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이 하느님 사랑을 깨닫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하느님께 돌아가겠다는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마련된 해. 이 기간 동안 교황이 제시한 일정한 조건을 지키면 전대사(全大赦, indulgentia plenaria)를 받을 수 있다. 성년은 25년마다 교황에 의해 선포되는 '정기 성년' 과 여러 가지 이유에서 발표되는 '특별 성년' 으로 구분된다.
I . 기원 및 특성
〔기 원〕 성년의 간접적인 기원은 구약 시대의 희년(禧年) 즉 '사면 또는 해방의 해' 에서 찾을 수 있다. 바빌론 유배 전에 유대교에서는 모세의 법에 따라 50년마다 한번씩 희년의 해가 돌아오면 숫양의 뿔 모양을 한 요벨(יובל)이라는 피리를 불며 축제를 거행하였는데(레위 25, 8-54), 이때 사람들은 모든 부채를 감면받고 노예는 자유인이 되었다. 이러한 해를 마련한 까닭은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점을 인정하였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유배 후부터 서기 70년까지 7년마다 안식년을 지내면서 그 해에 동족들의 빚을 탕감해 주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이 희년법은 이상적이고 형제적인 사회 상황을 따른 것이었으며, 이런 상황 아래에서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들을 열린 마음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에서 레위기의 희년과 안식년 규정은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제안에 머무르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이를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은 '은총의 해' 를 선포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루가 4, 19). 그리고 최후의 만찬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였는데(마르 11, 1-11 : 마태 21, 1-11 : 루가 19, 28-40 : 요한 12, 12-19), 교회에서는 이를 일컬어 성지 순례라고 한다. 그래서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이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의 희년 전통을 수용하고 봉헌과 신앙의 행위로서 팔레스티나의 여러 성지들을 순례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희년과 안식년을 지내던 유대인들의 관습과 신자들의 로마 순례 관행과 참회의 열정을 모두 수용해서, 신자들의 신앙을 증진하기 위하여 성년을 정하고 성지 순례와 특별한 예식을 개막 전후에 거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구약의 희년과 성년의 차이점〕 현재 교회에서 거행하고 있는 성년은 구약성서에 언급된 희년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첫째, 교회의 성년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과 관련이 있지만, 유대인들의 희년은 어떤 기념일과 전혀 관계가 없다. 유대인들의 희년은 과거의 일정한 시점에서 시작하지 않고 앞으로 건설하여야 할 전혀 새로운 미래, 하느님의 뜻에 따라 불의와 고통에서 해방된 미래를 목표로 할 뿐이다. 둘째, 교회에서는 처음에 100년을 주기로, 후에는 50년이나 33년, 또는 25년을 주기로 성년을 지냈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상징적이고 신학적인 의미에서 50주년, 정확히 말하면 일곱 번의 안식년을 지낸 뒤인 49년이 되는 해(레위 25, 8)에 희년을 시작하였다. 셋째, 교회 성년의 신학적인 핵심은 전대사를 부여함으로써 그 동안 지은 죄로 인한 잠벌(暫罰, poena temporalis)을 사해 주고 영적 선물을 충만히 받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대사는 교황이 규정한 대로 대성전을 순례하고 회개하며 기도함으로써 얻게 된다. 반면에 구약성서에서의 희년은 하느님이 정한 세 가지 계명, 즉 땅을 일구지 말 것과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며 땅과 집을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계명을 지키는 해였다. 이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넷째, 교회의 성년은 명확히 영성적인 차원을 지니며, 하느님과 신자들 사이의 개인적이고 영성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구약성서의 희년은 "하느님을 경외할 것"(레위 25, 17)을 가르치면서도 땅과 노예와 빚진 자들과의 관계에 대해 말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차원을 갖는다.
〔구성 요소〕 성년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는 참회와 순례와 대사이다.
