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기원후 30년 4월 7일 금요일 오후 예루살렘 북쪽 성벽 밖 골고타 형장에서 십자가에 달려 발설한 일곱가지 말씀. 세상을 떠나면서 한 말씀이기에 사세구(辭世句), 임종을 맞아 한 말씀이기에 임종게(臨終偈)이다. 네복음서에 흩어져 있는 마지막 말씀 일곱 편을 전통적으로 아래와 같이 배열하는데, 실제로 예수가 이 순서로 말했다는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상칠언은 음악화되기도 하였는데, 그중에 하이든(Franz Joseph Haydn)의 오라토리오 '가상칠언' (Die sieben letzten Worte unseres Erlösers am Kreuz)이 가장 유명하다.
말씀 1.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소서. 사실 그들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옵니다" (루가 23, 34). 예수는 평소에 원수 사랑을 가르쳤다. "내 말을) 듣고 있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원수들을 사랑하시오. 여러분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여러분을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며 여러분을 헐뜯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오···" (루가 6, 27-36 ; 마태 5, 38-48). 루가는 예수가 이승의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에 원수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다고 풀이했다. 예수야말로 말씀과 행위가 일치된 존재라는 것이다. 루가는 스테파노 역시 같은 뜻을 지닌 임종게를 발설했다고 전한다. 스테파노는 자기를 돌로 쳐죽이는 동족들을 위해서 "주님, 그들에게 이 죄를 씌우지 마소서"(사도 7. 60)라고 기도했다는 것 이다. 예수와 스테파노의 임종 기도에 차이점이 있다면 예수는 성부께 기도한 데 비해, 스테파노는 예수에게 기도하였다는 점이다.
말씀 2. "진실이 당신에게 이르거니와, 당신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루가 23, 43). 신약성서의 주된 내세관은 죽은 이들이 역사의 종말에 부활한다는 것으로서, 개개인의 죽음과 역사의 종말 사이의 인간 운명에 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철인들은 영혼 불멸 사상을 피력했다. 그리스계 그리스도인인 루가 는 그 영향을 받은 탓인지, 신약 필자들 가운데서는 독특하게 영혼은 사후에 영영세세 축복 아니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하곤 한다(루가 12, 16-21 : 16, 1-9. 19-31) 예수가 십자가에 함께 처형된 죄수와 주고받은 대담에도 같은 사상이 드러나 있다. 죄수가 "예수님, 당신 나라로 가실 때에(시나이 · 알렉산드리아 사본 등에선 "예수님, 당신 왕권을 지니고 오실 때에") 저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했을 때 예수는 위의 말씀으로 대답했다. 위 말씀은 예수가 죄수를 오늘 당장 낙원으로 데려가겠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의인들이 죽어서 하느님과 함께 있을 곳을 낙원이라고 불렀는데, 루가는 이를 약간 고쳐 예수와 함께 있을 곳이 낙원이라 한 것이다.
말씀 3. "부인, 보십시오, 부인의 아들입니다." "보시오, 당신의 어머니시오"(요한 19, 26-27). 공관 복음서에 따르면 골고타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예수가 각별히 아낀 애제자도 없었다. 이와는 달리 요한 복음 작가는 마리아와 애제자가 십자가 아래서 예수의 임종을 지켜보았다고 한다(요한 19, 26-27). 그러나 이 일화가 공관 복음서에 없는 점, 예수가 그의 어머니를 '부인' 이라고 부른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요한 복음 작가가 꾸민 의도적인 이야기로 추측된다. 그 뜻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가 물을 술로 변화시킨 기적 이야기(요한 2, 1-11)로부터 시작해야 알 수 있다. 잔치에 술이 떨어졌다고 마리아가 알리자 예수는 "부인, 제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제 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 (2, 4) 하고답한다. 아들이 어머니를 '부인' 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언사이다. 예수가 실제로 그런 무례한 호칭을 사용했을 리가 없고 복음서 작가가 꾸민 말로 판단된다. 복음서 작가가 그런 상식에 어긋나는 말을 쓴 이유는 다음과 같다. '부인' 이라는 호칭(2, 4 : 19, 26)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보는 게 순리이다. 즉 예수가 어머니에게 말한 것처럼 적혀 있지만 실제로 이 구절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말로 해석할 때 그 본뜻이 드러난다. 그리고 "아직 제 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 (2, 4)라는 말은 죽고 부활할 시간, 성부께로 올라갈 시간(13, 1), 영광을 누릴 시간(12, 23 ; 17, 1), 그래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시간이 아직은 도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가나의 혼인 잔치 때는 그랬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때에는 그 구원의 시간이 닥친 것이다. "이 세상에 서 아버지께로 옮겨가야 할 당신의 시간이 온 것을 아시고"(13, 1) 성모님(이스라엘 백성)과 애제자(그리스도 교회)를 모자 관계로 맺어 준다. 구원사의 전환점에서 성모님(이스라엘 백성)은 애제자(그리스도 교회)를 아들처럼 아끼
고, 애제자 또한 성모님을 어머니처럼 섬겨야 한다는 말씀이다. 한편, 십자가 아래 있는 마리아는 교회를 뜻하고 애제자는 그리스도인들을 뜻한다는 풀이도 있다(R.E.Brown). 즉 이 구절은 어머니가 아들을 돌보듯이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을 보살피고, 또 한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섬겨야 한다는 뜻을 지닌 상징적 이야기라는 것이다.
