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및 의미〕 성가는 교회의 전례와 함께 시작되어 전례의 순서와 규정 안에서 외형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 다. 최후 만찬 때의 찬미가(시편 113-118편)로 시작된(마 태 26, 30 : 마르 14, 26) 성가는, 이후 창작자의 예술적 · 전례적 태도와 수용자의 신앙적 · 음악적 정서에 따라, 또 문화권과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해 왔다. 그렇지 만 말씀 선포와 신앙 고백(1디모 3, 16 : 필립 2, 6), 하느 님 영광의 체험과 신자들의 성화(1고린 14, 3. 26)로 압축 되는 성가의 본래적 기능과 목적은 시대의 언어로 풀이 되며 변함없이 전수되었다. 성서에서는 "성시와 찬가와 영가로 서로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 하며 성시를 읊으시오"(에페 5. 19)라고 하였고, 교부들 은 성가가 하느님의 중요한 창조 사업 가운데 하나이며 전례의 첫째 자리를 차지한다고 했다. 특히 강론을 통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이다" (Cantare
amantis est)라고 한 성 아우구스티노(354-430)는, 성가를 '탁월한 기도' 라고 하면서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두 번 기도하는 것이다" (Bis orat, qui bene cantat)라는 옛 속담을 인용하였다(sermo 336, 1 PL 38, 1472). 또 교황 베네딕도 14세(1740~1758)는 성가로써 "신자들의 마음을 하느님 께 향하게 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한다" (〈Annus qui>, 1749)라고 하였고, 교황 비오 10세(1903~1914)는 성가가 "전례의 본질적 구성 요소" 라고 하였다( Tra le sollectitudini>, 1903. 11. 22).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성가의 목적을 전례 목적 과 동일시하였다. 하느님을 직접 만나는 종교적 삶의 표 현인 전례는,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작용과 이를 체험한 인간의 응답으로 구성된다. 인간은 자신을 있게 하고 영 원한 삶을 살게 하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노래로 응 답하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미 받은 구원의 완 성을 추구한다. 따라서 성가는 합목적적이고 공동체적이 며 화려하고 장엄한 축제의 성격을 갖는다. <전례 헌장> (Sacrosanctum Concilium) 112항에서는 성가의 목적이 "기 도를 감미롭게 표현하거나 일치를 초래하며, 혹은 거룩 한 의식을 더 성대하게 감싸 주면서, 전례 행위와 밀접히 결합하면 할수록 더욱 거룩해질 것이다. ·· · 하느님의 영 광과 신자들의 성화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 고 있다. 또한 "신자들로 하여금 미사 통상문 중에 그들 에게 속하는 부분을 노래할 수 있도록 배려" (54항)해야 한다고 하면서 "신학교, 남녀 수도자들의 수련원과 신학
원, 또한 기타 가톨릭 강습소 및 학교에서의 음악 교육과 실습을 중요시해야 하며" , "교회 음악을 위한 전문 학교 설치를 권장"(15항)하였다. 반면에 교회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로마식 전례의 고유한 성가로 인정"(116항)하면 서도, 선교 지역 신자들의 특성을 전례에 적응시키기 위 해서 고유한 음악에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자리를 부여 해야 한다(119항)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음악가들은 "작 곡을 하되 참된 교회 음악의 특징을 지니고,··전체 신자 들의 능동적 참여를 돕는 곡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성 가의 가사는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여야 하며, 주로 성서 와 전례에서 취해야 한다"(121항)고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발표된 《미 사 경본의 총지침》(Institutio Generalis Missalis, 1969)에서는 노래의 중요성에 대해 "미사 때에 민족의 특성과 집회의 능력에 따라 노래를 중요시해야 한다"(19항)면서 "독서 사이의 노래를 비롯해서 입당 노래, 봉헌 노래, 영성체 노래 등에 관해서는 제시된 규범을 따라야 한다" (324항) 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가를 "기쁨에 찬 마음을 표현하는 매우 탁월한 방식임을 재확 인하며 특히 미사 전례에서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Dis.Domin), 1998).
