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후기 서유럽에서 일어난 그리스도교 미술. 로마네스크 미술에 이어 12세기 중기에 그 싹이 터서 13세기 프랑스, 영국에서 건축을 중심으로 명확한 양식이 확립되었다. 그 후 2세기 동안 서유럽 전체에 전파되어 더욱 발전하였으며, 15세기 초 이탈리아에서부터 형성된 르네상스 미술이 대표하는 근세 미술로 바뀔 때까지 존속하였다. 고딕이란 명칭은 바사리(G. Vasari)를 위시한 르네상스 후기의 예술가들이 중세 건축을 야만적인 고트(Goth)족이 가지고 온 것이라고 비난한데서 유래한 것인데 19세기 이래 서유럽 중세 미술의 한 양식을 가리키는 미술사의 용어로 등장되었다. 이 중세 미술에 명확한 형식을 부여한 것은 북프랑스였지만 결국 전 서유럽적 현상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고트인들은 이 미술의 형성에는 직접 관계가 없었지만 약간 모멸적인 뜻으로 말한 것이 이러한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고딕 미술의 양식은 먼저 건축, 특히 성당 건축에서 그 실현을 보게 되지만, 여기에 어울려서 형성된 조각, 회화, 공예에 대해서도 총괄적으로 이 양식의 명칭이 적용된다.
〔배 경〕 폐쇄적이고 자급 자족적이었던 장원(莊園) 제도하의 유럽은 11세기가 되면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화폐 교역 경제가 싹트고 중산 상공인 및 장인 등의 도시 시민 계급이 부활되기 시작하였다. 생활의 중심은 다시 지방에서 도시로 이동하고, 모든 새로운 것이 도시에서 발생하며 모든 길이 도시로 통하게 되었다. 12세기는 정치적으로도 국가의 확고한 통일 시기였으며 정치적 안정은 각 도시의 모든 분야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부를 축적한 도시의 중산 계급은 자신들의 도시에 대한 강렬한 자존심과 예술에 대한 애호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도시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거대한 성당들을 제각기 건설함으로써 그 세력을 과시하고자 하였다. 고덕 미술은 이러한 사회 경제적인 배경뿐만 아니라 스콜라 철학이라는 정신적 배경의 산물이었다.
〔건 축〕 고딕 성당 건축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구조 기술상의 3요소, 즉 뾰죽 아치(pointed arch), 리브 볼트(ribbed vault), 비량(飛梁, flying buttress)이지만 이들 요소 자체는 고딕의 발명품이 아니다. 고딕 건축의 특징은 새로운 미적 목적을 위해서 이들의 요소를 조합했다는 점인데 루이 7세 때 파리 근교의 생 드니(St. Denis) 수도원장 슈제르(Abbot Suger)가 수도원 성당의 성가대석 증축(1140~1144년)에서 최초로 이를 실현하였다. 그는 새로운 구조물의 성격을 결정하는 요소로서 연속적인 빛과 경이로운 빛을 택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벽체는 돌과 유리의 얇은 껍질로 계획되었다. 그 결과 벽체에 대한 육중한 느낌이 사라졌고 엄청나게 투명한 2중 보회랑(步廻廊, ambulatory)은 앱스(apse) 주위의 빛나는 박처럼 보이게 되었다. 스테인드 글라스가 끼워진 커다란 창문들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성가와 함께 더욱 비현실적이며 신성한 것으로 연출되었다. 이러한 성당의 외관은 실제로 내부로부터 결정되었다. 그 원래의 구조는 비량을 예견하지 못했지만 오랫동안 고민해 왔던 구조 문제들에 대한 이해로 인해 외부 보강을 위한 논리적 체