참회 :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는 1975년의 성년을 기념하면서 "인간을 그 내부로부터 새로 태어나게 해야 한다" 고 지적하였다. 인간이 내적으로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참회와 고백을 해야 하는 것처럼 성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선 하느님과 화해하고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일이다. 사실 죄는 하느님의 은총 밖에 머물게 만드는 행위이며, 하느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이웃과 다른 모든 이들과의 관계를 거역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회개이며, 회개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이기주의적인 태도를 버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회개하기 위해서는 우선 하느님의 존재를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여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마음을 바꾸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성령 안에서 어린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마태 18, 3). 외적인 참회에는 언제나 내적인 회개, 곧 하느님과의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잘못된 길을 버리려는 굳은 결심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단식이나 자선을 실천할 수 있는데, 이는 하느님을 다시 만나고자 하는 인간 참회의 표시이다. 그런데 단식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절제하거나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특히 '혀를 조심하고 분노하지 않으며' 거짓과 기만과 헛맹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참된 의미의 단식에는 기도와 뉘우침, 그리고 사랑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랑은 자선으로 드러날 수 있다. 자선의 실천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며, 가난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측은히 여겼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착한 일을 하는 것이다.
순례 : 순례는 공간과 사회, 그리고 심리적인 현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다. 또 가족과 자신의 관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거룩한 장소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한 장소를 찾아감으로써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갖게 되고 본질적인 공동체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순례는 변화되고 쇄신된 모습으로 본래의 공동체로 되돌아오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룩한 곳을 찾아간다는 것만으로 대사를 받는 것은 아니다. 대사를 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묵상하고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기에 합당하도록 준비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마음의 회개가 이루어지는 것은 성지에 도달한 다음이라기보다는 성지를 방문하기 위한 모든 준비와 성지를 향해 가는 과정의 체험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지상의 교회는 순례하는 교회로 여겨져 왔다. 베드로와 사도들의 무덤을 찾아 가던 로마인들은 참회의 길을 걸으면서 순례의 중심지를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옮기게 되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상징적으로 대표하던 모든 것을 보편 교회의 표지요 중심지인 로마가 떠맡게 된 것이다.
대사 : 성년의 전통에 따라 성지 특히 로마를 순례하는 것은 단순히 영적인 쇄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년의 대사를 얻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교회가 제시한 것이다. 실제로 대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어느 신자의 잠벌을 면죄받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앙을 돈독히 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게 하는 신앙을 실천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성년의 대사를 잘못 이해하고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황 바오로 6세는 1967년에 반포한 교황령 <인둘젠시아룸 독트리나〉(Indulgen-tiarum doctrina)를 통해 대사는 참된 회개와 참회와 밀접히 연관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하느님과 참으로 일치하지 않으면 대사를 받을 수 없다.
II . 역사적인 변천
〔1300~1475년의 희년〕 교황 보니파시오 8세(1294~1303)가 1300년에 라테란 대성전에서 교회 역사상 최초의 성년을 선포하였는데, 이때 사용한 용어는 '희년'(Jubilaeum)이었으며 1500년부터 '성년'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은 교서 <안티쿠오룸 하벳 피다 렐라시오>(Antiquorum habet fida relatio, 1300. 2. 22)를 통하여 앞으로는 100년마다 희년을 선포할 것이며, 이때 신자들이 통회하며 고해성사를 받고 베드로 대성전과 바오로 대성전을 순례한다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교황이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를 공경할 것을 강조하면서 희년을 선포한 것은 주교들의 교황청 정기 방문(AdLimina Apostolorum) 때 교황만이 사해줄 수 있는 교회법적인 벌을 사죄해 주던 전통과 관련되어 있었다. 또한 이 시기에 순례 수도자들의 설교를 듣고 복음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신자들의 기대와 믿음에 부응하려는 것이었으며 13세기를 마감한다는 생각도 함께 작용되었다. 더욱이 당시에는 고해성사를 통해 죄의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첫 번째 희년은 그 해 1월 1일부터 소급되어 적용된다고 발표되었는데, 이 희년의 선포는 신자들에게 큰 환영을 받아 로마 시민 외에도 20만 명 이상의 순례객이 희년 행사에 참석하였다. 이후 매 세기의 첫해가 특별한 대사를 얻는 시기가 되는 전통이 마련되었다.
