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사〕 초기 교회 : 4세기경까지 교회는 성서의 시편 을 골라 성가로 노래하였다. 암브로시오 성가 시대에는 성서와 성가집이 보급되지 않은 시기였으므로 암브로시 오 전례로 거행되는 미사 때에 사제와 신자들은 대화하 듯 경문을 읽고 응답하였는데, 사제는 모든 신자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문체에 따라 힘을 주어 큰소리로 읽 거나 노래하였다. 성가집이 없어 외워서 노래하여야 했 으므로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성가대가 전례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고, 또 독창자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전례 음악이 간헐적으로 사본화되기 시작한 것은 4세기 이후부터였다. 그 후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는 지역별로 산재해 있던 로마 성가 · 갈리아 성가 · 모자라 빅 성가 · 암브로시오 성가 · 베네벤토 성가 가운데 로마 성가와 갈리아 성가를 중심으로 다른 몇몇 성가들을 한 데 모은 뒤 전례력에 따라 이를 정리하였는데, 이것이 최 초의 성가집 (안티포나리우스 천토》(Antiphonarius Cento) 이다. 이 성가집은 현재 남아 있지 않으나 여기에는 교황 이 직접 작곡한 1,600여 곡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며, 이를 계기로 그레고리오 성가가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 고 이 그레고리오 성가만이 교회 전례 음악으로 인정되 어 널리 유포되었고, 마침내 그레고리오 성가집이 출판 됨으로써 미사와 시간 전례 때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인쇄된 그레고리오 성가집은 19세기 말에 프랑스의 솔렘 수도원에서 펴낸 바티칸 판이다.
다성 음악 시대 이후의 발전 : 그레고리오 성가와 그 이전의 음악들은 모두 단성 음악이었는데 10세기 이후 다성 음악이 등장하면서 13세기 이후 급속히 발전하였 으며, 16세기 이후에는 바로크 시대의 영향으로 대규모 의 반주를 곁들인 기악이 도입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독일에서는 9세기부터 독일어 성가가 존재하였고, 14세 기 말경부터는 라틴어와 독일어를 섞어서 작사한 노래가 나왔으며, 1471년에는 신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성가 모 음집이 발간되었다. 1524년에 나온 소성가집이 정식으
로 출판된 최초의 성가집으로, 여기에는 코랄(choral)이 라고 불린 8개의 곡이 수록되었다. 일부에서는 루터(M. Luther, 1483~1546)가 이 소성가집을 직접 작사 · 작곡하였 다고 믿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한편 16세기 종 교 개혁 시대에 독일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성가집인 《모 음집》(Enchiridion) · 《영가와 시편》(Geistliche Lieder und Psalmen) · 《다윗의 시편》(Psalter Davids) 등이 등장하였는 데, 가톨릭에서도 이러한 프로테스탄트 성가의 발전에 대응하기 위하여 1537년에 베헤(M. Vehe)가 라이프치히 (Leipzig)에서 프로테스탄트 성가를 이용하여 최초의 가 톨릭 성가집을 발행하였다. 그리고 1567년에는 라이젠 트리트(J. Leisentrit)가 250곡의 성가를 수록한 가톨릭 최 초의 교구 성가집을 발행하였다.
17~18세기에 등장한 가톨릭 성가집은 소위 '예수회 성가집' 이라고 불린 것이 대부분이었다. 당시의 성가집 으로는 후대 교구 성가집의 원천이 된 보이트너(N. Beut- tner)의 성가집(1602) · 코너(D. Corner)의 성가집(1625) · 코켐(Kochem) 성가집(1682) 등이 있다. 로마 가톨릭적인 성가가 활성화된 것은 18세기부터였는데, 이러한 경향 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성가집이 보네(H. Bone)의 《칸타 테》(Cantate, 1847)이다. 그리고 이 당시부터는 가톨릭에 서나 프로테스탄트에서나 제목을 붙이지 않고 그냥 성가 집이라고만 이름하는 경향이 많았다. 가톨릭과 프로테스 탄트에서 성가집의 통일이 시도되기 시작한 것은 19~
20세기에 들어와서였으며, 성가집과 성가를 학적으로 연구하는 성가학(聖 歌學, hymnologie)이 등장한 것도 이 때였다.