〔미사 중 성가의 방향〕 미사는 모든 전례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공적인 특성이 가장 강하며 장엄성을 지닌 전 례이므로, 그만큼 성가의 역할도 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주일과 축일 또는 교우들이 많이 참석하는 미사에는 성가를 부르는 것이 좋다(예부성성 훈령
침묵을 지키게 한다면 그 성가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 게 되는 것이다. 성가대는 화답송의 시편 · 복음 환호 송 · 봉헌송 · 영성체송 등 성가대 고유 부분을 독자적으 로 노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미사 중 성가와 관련하여 몇 가지 선택할 수 있는 지침 을 언급한다면, 우선 고정적으로 입당 · 봉헌 · 영성체 · 퇴장 성가 등을 비롯한 일부분만 성가로 부르는 관행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 사제와 신자들이 함께 또는 교송으 로 부를 수 있는 부분이 더 중요한 성가 부분이다. 그리 고 환호 · 찬미가 등의 기도문은 본래부터 노래이거나 노 래로 불러야 그 의미나 특성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대영광송 · 알렐루야 · 거룩하시도다 · 성체 성혈 축 성 후의 환호 마침 영광송 후의 아멘 등이다. 두 번째 로, 성가는 전례에 봉사하는 요소이므로 전례 시기 · 축 일 · 미사의 부분에 맞아야 한다. 입당 성가는 그날 경축 하는 전례 시기나 축일을 반영하여야 하며, 영성체 성가 는 성체 성가에서 골라야 한다. 영성체 성가로 성모 마리 아나 성인과 관련된 성가를 부르는 것은 전례의 의미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세 번째로, 전례 성가에서는 곡보다 가사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가사도 단지 1~2절만 부르지 말고 같은 곡에서도 다른 절이 그날의 의미와 더 관련이 있다면 그 절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성가〕 양식사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때 한국의 성가는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성가인 천주 가사에서 일 제 시기의 단성 성가(單聲聖歌)를 거쳐 8 · 15 광복 후 에는 다성 성가(多聲聖歌)로 변천하였다. 미사곡 · 모테 트 · 오라토리오 등 가톨릭 음악의 넓은 범주에 속하는 합창용 예술 성가와는 달리 한국의 성가는 본래 개창용 대중 성가에서 유래하였으며, 좁은 의미에서는 이것만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민요풍의 천주 가사와 성가집의 성 가들로 구분되는데, 후자는 가사만 한글로 번안한 외국 성가와 한국인이 작곡한 창작 성가로 세분된다.
천주 가사의 음악 양식과 의미 : 천주 가사는 민요조로
불려진 최초의 한글 성가이다. '가톨 릭 성가 가사' 또는 '천주 찬가' (天主 讚歌)로 칭하기도 하였던 천주 가사는 일반적으로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가 저작하기 시작한 1850년경부 터 성가집이 출현하게 된 1920년대까 지 한글 성가로 널리 구전되고 애창되 었다. 또 천주교 교리와 신앙을 전달 할 목적으로 운문 형식에 곡조 없이 송영(誦詠)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가 톨릭 성가집의 조성적이거나 선법적 (旋法的)인 서양 성가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천주 가사는 초기 한국 교회 가 선교 대상을 평민 이하의 계층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크게 발전하였는 데, 이는 신자 대중이 거의 문맹이었 다는 점과 당시의 어려운 출판 상황과 도 관련이 있다. 신자들은 4 · 4조 음
률의 한글로 풀어 준 초대 교회의 한국인 지도자들 특히 최양업 신부의 천주 가사를 민요풍으로 노래하면서 교회 의 신앙과 교리를 암송하였다. 그래서 선교와 신자들의 교리 교육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였다.
《죠선어 성가》 : 천주 가사의 전통은 1924년에 서울 교구에서 62곡의 서양 성가에 한글 가사를 단 《죠션어 성가》를 발간하면서 심한 단절을 보였다. 이는 《죠션어 성가》 편집인들이 천주 가사 단 한 편만 노래로 악보화 하고(25번 <오묘ᄒᆞ다>), 14편은 노래말로만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죠션어 성가》는 서양 성가의 선율에 천주 가 사나 번안한 한글 가사를 입히는 노래 가사 바꾸기 형식 의 성가집이다. 주로 세속 선율에 교회 가사를 입히는 이 러한 방식은 18세기까지 주로 서양의 교회 음악에서 널 리 유행하였다. 한국에서는 1928년의 《대구 공교 성가 집》 중 <성모 승련가 Ⅱ>와 <텬당 노래>, 그리고 《정선 가톨릭 성가집》의 4곡을 천주 가사로 혹은 그 변형으로 노래말을 삼았다. 이는 《죠션어 성가》에서 천주 가사가 <오묘ᄒᆞ다> 한 곡뿐이지만 1928년 원산교구에서 편찬한 첫 독일계 성가집으로 악보 없이 가사만 담은 《조선어 성가》보다는 천주 가사 음악을 이어 주었다는 면에서 탁 월하다. 《조선어 성가》에는 46번 · 57번 · 58번이 천주 가사 음악이다.