말씀 4.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마르 15, 34). 마르코 복음에 있는 하나뿐인 임종게이다. 퀴블러로스(E. Kübler-Ross)는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5단계로 나누었다(성염역, 《인간의 죽음》, 분도출판사, 1979). 이른바 임종의 5단계인데, 중환자들은 대체로 ① 부정, ② 분노, ③ 타협, ④ 우울, ⑤ 순응의 다섯 단계를 거쳐 임종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학설을 따른다면 마르코 복음 15장 34절의 임종게는 임종의 넷째 단계에서 발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우울과 슬픔을 넘어 원망과 절망의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Ellis Rivkin, 신혜란 역,《무엇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는가》, 한국신학연구소, 1989, pp. 122~123). 비록 동족들과 제자들에게서는 버림을 받았어도 하느님 아빠만은 철석같이 믿었는데, 그분에게서조차 버림받았다는 고독감 · 절망감이 사무쳤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처절한 심정을 시편 22장으로써 토로한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시편 22장은 고통을 겪는 의인이 하느님께 구원을 하소연하는 간구이다. 결국 예수는 죽음의 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느님의 구원에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말씀 5. "목마르다"(요한 19, 28).
말씀 6. "끝났다" (요한 19, 30). 요한 복음 19장 28-30절 전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아시고 성경(말씀)을 끝내시고자 '목마르다' 고 하셨다. 식초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군인들은) 식초를 가득 적신 해면을 히솝에 감아서 그분의 입에 갖다 바쳤다. 예수께서는 식초를 받으신 다음 '끝났다' 고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며 영을 넘겨 주셨다." 예수는 편태(鞭笞), 십자가의 길, 십자가 처형등으로 많은 피를 흘린 까닭에 임종 직전에 "목마르다"고 하였다. 그러자 사형을 집행하는 로마 군인들이 예수의 갈증을 해소시키고자 해면을 식초에 듬뿍 적셔 예수의 입에 대어 주었다. 여기서 '식초' 는 오늘날 양념으로 쓰이는 식초가 아니고 신 포도주로서, 물에 타 마시면 갈증을 풀어 주기 때문에 당시 군인들과 노동자들이 흔히 마시던 음료였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식초에 듬뿍 적신 해면을 '히솝에 감았다' 는 것이 문제이다. 히솝(히브리어로는 '에좁' , 그리스어로는 '휘소포스' , 우리말로는 '우슬초')은 작고 더부룩한 다년생 풀로서 뿌리가 잘 뻗어 무더기로 군생하는데, 높이와 넓이가 각각 50cm쯤 된다. 구약시대 종교 의식에서는 히솝 다발로 물이나 피를 뿌렸다(레위 14, 4-7 ; 민수 19, 18 : 시편 51, 9). 그렇지만 히솝풀대는 너무 약해서 거기에 해면을 감아 치켜 들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해면을 히솝에 감아서 예수의 입에 갖다 대었다는 요한 복음의 기사는 신빙성이 약하다. 오히려 "해면을 식초에 적신 다음, 갈대에 감아서 예수로 하여금 마시게 했다"는 마르코 복음 15장 36절의 기사가 믿을 만하다. 어쨌든 예수는 해면에 밴 식초로 목을 축인다음 "끝났다" 고 하며 임종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자구적인 해설로만 이 구절의 의미를 전부 파악했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요한 복음 작가는 상징적 의미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즉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아시고 성경(말씀)을 끝내시고자···· '끝났다' 고 하시고" 에서 도대체 무엇이 끝났다는 것인가의 그 깊은 뜻을 밝혀야 하며, 아울러 '목마르다' 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규명해야 한다. '끝났다' (원전에선 전부 수동형)와 '목마르다' 의 상징적 의미를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내 음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 끝내는 것입니다" (4, 34).