1343년에 교황 글레멘스 6세(1342~1352)는 교서 <우니제니투스 데이 필리우스>(Unigenitus Dei Filius, 1. 27)를 발표하면서 50년마다 희년을 거행한다고 정하고, 베드로와 바오로 대성전 외에도 라테란 대성전을 순례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350년에 제2차 희년이 거행되었지만, 당시 교황은 아비뇽에 감금되어 있었기 때문에 희년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었다. 이어 1389년 4월 8일에 교황우르바노 6세(1378~1389)는 교서 <살바토르 노스테르 우니제니투스 데이 필리우스>(Salvator noster Unigenitus Dei Filius)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33년 간 세상에 살았던 것에 근거하여 33년마다 희년을 거행하도록 정하면서 성모 마리아 대성전(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을 순례 성당으로 추가하고, 그 해 12월 24일부터 1390년 12월 24일까지를 '구원의 희년' (Anno della Redenzione)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이 제3차 희년은 우르바노 6세 교황이 1389년 10월 15일에 사망하고 말아 후임자인 보니파시오 9세 교황(1389~1404)에 의해 거행되었다. 제 4차 희년은 첫 희년으로부터 100년째가 되는 해인 1400년에 보니파시오 9세 교황에 의해 열렸는데, 1399년 말에 개회 예절 없이 시작되어 이듬해 12월 24일에 끝났다. 이때에는 4대 대성전 외에도 라우렌시오 대성전(S. Lorenzo fuori le mura)과 테베레 강 건너편에 있는 성모성당(S. Maria in Trastevere)과 원형 성모 성당(현재의 판테온 신전)을 순례함으로써 전대사를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이 희년에는 흰 옷을 입은 참회자들이 자신들의 몸에 심한 편태를 가하며 로마로 들어왔기 때문에 교황조차 이를 말릴 정도였다.
제5차 희년은 1423년에 마르티노 5세 교황(1417~1431)에 의해 두 번째 '구원의 희년' 으로 거행되었는데 이는 1390년에 기념한 구원의 희년으로부터 33주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라테란 대성전의 성문(聖門)을 여는 예식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며, 교황은 희년을 다시 50년마다 지내도록 규정하였다. 1450년에 니콜라오 5세 교황(1447~145)에 의해 선포된 제6차 희년 때에는 시에나의 베르나르디노(Bernardinus Senensis, 1380~1444)가 시성되었고, 앞면에 '교황 니콜라오 5세-희년' , 뒷면에 '성 베드로-성 바오로' 라고 새겨진 동전이 처음으로 주조되었다. 이 희년 때에는 매일 약 4만 명의 순례자들이 로마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1470년 4월 19일 교황 바오로 2세(1464~1471)는 <인에파빌리스 프로비덴시아>(Ineffabilis Providentia)라는 교서를 통해 '성년' (Annus Sanctus)이란 용어를 사용하도록 제안하면서 25년마다 성년을 거행하도록 했는데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성년이라는 용어가 실제로 사용된 것은 1500년에 거행된 제8차 성년 때부터였다. 이 희년은 바오로 2세의 사망으로 후임자인 교황 식스토 4세(1471~1484)가 1475년에 거행하였다.