〔한국의 성가집〕 성가집을 발간하 려면 신자 대중이 오선 악보를 보고 노래할 수 있을 만큼의 음악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와 더불어 성가집 을 발간할 수 있는 인쇄 시설이 확보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이 러한 조건이 갖춰진 1920년대에 와 서야 비로소 첫 선을 보일 수가 있었 다. 한글 성가집은 1920~1930년대 에 서울교구 · 대구교구 · 원산교구 · 연길교구에서 모두 13권이 출판되었 는데, 이는 선교사의 급증에 따른 한 국 교회의 팽창과 조선 총독부의 문화 정책 등이 맞물려 급속히 보급되었음 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인 신부에 의하여 제작된 최초의 성가집은 이문 근(李文根, 요한) 신부가 1948년에 가집》으로, 이 성가집은 1957년의
제작한 《가톨릭 성 《정선 가톨릭 성가 집》을 거쳐 1985년에 나온 현재의 《가톨릭 성가》로 이 어졌다.
현존하지 않는 성가 묶음들 :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서 펴낸 등사본 성가 묶음은 성극(聖劇) <미리피카 포르 치 에벤테>(Mirifica Porcii Evente)를 위한 3곡의 라틴어 성 가(1911)와 칸타타 <성탄과 공현의 신비>(Mysteria Nativi- tatis et Epiphaniae)를 위한 26곡의 한글 성가(1912), 그리 고 성극 <김대건>을 위한 한글 성가들(1920)이다 그레 고리오 성가의 표기 체계에 따라 4선 악보에 4각 네우마 (Neuma)로 표기된 이 한글 성가들은 대부분 당시의 창가 나 외국 성가에 가사만 바꾸어 입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1921년에는 사리원 본당 주임 이기준(李起俊, 토마스) 신부가 207면의 방대한 분량으로 된 한글 성가 집을 등사본으로 발간하였는데, 이것이 본당용으로 제작 된 첫 성가집으로 당시에 펴냈던 50권은 모두 분실된 것 으로 보인다. 이 성가집은 서울 대목구의 드브레(E.A.J. Devred, 俞世竣, 1877~1926) 보좌 주교가 주창했던 "본당 마다 서로 다른 성가집을 사용하는 혼란과 불편을 극복 하기 위하여"란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준교구용으로 출 판되었었다. 그러나 79위 시복식이 있기 전이라는 이유 로 삭제된 203~207면의 복자 찬가들이 천주 가사식 성 가인지 아니면 서양식 성가인지, 또 3년 후에 간행된 《죠션어 성가》에 어느 만큼 기여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죠션어 성가》의 편저자들이 이러한 본당 성가집들 을 참고하였을 것으로 추정해 볼 뿐이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제작한 성가집 : 서울교 구의 첫 한글 성가집은 라리보(Lamibeau, 元亨根) 신부와 비에모(Vilemot, 禹一模) 신부가 편찬하고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감준하여 1924년 8월에 펴낸 《죠션어
성가》이다. 현존하는 최초의 성가집인 이 《죠션어 성가》 에는 모두 62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상당 기간 구전되었 거나 등사본으로 전해 내려온 성가, 그리고 프랑스 성가 집인 《청년 성가》(Cantiques de la Jeunesse, 1896)에 수록된 곡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성가집은 1년 전인 1923년에 덕원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간행한 《조선어 성 가》朝鮮語聖歌, 분실)에서는 한 곡도 수용하지 않았다. 편집 원칙은 프랑스 성가에 한글 가사를 심는 것이었는 데, 25번 <오묘ᄒᆞ다>는 예외적으로 천주 가사를 노래 선 율과 함께 수록하였으며, 수록된 천주 가사는 이 곡을 포 함하여 <.향가>와 <삼세대의>에서 각 7편씩 모두 14편 (성가 번호 5~11, 15~17, 38, 43~45)이다. 이 성가집은 뒤이어 제작되는 성가집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천주 가사적인 한국적 성가의 전통을 단절시키고 한글 성가를 한글 가사로 된 서양 성가로 성격 짓게 하였다. 즉 더 많은 천주 가사를 수록하지 못함으로써 한국적 성 가의 전통을 끊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듬해 간행된 《죠션어 성가》 재판에는 7곡이 추가되 면서 1절의 시작 가사를 성가 제목으로 한 색인이 덧붙 여졌으며, 1932년에 나온 제3판은 재판에 수록된 69곡 을 토대로 하여 34 · 59 · 61 · 64 · 66번의 후렴 부분을 2성부 합창곡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초판 발행 이후 이 미 신자들에게 익숙해진 성가의 순서를 굳이 변경하고 성가 번호를 기준으로 색인을 바꾼 이유는 분명하지 않 다. 한편 장호원 본당에서는 본당 설립 40주년을 맞아 1936년 8월 25일에 《성가집》을 출간하였는데, 이는 《죠 션어 성가》 재판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었다. 제1~2부에 는 4선 악보에 네우마로 표기한 후 라틴어 가사의 발음 을 한글로 표기한 그레고리오 성가를, 제3부에는 5선 악 보에 단성부 한글 성가를 수록하였다.
