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

聖光

〔라〕ostensorium · 〔영〕ostensory, monst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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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간 . 성체 강복 성체 거동 때 성체 현시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모양의 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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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간 . 성체 강복 성체 거동 때 성체 현시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모양의 성광.

성시간 · 성체 강복 · 성체 거동 때 성체 현시에 사용되는 전례 용품. 주로 성체 공경을 위한 신심 행사 때에 신자들에게 성체를 보여 주기 위해서 사용되는데, 성인을 공경하기 위해 유골을 넣는 경우도 있다. 성광을 뜻하는 라틴어 '오스텐소리움' 과 영어 '몬스트런스' 는 각각 보여 주다' 혹은 '내보이다' 라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오스텐데레' (ostendere)와 '몬스트라레' (monstrare)에서 유래된 말이다. 일반적으로 성광은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으로 만들어지며, 윗 부분 한가운데에 성체나 성인의 유골을 넣을 수 있도록 한 유리문이 달린 성체 용기(lunula)가 있는데 이 부분의 가장자리는 여러 가지 문양으로 장 식된다. 이 부분의 아래는 손잡이로서 길쭉한 형태로 되어 있으며, 바닥의 넓은 받침대와 연결되어 있다.
〔기원과 변천〕 유래와 기원 : 성광은 초대 교회 때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중세 말에 이르러 신자들 사이에서 성체 공경 신심이 커짐에 따라 시작된 성체 현시에서 유래하게 되었다. 교황 우르바노 4세(1261~1264)가1264년에 '그리스도의 성체 대축일' (지금의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제정한 후 '성체 현존' 에 대한 신심이 고무되었는데, 이것이 성광이 등장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 성광은 성당 안에서 성체를 옮기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예로는 '주의 수난 성지 주일' 행렬 때 사제가 성체가 들어있는 궤를 운반한 사례를 들 수 있다(Lanfanc, The Monastic
Constitutions, c. 1070). 그리고 1287년에는 성합(聖盒, cibo-rium)과 같은 것을 이용해서 성체를 현시하여 공경 예절 을 하였으며, 14세기부터는 스페인을 시작으로 그리그리스도의 성체 대축일' 에 성체 행렬과 현시를 하는 것이 관례화되었다. 미사 외의 성체 공경 예식은 이렇게 중세 후기에 널리 확산되었으며, 성광은 프랑스와 독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성체 현시를 위해 만들어진 성광을 독일에서는 '성체현시대' (monstrantia)라고 하였고, 이탈리아에서는 '성체감실' (tabernaculum), 스페인에서는 '성체갑' (custodia)이라고 불렀다. 14세기 후반부터 성광의 사용이 교회 내에서 점차 확산되면서 15~16세기에는 그 수효가 크게 늘어났고, 그 모양도 성합의 형태에서 차츰 변화되어 갔다. 특히 17세기에는 모든 교회에서 성광을 사용하도록 요청하는 교회 회의가 여러 번 개최되기도 하였다. 이때 반드시 일정한 재료를 이용하여 만들라는 제한 규정이 선포되지는 않았으나, 성체를 공경하는 관점에서 성체가 직접 닿는 부분은 반드시 순금으로 하고 나머지 부분은 은이나 구리에 금박을 입히도록 하였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주석을 이용하기도 하였으나, 목재 사용은 금지하였다.
형태의 변천 : 15세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성광들이 등장하였다. 성광은 성합 모양(cibonimmiomige)과 제대 뒷벽 모양(retabelfomimige), 탑형(塔形, turmformige)으로 구분되었는데, 성합과 유해함(reliquiarium)이 함께 부착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여러 소형 조각들이 부착되고 건축 양식을 이용하여 제작된 탑형 성광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 성광은 성작과 같이 받침대 위에 수직으로 회전 유리판이 세워져 있는 고딕 양식의 금속 왕관과 같았다. 주로 1600년경에 사용되었던 제대 뒷 벽 모양의 성광은 장방형의 성체 용기가 금속으로 둘러싸여 있는 형태이다. 이외에 이 시기에 등장한 것 으로 십자가나 성작의 모양을 한 포르투갈의 성광과 성당 모양을 한 스페인의 성광 등이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성광들은 더욱 다양하였지만, 16세기 말경에 나타난 태양 형태나 평평한 원반 형태의 성광이 일반적인 형태였다. 이는 고딕 양식의 회전 유리판 모양의 탑형이 평평한 유리판 모양으로 바닌 것으로, 마치금속 광채가 나오는 듯한 주변 장식이 특징이다. 이 형태는 반종교 개혁 시대에 가톨릭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광선 모양의 장식은 화려한 빛을 나타낸다. 이러한 성광은 17~18세기에 중부 및 남부 유럽에 널리 확산되었으며, 모양이 단조롭고 평범하기는 하지만 현재까지도 계속 등장하고 있다.
