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대

聖歌隊

〔라〕chorus · 〔영〕ch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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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대구 본당 천주교 악대(왼쪽)와 1946년의 명동 본당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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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대구 본당 천주교 악대(왼쪽)와 1946년의 명동 본당 합창단.

미사와 기타 전례에서 단성부 혹은 다성부 성가 등 넓 은 의미의 가톨릭 음악을 노래하는 성악 단체. 일명 교회 합창단이라고도 하며, 지휘자 · 반주자 · 성가대원으로 구성된다. 반주 악기로는 전통적으로 오르간이 이용되 며, 관현악대(管絃樂隊)도 이에 포함된다. 장르와 편성 에 따라 그레고리오 성가대 · 합창 성가를 부르는 일반 성가대 · 소년 성가대 · 소녀 성가대 · 남성 성가대 · 여성 성가대 · 혼성 성가대로 구분된다. 2~3개의 혼성 성가 대를 묶은 2중 성가대 혹은 3중 성가대는 16~17세기 음악의 양식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기원과 변모〕 성가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성가대의 역사는 구약 시대로까지 소급되며, 성가대라는 용어는 시간 전례(liturgia horarum) 때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는 남녀 수도자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수도원의 성가대 인원이 늘어나면서 그 규모가 확대되었고, 수도 원 학교로부터는 소년 소프라노 단원들이 배출되었으며 이후에는 성직자가 제외된 전문 노래인들로만 구성된 주 교좌 성당 성가대가 출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7세기 말에 설립된 '합창 학교 (schola cantorum)에서는 성가대 의 활성화 및 전문화를 위하여 지휘자 · 반주자 · 성가대 원 등이 양성되었다.
1436년에 9명으로 구성되었던 시스티나 성당의 성가
대는 반세기 만에 24명으로 확대되었고, 오르간 반주에 의한 성가대의 노래 방식이 17세기부터는 아 카펠라(a cappella, 무반주 합창)로 바뀌는 등 성가대의 규모와 노래 방식은 성가의 음악적인 발전에 적응하며 변화하였다. 아 카펠라는 가사를 인간의 목소리만으로 보다 효과적이 고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것으로 이미 시스티나 성당 성 가대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러나 교세 확장에 따른 성가 대의 양적 팽창으로 성가대원의 질적 저하 현상이 나타 났고, 이는 현실적으로 성가대의 노래 방식을 오르간 반 주에 의존하도록 하였다. 또 종교 개혁 이후 성가대의 전 례적인 성격이 감소되고 세속화됨으로써, 성가대는 전례 음악보다는 화려한 양식의 곡목을 선택하는 경향이 우세 하였고, 성인 남성과 변성기 이전의 어린이들로 구성되 었던 성가대에서 여성들이 소프라노와 알토를 맡게 되었 다. 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전례 개혁으로, 성가 대는 전례에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더해 주어야 한다는 역할이 더욱 강조되었다. 그러나 전례에 참가하는 신자 전체 공동체의 성가를 강조하다 보니 성가대의 역할이 상당히 위축되었으며, 일부에서는 성가대 무용론까지 제 기되기도 하였다.
〔역할과 의미〕 교회는 그레고리오 성가 · 다성 음악· 대중 성가 · 오르간 음악 등을 보존하고 육성하며, 토착 화 성가 · 젊은이 성가 등을 개발시켜야 하고, 보다 많은 성가대를 조직함으로써 전례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성가를 부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그래서 <전례 헌장> (Sacrosanctum Concilum)에서는 "성가대가 부단히 육성되 어야 하는 바, 특히 주교좌 성당에서 그렇다. 그와 동시 에 주교들과 기타 영혼의 목자들은 노래로 거행되는 어 떠한 전례 의식에 있어서든지, 모든 신자들의 무리가···· 그들에게 속한 부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힘 써 돌보아야 한다"(114항)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서 "신학교, 남녀 수도자들의 수련원과 신학원, 또한 기 타 가톨릭 강습소 및 학교에서의 음악 교육과 실습을 중 요시해야 한다. 이 교육을 추진하기 위해서 교회 음악 교 사들은 신중히 훈련되어야 한다. 그 밖에 도움이 된다면 교회 음악을 위한 전문 학교 설치를 권장한다. 교회 음악 가, 성가대원, 특히 어린이 대원들에게 진정한 전례 교육 을 실시해야 한다" (115항)고 하였다. 이러한 공의회의 결정은 예부성성(현 전례 성사성) 훈령 <성음악>(Musicam Sacram, 1967.3.5)에서도 재언급되었다.
