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봉헌

聖堂奉獻

〔라〕dedicatio ecclesiae · 〔영〕dedication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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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봉헌은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기 위한 거룩한 장소가 되게 하는 예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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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봉헌은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기 위한 거룩한 장소가 되게 하는 예식이다.

이 지상에 세워진 건물을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기 위한 거룩한 장소가 되게 하는 예식.
〔성서에서의 의미〕 모든 종교는 자기가 믿는 하느님 또는 상위적 존재와 만나고 그에게 경배를 드리는 신성한 장소를 갖고 있다. 구약 시대에도 야훼 하느님을 만나는 성막을 짓고 그분께 감사와 속죄와 화해의 제사를 바치는 제단을 만들어 신성하고 거룩한 장소로 성별(聖別)하였다. 또한 그 제사에 사용될 용기들도 가장 좋은 것으로 만들어 성별하였다(출애 40, 1-34 : 레위 8, 10-11. 33 : 1열왕 8, 1-66 ; 2역대 5, 1-7. 10 ; 느헤 12, 27-42 : 1마카 4, 52-58). 예수도 예루살렘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든 사람들을 내쫓으면서 "내 집은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이사 56, 7)라는 성서 내용을 들어 성전을 정화하였다(마르 11, 15-17 ; 마태 21, 12-17; 루가 19, 45-48 : 요한 2, 13-22). 그러나 예수는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면서(마르 13, 1-2 : 마태 24, 1-2 : 루가 21, 5-6) "이 성전을 허무시오. 내가 사흘안에 다시 세우겠소" (요한 2, 19)라고 하였다. 이는 예수가 죽었다가 부활할 것임을 뜻하며, 이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영과 진리 안에서" (요한 4, 24) 예배를 드려야 함을 일깨워 주는 것이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하느님께 경배를 드릴 특정한 장소를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즉 하느님께 예배를 드릴 때 '이 산이다' 또는 '예루살렘이다' 하고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요한 4, 21) 그리스도와 함께한 신자 공동체가 살아 있는 성전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 교회에서는 성당 봉헌도 없었다.
[역 사] 초기 :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구약의 성전 봉헌에 대해 알고 있었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이유와 박해로 인하여 특별히 성당 봉헌은 하지 않았다. 또 성당을 고유한 경신 장소로 차별화하면서도 성당 봉헌은 하지 않다가 그리스도교가 종교의 자유를 얻고 대성전들이 세워지던 콘스탄틴 시대에 성당 봉헌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처음으로 증언한 이는 강론과 화려한 미사를 거행하여 성당 봉헌을 했다고 한(《교회사》 Х, 3) 교회사가 에우세비오(+339)였으며, 밀레비스(Milevis)의 주교 읍타토(Optatus, +400)는 도나투스주의자들이 지역 성당을 '정화' 했다고 하였다(Contra Parmenianum Donatistam, Ⅵ . 6).
성당 봉헌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순교자 공경이었다. 성당 봉헌은 주교가 성당에서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이루어졌지만, 순교자의 공경이 시작되면서 순교자 무덤 위에 성당을 건축하였고 순교자의 무덤이 없는 곳에 세워지는 성당에서는 어떤 순교 성인의 유해나 유품을 미사 전에 운반하여 제대 밑에 안치하는 관습이 4세기부터 있었다. 로마에서는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604) 때에도 새로 건축된 성당에서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곧 성당 봉헌이었다. 여기에 유해 안치 예식이 함께 이루어졌지만 이것이 곧 성당 봉헌의 핵심 부분은 아니었다. 