는 이스라엘 역사 의 나열이다. 이 역사적인 사건들은 계약의 조건에 대한 준수 혹은 위반에 따라 그들이 받는 상벌 안에서 나타나 는 하느님의 행위로 묘사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악의 문제 역시 하느님의 섭리와 연관되어 구약성서 안에서 여러 모양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셈족의 사고 방식에 의 하면 하느님은 모든 것의 원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 어서 부차적인 원인들의 상호 작용에 대한 직접적인 인 식은 없었다(창세 16, 2 : 이사 45, 7 : 아모 3, 6). 구약성 서에서 고통과 불행이라는 물리적인 악은 훈육 · 회심 . 정화를 위한 방편이지만(욥기 33, 15-30 : 지혜 3, 5 : 12, 13-27 ; 2마카 6, 16 ; 7, 32-36) 언제나 하느님의 거룩함 에 상반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윤리적인 악은 인간의 자 유 의지에 그 원인이 있다고 강조하였다(신명 11, 26-28 ; 30, 15-20) 동시에 인간의 의지에 대한 하느님의 지배도 인정되었고 함축되어 있다(예레 18, 6 : 잠언 21, 1 ; 시편 33, 15 : 즈가 12, 1). 따라서 악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언 제나 하느님 섭리의 질서가 있는 것으로 소개되었으며 악을 행하는 자들의 번영과 의인의 고통이라는 비합리적 인 상황이 벌어지는 곳에서조차 하느님의 섭리가 현존하 였다.
구원을 위한 섭리의 중재자 그리스도 : 신약성서에서 도 이 같은 하느님의 섭리는 한결같이 증언되고 있다. 오 히려 구약성서에서보다 훨씬 강하게 강조되었는데, 특히 보편적이고 절대적으로 확실한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마태 5, 45 : 6, 25-33 : 사도 14, 15-17 ; 17, 26-28 ; 로마 1, 19-20). 더욱이 영원한 구원 계획 전체에 연관되어서 는 더욱 분명한 개념의 묘사가 이루어졌다(로마 10, 9 : 1 고린 1, 21 : 1베드 3, 21). 구원사 안에서 섭리에 대한 믿 음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의 계시 안에서 완성되고 확 고해졌다.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믿음과 소 망 중에 기다려지는 것인데, 그것은 자연 법칙의 결과로 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유로운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것 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원사의 종말적인 완성은 세계 역 사 안에서 시작되며 현재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또한 성 자의 육화, 십자가, 그리고 세상이 성자를 대적(對敵)하 였다는 것은 인간과 그 역사 안에 드리운 그림자들(죄 · 죄 의식 · 실패 · 고통 · 죽음)조차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 포함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초기 교회의 설교의 중 심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계시이며
하느님의 선과 지혜를 보여 주는 것이라는 가르침이었다 (사도 2. 23 : 4, 28 : 에페 1, 3-14).
예수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사소한 것들까지도 돌보시 는 하느님 아버지의 섭리에 자녀답게 의탁할 것을 요구 하였다. "무엇을 먹을까 혹은 무엇을 마실까 혹은 무엇 을 입을까 하면서 걱정하지 마시오··· 여러분의 하늘 아 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다 여러분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 의 의로움을 찾으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것들도 다 곁들여 받게 될 것입니다"(마태 6, 31-33). 이렇듯이 예수 가 이 세상에 옴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새로운 신뢰가 태 어난 것이다. 하느님은 성자 안에서 인간적인 모든 필요 에 현존하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인간과 당신 사이에 성자를 중재자로 세워 성자의 공로를 통하여 성자에게 기도하도록 인간을 초대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 "여러분이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 든지 다 내가 해주겠습니다"(요한 14, 13).
〔신학적 이해〕 위에서와 같이 신구약 성서 안에서 하 느님의 섭리에 대한 계시의 윤곽을 근거로 여러 가지 신 학적인 물음들을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통하여 밝혀 보았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몇몇 의문점들이 남아 있어 이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고찰이 요청되는데, 이때 제기되는 물음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모든 것의 원인인 하느님에게 부차적인 원인들이 필요 한가? 전선(全善)한 하느님이 섭리하시는 세상에 어떻 게 악이 존재하는가? 섭리와 인간의 자유는 상치되지 않 는가? 전지(全智)한 하느님의 섭리에 청원 기도가 왜 필 요한가?