대구교구에서도 《죠션어 성가》를 토대로 2개의 한글
성가집을 발간하였는데, 그 하나가 1928년에 남산동(南 山洞) 본당 주임 델랑드(L. Deslandes, 南大榮) 신부가 등 사하여 제작한 총 128면의 본당용 성가집인 《공교 성가 집》이다. 제1부(1~66면)에 실린 그레고리오 성가는 4선 악보에 네우마로 표기하고 가사는 라틴어 발음을 한글로 표기하였으며, 제2부(67~128면)에 실린 단성부의 한글 성가는 일반적인 5선 악보와 그레고리오 성가의 4선 악 보 네우마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독특하게 표기하였다. 모두 41곡의 한글 성가가 수록되었고, 23번 <성모 승텬 가 Ⅱ>와 42번 <텬당 노래>는 악보 없이 가사만 실었다. 또 다른 하나는 1936년에 델랑드 신부가 편집하고 줄리 앙(M. Julien, 權裕良) 신부가 발행을 맡은 교구 차원의 첫 한글 성가집인 《대구교구 성가집》이다. 총 119곡 가운 데 그레고리오 성가를 제외한 80곡의 한글 성가 중 22 곡은 《죠션어 성가》에 수록되었던 곡들이고, 한국인 서 정도(徐廷道, 베르나르도) 신부가 작사 · 작곡한 한글 성 가 외에는 《죠션어 성가》와 동일한 성격으로 구성되었 다.
한편 이 당시 그레고리오 성가들은 라틴어 표기법상 두 부류로 나뉘는데 그 하나가 1925년에 제작된 《칸투 스 미세》(Cantus Missse)이다. 이는 4선 악보의 네우마와 라틴어 가사로 된 본격적인 그레고리오 성가집으로 509 면의 방대한 분량이며, 뒤편에는 《죠션어 성가》(1924)에 실린 62곡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한 부류 는 1932년의 《라듼 성가》와 장호원 본당에서 1936년에 제작한 《성가집》으로, 라틴어 가사의 발음을 한글로 표 기하였는데, 이러한 한글 표기 방식은 대구교구의 《공교 성가집》과 덕원 베네딕도 수도원의 《조선어 성가》에서 이미 시도된 바 있다.
베네덕도회 선교사들이 제작한 성가집 : 1928년에는 슈미트(Schmid, 金時練) 부감목의 감준으로 《조선어 성 가》 재판이 덕원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총 79면의 등사본 으로 제작되었다. 이 성가집은 "자국어 성가를 허용하는 현행 교회법에 따라 원산교구 내 모든 본당과 공소에서 불려질 수 있도록" (서문) 하라는 사우어(B. Sauer, 辛上院, 1877~1950) 주교의 요청으로 1923년 6월 30일에 출판 되었던 《조선어 성가》(초판 분실)를 재편집한 것이다. 연
곡적(連曲的)이고 전례 중심적인 이 성가집은 《죠션어 성가》의 18곡(성가 번호 6, 8, 9, 10, 14〔=66〕, 28, 30, 36, 37, 40, 41, 45, 55, 64, 69, 70, 73, 76)과 초판의 성가 및 새 성가 59곡(17=46, 57=58)으로 구성되었다. 내용 면 에서는 미사 노래(3곡) · 연미사 노래 · 성체 강복 노래(2 곡)로 분류하고, 전례 시기별로는 장림(將臨, 대림 시 기) · 예수 성탄 시기 · 봉재(封齋, 사순 시기) 등으로 분류 하였는데, 이러한 분류 체계는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 엔 대수도원에서 사용하던 성가집 《라우다테》(Laudate, 1923)에서 그 모델을 찾을 수 있다. 《라우다테》는 《마니 피갓》(Magnifcat, 1898), 《성가집》(Gesangbush)과 더불어 이어지는 독일 선교사들의 성가집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 쳤다.