제대 축성은 갈리아 지역에서 6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중세 : 투르의 그레고리오(538~594)는 제대 축성과 유해 안치를 구분하기도 하였고 서로 연관시키기도 하였으며, 제대에 유해를 안치하도록 명시한 것은 787년의 제 2차 니체아 공의회였다(Mansi XII 751). 제대 축성과 유해 안치를 연결시킨 가장 오래된 예식 형태는 《성 아만도 예식 규범서》에서 발견되며(Ordo Romanus XLIII, 그 후 중세 중반까지 제대 밑에 유해 혹은 성체를 안장하였다(Ordo Romanus XLⅡ ). 그리고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Sac-ramentarium Gelasianum)에 제시된 양식과 《프랑크 미사경본》(Missale Francorum)에 수록되어 있는 성당 봉헌 양식이 점차 성당 봉헌 예식으로 확장되었는데, 8세기 말경에 이 예식은 구약의 예를 따라 신학적 체계를 갖추었고 본래적인 의미의 성당 봉헌 예식으로 정착되었다(Ordo Romanus XL :Quomodo ecclesia debeat dedicari?). 유해 안치 예식에 이어 성당 봉헌 예식은, 순서는 일정하지 않았지만 성수 축성 · 성구 축성 · 도유와 기도로 확장되었다. 제대와 성당 회랑에 성수를 뿌리고 도유를 한 다음에 유해를 운반하기도 하였고(Ordo Romanus XLⅠ , 제대의 정화와 성수를 성당 회랑에 뿌리는 예식과 도유 사이에 유해 운반 예식을 하기도 하였다. 동방 교회의 영향을 받은 갈리아 전례에서는 제대뿐만 아니라 성당 전체 공간을 정화하는 것 외에도 도유와 분향 등 많은 관습이 첨가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각 예식들의 유래를 규명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성수 축성 예식도 일반 성수와 그레고리오 성수를 축성하는 것으로 구분되었다. 처음에는 성수 축성을 성당 봉헌 전에 성당 문밖에서 하였지만, 후에는 성당 안에서 이루어졌다(Ordo Romanus XLⅠ, XLⅡ ) 《아일랜드 성무 집전서》에는 성당 봉헌 예식 시작 부분에 3번의 대화로 꾸며진 "성문을 열어라" (Attolite portas)라는 노래가 처음으로 나타나며, 유해를 들고 성당을 세 바퀴 도는 예식도 들어있다. 또 주교가 성당 바닥에 재를 뿌려 놓고 라틴어 알파벳을 쓰는 관습이 있었는데, 10세기부터는 여기에 그리스어 알파벳을 쓰는 관습이 첨부되었다. 《아일랜드 성무 집전서》에는 주교가 성당 봉헌 예식 시작 부분에 성당 외부에 성수를 뿌렸으며, 10세기경에는 주교가 성수를 성당 내부에 뿌리는 동안 다른 성직자가 성당 외부에 성수를 뿌리기도 하였다. 호칭 기도는 성당으로 입당할 때 한 번만 하였지만, 후에는 유해 행렬 때와 유해를 성당으로 모실 때 두 번 하기도 하였다. 유해를 성당으로 모시기 전에 신자들과 기증자에게 하는 인사말은 10세기경에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근대 : 13세기 멘데(Mende)의 주교 두란도(G. Duran-dus, 1230~1296)의 성당 봉헌 예식에는 몇 가지 예식이 첨부 · 확장되었는데, 이 예식은 1485년에 《로마 주교 예식서》(Pontificale Romanum)에 정착된 후 약간의 간소화를 거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유지되었다. 이 예식의 절차는, 성당의 초석 축성과 성당 건축 장소의 축성이 선행된 뒤 성당 건물이 완성되면 성당 외부를 성수로 정화하는 것으로부터 성당 봉헌 예식이 시작되었다. 입당 후에는 그레고리오 성수로 제대와 성당 내부를 정화시키고 유해의 양도와 안치, 제대와 성당 12곳에 세워진 돌십자표에 도유하고 12개의 등잔에 불을 켜고, 제대 위에 불을 피워 분향하고 축성 감사송을 하고 제대의 재(再)도유와 정화, 성구들의 축성, 제대를 아마포로 덮고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리고 이 미사는 축성하는 주교나 다른 사제가 집전할 수 있었고, 성당 봉헌은 매일미사를 봉헌하며 팔부를 지냈다. 이러한 성당 봉헌 예식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이 종합되어 서서히 형성되었으므로 복잡하고 반복이 많았다. 그래서 신자들이 준성사들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촉진시켜야 한다(전례 79항)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977년 5월 29일에 성당 봉헌과 제대 축성 예식의 '표준판'이 새롭게 발표되었다.
〔현재의 성당 봉헌 예식〕 새 성당 부지 축성 : ① 시작 예식 : 두 가지 양식이 있는데, 제1 양식은 신자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인 후 주교가 봉사자들과 함께 그곳으로 가서 새 성당 부지로 함께 행렬을 하는 것이고, 제2 양식은 행렬 없이 새 성당 부지에 모여 예식을 시작하는 것이다. ② 말씀 전례 : 해설, 성당 기공에 관한 문서에 주교와 협력자들 대표의 서명. ③ 새 성당 부지 축성 : 부지 한가운데나 성당 부지를 돌면서 성수를 뿌림. ④ 머릿돌 축성과 부착 : 머릿돌 놓을 장소를 축성하고 머릿돌에 성수를 뿌리고 향을 드림. ⑤ 마침 예식 : 보편 지향 기도와 주님의 기도, 마지막 기도로 끝을 맺는다.