8분의 6박자로 된 천주 가사 성가의 DJ DJ 리듬은 옛 자장가의 "자장 자장~" 하는 리듬으로 전통적인 아낙네 들의 리듬이다. 선율은 보편적으로 민요조 5음계로 이루 어졌는데, 후렴 부분의 '파' 와 마침음 도' 는 드문 예외 이다. 이를 전통 민요에서 출발한 천주 가사가 신민요를 만나면서 변화된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이 유일 한 천주 가사는 1938년 원산교구에서 편찬한 《가톨릭 성가》의 115번 <오묘하다 성체 대례>로 확대되었다.
《가톨릭 성가집》 : 1948년에 발행된 《가톨릭 성가집》 의 편집자는 이를 슬로바키아 찬가의 서양 선율로 대체 하고 천주 가사의 가사 7절도 4절로 축약 · 변형하여 《죠 션어 성가》로부터 시작된 서양식 한글 성가의 틀을 새로 운 전통으로 확정 지음으로써, 《죠션어 성가》와 《가톨릭 성가집》은 신자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오던 민요적 한글 성가가 본격적인 한국적 성가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 을 철저히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이 과정에는 한국 민요에 대한 선교사들의 이해 부족, 3 · 1 운동 후 조선 총독부에 의해 민족 음악에서 한낱 기방의 음악으 로 평가 절하된 민요의 위상, 총독부와의 마찰에 대한 두 려움, 민요 가사의 내용에 대한 몰이해와 비판, 서양 성 가에 대한 한국인 교회 지도자들의 높은 선호도,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한 서양 성가의 무비판적인 수용 등 여러 가 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이 무렵 《경향잡지》에 <신전가>, <성모 승텬가> 등 많 은 천주 가사들이 소개되면서 "이 가사의 곡은 신부께 배울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사제 용 노래 지침서나 천주 가사 성가집의 존재를 가능해 볼 수는 있으나 아직까지 발견된 자료는 없다. 다만 노인 신 자들의 기억력에 의존하여 연구한 결과, 천주 가사가 처
음에는 선비들의 '경건 낭송 방식' 의 특정한 음률로 낭 송되다가 지방의 민요와 결합되면서 고유한 지방 민요의 음악적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벽(李 檗)의 <천주 공경가>를 비롯하여 작자 미상의 <천주 십 계>, <천당 노래>, <성탄가>, <천당가>, <주일가> 등 녹취 한 천주 가사들은 한결같이 민요 안에서 설명될 수 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창조적 산물인 천주 가사는 분명 박해 속에 핀 시편' 이며, 유대교의 원시적 낭창(朗唱) 이 그레고리오 성가의 시편창(詩篇唱)을 낳게 하였듯이 천주 가사는 탁월한 한국적 성가를 예견하게 한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수용과 변모 : 그레고리오 성가는 라틴어 가사로 된 교회 선법적 단성부(單聲部) 노래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전례 음악이며, 천주 가사와 함 께 초기 한국 교회의 음악을 주도하였다. 먼저 개별적인 기도 차원으로는 1836년에 유방제(劉方濟, 파치피코) 신부가 정약용(丁若鏞)의 임종을 지키면서 시메온의 노 래 <주여 이제 당신의 종을 놓아 주소서>(Nunc dimittis servum tuum Domine)를 반복하여 노래한 것과, 1870년대 드게트(V.M. Deguette, 崔東鎮) 신부가 사목 방문을 마치 고 귀가하면서 <테 데움>(Te Deum, 사은 찬미가)을 부른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 뒤 그레고리오 성가는 장례 미사 와 사도 예절, 부활 성야 및 부활 대축일 미사, 성체 강 복 등에서 불려지면서 점차 공적인 전례 노래로 확대되 었다. 미사곡 외에 자주 불려지던 그레고리오 성가로는 <도미네 살보스 팍 노스>(Domine salvos fac nos), <마니피 캇〉(Magnificat), <엑술텟>(Exultet, 부활 찬송), <베니 크레 아토르>(Veni Creator, 오소서 성령이여), <살베 레지나> (Salve Regina, 하늘의 여왕), <메미네>(Memime), 〈숩 투움> (Sub tuum), <피에 예수>(Pie Jesu), <리베라 메>(Libera me) 등이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본격적인 수용은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체계적인 신학교 교육에서 시작되었는데 1887년 당시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있던 리우빌 (L.N.A. Liouville, 柳達榮) 신부와 마라발(J.B. Maraval, 徐 若翰) 신부는 신학생들에게 라틴어와 함께 그레고리오 성가와 전례 등을 교육하였다. 