연길교구에서는 1934년에 퀴겔겐(Kügelgen, 具傑根) 신부가 번역하고 차일라이스(V. Zeileis, 徐) 부감목의 감 준으로 14×21.9cm 크기의 등사본 한글 성가집 《성가》 (聖歌)를 펴냈다. 2성부 구조의 '조과(早課)와 만과가 (晚課歌)' 를 포함하여 총 46면에 수록된 43곡의 한글 성가들이 그리스도 통고 찬미가 (봉재 때) L. 79(L= Laudate)' 식으로 '성가 제목-시기-출처' 가 체계적으로 정리된 이 성가집은, 이듬해 브레허(T. Breher, 白化東) 감목 대리의 인준으로 인쇄된 《성가집》(聖歌集)으로 이 어지면서 한글 성가도 120곡으로 늘어났다. 또 1935년 경에는 회령 본당의 그라프(O. Graf, 金大振) 신부가 《성 가 내 속가집》(聖歌乃谷歌集)을 펴냈는데, 13×21.5cm 크기의 이 등사본 성가집은 총 408면에 364곡의 한글 성가와 독일의 세속 노래들을 함께 수록하였으며, 가사 는 이효상(李孝祥)이 번역하였다. 이 성가집의 간행 목 적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성가집 편찬의 새로운 방 향을 제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독일 성가와 함께 독일에 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일반 노래들을 한국의 청소년들 에게 배우도록 하여 음악을 통한 정서 함양을 꾀하기 위 해" 편찬되었으며, 오늘날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고 있는 청소년 성가집의 모델이 되고 있다.
한편 1938년에는 덕원 베네딕도 수도원의 피셔(W. Fischer, 陳道光) 신부가 사우어 주교의 감준을 얻어 12 ×17.5cm 크기의 《가톨릭 성가》를 인쇄본으로 출판하였
다. 총 256면에 214곡이 수록된 이 성가집은 전례 시기 에 따라 164곡을 묶었는데, 이전에 간행된 《죠션어 성 가》와 《공교 성가집》에 실린 곡 가운데에서는 불과 5곡 (<무변 해상>, <성 마리아는>, <성 요셉 찬양하세> 등)만 수록 하였다. 피셔 신부는 음악을 전공한 전문 음악가답게 <호칭 기도>를 한국적 선율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나 아가 한글 성가를 교회의 오랜 전통인 교창(交唱)에 접 목시켰다. 그러나 이 교창 방식은 한국적 선율의 <호칭 기도>와 함께 1948년에 나온 《가톨릭 성가집》에 수용되 지는 못하였다.
파리 외방전교회와 베네딕도회 선교사들의 성가집의 특징 : 《죠션어 성가》(1924)는 《조선어 성가》(1928)에 많 은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후자가 전자의 한글 성가들 을 발췌 · 수용하였기 때문이다. 두 성가집은 본격적인 창작을 포기하고 전승된 천주 가사를 지양하며 기존의 서양 성가 선율에 한글 가사를 짜맞추는 방법에 의해 제 작된 서양식 한글 성가집이라는 독특한 성격을 띠었다.
두 성가집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죠션어 성가》는 3박자 계열(3/4, 3/8, 6/8)을, 《조선어 성가》는 4박자 계 열(2/4, 4/4)의 성가들을 선호하였다. 이들의 과반수는 못갖춘 마디로 전자는 가온음에서 시작하고 후자는 으뜸 음에서 시작한다. 전자의 불완전한 마디, 박자, 음정, 음 표 특히 쉼표의 오류 등은 후자에서 거의 다 고쳐졌다. 전자는 전체의 91%, 후자는 95%를 장조의 성가로 꾸몄 는데 이것은 당시 가톨릭 교회의 낙관주의를 반영한 듯 하다. 전자의 경우 F장조의 성가가 29곡(46%)으로 가장 많고, G장조 · D장조 · C장조의 순으로 배분된다. 프랑스 성가의 조화를 강조하는 밝고 부드러움과 독일 성가의 4 분 음표의 기본 음가와 단순하고 장중함은 오늘의 한글 성가를 성격 짓게 하였다.