〔1500~1875년의 성년〕 알렉산델 6세 교황(1492~1503)은 1499년에 교서 <인테르 물티플리체스>(Inter multiplices, 3. 28)를 통하여,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Porta Santa)은 교황이 그리고 다른 3개의 대성전(라테란 대성전, 성모 마리아 대성전, 바오로 대성전)의 문은 그가 임명한 3명의 추기경이 열게 하고 성년이 폐막되면 이 성문들을 다시 벽으로 막게 하는 전례 규정을 정함으로써 이 규정은 오늘날 성년의 본질적인 예식이 되었다. 문을 통과하는 것은 '구원의 문' 이신 예수 그리스도(요한 10, 9)를 통해 죄를 버리고 은총으로 들어간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1525년의 성년은 교황 글레멘스 7세(1523~1534)가 청동 망치로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을 막았던 벽을 허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 기간 동안에는 당시 유행하던 흑사병 등의 영향으로 로마 순례객의 수가 매우 적었으나, 성년을 마감하는 예절이 이때부터 도입되었다. 1550년의 성년은 교황 바오로 3세(1534~1549)가 준비하였으나 1549년 11월 10일에 사망하고 말아 후임 교황인 율리오 3세(1550~1555)가 1551년 주님 공현 대축일에 성문을 열었는데, 이때 교황은 지중해에서 해적들과 싸우는 군인들과 전쟁터에 나가 있는 모든 군인들에게 로마를 순례하지 않아도 성년의 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1575년의 성년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1572~1585)에 의해 1574년 성탄 전야에 베드로 대성전의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교황은 이때 성년 직전 해의 주님 승천 대축일에 성년에 대한 첫 번째 공시를 하고, 같은 해 대림 제4 주일에 두 번째 공시를 하도록 규정하였다. 1600년의 성년은 교황 글레멘스 8세(1592~1605)가 1599년 5월 19일에 교서를 반포하여 같은 해 12월 31일부터 1601년 1월 13일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성년이 제때에 열리지도 마감되지도 않은 것은 교황이 병으로 갑자기 쓰러졌기 때문이다.
교황 우르바노 8세(1623~1644)에 의해 시작된 1625년의 성년 때에는 로마의 흑사병 때문에 바오로 대성전 대신 테베레 강 건너편에 있는 성모 성당을 순례하게 하였으며, 봉쇄 수도원의 수도자들과 환자 및 수감자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로마에 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은사가 베풀어졌다. 1650년의 성년을 위해 교황 인노천시오 10세(1644~1655)는 1649년 5월 4일에 교서 <인덕시오 우니베르살리스>(ndictio Universalis)를 발표하였으며, 70만 명이 로마를 순례했다. 교황 글레멘스 10세(1670~1676)가 거행한 1675년의 성년 때에는 로마 순례자가 150만 명에 달하였으며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을 여는 예식에 참여한 사람들만도 20만 명이었다. 순례자 중에는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도 있었는데, 여왕은 순례자의 발을 씻어 주고 식탁에서 봉사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경탄을 사기도 하였다. 교황 역시 평복을 입고 대성전들을 순례하면서 12명의 가난한 이들의 발을 씻어 주고 그들을 위해 식탁에서 봉사를 하였다. 1700년의 성년은 교황 인노첸시오 12세(1691~1700)가 시작하였지만, 당시 병환 중이었기 때문에 성문을 여는 예식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로마의 거리는 시편을 읊고 묵주 기도나 다른 기도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 신분이 높은 자와 낮은 자, 성직자와 평신도 등 모두가 가난하고 어려운 순례객들을 보살폈다. 또 테베레 강의 범람으로 바오로 대성전에 접근할 수 없었으므로 강 건너편에 있는 성모 성당을 순례하게 하였는데, 폴란드의 여왕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참회의 옷을 입고 맨발로 베드로 대성전을 순례하였다. 그러나 교황 인노첸시오 12세가 성년을 마감하기 전에 사망하고 말아 마감 예절은 후임 교황인 글레멘스 11세(1700~1721)에 의해 이루어졌다.