그 후 1893년 4월 23일 약현(현 중림동) 성당 봉헌식 때 그레고리오 성가가 불려 졌고, 1900년대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운영 하는 성영회(聖嬰會) 원생들이 종현(현 명동) 성당 구내 에서 자주 그레고리오 성가를 노래하였다는 사실을 통 해, 이 성가가 매우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점차 신자 공동 체로 그 수용의 폭이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던 중 1924년 2월 17일에 뮈텔 주교가 교황청에서 펴낸 《그레고리오 성가집》을 채택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듬해 에는 서울교구에서 펴낸 《칸투스 미세》(Cantus Missae)로 그레고리오 성가의 본격적인 보급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1932년에 《라듼 성가》가 발간됨으로써 성직자와 평신도 가 선율을 암기할 정도로 그레고리오 성가는 일반화되었 다. 1920 1930년대에 그레고리오 성가는 "청년 신자 들이 종교 의식의 화려함을 더하기 위해 거의 어디서나 연습" 할 정도로 대표적인 전례 음악으로 자리잡게 되었
다. 이는 결국 개창용 한글 성가와 더불어 합창용 예술 음악의 전례적 비중을 높여 주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각 본당의 성가대에서도 주일 및 대축일 미사에서 그레고리 오 성가를 노래할 만큼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1965년 이후 그레고리오 성가는 한글 성가에 전례 음악의 핵심적인 위치를 넘겨주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신자들의 능동적인 전례 참여(전례 112항)를 목적 으로 자국어 미사와 자국어 성가를 강조하였던 제2차 바 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왜곡 수용한 데서 빚어진 결과였 다. 왜냐하면 자국어 성가 강조가 곧 그레고리오 성가의 금지나 추방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레 고리오 성가는 현행 《가톨릭 성가》(1985)에 몇 곡 수록 되어 있을 뿐이어서 소수의 성가대에 의해 그 명맥을 유 지하고 있다. 오늘날 그레고리오 성가가 한국어 미사에 서 전례 음악의 핵심으로 그 중요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는 라틴어 사용의 불편 등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예견된 다. 이러한 점에서 교회의 정책적인 배려가 절실하다.
서양식 한글 성가와 토착화 : 성가는 신자 공동체가 전 례와 신심 행사에서 개창할 수 있는 자국어 가사의 장절 (章節) 노래이다. 한글 성가는 1924년의 《죠션어 성가》 출판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지만, 이는 가사만 한글로 번안한 단성부 서양 성가가 천주 가사를 제치고 새로운 한글 성가로 부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후 이 서양식 한글 성가는 신학교에서도 조선어 성가 미사를 봉헌할 정도로 빠르게 보급되었으며, 특히 신자들의 능동적인 전례 참여를 강조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한국 교 회의 대표적인 전례 성가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편 다성부 한글 성가는 1911년의 2 · 3성부 합창곡 인 '신학교 성가 까지로 소급된다. 원산교구의 《조선어 성가》와 연길교구의 《성가》(聖歌, 1934)에 2성부와 3성 부 성가가 각각 2곡씩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본격적 인 다성부 성가 시대는 1948년에 이문근(李文根, 요한, 1917~1980) 신부가 편찬한 《가톨릭 성가집》으로 시작이 되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예전부터 우리 가톨릭 교회 내에서 불려지던 시와 노래들을 수집
한 후 우리 땅에 제일 적합하고 제일 아름다운 것으로 판 단, 선정한" 134곡의 성가들은 소프라노에 선율을 고정 시켜 개창이 가능하도록 한 4성부의 화성(和聲) 음악이 었다. 그리고 합창 성부는 반주 성부의 기능을 겸하고 있 었다.
한글 성가는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근본적으로 예 술성을 추구하기보다는 하느님 찬미와 공동체 성화(聖 化)에 일차적인 목적을 두었다. 이 목적은 전통적인 교 회 악기인 오르간의 도움으로 구현된다. 오르간은 성당 내부와 창문이 울릴 정도의 장엄한 소리로 신자들의 마 음을 열어 준다. 또 성가 반주는 크게 · 작게나 빠르게 · 느리게 등의 낭만적 해석을 모르기 때문에 오르간은 음 악적 훈련을 받지 못한 신자 공동체가 다 함께 뜨거운 마 음으로 신명나게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 다. 신자들이 음정을 틀리거나 리듬을 잘 맞추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두 함께 부른다' 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없기 때 문이다. 그리고 성가는 전통적으로 독창자 또는 그룹 상 호간에 교창(交唱)이 이루어지는데, 한글 성가는 신자 공동체와 성가대의 교창으로 본래의 목적을 보다 효과적 으로 달성할 수 있다.