그러나 이 두 계열의 성가집들은 성가의 선곡과 편집 방법에서 서로 독자적이었다. 전자가 성가 제목을 1절의
시작 시구로 하는 데 반해, 후자는 내용에 따른 성가 제 목을 사용하며 "입당송(Ad Introitum) 삼덕가"처럼 라틴어 로 전례 용도까지 밝혀 주었다. 그리고 가사 기록 방법도 전자는 1절만 악보 밑에 적고 2절 이하는 별도로 처리하 는 데 반해, 후자는 5절 이상의 긴 몇 개의 가사를 제외 하고는 모두 악보 밑에 함께 기록하였다. 이렇게 5선 악 보에 라틴어 가사의 발음을 한글로 표기한 《조선어 성 가》의 표기 방식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죠션어 성가》(1932) 재판에 이어 현행 《가톨릭 성가》로까지 이 어졌다.
한국인이 제작한 성가집 : 한국인에 의해 제작된 최초 의 한글 성가집은 1948년 3월에 이문근 신부가 편집하 고 개창용 · 오르간 반주용 · 혼성 합창용으로 성신대학 (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음악부에서 발행한 《가톨릭 성 가집》이다. 이 성가집은 《죠션어 성가》에서 24곡, 덕원 에서 발간한 《가톨릭 성가》(1938)에서 48곡, 이문근 신 부의 <복지 찬가>를 비롯한 5곡과 한글 가사로 된 외국 성가 등 총 117곡을 수록했다. 그리고 외국 성가들은 외 국 성가집인 《Recueil de Prières Cantiques et Motets》, 《Chants Religieux》, 《Choir de Cantiques》, 《The Gregory Hymnal and Catholic Choirbook》, 《Cantate Domino》 등에 수록된 곡에서 엄선하였고, 가사는 안응렬(安應烈)이 번역하였다.
이 성가집의 발행으로 많은 본당에서는 성가대가 조직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오르간의 경건하고 장엄한 반주로 신자들의 개창을 가능하게 하여 한국 교회 음악 의 질적 향상이 도모되었다. 편저자는 서문에서 이 성가 집이 한국의 성가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강조하면 서 "미사와 성체 강복 때 불러 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이로써 한글 성가는 전례 성가로 끌어올려졌다. 물론 한 성직자가 만든 성가만을 수록하였다는 아쉬움과 이 성가 들이 양식사적으로 앞 시대의 단성 성가와 마찬가지로 한글 가사를 제외하면 모두 서양 성가들이라는 비판은
감수해야만 한다. 이것은 뒤이어 제작되는 한국 작곡가 들의 다른 창작 성가들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대구교구에서는 신상조(申相祚, 스테파노) 신부에 의 해 1951년 12월에 대구 가톨릭 합창단 발행으로 《가톨 릭 성가집》이 편찬되었다. 이 성가집은 총 4부로 구성되 었는데, 제1부는 한글 성가 135곡, 제2부는 (합창용) 라 틴어 성가 56곡, 제3부는 미사곡을 포함한 그레고리오 성가 21곡으로 꾸며졌으며, 제4부는 미사 해설 부분이 다. 그러나 '그레고리안' (Gregorian, 그레고리오 성가)· 트 레드 멜로디' (Trad. Melody, 전통적인 곡) . '코랄' (Choral, 합창용) 등의 표기와 소수의 작곡가 이름만 표기하는 등 성가의 출처를 밝히는 작업은 매우 부실하였다. 이러한 단점은 1958년 서정도 신부에 의해 제작된 《가톨릭 성 가집》에서 보완되었는데, 여기에는 그레고리오 성가 16 곡 · 라틴어 성가 24곡 · 단성 성가 71곡 등 총 258곡이 수록되었고, 부록에는 두 편의 혼배와 장례를 위한 그레 고리오 성가 미사곡을 실었다. 특기할 것은 B.S 란 약 어로 표기된 서정도 신부의 성가가 30곡이나 실렸다는 사실이다. 서정도 신부는 역사(譯詞)한 1곡을 제외한 모 든 가사를 직접 작사하였는데, 역사한 <바다의 별이시 오>만 2성부 성가일 뿐 모두 단성부로 꾸밈으로써 앞서 제작된 성가집들과는 달리 신자 공동체의 개창을 목적으 로 하였다.