1725년의 성년은 교황 베네딕도 13세(1724~1730)가 1724년에 교서 <레뎀토르 엣 도미누스 노스테르 예수스그리스투스>(Redemptor et Dominus Noster Jesus Christus)를 발표하고, 같은 해 12월 24일에 성문을 열었다. 교황은 참회와 회개를 통한 영성적인 측면을 크게 강조하여 성년 기간 중에는 카니발 등 모든 경기와 축제를 금하였다. 1750년의 성년을 거행한 교황 베네딕도 14세(1740~1758)는 성년의 은사를 받기 위해 이전의 성년에서는 참회와 고해성사만을 요구하였으나 반드시 영성체를 해야 한다는 규정을 덧붙였고, 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한 순교자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콜로세움 중앙에 대형 십자가를 세우게 하였다. 1775년의 성년은 교황 글레멘스 14세(1769~1774)가 선포하였으나, 그의 사망으로 후임 교황인 비오 6세(1775~1799)가 거행하였다. 당시 유럽의 정치와 종교적인 상황이 혼란스러웠고 교황도 1775년 2월 22일에 선출되었기 때문에, 성문을 여는 예절은 2월 26일에 거행되었고 순례자도 다른 성년에 비해 매우 적었다.
1800년의 성년은 프랑스의 로마 침략으로 열리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성년을 준비하여야 했던 교황 비오 6세(1775~1799)가 1799년 3월에 프랑스 남부의 발랑스(Valence)로 끌려가 그 해 8월 29일 사망하였기 때문이었다. 1825년의 성년은 교황 레오 12세(1823~1829)에 의해 1824년 성탄 전날 성문을 여는 예식으로 시작되었으며, 1823년의 화재로 소실된 바오로 대성전 대신 성모 성당을 순례하게 하였다. 이때 교황은 자주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 식사 중에 시중을 들어 줌으로써 큰 모범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4개의 대성전을 맨발로 돌며 순례하였다. 19세기에 성문을 열며 거행된 유일한 희년이었던 이 성년에는 약 40만 명의 순례자가 로마의 대성전들을 순례하였다.
1850년에는 정치적 혼란으로 성년이 거행되지 못하였다. 오스트리아에 대항하여 이탈리아의 독립과 해방을 주장하던 혁명이 1848년에 일어났는데, 비오 9세 교황(1846~1878)은 최악의 사태를 피하고자 그 해 11월 24일 나폴리 왕국의 가에타(Gaeta)로 피신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군대가 로마에 입성하여 교황의 세속 통치권을 회복한 후인 1850년 4월 12일에 로마로 돌아오게 되었다. 하지만 1870년 9월에 이탈리아 군대가 일방적으로 로마와 교황령을 점령하고 이듬해 5월 '보장법' 이 발표되면서 이른바 '로마 문제' (Quaestio Romana)가 발생하였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금까지 거행되던 행렬과 타종(打鐘)등 외적인 행사와 성문을 여는 행사를 열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1875년의 성년은 장엄한 예절 없이 조용히 지내야만 하였다.
〔1900~2000년의 성년〕 1900년의 성년을 선포한 교황 레오 13제(1878~1903)는 새로운 세기를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봉헌하였고, 전세계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황의 뜻에 따라 1899년 12월 31일 자정에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러나 이 성년 때에는 교회를 반대하는 비밀 결사 단원들이 축제 기념 행사를 방해하면서 순례자들을 4개 대성전 대신 로마의 판테온 · 캄피돌리오 · 쟈니콜로 · 포르타피아 등 4개 신전을 방문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 동안 순례자는 약 60만 명에 달했으며, 라살(J.-B. de La Salle, 1651~1719)과 리타(RitaaCascia, 1381~1457)가 시성되었다.
