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

聖德

[라]sanctitas · [영]sanc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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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을 위한 이웃 사랑의 충만성 안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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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을 위한 이웃 사랑의 충만성 안에 존재한다.

자신의 능력에 맞게 하느님 사랑의 도구가 되어 하느님 나라와 그 신비체를 건설하는 데 봉사하게 하는 덕행. 교회에서는 그 동안 성덕과 완덕(完德)이란 용어를 유사한 의미로 간주하여 구별하지 않아 왔지만, 이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성덕은 그리스도인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일차적이고 기본적인 선물이며,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을 천상적인 존재로 들어 높이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는 은총의 신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성도들 즉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지칭하였다(2고린 1, 1-2 ; 히브 3, 1 ; 필립 1, 1 ; 로마 16, 2 ; 에페 5, 3 등). 반면에 완덕은 은총과 인간의 협조적인 행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덕의 발전 상태를 일컫는 것으로, 생활의 어떤 충만성을 포함한다. 이렇게 성덕과 완덕 사이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의 완성이 성덕의 충만성이라는 관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성덕 · 완덕 · 그리스도인 생활의 충만성 등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교회 40항). 그리스도교의 성덕은 하느님께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성덕은 성서 안에서 본질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계시 진리에 입각하여 성덕에 관한 신학과 교도권의 가르침을 통하여 그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성서에서의 의미〕 '성덕' 과 '성인' 이란 단어의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어원은 '분리' , '따로 떼어놓은 것' , '유보된 존재' 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이 의미는 하느님에게 적합하게 적용될 수 있으며, 피조물들에게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만 비로소 언급될 수 있다.
구약성서 : 성덕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본질적인 속성이며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인간이 알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출애 15, 11 : 1사무 2, 2). 하느님의 성덕은 인간이 그분을 보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표현(이사 6, 1-5 : 출애 33, 18-23)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그 성덕은 사랑과 용서 안에 (호세 11, 9) 그리고 기쁨 · 용기 · 지지 · 축복 · 구원 안에 나타난다(이사 10, 20 : 17, 7 : 41, 14-20 ; 2사무 6, 7-11). 하느님은 백성들로부터 거룩한 분으로 인식되고 홀로 참된 신으로 받들어지고 또한 인간들을 통해 당신의 성덕이 나타나기를 원한다(레위 9, 6-23 : 이사 8, 13). 또한 하느님의 성덕은 당신이 접촉하는 모든 것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이 선택한 백성은 거룩하다(출애 19, 5-6 ; 33, 12-17).
신약성서 : 그리스도교 계시의 본질적인 목적은 하느님이 거룩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한한 사랑을 통해 그분의 성덕과 신비의 충만성에, 즉 삼위 일체의 생명에 인간들이 불렸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덕은 가브리엘 천사에 의하여 예고되며(루가 1, 35), 그리스도가 악령들을 쫓아낼 때 그들조차 "하느님의 거룩한 분" (마르 1, 24), "하느님의 아드님"(3, 11)이라고 고백한다. 하느님의 "거룩한 종" (사도 4, 27. 30)이며, "거룩하고 의로운 분" (3, 14)인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죽음을 겪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덕은 구약의 어떤 인물의 거룩함과도 전혀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성덕은 거룩한 아버지 하느님의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필립 2, 6 : 요한 17, 11). 또한 그리스도 역시 인간들을 거룩하게 만든다. 그리스도의 제사는 구약의 것과 달리 믿는 이들에게 당신의 성덕을 나누며 그들을 성화시킨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세례성사를 통하여 부활한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며(1고린 1, 30 ; 에페 5, 26 ; 1요한 2. 20), 그리스도로 인해 그분의 이름 안에서 또한 성성자(成聖者)인 성령의 내주(內住)로써 성화된다(1고린 6, 11). 그리고 그리스도교 전체 공동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총체적 으로 성화된다(1고린 1, 2 ; 1베드 2, 9).