한편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1956년 춘계 정기 총회 에서는 성가집을 통일하기로 결정하고, 1948년의 《가톨 릭 성가집》에 별다른 수정을 가하지 않은 채 제호를 바 꿔 전국 통일 성가집인 《정선 가톨릭 성가집》을 1957년 에 출간하였다. 라틴어 성가를 중심으로 꾸며진 이 성가 집은 총 182곡 가운데 61곡이 그레고리오 성가(20곡)와 라틴어 합창 성가(41곡)였는데, 한국인들의 창작곡이 제 외된 대신 이문근 신부가 편곡한 31곡이 수록되었다. 이 후에 이문근 신부가 창작한 한글 미사곡 3편이 추가된 이 성가집은 중판을 거듭하여 1984년 5월 30일 제44판 까지 30만 권 이상이 발행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성가집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자국어로 전례를 거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성가집 역시 다시 제작되어야 했다. 한국의 경우 공의회 이후 제작된 성가집은 1970년대에 첫 선을 보였으며, 이때부터 제작되는 성가집들은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1973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 결의하였던 "가톨릭 성가를 대중화하고 개발 · 육성하기 위하여 각 교구마다 인재를 모아 작사 · 작곡을 시도하고,···몇 년 후에 엄격한 심사 를 전국적으로 실시하여 가톨릭 성가집을 발간한다"는 취지에 부합하도록 제작되었다. 특히 1975년 한 해 동 안에만 《가톨릭 공동체의 성가집》과 《새 전례 가톨릭 성 가집》이 간행되었는데, 이 두 성가집은 기존의 《정선 가 톨릭 성가집》과 혼용되면서 신자들이 겪는 불편과 혼란 또한 적지 않았다.
총 550곡을 일반부와 청년부로 나누어 수록한 《가톨 릭 공동체의 성가집》은 '한국인의 창작 성가집' 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가톨릭뿐만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와 성공회 등의 도움을 받아 원선오 신부 · 이종철(李鍾 哲, 베난시오) 신학생 · 조영호 수사가 엮은 것으로 성바 오로출판사에서 1975년 3월 30일에 발간하였다. 원선 오 신부 86곡 · 이종철 43곡 · 최명화(崔命化, 베드로) 신부 17곡 · 기타 15명의 31곡을 포함하여 총 177곡이 창작곡이다. 이 중 82곡은 기타 코드에 맞춰 노래할 수 있도록 제작된 현대적 감각의 복음 성가들로, 작사에는 김남조(12편) · 김금자 수녀(9편) · 기타 23명(22편)이 참 여하였다. 그리고 이 성가집은 1990년에 성 바오로 딸 수도회와 조영호 수사가 공동으로 엮어 성바오로출판사 에서 펴낸 《가톨릭 복음 성가》로 이어졌다. 《가톨릭 복음 성가》는 "단순 소박하며, 삶 속에서 우러나온 노래를 젊 은이들이 즐겨 부르고, 더 나아가 크고 작은 교회 공동체 들이 주님께 바치는 성시(聖詩)와 영가(靈歌)로 자신들 의 삶을 성화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발행되었는데, 총 686곡 가운데 289곡을 단성 성가로 제작하였고 생활 성 가 및 복음 성가의 취향으로 오르간 이외의 악기를 사용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두 성가집은 다양한 방법으로 색인이 정리되어 있어 사용하기에 편리하였다.