섭리와 부차적 원인 : 하느님은 당신 계획의 최초, 그 리고 최상의 주인이다. 한편 이 계획의 실현을 위하여 피 조물의 협력도 이용하신다. 그것은 하느님이 당신 계획 의 실현에 피조물들이 참여하는 품위를 당신 선함의 표 지로서 주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피조물들을 단순히 존재하게만 하지 않고 스스로 행동하고 상호 부차적인 원인이 되게 하신 것이다. 하느님은 특별히 인간에게 온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 책임을 맡기심으로써(창세 1, 26- 28) 자유로이 당신의 섭리에 참여할 권한을 주셨다. 이 로 인해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완성하고 자신과 이웃의 선익을 위해 조화를 완성시키는 지성적이고 자유 로운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협력자' (1 고린 3, 9)가 되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골로 4, 11)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 없이 피조물이란 허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사목 36항) 피조물은 자신의 근원인 하느님으로부터 단절되면 스스로 아무것 도 할 수 없으며 은총의 도움 없이는 자신의 궁극적인 목 적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마태 19, 26 ; 요한 15, 5). 그 러므로 하느님이 부차적인 원인들 안에서 그것들을 통하 여 작용하는 첫 번째 원인인 셈이다.
섭리와 악의 존재 : 좋은 세계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느님이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있다면 어떻 게 악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 물음은 이해할 수 없는 신
비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교의 신앙 전체가 이 질 문에 대한 답이 된다. 그것은 바로 창조의 선성, 죄와 악 의 비극, 그리고 그것을 인내하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해 명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에 따르면, 하느님 은 자신의 사랑에 인간을 초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 한 응답이나 거부는 인간의 자유에 달려 있다. 하느님은 인간을 윤리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이같이 지성과 자유를 선물로 받은 인간은 자신들의 궁 극적인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고 그릇된 길로 갈 수 도 있는 존재이다. 실제로 인간들은 죄를 범하였다. 그리 하여 세상에 윤리적인 악이 들어 오게 된 것이다. 성서 역시도 하느님이 인간을 올바른 존재로 만들었지만 인간 이 많은 악을 스스로 초래하였으며(전도 7. 20) 이 세상의 악 · 고통 · 죽음 등 불행의 상황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들어왔다(로마 5, 12)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결코 윤리적 악의 원인이 될 수 없 으며(Thomas Aquinas, Summa Theologica, I-Ⅱ . 79, 1), 하느님 은 단지 피조물의 자유를 존중해 이를 허용하시는 것이 다. 구원사 안에서는 하느님이 당신의 전능하신 섭리 안 에서 피조물들에 의해 야기된 윤리적 악을 포함한 악의 결과들로부터 선을 이끌어 내는 신비가 드러난다(Augusti- nus, De Doctrina Christiana, 11, 3). 무엇보다도 가장 큰 악은 하느님의 아들을 배척하고 죽인 인간의 죄이지만, 하느 님은 이 악으로부터도 당신의 풍성한 은총으로(로마 5, 20) 그리스도의 영광과 인간의 구속이라는 가장 큰 선을 끌어냈다.
이렇듯이 무한히 지혜롭고 선한 하느님은 궁극적인 완 성을 향해 가는 '진행의 상태' 로서의 세계를 자유로이 창조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생성 되는 모든 존재들의 출현에는 덜 완전한 것 즉 자연의 건 설이라는 긍정적인 것과 더불어 파괴가 포함되어 있으므 로, 피조물이 자신의 완전에 도달할 때까지는 물리적인
선과 물리적인 악이 서로 공존하는 것이다(Thomas Aquinas, Summa de veritate catholicae fidei contra gentiles, 3, 71). 따라서 세 상에는 인간의 죄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어떤 불행이나 재 난이 있을 수 있고, 하느님의 섭리는 때로는 피할 수 없 는 재난을 일으키는 세상의 부차적인 원인들의 활동까지 도 존중하는 것이다.