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올 것이고 또 내게 오는 사람을 나는 결코 밖으로 내쫓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내 뜻을 행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신 사람은 누구나 내가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는 것, 이것이 나를 보내신 분의 뜻입니다.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이는 모두 영원한 생명을 얻고 또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는 것, 이것이 내 아버지의 뜻입니다" (6, 37-40).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육신을 (다스릴) 권능을 주신 대로, 아들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자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오직 한 분의 참된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또한 아버지께서 파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제게 하라고 주신 일을 끝내어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17, 2-4).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칼을 칼집에 넣으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습니까?"(18, 11) 이상의 구절들을 통해서 볼 때 예수는 성부께서 뜻하신 일, 성부께서 맡기신 일, 곧 신앙인들에게 영생을 베푸는 일을 끝냈다는 뜻으로 "끝냈다" 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임종게에는 파국이 아니라 완성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아울러 "목마르다" 라는 임종에게로써 그 성업(聖業)을 완성하려는 염원을 드러내었다. 고난과 죽임을 겪을지라도 결단코 그 일만은 완수하겠다는 결의가 드러난 사세구이다.
말씀 7. "아버지 제 영을 당신 손에 맡기옵니다"(루가 23, 46).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외친 마르코 복음 15장 34절의 임종게가 예수의 절망적인 최후 발악인 양 오해될 소지가 있었기 때문에, 루가는 그것을 지우고 그 자리에 "아버지, 제 영(목숨)을 아버지 손에 맡기옵니다."(루가 23, 46 ; 시편 31, 5)라고 써 넣었다. 이것은 본래 유대인들이 바치던 저녁 기도문이었다(바빌론 탈무드, 브라콧 5a). 동족들이 서산에 해가 넘어가는 때에 바치던 기도문을 그리스도는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바쳤다는 것이다. 곧 임종을 수락 하였다는 것이다. 루가는 기원후 36년경, 그리스도인으로는 최초로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스데파노 또한 루가 복음 23장 46절의 임종 기도와 유사한 임종 기도를 드렸다고 전한다. "주 예수님, 제 영(목숨)을 받으소서"(사도 7, 59). 예수는 그 자신의 생명을 하느님 아빠(Abba)에게 맡긴 데 비해서, 스데파노는 자기 생명을 주 예수에게 맡겼다는 식으로 루가는 약간 변조하였다. → 십자가의 길)
※ 참고문헌 Th. Boman, Das letzte Wort Jesu, 《StTh》 17/C. Burchard, Markus(15, 34), 《ZNW》 74/ F.W. Danker, The Demonic Secret in Mark. A Reexamination ofthe Cry ofDereliction(15 34), 《ZNW》 61/ A. Dauer, Das Wort des Gekreuzigten an seine Mutter und den Jiinger den er liebte, 《BZ》 11, 12/ D. Flusser, Sie wissen nicht, was sie tun. Geschichte eines Herrwortes, P.G. Müller · W. Stenger eds., Kontinuitict und Einheit. Für Franz. Mussner(Freihurg-Basel-Wien : Herder, 1981), pp. 393~410/ J. Gnilka, Mein Gott, mein Gott, warum hast du mich verlassen?, 《BZ》 N.F. 31 P. Grelot, Aujourd'hui tu seras avec moi dans le paradis, 《RB》 74/ 정 양 모, <예수의 마지막 말씀들>, 《생활성서》 91호(1991.3), pp. 50~57. 〔鄭良謨〕
가상칠언
架上七言
〔영〕Seven Words from the Cross(Seven lat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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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십자가 형(루벤스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