비오 11세 교황(1922~1939)이 기념한 1925년의 성년 때 교황은 바티칸 밖으로 나가지 못하였으므로 베드로 대성전의 성년 전례에만 참석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문을 두 번 연 유일한 교황이었다. 첫 번째는 정기 성년인 1925년의 성년이었고, 두 번째는 그리스도가 죽은 지 1,900주년을 기념한 특별 성년인 1933년에 성문을 열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의 협조로 순례자는 100만명에 달하였으며, 이전의 성년은 6개월 동안 은사가 주어졌으나 이 성년에는 1925년 한 해 동안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성년 은사가 주어졌다. 또 순교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콜로세움에 세워졌다가 1871년에 제거되었던 십자가가 이때 다시 새롭게 안치되었으며, 리지외의 데레사(Thèrèse de Lisieux, 1873~1897)를 비롯하여 모두 6명의 성인 성녀가 시성되었다. 한국의 순교자 79명이 처음으로 시복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1950년의 성년은 교황 비오 12세(1939~1958)가 거행하였는데, 1949년 5월 26일 교서 <유빌레움 막시뭄>(Jubilaeum Maximum)을 선포하였으며 그 해 12월 24일에 성문을 열고 이듬해 12월 24일 마감하였다. 1749년의 성년을 시작하면서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을 나무로 만들어 축성하였었는데, 1949년에는 청동으로 만들어 축성하였다. 그리고 예상 외로 많은 400만 명의 신자들이 로마를 순례하였으며, 11월 1일에는 베드로 대성전의 광장에서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교의로 선포하였다.
1974년에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는 교서 <아포스톨로룸 리미나>(Apostolorum limina, 5. 23)를 통하여 첫 성년 때부터의 목적인 '쇄신과 화해' 를 다시 강조하면서, 1975년에 성년을 거행한다고 선포하고 성년을 준비하기 위해 먼저 각 국가에서 성년을 개별적으로 지내게 하였다. 성년을 시작하고 마감하는 예식이 역사상 처음으로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으며, 성문을 막고 있던 벽을 은망치로 허물던 전통적인 개회 예식도 마지막으로 거행되었다. 왜냐하면 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가 대성전의 성문을 벽돌로 막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1974년 12월 24일 성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된 이 성년 기간 동안 로마를 방문한 순례객은 1천만 명이 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4년 11월 10일 교서 <제 삼 천년기>(Tertio millennio adveniente)를 발표하면서, 다가오는 제3 천년기인 구세주 강생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기 위해 교황청 내에 특별 위원회인 '2000년 대희년 중앙위원회' 를 발족시켰다. 그리고 2000년에 로마에서 성대한 성년 기념 행사를 거행한다고 발표했다. 2000년 대희년의 대사를 받기 위한 조건은 우선, 마음의 참된 회개를 동반하는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하고, 성지나 교황이 지정한 대성전 또는 교구장이 지정한 성당을 순례하며, 교황의 뜻에 따라 사도 신경 · 주님의 기도 · 성 모송 · 영광송을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 등이다.
〔특별 성년〕 16세기부터 현재까지 거행되었던 특별 성년은 99번이었다. 특별 성년을 거행하게 된 동기는 교회가 위험한 상황에서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서나 한 국가의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교회의 필요성 때문에, 또는 흑사병을 물리치기 위해서 등이었다. 그리고 기간도 불과 몇 일이나 몇 주간 동안 계속된 특별 성년도 있었다. 그러므로 특별 성년은 교회의 급박한 필요성이나 특별히 중요한 사건들과 관련이 되어 있다. 또 몇몇 교황들은 교황에 선출된 뒤 교황의 직무를 시작하면서 성년을 지내기도 하였는데, 예를 들어 교황 식스토 5세가 1585년에, 바오로 5세는 1605년에, 그레고리오 15세는 1621년에, 레오 13세는 1878년에 성년을 지냈다.