성당 봉헌 예식 : ① 입당 예식 : 세 가지 양식이 있는데, 제1 양식은 유해를 모시고 행렬을 하여 성당으로 들어가는 예식이고, 제2 양식은 성당 문 앞에 모여 하는 장엄한 입당 예식이며, 제3 양식은 성당 안에 모여서 하는 간단한 입당 예식이다. ② 성수 축성과 성수 뿌림 : 성당 내부를 통과하며 교우들과 성당 벽과 제대에 성수를 뿌림, 대영광송과 본기도. ③ 말씀 전례 : 2개의 독서를 하는데 느헤미아서 8장 2-4절과 5-6절과 8-10절은 생략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촛불과 향 없이 복음 낭독을 하고, 강론과 신경으로 이어진다. ④ 축성 기도와 도유 예식 : 성인 호칭 기도 중 성당 수호 성인과 안치하려는 유해의 성인 이름을 추가하고 제대에 유해 안치를 한 후 축성 기도를 한다. 이어 제대와 성당의 벽 12곳이나 4곳에 도유를 하고 제대와 신자들과 성당 벽에 분향을 하고, 제대를 제대포와 십자가와 촛불 및 꽃으로 꾸민다. 촛불을 켜고 성당의 조명을 밝힌다. ⑤ 성찬 전례 : 성당 봉헌의 가장 중요하고 필연적이며 가장 오래된 부분인 성찬 전례를 고유한 감사송과 함께 거행한다. 마지막으로 성체를 감실에 모시고 강복을 하고 파견한다.
이러한 성당 봉헌 예식 외에도 이미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성당 봉헌 예식도 있다. 이 경우에 제대는 아직 축성되지 않았어야 하며 건물 자체나 건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아주 새로운 것이 있어야 한다. 이 성당 봉헌 예식도 새 성당 봉헌 예식과 동일하지만 성당 문을 여는 예식이나 성당을 주교에게 양도하는 예식, 성당 벽에 성수를 뿌리는 예식 등은 생략한다. 이러한 성당 봉헌 예식 외에 주교나 주교의 임명을 받은 사제가 거행할 수 있는 경당 강복 예식도 있다. 새로운 성당 봉헌 예식은 옛 봉헌 예식에 비해 신학적 · 실천적인 면에서 특히 신약성서에서 발췌된 독서와 복음의 선정에서 더욱 출중하다.
〔비가톨릭 교회의 성당 봉헌 예식〕 비잔틴 교회 : 동방교회 특히 비잔틴 교회에서는 일찍부터 고유의 성당 봉헌 예식을 발전시켜 왔는데, 간략하고 일목요연한 로마예식보다 복잡하고 반복적인 이 예식은 주로 제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물을 축성하여 성수를 뿌리고 제대를 고정시킨 후 뜨거운 성수와 장미색 물과 포도주로 제대를 씻고 제대에 도유를 한다. 그 후 그리삼으로 성체포에 도유하고 제대를 제대보로 덮어 깐 뒤 제대와 성당 건물에 분향하고 성수를 뿌리고 도유하며 성당 외부에도 성수를 뿌린다. 그리고 유해를 모시고 성당 주변을 돌면서 행렬을 한 후 제대에 와서 제대와 성체포에 안치한다. 기증자를 위한 기도를 하고 미사를 봉헌한 뒤 7일 동안 매일 그 제대 위에서 미사를 봉헌한다.
프로테스탄트 교회 : 프로테스탄트에서도 때로는 경신 예배를 위한 건물을 화려하게 봉헌하고 있다. 루터교의 《예배 식서》(Bd. 4, Berlin, 1964, pp. 134~145)에 의하면 교회 봉헌은 가능한 주일이나 축제일의 중심 예배 때에 거행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새로 지은 교회로 행렬을 하여 중앙 문에서 시민의 대표가 주례자에게 열쇠를 양도하고 독서를 한 후 입당한다. 그리고 주례자의 축성 기도, 예배대의 축성, 세례대와 설교대, 오르간과 예배당의 종을 축성한다. 그 다음에는 보통 때와 같이 예배가 진행되며, 사은 찬미가와 강복으로 끝을 맺는다. 가능하다면 예배 중이나 예배 후에 세례를 베푸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였다.
〔교회법의 규정〕 교회법적으로 볼 때 성당 건물은 전례서에 규정한 봉헌을 통하여 비로소 하느님께 경배를 드릴 수 있는 거룩한 장소가 된다(교회법 1205조). 성당 봉헌식은 교구장 주교와 법률상 그와 동등시되는 이들에게 유보되지만, 다른 주교나 예외적인 경우에는 신부에게 위임할 수 있다(1206~1207조). 주교좌 성당이나 본당들은 장엄한 예식으로 봉헌되어야 한다(1217조 2항). 또 지역 교회의 중요성과 역할을 더욱 명백히 드러내기 위해 주교좌 성당 봉헌일을 성대하게 지낼 수 있다. 그래서 주교좌 성당에서는 대축일로 지내고, 그 교구의 다른 성당에서는 축일로 지낸다. 만일 그날이 다른 축제 때문에 영구히 성당 축일을 지낼 수 없다면 다른 날로 정한다. 본당의 성당 봉헌일은 그 본당에서 대축일로 지낸다 (《성당 축성 예식서》 2장 26항).