〔본질과 특성〕 사랑의 완성 : <교회 헌장>(Lumen Gen-tium)은 신약성서 전반의 요지와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따라 사랑이 성덕의 본질이고 핵심이며 가장 유효한 척도라고 천명하였다(42항). 성덕은 사랑을 통한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 완성된다. 하느님은 먼저 인간을 사랑하신다. 그 사랑에 응답하는 인간 사랑의 일차적인 대상은 곧 하느님이다(신명 6, 5 ; 마태 22, 37-38). 이러한 하느님과의 자녀적인 친밀 관계를 규정하는 사랑은 이웃과의 관계도 시사한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 안에서 증명되고 확인되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이웃 안에 현존하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마태 25, 40). 따라서 형제적인 사랑은 하느님께 향해야 하는 사랑을 확장하고 밝혀 주는 것이며, 두 사랑은 서로를 완성시켜 주고 보증해 주며 상호 촉진시켜 준다. 그래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을 위한 이웃 사랑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이 사랑의 충만성 안에 성덕이 존재한다.
보편적인 성소 :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덕에 부름을 받았다. 성덕에의 부르심은 일부 신자에게만 해당되는 특전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각기 고유한 선물과 직무를 따라" (교회 41항) "신분과 계급의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적인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을 실현하도록"(교회 40항) 불린 것이다. 이와 같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성서에 근거해서 신학적으로 정리하여 발표한 성덕에의 보편 성소 선언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참으로 획기적이고 중대한 전환점을 이룬 사건이었다.
유일성과 다양성 : 성덕은 근본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하느님만이 홀로 거룩하시기 때문이고, 이는 또 그리스도와의 일치 생활이 하나임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유일한 하느님의 생명에 일치하면서 홀로 거룩한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분의 유일한 신비체인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교회 41항). 한편 근본적으로 유일한 그리스도교의 성덕은 그리스도인 각자가 받은 고유한 선물과 직무를 따라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 다양하게 나타난다(교회 39항, 41항).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성덕의 다양성이 하나로 일치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본성을 통해 잘 이해될 수 있다. 즉 교회 안에서 성령이 유기체적인 활성화와 조화 있는 업무를 위하여 각자 다른 위치와 기능 그리고 다른 능력들을 부여하면서(에페 4, 7 : 1 고린 12, 11) 그리스도에게 일치시키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성원들 사이의 이러한 차이는 교회를 더욱 활기 차고 아름답고 풍요롭게 한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덕에 불렸다는 가르침은 모든 이가 똑같은 상태의 성덕에 불렸다는, 즉 그리스도와의 일치에 있어 꼭 같은 밀도와 심도를 이룬다는 뜻이 아니다. 성덕이 그리스도교 생활의 충만함이며 애덕의 완성이라면 각 그리스도인은 그 충만함과 완성에 이르기 위하여 주님에게로부터 받은 은총과 선물에 각자 다르게 응답하게 되는 것이다. 즉 수도자, 사제 그리고 평신도는 각기 다양하면서도 고유한 성덕과 성화의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화의 방법〕 성령의 결실인 사랑의 완성 즉 성덕(갈라 5, 22 ; 로마 6, 22)에 도달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와의 일치 중에 "그분의 모범을 따라" ,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에의 봉사를 위해" 인간이 받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계발하고 사용하면서 은총에 응답하는 것이다(교회 40항). 성덕은 하느님의 은총으로서 무상(無償)의 선물이지만 여기에는 인간 편의 응답적인 협조가 요구된다. 인간은 자신의 성덕 즉 자기 존재의 충만을 스스로 이루지 못하며, 오히려 하느님이 인간의 부당성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와서 인격적으로 대하고 당신 자신을 전달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완성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여기에는 자비롭고 자유로운 하느님의 주도적(主導的)인 행위가 들어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나와 인간을 성화하는 은총은 인간을 수동적이게 하지 않고, 인간에게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여 그로 하여금 자유로이 하느님께 응답하고 자기 완성의 과정에서 함께 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은총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이 꽃피워 열매 맺도록 하는 응답적인 자세란, 말씀의 경청과 실천, 회심, 개인 및 전례 기도, 성사 생활, 사도적인 업무의 수행과 그에 맞갖은 제반 수덕 행위 등을 통한 성령에의 순응(順應) 자세이다(교회 42항).
〔완성 단계〕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를 통하여 기본적인 성덕을 이룬다. 그러나 세례성사 이후에도 자신의 성덕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하느님의 은총과 끊임없이 협력해 나가야 한다.
