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라자로 마을

〔영〕St. Lazarus Vill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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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자로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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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자로 마을 전경.

한국 천주교 최초의 구라 사업 기관이자 나환우 복지 시설.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 87번지 소재. 1950년 6월 2일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의 캐롤(G. Carrol, 安) 몬시놀이 설립했으며,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박애 정신을 실천하여 국민을 나병으로부터 보호하고, 나병으로 인해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불구 노약 나환우들을 무료로 진료하여 요양 생활을 하게 하며, 치유된 이는 다시 사회에 복귀시켜 자립할 수 있게 돕고, 나아가 신앙 생활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하는 구령(求靈)의 실천에 있다. 〔역대 원장〕 초대 이경재(李庚宰) 알렉산델(1952. 3~1954. 4), 2대 하한주(河漢珠) 요셉(1954. 4~1957. 5), 3대 윤을수(尹乙洙) 라우렌시오(1957. 5~1964. 9), 4대 박희봉(朴喜奉) 이시도로(1964. 9~1965. 4), 5대 김창렬(金昌烈) 바오로(1965. 4~1967. 7), 6대 류봉구(柳奉九) 아우구스티노(1967. 7~1970. 12), 7대 이경재(1970. 12~1998. 5), 8대 김화태(金華泰) 제르바시오(1998. 8~현재) .
〔설립과 정착] 1946년 가톨릭 구제회(N.C.W.C.) 한국지부장으로 활동하던 캐롤 몬시놀은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면서 서울시 망우리 일대와 인천시 석간동 일대에 집단 거주하고 있던 나환우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 나환우들을 위해 본격적으로 구호사업 및 의료 사업을 추진하기로 계획하고 경기도 광명시(光明市) 부근에 부지를 매입한 캐롤 몬시놀은, 1950년 6월 2일에 나환우 정착촌을 마련했다. 그러나 6 · 25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이 마을의 개발은 잠시 유보되었다가 이듬해 7월 5일 다시 현 위치의 모락산(帽落山) 일대 10만여 평의 부지를 매입한 뒤 '성 라자로 마을' 이라고 명명하였다.
1952년 3월 9일 초대 원장으로 부임한 이경재 신부에 의해 사제관이 준공되었으며, 1955년 11월에는 성 라자로 의원을 개원하여 보건 사회부로부터 성신대학 의학부(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병원으로 인가를 받았다. 이에 앞서 성 라자로 마을의 관리권은 서울교구에 위임되었다. 이후 성 라자로 의원에서는 재가(在家) 환자들을 찾아 다니며 이동 진료를 시작하였는데, 어려움이 많자 1962년에는 모락산 아래에 나환우 정착촌을 마련하여 거주하도록 하였다. 이어 성 라자로 마을은 1967년 7월 10일에 수원교구 소속으로 이관되었다.
2대 원장 하한주 신부부터 6대 원장 류봉구 신부까지는 모두 다른 직책을 갖고 있으면서 성 라자로 마을 원장직을 겸임하였다. 그러다가 1970년 12월 19일 이경재 신부가 7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이곳에 상주하면서부터 성 라자로 마을은 본격적인 나환우 사회 복지 시설로서의 모습을 갖춰 나가게 되었다. 그 후 이경재 신부는 1971년 7월에 '정결의 집' (이발 · 목욕 시설)을 건립한 것을 시작으로 30개 동 3,759.5평의 건물과 마을 내 도로 개설 및 포장 공사를 실시하였으며, 1975년 10월 24일에는 일본 순심 학원으로부터 1,700만 엔을 지원받아 연건평 126평의 성당을 신축하였다.
〔준본당 설정과 발전〕 1981년 11월 8일 수원교구로부터 성 라자로 마을 내 성당이 준본당으로 설정되자 이경재 신부가 초대 주임을 겸임하게 되었고, 1983년 9월 15일에는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분원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1985년부터는 일본 작가 소노 아야코(曾野綾子) 여사의 초청으로 매년 2명의 맹인 나환우가 해외 성지 순례에 참가하고 있으며, 1986년부터는 일본의 나카다니(中谷親弘) 성형 외과 의사가 매년 내한하여 400여 명의 나환우들에게 성형 수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이듬해에는 한국 외방선교회와 영적 자매 결연을 맺었다. 그리고 1988년 5월 3일에는 성 라자로 마을 가르멜 재속회를 창립하여 53명의 환우들이 입회하였다.
한편 1970년 12월 19일 평신도들을 주축으로 라자로 돕기회가 결성된 후 국내외 약 22,000명(1998년 현재)의 회원들이 기금 조성과 봉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회에서는 1972년부터 자선 음악회 '그대 있음에' (1999년 현재 17회)를 개최하여 그 수익금 전액을 나병 요양 시설에 기부하고 있으며, 1989년부터는 선진국들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하여 중국 · 베트남 · 몽골 · 필리핀 등지의 국외 나환우들을 돕는 데도 이 수익금을 사용하고 있다. 이 밖에 1994년 12월 24일에는 은퇴 사제들의 휴양소 겸 사제 임시 요양소 건립을 위한 '사제 마을 건립 추진위원회' 를 발족하여 이듬해 9월 20일 공사에 착수하였으며, 2년 만인 1997년 5월 30일에 이를 완공한 후 축복식을 가졌다.
1998년 5월 11일 이경재 신부가 사망하자 그 해 8월 4일자로 김화태 신부가 성 라자로 마을 8대 원장 겸 2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는데, 현재 성 라자로 마을에는 89세대의 나환우 정착촌을 비롯하여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병동(病棟) · 진료소 · 성당 · 교육관 · 사제 마을 · 수녀원 · 납골당 · 휴게실 등 각종 부대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또 설립자 캐롤 몬시놀, 은퇴 후 이곳에서 노후를 보낸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대주교, 그리고 성 라자로 마을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 30년 가까이 헌신한 이경재 신부의 흉상도 건립되어 있다. 아울러 성 라자로 마을에서는 매년 구라 주일(현 사회 복지 주일)에 특별 미사를 봉헌해 오고 있으며, 환우들의 공동 생일 잔치와 3년마다 합동 환갑 잔치를 실시하고 있다. (⇦ 라자로 마을)
※ 참고문헌  《수원교구 30년사》, 천주교 수원교구, 1993/《라자로 돕기회 25주년 기념집》, 성 라자로 마을, 1995/ 《나환자와 함께 한삶》, 제5회 호암상 수상 기념 강연초, 라자로 마을, 1995. [李庚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