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9년에 이벽(李檗, 요한, 1754~1786)이 한시체(漢詩體)로 쓴 교리서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한문본과 이를 번역하였다고 생각되는 한글본 두 종류가 함께 전해지는데, 이승훈(李承薰, 베드로)의 유저라고 알려진 《만천유고》(蔓川遺稿)의 잡고(雜稿) 부분에 수록되어 있는 한문본은 4구체의 가사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구 해설 및 각 구절에 대한 주석이 첨부되어 있다. 반면에 숭실대학교 부설 기독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한글본에는 한문본처럼 주석이 없다.
한문본 《성교요지》는 모두 49절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1부라 할 수 있는 1~15절은 천지 창조, 원죄론, 노아의 홍수, 예수의 탄생, 전교 활동, 부활 등 신구약성서를 요약 설명한 부분이고, 제2부라 할 수 있는 16~49절은 인간의 도리, 교리 실천, 창조주의 공적과 오묘함, 구원을 위한 실천 도리 등 천주교의 주요 교리를 설명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천주교 입교를 유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교요지》는 호교론서라기보다교리 해설서나 신앙 입문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초기 교회의 신자들이 지니고 있던 교리지식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내용 분석의 타당성과 《성교요지》의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서지학적 고찰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한문본과 한글본 모두 구한말 장례원(掌禮院)에서 사용하던 괘지에 필사한것으로, 원본의 전사본인지 여부가 아직 분명하지 않다.뿐만 아니라 이 《성교요지》가 한문본의 제목 부기(附記)에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1779년 주어사(走魚寺) 강학당시에 광암(曠菴) 이벽이 《천학초함》(天學初函)을 읽고 주를 달아 기록한 것"이라는 주장에도 이론이 많다. 먼저 이벽의 저술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이러한 한문본의 부기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현존 필사본을 원본의 전사본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이러한 주장에 반론을 펴는 경우에는 한문본이 수록된 《만천유고》 자체의 사료적 가치를 문제 삼고 있으며, 부기가 후대에 가필된 것인 듯하고, 그 내용에서 인용하고 있는 구약성서가 과연 그때 조선에 전래되었는지가 의문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의문점들이 해소된 후에야 《성교요지》의 작자와 저작 연대, 《만천유고》의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 《만천유고》 ; 이벽)
※ 참고문헌 《蔓川遺址》/ 金玉姬, 《廣菴 李檗의 西學思想》, 가톨릭출판사, 1975/ 河聲來 역, 《李檗의 聖敎要 旨》, 가톨릭출판사, 1976/河聲來, 天主歌辭 研究》, 聖黃錫斗루가書院, 1985/ 李離和, 〈李承薰關係文獻의 檢討〉, 《教會史研究》 8집, 한국교회사연구소, 1992, pp. 105~124/ 車基真, <성 교요지>, <교회와 역사》 191호(1991. 4), 한국교회사연구소, pp. 2~3. 〔車基眞〕
《성교요지》
聖敎要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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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성교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