존재론적인 성덕(sanctitas ontologica) : 본래 하느님만이 홀로 거룩하시고 인간은 그 자체로 죄인이며 거룩하지 못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성화될 수 있다는 것은 거룩한 하느님이 인간에게 당신의 본성을 나누어 주며 그분의 차지로 삼으신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를 통하여 원죄뿐만 아니라 범한 모든 죄를 용서받으며(1고린 6, 11), 삼위 일체 하느님이 그 안에 머무르시고(요한 14, 23), 성령의 은총 안에서 그리스도와 일치하며(1고린 1, 30), 하느님의 아들로 축성되어(1요한 3, 1) 그분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특은을 받는다(1요한 3, 9 ; 2베드 1, 4). 이 같은 하느님의 무상적인 선물로써 인간이 그리스도화되고 성화되어 본질적으로 새롭게 만드는 성덕을 존재론적인 성덕' 이라고 한다.
윤리적인 성덕(sanctitas moralis) : 그리스도인의 존재론적인 성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로 태어난 생활 안에서 은총에 협조하며 구체적인 선행을 통해 표현되면서 윤리적인 성덕으로 발전되어야 한다(에페 4, 17. 22-23) 이로 인해 성덕은 이제 개별적인 것이며, 각자 생활의 상태와 성소, 자세에 따라 각각 정도가 다른 성격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밀도와 심도, 은총의 수용, 사랑 및 수덕의 실천을 통한 하느님과의 관계의 근접성과 친밀성의 정도가 곧 성화의 성숙도인 것이다.
완성적인 성덕(sanctitas perfecta) : 성화된 그리스도인이 끊임없이 성장하면서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는 완성적인 성덕 즉 그리스도교적인 완덕이다. "당신이 완전해지려고 하면 가서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시오. 그러면···"(마태 19, 21).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요청되는 계명을 다 지키고 있다고 대답한 부자 청년에게 한 예수의 이 말은 단순히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인 그리스도교적인 완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과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목표 즉 완성에 관해 이렇게 가르쳤다. "내가 벌써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이미 완성된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그리스도 〔예수〕에게 사로잡혔으므로 나도 어떻게든 (그것을) 잡아 보려고 달음질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이미 (그것을) 잡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몸을) 내뻗치면서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위로부터 부르시면서 내거신 상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사람은 누구나 이와 같이 생각합시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무엇인가 달리 생각한다면 하느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계시하실 것입니다"(필립 3, 12-15).
그리스도인의 완성 혹은 완성적인 성덕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목표이며 또한 그에 도달함으로 얻어지는 완전한 실현이라면 그것은 이 세상을 넘는 차원에서 결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덕의 완성에 관해 언급할 때는 생활의 두 상태와 성화의 정도를 구분해야 한다. 두 상태란 천상 생활과 지상 생활이며, 성화의 정도란 개인이 하느님의 성덕과 완전성에 참여하는 역량이다. 인간은 충만한 자기 완성을 하늘 나라에서만 얻게 되는데, 그곳에서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며 그분의 진선미를 영원히 소유하게 된다. 따라서 이 세상 여정 중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완성 혹은 성숙은 상대적인 의미를 지닐 뿐이다. 인간은 은총과 협조하여 사랑의 완성을 이루어 나가지만,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이 세상에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헌장>에서는 이 세상에서의 한계성에 비해 하느님 나라에 가서 완성될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와 결합되고 '우리의 담보이신' 성령의 표를 받은(에페 1, 14) 우리는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고 사실 그러하다(1요한 3, 1). 그러나 아직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는 것은 (골로 3, 4) 아니다. 그때에 가서는 하느님의 본모습을 실제로 뵈올 것이므로 우리는 하느님과 비슷하게 될 것이다" (48항). (→ 거룩함 ; 덕, 윤리 신학에서의)
※ 참고문헌  E. Ancilli (a cura), La santita cristiana, P.I.S.T., Roma, 1980/ - Dizionario enciclopedico di Spiritualita , Edizioni Studium, Roma, 1975, pp. 1161~1670/ P. Molinari, Santo, Nuovo Dizionario di Spiritualta, Paoline, Roma, 1979, pp. 1369~1385/ J. de Vaulx, Santo, Dizio-nario di Teologia biblica, Marietti, Casale Monferrato, 1976, pp. 1148~1150/ J.L. McKenzie, Santo, Dizionario biblico, Citttà della Editrice, Assisi, 1981, pp. 869~871. 〔朴載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