한편 한글 성가의 토착화는 성가가 지나치게 서양적이 고 특별한 창작 성가를 내놓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였다. 서정도(徐廷道, 베르나르도, 1899~1964) 신 부와 이문근 신부를 시작으로 많은 한국인 작곡가들은 우리의 말과 정서로 하느님을 아버지로 찬미하기 위하여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이러한 취지에서 1966년 9월 26 일 절두산에서 있었던 병인 순교 100주년 기념 미사에 서는 이문근 신부의 '한글 미사곡' 이 초연되었는데, 이 곡은 그레고리오 성가 선법을 조화시킨 한국적인 성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개창과 합창으로 부를 수 있는 이 첫 한글 미사곡은 강수근(姜秀根, 바오로 마리아) 신부 의 '국악 미사곡' 등이 만들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하였 다.
창작 성가는 미사곡을 포함하여 음악 언어의 시각에서 볼 때 세 부류로 구분된다. 첫째는 서양 언어로 쓰여진 것들로 창작 성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한글 가사를 제 외한 서양 성가들이다. 둘째는 전통 음악의 언어로 작곡 된 성가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셋째는 이 두 성가의 중 간에 위치하는 약간의 성가들이다. 이 같은 상황은 오늘 의 한국 교회 일반을 반영하는 듯하며, 한글 성가의 토착 화가 매우 힘든 작업임을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한국적 성가가 속성상 완성을 지향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기 때 문에 그 표본이나 완성을 제시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 작 업을 더욱 어렵게 한다. 한국적 창작 음악은 작곡가들의 진지함과 함께 민족 문화에 대한 무관심, 한글 성가를 포 함한 전례 음악 전반에 대한 복고주의적 경건주의, 토착 화 의지의 부족, 가사 문학의 빈곤, 성직자 중심의 전례 제일주의 등 한국 교회 공동체의 의식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
〔토착화 전망〕 한글 성가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토착
화 작업은 그 뿌리인 천주 가사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민요적 성격의 성가도 권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창작 성가가 민요조이어야 할 필요는 없고, 오 히려 민요 자체보다 그것을 있게 한 한국인의 정서적 뿌 리에서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즉 한글 성가의 토착화는 민족 정서와 음악적 감수성을 전통 음악과 서양 음악을 공동의 자료로 주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물 론 단지 전통 가락과 음악 기법을 적용시켰다고 해서 전 례 성가로 사용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참으로 훌륭 한 토착 성가가 자리잡으려면 토착 성가의 적법성을 판 단하고 인준할 권한을 가진 주교 회의가 관심을 갖고 지 속적으로 지원하고 올바른 지침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 다. (→ 가톨릭 음악 ; 국악 미사 ; 그레고리오 성가 ; 성 가대 ; 성가집 ; 암브로시오 성가)
※ 참고문헌 <천주 가사>, 《교회 와 역사》 66호(1981. 2), 한국교회 사연구소, p. 1/ 김진균, <기독교 찬송가가 한국 음악 문화에 미친 영 향>, 《동서 문화》 창간호, 계명대학교 출판부, 1967/ 朴基賢, <한국 가 톨릭 교회 음악의 문제점>, 《신학 전망》 31호(1975. 겨울), 대건신학 대학 전망 편집부, pp. 120~ 132/ 孫尚五, <현 전례와 전례 음악>, 《사 목》 49호(1977. 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p. 62~71/ 오숙영, 〈天主 敎聖歌歌詞考一특히 최양업 신부의 聖歌를 중심으로>, 숙명여자 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71/ 조선우 외, 《한국 가톨릭 교회 음악 사 료집》 1, 부산 가톨릭 음악원, 1994/ -, 《한국 가톨릭 교회 음악 사 료집》 2, 부산 가톨릭 음악원, 1996/ -, <교회 음악의 한국화 논 의>, 《한국 가톨릭 이대로 좋은가》, 우리사상연구소, 1977/ 차인현, 《한국 천주교회와 성가》, 가톨릭 출판사, 1991/ 최필선, <초기 한국 가톨릭 교회 음악 연구>, 동아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89/ 洪敏子, <천주 가사의 교회 음악적 의의>, 《최석우 신부 화갑 기념 한국 교회 사 논총》,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pp. 311~324/ 이흥기, 《미사 전 례》, 분도출판사, 2판, 1998/ 주교 회의 전례위원회, 《미사 경본의 총 지침》,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9. 〔趙善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