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소속 본당. 대전시 동구 성남2동 499-1 소재. 1966년 3월 20일 대흥동(大興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베드로. 관할 구역은 성남1 · 2동, 가양1동 전역과 삼성1동 일부 지역. 〔교 세〕 1966년 715명, 1968년 1,162명, 1974년 1,515명, 1979년 2,085명, 1983년 2,363명, 1988년 2,764명, 1992년 2,613명, 1997년 2,356명. 〔역대 신부〕 초대 알레(F. Haller, 하예례) 프란치스코(196. 3~1969. 5), 2대 올리비에(J. Olivier, 오일복) 요한(1969. 9~1977. 9), 3대 김영곤(金榮坤) 필립보(1977. 9~1982. 9), 4대 이종린(李鍾麟) 요아킴(1982. 9~1986. 3), 5대 고영환(高永煥) 타대오(1986. 3~1988. 8), 6대 윤인용(尹仁龍) 바오로(1988. 8~1993. 8) , 7대 플래지에(A. Plassier, 박수범) 아우구스티노(1993. 8~현재)
1960년대 초, 파리 외방전교회 한국 지부장으로 있던 두봉(杜峰, 레나드) 신부는 현 성당 부지를 포함한 일대의 땅 3,000여 평과 건물을 매입한 뒤 한국 지부를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이어 지부 안에 성당이 마련되자 인근 신자들이 이곳의 미사에 참석하면서 자연스럽게 본당 공동체의 기초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무렵 신자수 증가와 방대한 사목 관할 구역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던 대흥동 본당에서는 교구에 본당 분할을 건의하게 되었고, 그 결과 1966년 3월 20일 성남동 본당이 설정됨과 동시에 파리 외방전교회의 알레 신부가 초대 주임을 맡게 되었으며, 곧 이어 '예수 성심 시녀회' 의 분원도 마련되었다.
본당 신자들은 우선 파리 외방전교회 지부 성당을 임시로 이용하면서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성당 건립 문제를 논의하였으나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부로부터 현 본당 부지 1,700평을 기증받게 되어 1967년 5월 26일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였고, 이듬해 5월 26일 황민성(黃旼性, 베드로) 주교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당시 공사비는 알레 신부가 본국의 후원금과 자신의 유산으로, 성당 시설비는 신자들의 기금으로 충당하였다.
본당은 1970년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함께 신시가지 조성 계획이 발표되면서 신자수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75년 3월 30일에는 성남 신용 협동 조합을 창설하였고, 1978년 12월 29일에는 사제관 · 수녀원 · 강당 · 사무실로 사용할 부속 건물(130평)을 완공하여 축복식을 거행하였으며, 이듬해 3월에는 성가유치원을 개원(1987년 7월에 '성모유치원' 으로 변경)하였다. 그러면서 신자수가 증가하게 되자 1984년 3월 30일에 용전동(龍田洞) 본당을, 1989년 8월 19일에는 가양동(佳陽洞) 본당을 분리함과 동시에 각각 152세대 642명, 494세대 1,438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이후 본당에서는 각 시설물의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고 삼성동(三省洞) 본당 구역 일부를 이관받았으며, 1996년에 본당 설립 30주년인 1996년을 맞이해서는 5월 7일에 경갑룡(景甲龍, 요셉) 주교의 집전으로 기념 미사를 봉헌하였고, 본당의 역사를 담은 《성남동 본당 30년사》를 발간하였다. (→ 대전교구 ; 대흥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성남동 본당 30년사》, 성남동 천주교회, 1996. 〔李裕林〕
성남동 본당
城南洞本堂
글자 크기
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