1560년에 교황 비오 4세(1559~1565)는 트리엔트 공의회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기를 바라며 성년을 지냈고, 1566년에는 교황 비오 5세(1566~1572)가 터키 무슬림들의 공격에 대항하여 로마와 그리스도교를 지키기 위해 성년을 지냈으며, 1904년에는 교황 비오 10세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 선포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성년을 선포하였다. 또 1913년에는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주어진 '교회의 평화 16세기 기념 성년' 이 거행되었고, 교황 비오 11세는 1929년에 자신의 사제 서품 5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성년을 선포하였다. 또 1933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기 위하여 교서 <궈드 누페르〉(Quod Nuper, 1.6)를 발표하면서 '구속 19세기 기념 성년' (1900년+33년)을 선포하였는데, 이로 인해서 1933년 4월 2일부터 이듬해 4월 2일까지 '구원의 성년' 이 기념되었다. 1904년과 1954년에는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성모 성년' 이 거행되었으며, 바오로 6세 교황은 1967~1968년에 신앙의 성년을 지낸 데 이어 1975년의 성년에 앞서서는 1974년에 '화해와 평화, 사회 정의를 위한 기도의 해' 를 선포하였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구세주의 구원 1,950주년을 맞아 1983년에 교서 <아페리테 포르타스레템토리>(Aperite portas redemptori)를 통하여 특별 성년을 선포하였으며, 1987년 신년 강론에서 그 해 성령 강림 대축일부터 이듬해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를 특별 성모 성년으로 선포하고 그 해 3월 25일에 반포한 회칙 <레뎀토리스 마테르>(Redemptoris Mater)를 통하여 성모 성년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Ⅲ . 예식과 대사의 조건
〔예 식〕 정기 성년인 경우 성년 전해의 12월 24일에 4대 대성전의 성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된다. 성문은 보통 황금빛으로 되어 있으며, 성년을 제외하고 평상시에는 항상 굳게 닫혀 있다. 이 4대 대성전 성문들 중에서 베드로 대성전은 교황이, 그리고 라테란 대성전과 바오로 대성전은 2명의 수석 추기경이 전례를 집전하며,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서는 추기경단 대표가 집전한다. 성년으로 선포된 1년 동안 성년 대사를 얻기 위하여 수많은 신자들이 이 성년의 문을 통과하게 되며, 1년이 지난 후에 이 문은 다시 닫히고 다음 성년 때까지 열리지 않는다. 교황은 성문을 열기 전에 "나에게 정의의 문을 열어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Aperite mihi portas iustitiae quoniam nobiscum est Deus)라고 시작되는 경문을 읽으며 은으로 만든 망치로 성문을 세 번 두드리고, 이어서 국무성 장관 추기경이 두 번 두드린다. 이는 모세가 사막에서 바위를 쳐 물이 나오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증을 해소시켰던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문을 여는 예식은 구원의 세례수가 터져 나옴을 의미하며, 구원으로 인도하는 통로 즉 천국의 문이 열림을 의미한다. 성문이 열리면 교황은 왼손에는 촛불을 켜서 들고, 오른손에는 십자가로 장식된 목장(牧杖, baculus)을 들고 문을 통해 대성전 안으로 들어간다.
로마에 있는 4대 대성전 성문을 열고 닫는 예절에는 매우 큰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문들은 진실로 하느님의 자비를 원하고 청하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하느님의 자비를 뜻한다. 구세주이시고 목자이시며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성문이 열려 있는 동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기도하며 로마의 대성전들을 순례하면 전대사를 받게 된다.
