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경주시 성건동 643 소재. 1983년 9월 1일 경주(慶州, 현 성동) 본당으로부터 분 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안드레아 김대건. 관할 구 역은 성건동, 광명동, 석장동, 충효동, 서악동과 경주군 건천읍, 내남면, 산내면, 서면 전 지역과 서부동 일부 지 역이며, 관할 공소는 진목 · 의곡 · 범곡 · 와항 · 빌기 ·
도리 · 건천 등 7개소. 〔교 세〕 1983년 1,013명, 1987 년 1,749명, 1991년 2,761명, 1994년 2,138명, 1997 년 2,479명. 〔역대 신부〕 초대 이용호(李龍浩) 가브리엘 (1983. 9~1987. 1) , 2대 채영희(蔡永熙) 요셉(1987. 1~1989. 7), 3대 장환명(張煥明) 요셉(1989. 7~1993. 10), 4대 박석 재(朴錫載) 가롤로(1993. 10~1996. 9), 5대 정성해(鄭成 海) 베드로(1996. 9~현재)
[공소 시대] 경주 산내면의 단석산 일대는 이웃 언양 지역과 함께 1866년의 병인박해(丙寅迫害) 이전에 이미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었다. 특히 병인박해 때에는 언 양 대재〔竹嶺〕에서 허인백(許仁伯, 야고보) · 김종륜(金 宗倫, 루가) · 이양등(李陽登, 베드로)이 체포되어 울산 에서 순교하였는데, 이들의 유해는 박해 후에 거두어져 산내면의 진목정(眞木亭) 안산에 안장되었다가 1932년 에 대구 감천리의 교회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현 성건 본 당 관할인 진목정은 대구의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 에 의해 1883년에 공소로 설정되었는데, 당시 그 이웃 에는 우중골 공소와 새터골 공소, 그리고 울주의 선필 공 소가 있었다. 이어 1910년을 전후하여 산내면 대현리의 범곡과 와항, 내남면 비지리의 빌기에도 공소가 설립되 었고, 1913년에는 마침내 '경주 공소' (현 성동 본당의 전 신)가 설립되었다. 진목정 공소는 부산진(현 범일) 본당에 속해 있다가 1926년 5월 30일 '경주 본당' 이 설립되면 서 이후 오랫동안 이 본당 관할 아래 있게 되었다.
〔본당 설립과 변모〕 1980년대 초 신자수 증가로 본당 분할의 필요성을 느낀 경주 본당 주임 박도식(朴道植, 도미니코) 신부는 본당 사목 협의회와 협의하여 1982년 1월 1일자로 본당 신설을 발표하였는데, 이때 마침 교구 에서도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성당을 건립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교구 지원을 얻어 같 은 해 12월 2일 현 본당 부지 440평을 마련하게 되었 고, 이듬해 3월부터는 성당 건립 공사에 착수할 수 있었 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일자로 '성건 본당 이 설립되 면서 이용호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으며, 이때 위의 공소들도 성건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그 해 10월 2일 주보를 창간한 데 이어 10월 30일에 는 성당을 완공하여 서정길(徐正吉, 바오로) 대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한 성건 본당에서는, 1984년 12 월에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의 분원을 마련하고 이듬해 6월 23일 수녀원과 교리실 축복식을 가졌다. 그리고 3 대 주임 장환명 신부는 교구 지원을 받아 채영희 신부 때 부터 추진해 온 피정의 집 건립 공사를 시작하여 1992 년 7월에 '진목정(眞木亭) 순례자의 집' 을 마련하였으 며, 본당 신자 최학요(프란치스코)가 1991년 11월 8일 에 기증한 새 성당 부지를 바탕으로 본당 분할을 추진하 여 1993년 10월 7일자로 '황성(皇城) 본당' 을 분리함 과 동시에 301세대 829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또 4대 주임 박석재 신부는 교구 지원을 받아 1995년 9월 30일 에 '진목정 피정의 집' 을 새로 건립하고 캠프장을 조성 하였으며, 이듬해 6월에는 빌기 공소의 강당을 신축하고 조립식 교리실을 건립하였다. (→ 대구대교구 ; 성동 본 당 ; 황성 본당)
※ 참고문헌 《경주 성당 예순 돌》, 천주교 성동 교회, 1986/ 《성 건 본당 10년사》, 천주교 대구대교구성 교회, 1993. [편찬실]
성건 본당
城乾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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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