1975년에 제작된 또 다른 성가집인 《새 전례 가톨릭 성가집》은 '다성부 창작 미사곡 중심의 성가집' 이란 성 격을 띠었으며, 일반 성가 238곡과 미사곡 9편(41곡) 등 총 279곡이 수록되었다. 미사곡은 이문근 신부 3편, 임 남훈 수녀 1편, 최병철 교수 3편 등 총 7편의 창작 미사 곡과 브루크너(Bruckner, 1824~1896)를 포함한 2명의 외 국인 작곡가의 미사곡으로 되어 있다. 이 성가집의 특징 은 철저하게 합창 성가만으로 구성되었다는 점과 63곡 (최병철 교수의 52곡 중 36곡과 이문근 신부의 32곡 중 27곡) 이나 되는 많은 편곡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가톨릭 공동체의 성가집》과 비교해 본다면 그레고리오 성가가 대폭 감소하고 원선오 신부의 성가도 1곡만 실렸음을 알 수 있고, 손복희(18곡) · 강청란(17곡) · 김광남(15곡) 등 이 성가의 작사 및 역사에 참여하였다.
한편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1980년 춘계 정기 총회 에서는 성가집의 난립을 막고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 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통일 성가집을 편찬하기로 결 정하였다. 이에 따라 주교 회의 전례위원회에서는 1982 년 6월 25일에 작곡 및 곡 선정 기준을 마련한 후 3년여 동안 선정 작업을 하였으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발행 으로 《가톨릭 성가》(1985년 단성부용, 1986년 합창용)를 간 행하였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이 통일 성가집에는 그레 고리오 성가 21곡과 합창용 라틴어 성가 36곡을 포함하 여 총 528곡(부록 130곡 포함)이 수록되어 있는데, 수록 곡들은 《정선 가톨릭 성가집》과 《가톨릭 공동체의 성가 집》 및 《새 전례 가톨릭 성가집》에서 엄선한 성가와 새 성가 80곡, 그리고 원선오 신부의 곡들이다. 1995년에 제2판을 발행했으며, 가톨릭 기도서 개정에 따라 1997 년 10월에 제3판이 발행되었다. 이 성가집은 주제별 분 류와 가사의 첫 구절을 별도로 색인한 점이 독특하다. 이 는 언어와 음악의 일치를 위한 노력이 한글의 현대화 작 업과 맞물리면서 성가 선율의 변화가 아니라, 가사만을
바꾸는 방향으로 진행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더불어 주교 회의에서는 청소년들의 정서에 맞는 성가집을 편찬하여 그들을 교회의 전례에 보다 능동적으 로 참여시키자는 전국 교육국장 회의의 건의에 따라 기 존에 교구별로 만들어 사용해 오던 학생 성가집을 하나 로 묶어 펴내기로 결정하고, 1996년 1월에 《청소년 성 가》를 간행하였다. 이 성가집에는 《가톨릭 성가》 · 《가톨 릭 복음 성가》 · 《가톨릭 공동체의 성가집》에서 엄선한 곡을 포함하여 총 516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전례 음악 은 아니지만 종교적 감흥을 일으키며 거룩한 현의를 묵 상하게 해주는"(예부성성 훈령
※ 참고문헌 〈죠션어 성가>, <교회와 역사》 67호(1981. 3), 한국교 회사연구소, p. 1/ 김대붕, <한국 천주교회의 성가집에 관한 고찰>,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한국 교회사 논문집》 I, 한국교 회사연구소, 1984, pp. 635~648/ 박기현, <전례 성가 작곡자론>, 《신 학 전망》 64호(1984. 봄), 대건신학대학 전망 편집부, pp. 67~81/ 유정숙, <한국 가톨릭 성가집의 변천에 관한 연구>, 숙명여자대 학교 교육대 학원 석사 학위 논문, 1987/ 장안숙, <한국 가톨릭 성가의 역사적 변 천에 관한 연구>,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 1975/ 조 선우, <한국 가톨릭 성가의 어제와 오늘>, 《한국 음악사 학보》 14집, 한국음악사학회, 1995/ 차인현, <한국 천주교회의 성가와 성가집>,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한국 교회사 논문집》 1, 한국교 회사연구소, 1984, pp. 477~501/ 홍민자, <가톨릭 성가>, 《교회와 역 사》 86호(1982. 9), p. 1/ 홍선희, <가톨릭 통일 성가집의 발행 과정에 관한 연구>, 숙명여자대 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87/ R.F. Hayburn, 3, p. 4491 A. Völker, 12, pp. 547~548/ J. Stalman, 《EKL》 2, p. 108/ 上智大學 편, 《カ 卜 リ ツ 7 大辭典》 Ⅲ, 東京, 富山房, 1952, p. 85. 〔趙善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