후기 고딕 양식과 바로크 양식의 성광은 받침대와 가운데 손잡이가 성작과 같은 모양으로 발전되었다. 어떤 것들은 그리스도와 성모상을 중심으로 성체 용기를 배치하였는데, 1715년에 성모 마리아 몸 중앙에 성체 용기를 둔 성광(잘츠부르크 신학교 성당 소장)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리고 천사가 마치 천국에 들어가는 입구와 같이 생긴 태양 모양의 둥근 성체 용기를 받치고 있는 1600년경의 성광도 있고(Fr. Sustris의 태양 성광, 뭔헨 박물관 소장), 성체 용기가 최후의 만찬을 나타내는 장식으로 꾸며진 성광들도 많다. 1571년의 레판토(Lepanto) 해전을 묘사한 1708년의 성광은 성화적인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그리스도교 국가의 병사들의 배에 달린 돛대에 성체 용기를 위치시켰다(Ingolstadt의 승리의 성모 성당 소장). 후기 고딕 양식에서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등장한 대표적인 성광 형태는 주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나온 성체갑 형태의 성광으로, 다층탑 모양의 성광에 단단한 성체 용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19세기 들어서는 일반적으로 응용 예술적인 요소가 가미되는 경향이 짙어졌고, 역사적으로 전해 오는 모든 성광의 형태가 응용 · 재생되었으며, 심지어 로마네스크 시대에는 없었던 새로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광도 제작되었다. 최근의 성작들은 전례 때에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보다 단순하고 기능적인 형태로 제작되고 있다. 둥근 태양 모양을 변형한 형태의 성광이 널리 쓰이고 있으며,생명의 나무나 기도하는 손 모양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도 있다. 또 1960년에 쿠몬트(J.L. Coomonte)가 제작한 스페인의 성체갑 성광처럼 보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전례적인 사용〕 성광은 14세기경에 성체 현시와 행렬에 사용되었다가 그 후 곧 미사 중의 제대 위에 자리하게 되었으며, 팔부 축제 기간 동안 계속 사용되기도 하였다. 1429년 인골슈타트(Ingolstadt)에서 처음 시작되어매주 목요일 성체를 공경하여 봉헌하는 성체 봉헌 미사를 지내는 관례가 생겨났는데, 이때 미사 중의 제대 위에 성광을 놓고 성체를 현시하고 마침 강복 때에 성광을 들어 신자들을 강복하기도 하였다. 종교 개혁 이후에는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반발로 성체에 대한 공경을 강화하고 자 성체 현시 관례뿐만 아니라 성찬식 중에 성변화의 순간과 거양 성체가 더욱 강조되었다. 18세기 클로스터노이부르크(Klosterneuburg)에서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때 성광을 신자들의 얼굴에 대는 예절이 행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전례 개혁으로 전례 안에서의 성광 사용이 많은 부분 축소되었으며, 특히 현 교회법에서는 "미사 거행 동안에는 같은 성당이나 경당 안에서 성체 현시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941조 1항) .
성광 사용에 대해서는 교황 훈령 <에우카리스티쿰 미스테리움>(Eucharisticum Mysterium, 1967. 5. 25)에 언급되어 있고, 《미사 경본의 총지침》(Institutio Generalis Missalis, 1969. 4. 3)에서는 각 지역별로 귀중히 여겨지는 다른 재 료로 성광을 만들 수 있다(292항)고 하였다. 오늘날에는 반드시 도금된 성체 용기에 그 안에 성체가 고정될 수 있도록 하고, 성체가 유리판에 닿지 않도록 제작되고 있다. 그리고 아름답고 정성되이 만들어진 것이라야 하지만 사치스러운 것은 피해야 한다. 성광을 사용하기 전에는 반드시 주교나 사제의 축복을 거쳐야 하며, 축복은 미사 중에나 혹은 신자들이 쉽게 참석할 수 있는 전례 거행 중에 다른 전례 용품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성광 하나만을 축복할 때는 미사 없는 간략한 예식만 할 수도 있으며, 미사 없는 간략한 예식은 부제도 집전할 수 있다(《축복 예식서》 1070~1073항). (→ 성시간 ; 성체 강복 ; 성체 조배)
※ 참고문헌  J.A. Jungmann, S.J. The Mass ofthe Roman Rite : Its Origins and Development II , Benziger Brothers, Inc., 1950, pp. 122, 441, 451~452/ Victor H. Elbern, 《TRE》 12, pp. 400~401/ C.W. Howell, (NCE》 9, pp. 1070~1071/1 M. Burch, 《NCE》8, p. 8731 Richard P. McBrien ed., The HarperColins Encyclopedia of Catholicism, San Francisco, Harper Co., 1995, p. 890/ Herbert Thurston, 《CathEnc》 6, pp. 344~346/ C.E. Pocknee, The Westminster Dictionary of Worship, The Westminster Press, 1972, p. 2751 《ODCC), p. 1106/ O.P. Lang, O.F.M., 《DL》, p. 436/ H. Maisonneuve, 《Cath》 10, p. 3231 《축복 예식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6, p. 359.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