계가 볼트와 벽체에 집중된 힘을 처리하기 위해 발전되었다. 내력 리브와 뾰죽 아치의 도입으로 측면의 응력을 감소시키고 셀(cell, 리브 사이의 볼트 부분)들을 더 얇게 할 수 있었다. 또 비량과 버팀벽(buttress)은 그 자체가 응력에 반하여 작용하는 강한 팔 같은 역할을 했다. 이렇게하여 고딕의 유기적인 구조체는 로마네스크보다 더욱 가늘어지고 강해졌다. 벽체의 기능을 최소한으로 축소시킴으로써 벽을 부정하고 내부와 외부 사이의 공간적인 연속성을 부여하는 꿈이 실현된 것이다. 고딕 성당의 공간적 주제는 스콜라 철학에 대응한 분절화와 차원의 힘이 불러일으키는 대조감이다. 스콜라 철학에서 우주의 구조는 체계적 분절에 의해 명백해졌다. 전체는 부분(partes)으로, 부분은 더 작은 부분으로 분할되고 작은 부분은 요소(membra, quaestiones 혹은 distinctiones)로, 이것들은 마디(articuli)로 분할된다. 이와 유사하게 성당 내부도 회당부(會堂部), 교차부(交叉部) 내진부(內陣部)로 크게 구분된다. 회당부에서는 신랑(身廊, nave)과 측랑(側廊, aisle), 내진에서는 제단, 유보랑(遊步廊, ambulatory, 소성당(chapel)으로 구분되며, 나아가 그들 구분된 공간이 근골(筋骨, rib)에 의해 곡면 삼각형으로 구획된 볼트로 구성된 베이(bay)로 나누어진다. 또한 고딕 성당은 그리스도교 교회 건축사상 처음으로, 그리고 일반 건축사에서도 처음으로 인간적 척도(human scale)에 반대되는 명제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평화로운 관조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불균형과 갈등의 분위기로 유도하는 것이다. 인간을 압도하여 강한 인상을 주는 기념비적인 척도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 내에서의 비례와 그것으로써 인간에게 미치는 관계에서 볼 때, 고딕 건축은 초기 그리스도교 및 로마네스크 성당 건축의 서로 다른 공간 주제들을 완전히 종합하여 통일하고 있다. 장축 방향의 움직임을 일반적인 수평 확장 및 수직적 열망의 독특한 표현과 통합함으로써 수평과 수직의 두 방향성이 조용한 가운데서도 명백히 대립되어서 공존한다. 시선은 두 반대되는 암시에 의해 올라가고 두 개의 주제와 두 종류의 공간에 의해 유도되는 것이다. 매우 영적인 내부와 매우 이지적인 외관의 대조를 달성한 고딕 성당은 그 시대의 정신 — 이성과 신앙의 구별과 조화를 추구한 스콜라 철학 — 을 담은 엄격히 건축적인 기념비가 되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숨마(Summa, 大全)요 또 다른 스페큐름(Speculm, 反射鏡) 즉 돌에 새긴 백과 사전이었다.
〔조 각〕 고딕 성당은 '돌의 성서' 라고 할 만큼 수많은 조상군(彫像群)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것들은 주로 성당의 정면, 입구 주변에 집중되는데 주제는 성전(聖殿)의 세계에서 많이 취해진 한편, 봉헌자의 조상도 제작되었으며, 대중을 계몽하는 비유적인 인상(人像)과 종교적 내용과 관계없는 괴기한 모습의 조각도 장식적으로 쓰여졌다. 12세기 후반의 성당 입구 조각은 원주인상(圓柱人像)의 새 요소가 있었으나 양식상이나 도상(圖像)상 로마네스크 조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13세기에 이르러 고딕의 자연주의가 발달하였는데, 고딕 사회의 현실 생활에 대한 새로운 고찰과 흥미는 천상적인 상상마저도 지상적인 명랑성으로 추구하게 되었다. 로마네스크의 상징주의적인 표현에서 해방된 고딕 조각의 자연주의는 한편으로는 고대 조각에 관련시켜 아름다운 인간의 조형을 달성하려는 이상주의로 전향하여 갔다. 자연주의와 이상주의가 밀접하게 결합한 13세기 고딕 조각은 14세기가 되면서 이 양자의 결합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그 한 경향은 보다 자연주의로 흐르는 것이었고, 또 한 경향은 장식 취미로 흐르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경향은 건축과 조각과의 기능적인 결합을 풀리게 하여 차층 조각이 건축으로부터 분리하게 되었다. 조각이 건축의 외관을 장식하는 임무와 건축의 한 부분으로서 기둥의 역할을 했던 입상에서 해방되어 내부에 독립하여 안치되는 조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15세기에는 제단 조각으로 발달하여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목조 주상(木造鑄像)에 많은 명장을 배출하였다.