《미사 경본의 총지침》(Institutio Generalis Missalis, 1969. 4. 3)에서도 성가대의 역할과 의미를 강조하면서 그 중요성 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즉 성가대는 전례 음악의 직 접적인 담당자로서 자신들만의 성가 합창으로, 때로는 신자 공동체와의 교창을 통하여 교회 음악의 오랜 전통 에 일치하게 되며, 이를 통해 '하느님 영광 찬미 · 신자 들의 일치 · 신자들의 성화' (25~26항)라는 전례와 성가 본연의 목적에 동참하게 된다고 하였다. 실제 "신자들 가운데서 성가대는 고유한 전례 부분을 맡고 있다. 성가 대는 맡겨진 부분을 노래하고, 노래에 신자들이 적극 참
여하도록 도와 주는 임무를 맡고 있다" (63항). 따라서 "신자들의 노래를 지휘하고 인도하기 위하여 성가대원이 나 지휘자가 있어야 한다. 성가대가 없는 경우에는 적어 도 몇 명의 성가대원이 있어서 여러 가지 성가를 조정할 것이며 교우들은 맡겨진 부분을 노래할 것이다" (64항) . 그러므로 성가대석은 미사 때 성가대가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특성이 잘 드러나도록 마련되어야 하 며, 성가대원의 전례적 봉사가 쉽게 이루어지고 그들의 전례 참여가 완전히 보장되도록 신자들로부터 너무 떨어 진 곳에 배치되어서는 안된다(274항 참조)
〔한국의 성가대〕 한국 교회에서는 '성가대' 와 '합창 단' 의 개념이 모호하게 혼용되어 왔다. 1920년대 초까 지 '성가대' 라는 용어가 거의 유일한 개념으로 사용되었 는데 대부분 그레고리오 성가대를 의미하였다. 그러다가 1930~194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의미의 합창단이 등장하게 되자 성가대는 그레고리오 성가대를, 합창단은 합창 성가를 부르는 일반 성가대를 뜻하는 개념으로 정 착되었다. 그러나 그레고리오 성가대가 거의 자취를 감 추게 된 오늘날에 와서는 성가 양식의 변화와 무관하게 옛 관습에 따라 다시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 다.
유래와 변모 : 한국의 성가대와 관련된 첫 기록은 종 현(현 명동) 성당 봉헌식 때 성가대석에서 성가가 울려 퍼 졌다고 기록된 1898년 5월 29일자 <뮈텔 주교 일기>이
다. 이보다 앞선 시기에 성가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 지만 확인할 수 없고, 이 당시 성가대의 소속 · 구성원 · 곡명 등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어 그 구체적인 모습도 알 수 없다. 그 후 1902년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성영회(聖嬰會)에 성가대가 조직되어 있었고, 1904년 12월 8일에는 이 성영회 원생들이 성가대와 교 대로 시편을 노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전문적인 음악 지식과 소양을 갖춘 음악 지도자나 신자가 거의 없 었고 오르간도 흔치 않았던 당시로서는 놀라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성가대의 체계적인 교육은 신학교 에서 이루어졌다. 이미 1887년에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에서는 정규 과목으로 그레고리오 성가를 가르쳤는데 이 러한 음악 교육을 받은 신학생들은 1911년에는 2 · 3성 부의 라틴어 합창곡을 노래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또 덕원 신학교에서는 1928년부터 음악적 소양을 갖춘 사 제를 양성한다는 목적에서 자체적으로 악대(樂隊)를 조 직하였고, 1934년부터는 39명의 신학생들에게 악기 하 나씩을 의무적으로 배우게 하는 등 음악 교육을 강화하 였다.