물리적인 악은 또한 인간의 악한 의지에서 올 수도 있 다. 예를 들어 부나 재물, 일상 용품의 더 나은 분배를 통해 사회의 가난과 극빈을 극복하려 하지 않는 이기주 의와 물욕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악이라고 일컫는 모든 것의 책임을 섭리에 돌려서는 안된다. 윤리적이든 물리 적이든 악의 탓은 오로지 인간 및 피조물에 달려 있기 때 문이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이에 대해서 "누 구든지 인간이 악을 행하는 것이 그의 탓에 있지 않고 하 느님이 선을 행하시듯이 악을, 허용적으로가 아니고 그 분 스스로 행하신다고 말한다면, ··· 파문을 받을지어다" (DS 1556)라고 선언하였다.
섭리와 기도 : 섭리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기도, 특히 청원 기도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 문점이 제기되는데, 하나는 '하느님이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있고 손수 보살펴 주는데 청원 기도가 왜 필요한 가? 하는 것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 지께' 좋은 것을 청하라고 하였다(마태 7. 7). 청원 기도 는 가장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형태의 기도로서 마치 어 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무엇인가 신뢰심을 가지고 청하는 것과 같다. 기도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시며 보살펴 주시는 하느님의 뜻에 우리의 지향을 일치시키고 자 하는 인간의 협력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뜻이 하느님 의 목적과 일치할 때 기도의 위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도가 하느님의 결정적이고 불변적인 의지를 바꿀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참된 기도는 하 느님의 뜻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뜻에 충
만히 들어가는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 의 은총과 사랑의 베풂에 인간의 청원 이 일치되기를 원하시는데, 토마스 아 퀴나스는 이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하느님의 섭리는 다른 원인들을 배제 하지 않는다 . ··· 하느님 대전에 기도는 유효한데, 그것은 하느님 섭리의 불변 적인 질서를 바꾼다는 점에서가 아니 고, 그러한 일이 기도하는 이에게 허 락되는 것이 하느님의 섭리의 질서 안 에서 온다는 데서 가능하다"(Thomas Aquinas, Summa de veritate catholicae fidei contra gentiles, 3, 95, 96). 그러므로 청원 기도 가 응답되지 못했다면 그것은 아직 때 가 되지 않았든지 지향이 그릇되어 있 기 때문이다. 혹은 하느님의 뜻과 다 른 것을 청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지지 못하는 것은 청하지 않기 때 문입니다. 여러분은 청해도 받지 못합
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의 쾌락에 낭비하려고 잘못 청하 기 때문입니다"(야고 4, 2-3).
섭리에 대한 믿음은 바로 기도 안에서 실현된다. 기도 는 이미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에 찬미와 감사뿐만 아니 라 약속 이행을 위한 청원이다.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인격적인 하느님께 바치는 청원의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여분의 것도 아니고, 인간적인 예견과 계획에 맞추도록 하느님께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의 기도 는 우리의 모든 청원 기도의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아 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어떤 일이든 하실 수 있사오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 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마르 14, 36). 이것은 하느님의 보살핌에 위탁해야 할 한계성 의 표현이며 하느님의 예속을 근본적으로, 그리고 행위 적으로 수락하는 것이다. 또 그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곧 (하느님) 결정대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만사가 선하게 이루어져 간다는 사실"(로마 8, 28)을 굳 게 신뢰하는 자세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이 세계와 역사의 주인이라는 것 을 굳게 믿는 이들이지만, 하느님의 신비로운 섭리의 길 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종말에, 인간의 부분적인 인식 이 끝나고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보게 될 때에야(1요한 2, 28) 비로소 이러한 진리를 완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4 안배 ; → 악 ; 운명)
※ 참고문헌 P.J. Labarriere, 《DSp》 XII-2, pp. 2466~2476/C. Gennaro, Dizionario enciclopedico di Spiritualta, E.S.R., Roma, 1975, PP. 1524~ 1526/ M.R.E. Masterman, Providence ofGod (in the Bible), 《NCE》 11, pp. 916~917/ E.J. Carney, Providence of God (theology of), 《NCE》 11, pp. 917~919/ E. Nierman, 《SM》 3, pp. 130~134/ 《가톨릭 교회 교리서》 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6, pp. 118~126. [朴載萬]
섭리
攝理
〔라〕providentia · 〔영〕pr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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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에서 섭리의 개념은 하느님이 창조한 피조물들을 돌보고 다스린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