〔회 화〕 고딕 회화의 발전은 그 표현 양식에서 조각과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13세기에는 조각에 비해 회화가 지닌 의의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고딕 성당 건축의 특수한 조건에 상응하여 벽화는 쇠퇴하고 높고 큰 창면을 장식하는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 창이 현저하게 발달한다. 고딕 미술이 이룩된 중세 신학 체계 속의 신 플라톤주의의 형이상학적 해석에 의한 빛의 관념은 물리적 · 화학적 · 감각적 빛이 아닌 비물질적인 것으로 자연 현상 중 가장 고귀한 순수 형상으로서 형체 없는 실체이며, 육체가 없는 실체와 육체적인 실체와의 매개자이다. 또한 모든 것의 창조 원리로서 천상의 세계에서도 가장 활동적이며 지상에서도 모든 것의 유기적 성장의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빛은 질서와 가치의 원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광휘의 대상을 보는 체험을 통하여 만유의 존재론적 존엄성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된다고 했다. 고딕 성당은 이러한 빛으로 둘러싸인 특수한 영역으로 신이 현현(顯現)하는 성스러운 공간을 구현한 것이다.
12세기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은 맑은 청색과 짙은 붉은 색의 강열한 색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딕 조각과 같이 점차 현실적인 감정과 자연주의적인 묘사도 등장한다. 13세기는 전성기에 달하여 트레이서리(tracery, 장식적인 돌의 창살)의 발달과 함께 배색이 더욱 섬세하고 화려하였다. 그러나 13세기 중반 이후 아름다운 장식 효과에 비해 깊이가 없어지게 되었다. 그리자이유(Grisaille)라는 단색 페인팅 수법이 금욕주의와 함께 등장하였고, 14세기 초에 재발견된 실버 스테인(silver stain, 은 혼합물을 유리 표면에 칠해 가열하면 은이 유리의 물질과 반작용해서 투명한 노란색을 띄게 하는 기법)의 사용은 왕관, 주교관, 후광 등을 한 조각의 유리로 처리할 수 있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의복의 주름, 캐노피 등에 다양한 효과를 내었다. 이러한 유리 회화(glass painting)의 영향으로 색조의 뉘앙스는 풍부하게 되었지만 빛의 예술인 스테인드 글라스의 본질이 약화된 결과를 초래하였다. 14세기의 트레이서리는 더욱 다이나믹하게 되었으며 망상이나 유동 형태로 발전하였는데 둘 다 S자형 곡선으로 특징지어진다. 15세기 프랑스에서는 이 전통이 화염식(flamboyant)으로 그 절정을 이룬다. 반면 영국에서는 수직식(perpendicular)이 계승되었다. 고딕 회화로서 스테인드 글라스와 함께 다뤄질 수 있는 것으로 필사본(manuscript) 장식의 삽화인 미니아튀르(miniature)가 있다. 13세기 초의 영국과 프랑스의 미니아튀르는 로마네스크 회화나 비잔틴 양식의 영향을 받아들여 인간상을 자연의 모습에 가깝게 해서 인간 감정의 분명한 모습을 그려냈다. 이것은 후에 건축의 호화스러운 액자에 끼워졌다가 13세기 후반부터는 왕실의 사치스런 생활상을 반영하였다. 이탈리아의 고딕 건축은 알프스 이북의 건축과 달리 창이 적고 벽면이 많아서 벽화 제작이 계속되었는데 13~14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많은 우수한 화가들이 활약하여 14세기 미술의 방향을 크게 돌려놓았다. 이것이 그대로 15세기 르네상스 미술로 이어졌다. 특히 지오토가 그린 인간상은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힘찬 양감의 움직일 듯한 기운이 있어서 거의 조상과 같은 인체인데 북프랑스 성당의 고덕식 부조군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14세기경부터 종이가 생산, 보급되기 시작하자 판화도 유행하게 되었다. 또한 남부 독일을 중심으로 목판화가 나타났고, 얼마 뒤에는 동판화까지 나타나는 등 각지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하였는데 이 양식은 제단화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 가톨릭 건축 ; 전례 미술)
※ 참고문헌 장문호, 《서양 미술사》, 형설출판사, 1986/ Erwin Panofsky, Gothic Architecture and Scholasticism, New American Library 1st ed., 1976/ Otto von Simson, The Gothic Cathedral, Princeton University Press 1st ed., 1974/ Umberto Eco, Art and Beauty in the Middle Ages, Yale University Press 1st ed., 1986. 〔金正新〕
고딕 예술
— 藝術
〔라〕ars Gothica · 〔영〕Gothic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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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틀담 대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