한편 1924년부터는 서울교구 · 원산교구 · 대구교구 · 연길교구에서 잇달아 한글 성가집이 발간됨으로써 각 본 당마다 성가를 배우고 가르치며 이끌어 나갈 성가대가 필요하게 되었다. 성가대의 빠른 보급과 발전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 것으로, 이는 다양한 교회 악대의
도움을 통하여 실현되었다. 개화기에는 악기에 대한 관 심이 고조되었으며, 1920년대부터는 신학생 악대와 더 불어 본당마다 청년 악대가 양산되기도 하였다. 교회 악 대들은 미사 때 성가 반주를 책임졌고 교회의 다양한 행 사에 참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선 음악회를 개최하였으 며, 특히 오르간이 없는 본당에서는 이러한 악대들이 성 가대원의 교육까지 담당하여 성가대의 활성화에 기여하 였다. 그러나 1941년에 발발한 태평양 전쟁과 일본의 악기 반납 강요, 소련 · 중국 · 북한의 교회 탄압 등으로 대부분의 교회 악대는 해체되고 말았다. 그 후 1948년 에 오르간 반주를 겸한 합창 성가집이 출간되면서 대부 분의 성가대들은 대체적으로 오르간 반주에 의한 노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모습 : 제2차 바티칸 공 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0 1970년대에 와서는 각 본당 마다 성가대가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부산교구 연합 합 창단(1964) · 서울 학생 합창단(1966) · 광주 가톨릭 합창 단(1967) 등 대규모 연합 성가대가 발족되었고, 기타 반 주로 경쾌하고 자연스럽게 성가를 부르는 청년 성가대도 조직되었다. 그 후 19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신자들 의 적극적인 전례 참여(participatio activa)의 확대 해석, 성 가대원의 세속화와 자질 부족 등의 이유로 많은 그레고 리오 성가대와 일반 성가대가 폐쇄되었는데, 이는 한편 으로는 신자 공동체가 성가대의 자리를 물려받고 개창 한글 성가가 유일한 전례 음악으로 자리잡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1980년대부터 부각 되기 시작한 교회 음악의 토착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폴 리포니 음악 · 복음 성가 · 국악 성가의 사이에서 발생하 는 교회 전통과 민족 전통의 대결, 동서양 발성의 차이, 성가대원의 복장, 악기 사용 등의 현안들을 미래 지향적 으로 풀기 위해서 많은 고뇌를 하고 있다.
〔전 망〕 성가대의 주요 임무는 교우들과 함께 또는 번 갈아 가며 노래하면서 교우들을 도와 주고 지도하는 것 이다 ( 현재 성가대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는 우선 교회 저변에 '음악인에게 음악 행위는 직업' 이 라는 점을 인식하고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여야 하며, 전 문 음악가를 유치하여 성가대를 육성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기존의 운영 틀에서 벗어나 전문 음악인 으로 육성된 새로운 성가대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경우에 있어서 전문 음악인은 교회 음악과 전례 에 대한 교육을 충분히 받은 인물이어야 한다. 단순히 음
악을 전공했다 하여 성가대의 육성을 책임 맡길 경우에 성가대의 본래 목적을 상실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성가대원들이 전례 안에서 성가대의 고유 직무를 올바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신앙 · 전례 · 음악 교육도 필요한데, 이러한 노력은 명동 가톨릭 합창 단의 '성음악 연구원' (1974)을 시작으로 차례로 설립된 서울의 '종교 음악 연구소' 와 '전례 음악 진흥원' , 대구 의 '종교 음악 연구소' , 그리고 부산의 '가톨릭 음악원' 등에서 담당하고 있다.
신자들의 적극적인 전례 참여를 강조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은 미사의 제사성보다 잔치성을 강조하며, 진행자 중심에서 전례의 수혜자 곧 신자 중심으로의 변 화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신 자 중심의 전례가 신자 공동체와 성가대가 부르는 개창 성가와 합창 음악의 교창으로 확실한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가톨릭 음악 ; 성가 ; 성가집)
※ 참고문헌  부산교구, <교구 설정 40주년 기념 본당 성가대 발 전을 위한 심포지엄>, 1997/ 최필선, <한국 가톨릭 악대 연구>, 《부산 교회사보》21호(1999. 1), 부산교회사연구소, pp. 5~20/ 조선우 외, 《한 국 가톨릭 교회 음악 사료집》 1, 부산 가톨릭 음악원, 1994/ -, 《한 국 가톨릭 교회 음악 사료집》 2, 부산 가톨릭 음악원, 1996/ W. Gurlitt ed., Riemann Musik Lexikon, Sachteil, Schott's Söhne, 1967, pp. 163~164. 〔趙善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