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예수회 회원 프랑코즈(Francoz)가 프랑스 리 용에서 설립한 신심회. 나자렛의 성가정(聖家庭)을 특별 히 공경하고 본받아 자신의 가정을 성가정에 봉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성가정' 이 17세기부터 대중적인 신심 대상으로 발전 하자 이러한 명칭을 가진 수도 · 신심 단체들이 여럿 조 직되었고, 역대 교황들도 많은 대사(大赦)를 통하여 회 원들을 장려하였다. 그러던 중 프랑코즈 신부가 1861년 에 '성가회' 를 조직하여 발전시켰고, 1892년 6월 20일 에 교황 레오 13세(1878~1903)가 이를 공식 인준하고 여
러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공인된 교회 단체가 되었다. 레 오 13세 교황은 성가회를 인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 다 적극적으로 이를 체계화하고 조직화하는 데 공헌하였 다. 즉 새로 '성가회의 규식' 을 마련함과 동시에 지역 교 회에도 교서를 내려보내 '성가회' 의 설립을 알리고 이의 시행을 권장함으로써 전세계적인 확산을 이룰 수 있었 다. 당시 성가회 본부는 추기경의 관장 아래 로마에 있었 고, 각 지역 교회에서는 교구장이 담당 사제를 임명하여 그 활동을 관장하였다.
〔한국의 성가회〕 재위 기간 중 신심 생활의 활성화를 적극 장려하였던 교황 레오 13세는, 사회주의 등 가족 관계를 파괴할 수 있는 요소들을 배격하고 올바른 성가 정의 보존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성가회를 공인함과 동시에 각 지역 교회에 이의 가입을 권장하였다. 이에 제 8대 조선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도 교황의 교 서를 받들어 1893년 8월 12일에 사목 교서 <경향 모든 교우들에게 효유하노라>를 반포함으로써 성가회를 조선 에 도입하였다.
뮈텔 주교의 이 교서에는 성가회의 취지와 규식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며, 신자들의 가입을 적극 장려하 고 있다. 이에 따르면, 성가회의 입회는 개인이 아닌 가 정을 단위로 이루어지며 입회 때에는 전 가족이 성가상 (聖家像) 앞에서 성가회 고유의 봉헌경(奉獻經, 성가회에 들고 집안을 성가정에 바칠 때 외우는 경)을 외워야 한다. 그 리고 가입 후에는 회원의 의무로서 가족이 매일 한 차례 씩 성가상 앞에 모여 성가회 고유의 기도문(성가상 앞에서 날마다 외울 경)을 외워야 하며, 매년 성가정 축일에는 봉 헌경을 외워야 한다. 이러한 의무를 다할 때 회원들은 전 대사 및 한대사를 얻을 수 있고, 회원들이 얻은 대사는 연령(煉靈)에게 양보할 수 있다.
한국에 도입된 성가회가 어떠한 방식으로 운영되었는 지를 알려 주는 자료는 없다. 다만 성가회 규식을 통해 볼 때 본당 단위로 운영되었던 것 같고, 그 존속 시기는 뮈텔 주교의 교서 이후인 1923년, 1932년, 1958년에 간행된 《한국 교회 지도서》에 성가회에 관한 내용이 있 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1958년까지는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성가회 설립 당시의 취지와 목적을 계승한 단체는 없으며, 간혹 성가회라는 이름으로 본당 에 설립된 단체는 성소와 관련되어 있어 성가회 본래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 성가정 ; 신심회)
※ 참고문헌 <경향 모든 교우들에게 효유하노라>, 한국교회사연 구소 소장, 1893/ <경향잡지> 341호(1916. 1. 15) ; 923호(1940. 7), pp. 153~155/《회장 직분》, 1923, pp. 146~147/ 上智大學 편, 《力 卜 リ ツ 7 大辭典》 Ⅲ , 東京, 富山房, 1952, p. 96. [方相根]
성가회
聖家會
〔라〕Consociatio Sacrtae Famili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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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