〔성년 대사의 조건〕 성년 대사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세례를 받은 신자로서 파문을 받지 않은 사람이어야 하며, 고해성사 · 영성체 · 성문을 지나가는 행위 · 지정된 성지 방문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특별 성년에 대사를 받기 위해서는 세례받은 신자로 파문을 받지 않은 사람이어야 하며, 고해성사 · 영성체 · 지정된 성지 방문, 혹은 명확히 제시된 요구 사항들을 실천하여야 한다. 예컨대 1950년에 비오 12세 교황은 대성전 순례 때 일정한 기도를 대사받는 조건으로 명시하였다. 교황의 성년에 관한 문서들에는 성년의 구체적인 조건들이 명시되어 있으며, 교구장들은 그 조건들을 채울 수 없는 신자들에게 관면을 줄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현대의 교황들은 모든 신자가 가능한 한 대사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불가능하고 어려운 경우에는 필요한 조건들을 많이 완화해 주고 있다. (⇦ 희년 ; → 대사 ; 성지 순례 ; 이천년 대희년 중앙위원회)
※ 참고문헌 Enchiridion Vaticamum 5(1974~1976) ; 9(1983~1985) ; 10(1986~1987) Biblioteca Apostolica Vaticana, Dell'aprre, et serrare la Porta Santa-Storie e immagini della Roma degli anni Santi, Roma, 1998/ J.J. Gavigan, 《NCE》 7, pp. 108~ 109/ J.P. Lang, O.F.M. jubilee, 《DL》, pp. 297~2981 A. Meinhold · H. Smolinsky, Jubeljahr, 17, pp. 280~285/ 박영식, 《청동문을 열어라- 희년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2000년 대희년》, 가톨릭출판사, 1999/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심상태 역, 《제삼천년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가톨릭 교회 교리서》 2, 한국천주교중앙협의호 1995/ 《교회법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9/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구세주의 어머니》,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7/ 《그리스도께 문을 활짝 열어라-대희년 맞이 실천 방안》, 대희년 맞이 2,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8/ 《상징에서 변화로-성령의 해 본당 교육 자료》, 대희년 맞이 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7/ 《새날 새 삶》, 대희년 맞이 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8/ 《은사 쇄신과 어둠의 세력》, 대희년 맞이 3,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8/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9/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인간의 구원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9/ -, 《제삼 천년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 《화해와 참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4/ 신교선, 《예수의 궁극적 희년 선포- 루가 4, 16-30에 대한 성서 신학적 연구》, 수원 가톨릭대학출판부, 1992/ 정진석, 《간추린 교회법 해설》, 가톨릭출판사, 1993/ P. Bargellini, L'Ammo Santo nella storia, nella letteratura e nell'arte, Collana di Saggistica 73, Genova, 1997/ P. Brezzi, Storia degli Anni Santi da Bonifacio Ⅶ al Giubileo del 2000, Milano, 1997/ A. Bussoni, Il Giubileo dell'Anno 2000. Ammo di grazia e di misericordia, Citttà del Vaticano, 1997/ M. Capo-rilli, Dal Primo Giubileo del 1300 all'Anno Santo del 2000. Storia di 28 Ricorrenze Giubilari. Immagini, Foto, Documenti, Roma, 1998/ V. Magno, Cristo sara nel Duemila. Non sappiamo Come sarà ma sentiamo ecrediamo Che sarà, Cinisello Balsamo, Milano, 1998/ C. Maccari, L'AmoDuemila. Grande Giubileo o apocalisse millenarista?, Torino, 1996/ C. Di Sante, Duemila. Il grande giubileo, Roma, 1999/ G. Martino, Ammo 2000. Giubileo e comversione, Torino, 1997/ A. Gelardi, Verso il Giubileo. Notizie storiche e teologiche curiosità e indicazioni pastorali, Bologna, 1996/ F. Marinelli ed., Il Giubileo del 2000, Roma, 1997/ M. Zappella ed., Le origini degli Anni Giubilari dalle tavolette in cumeifome dei Sumeri ai manoscritti arabi del Mille dopo Cristo, Casale Monferrato, 1998/ A. Pitta, L'anno della liberazione. Il giubileo e le sue istamze bibliche, Milano, 1998/ B. Tellini Santoni · A. Manodori, Dell'aprire et serrare la Porta santa. Storie e immagini della Roma degli Anni Santi, Roma, 1998/ Ch. J.H. Wright, Year of Jubilee, 《ABD》 3, pp. 1025~1030/ AA.VV., Ⅱ Giubileo, Communio160~161, Milano, 1998. [崔奭祐]
성년
聖年
〔라〕Annus Sanctus · 〔영〕Holy Year
글자 크기
7권

1 / 11
50년마다 희년의 해가 돌아오면 불던 숫양의 뿔 모양을 한 요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