각 성당은 고유한 명의를 가져야 하며 성당 봉헌이 거행된 후에는 이 명의가 변경될 수 없다(교회법 1218조) . 신자들에게 추문이 될 만큼 성당의 거룩함에 상충되는 심히 해로운 행위가 저질러지면 모독이 되며 참회 예식으로 그 해악이 보상되기까지는 경배를 할 수 없다(1211조). 성당 건물이 대부분 파손되거나 또는 관할 직권자의 교령으로 영구적으로 속된 용도로 격하되면 봉헌이나 축복이 상실된다(1212조, 1222조). 성당 건축은 교구장의 명시적인 허가가 있어야 하며(1215조), 성당 봉헌이나 축복이 거행되면 문서를 작성하여 그 등본의 한 부는 교구청에 또 한 부는 그 성당의 문서고에 보관해야 한다(1208조). 전례적으로 성당 봉헌식은 신자들이 쉽게 모일 수 있는 날 즉 주일이나 축일에 거행하는 것이 좋다. 단 재의 수요일과 성주간, 파스카 삼일, 예수 성탄 대축일, 주님 공현 대축일, 주님 승천 대축일, 성령 강림 대축일과 위령의 날에는 성당 봉헌식을 할 수 없다.
〔종교적인 시민 풍습〕 중세 말기부터 성당 봉헌이나 성당 주보 성인의 기념 축제와 세속적인 축제가 함께 어우러져 오늘날 널리 알려지고 전파된 시민 축제 풍습이 된 경우가 있다. 이 축제를 중부 독일에서는 키르메스(Kirmes), , 프랑스와 독일어권 스위스 지방에서는 킬베(Killbe) 또는 키르베(Kirbe), ,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 지역에서는 키르타(Kirta)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8일 동안 이 축제를 지냈지만 오늘날은 3일 동안 거행되는데, 이 기간 동안에는 오락을 하면서 함께 먹고 마시며 마을 시장도 열린다. 농촌에서는 이 축제가 추수 감사제와 함께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중세 시대에 성당 안이나 성당 마당에서 이루어지던 성당 봉헌 향연이 현재는 먹고 마시는 즐거움만 남은 것이다. 축제 때에는 풍속 예술 공연(닭을 잡는 행사, 가장 행렬)이나 경쟁 시합(말 타고 기 뺏기, 꿩 사냥), 풍자 섞인 연극 공연, 춤, 나무 장식 등 여러 가지 행사가 곁들여졌는데, 이러한 풍습들은 그리스도교 이전부터 이루어지던 행사들이 그리스도교적 성당 봉헌 예식에 결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601년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의 선교 지침서에도 수소를 잡아 제사를 지내는 옛 이교적 풍습을 성당 봉헌과 결부시켰음을 예시하고 있다. (→ 성당)

※ 참고문헌  S. Benz, Zur Geschichte der romischen Kirchweihe nach den Texten des 7-9. Jahrhumderts, Enkainia, 1956, pp. 62~ 109/ Ordo Roma-nus XLI-XLⅢ M. Andrieu, Les Ordinew romani du haut moyen age Ⅳ, Loven, 1957, pp. 309~413/ -, Le pontifical romain au moyen age 1, pp. 176~195 ; 2, pp. 420~440 ; 3, 451~478, Cita del Vaticano, 1936~ 1941/ J. Catalini, Pontificale Romanum, 1958, pp. 1~196/ D. Stiefenhofer, Die Geschichte der Kirchweihe von 1-7. Jahrhunder, 1909/ R.W. Muncey, A History of the Consecration of Churches and Churchyards, 1930/ R. Du-bosq, La dedicare des églises, 1945/ A. Stohr, Um eine Kurzung des Kirch-weiritus, 《LJ》6, 1956, PP. 139~141/ B. Kirchweihe-Altarweine, Zur neuen Ordnung in unserem Sprachgebiet, 《LJ》 31, 1981, pp. 214~235/ K. Nikols-

kij, Lehrbuch der Gottesdienstordnung der orthodexen Kirche, St. Peters-burg, 1907, pp. 797~814/ 《성 당 축성 예식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9/ 《교회법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8. [崔允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