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쇄신 운동

聖靈刷新運動

〔영〕Charismatic Renewal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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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승천한 후 약속한 대로 성령을 보내 주었고, 오순절날 함께 모여 기도하던 사람들은 모두 성령을 가득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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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승천한 후 약속한 대로 성령을 보내 주었고, 오순절날 함께 모여 기도하던 사람들은 모두 성령을 가득히 받았다.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때 받은 성령의 은혜를 새롭게 함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돕는 운동. 새로운 삶이란 회개하여 하느님을 중심으로 사는 삶, 즉 진정한 신앙인다운 삶을 의미한다. 성령 쇄신 운동은 본래 '성령의 은사 쇄신 운동' 인데, 한국에서 성령 쇄신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에 의한 은사 쇄신 · 신앙 쇄신 · 생활 쇄신 등의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구세사에 나타난 성령의 활동〕 구약성서 시대 : 성령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삼위 일체 하느님의 제3위로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성령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은 구세사를 통해서이다. 구약성서에 '하느님의 영 · 얼 · 혼 · 기운 · 숨' 등으로 표현된 성령은 창조 사업에도 참여하였고(창세 1. 2) , 하느님이 선택한 일꾼들(모세 · 여호수아 · 삼손 · 다윗 · 여러 예언자들)과 함께 머물면서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하느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 활동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였지만, 성령을 받아 예언자로 활약했던 이사야는 앞으로 성령을 가득히 받아 일할 구세주의 출현을 예고하였고(이사 11장), 요엘 예언자는 만민에게 하느님의 영인 성령을 부어 줄 날이 오리라고 예언하였다(요엘 3장).
신약성서 시대 : 삼위 일체 하느님의 제2위인 성자는 구약에 예언된 구세주로서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된 후 태어남으로써 이 세상에 왔는데,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루가 1-2장).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 위에 내려왔고(마태 3, 16), 예수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의 유혹을 이긴 후 공생활을 시작하였다(마태 4장). 예수는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고 마귀를 쫓아내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였다(마태 12, 28). 그리하여 성령을 가득히 받아 일할 구세주가 오리라는 예언이 성취되었다.
그런데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온 예수는(마르 1, 8) 자신이 제자들의 곁을 떠난 후 복음 전파 사업을 계속할 제자들이 그들만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이 일을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승천한 후 약속한 대로 성령을 보내 주었다. 오순절날 함께 모여 기도하던 사람들이 모두 성령을 가득히 받음으로써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오리라는 요엘의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하였다(사도 1-2장).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하고 힘있게 복음을 전파하며 놀라운 일과 기적들을 보임으로써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신자들은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복음을 전파하고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해 나갔는데, 초대 교회 안에서의 이러한 성령의 활동은 사도 행전에 잘 나타나 있다.
초기 교회 시대 : 초대 교회 때에는 성령의 여러 은사가 사도들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에게도 보편적으로 나타났다(1고린 12장). 그 후 성령의 은사는 2세기 후반부터 약화되기 시작하여 신앙의 자유를 얻은 4세기에는 일반 신자들 사이에서 거의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은사의 남용 때문이었다.
2세기 후반에 성령의 대변자로 자처한 몬타누스(Mon-tanus)는 성령이 자신 안에 육화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몬타누스주의(Montanismus)라고 불린 이 이단이 거짓된 은사의 사용과 잘못된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자, 교회는 이들을 단죄하면서 은사의 남용을 경계하고 신자들이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조직화에 힘썼다. 이로 인하여 은사의 남용은 거의 사라졌지만 이와 더불어 성령의 은사도 점점 약화되었다. 그래서 2세기까지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은사를 체험하면서 살았지만 3세기에는 일부의 신자에게서만 은사가 드러났고, 신앙의 자유를 얻은 4세기 이후로는 은사가 일반 신자들 사이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열심한 신앙인들이나 성인 성녀들에게서는 성령의 여러 은사가 끊임없이 드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신앙의 도움을 주었다.
〔20세기의 성령 쇄신 운동〕 역사적 배경 : 이탈리아 '성령 봉헌 수녀회' (Inst. Oblatarum Spiritus Sancti)를 창설한 복녀(福女) 구에라(Helena Guerra, 1835~1914) 수녀는, 교회가 사도 행전에 언급된 '기도하는 다락방' 으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성령에 대한 신심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이를 간청하는 서한을 1895~1903년에 걸쳐 12번이나 교황 레오 13세(1878~1903)에게 보냈다. 수녀의 편지를 받은 교황은 전 교회가 성령 강림 대축일에 앞서 '성령께 바치는 9일 기도' 를 바치라는 내용의 공적서한 <섭리된 어머니의 사랑>을 보냈으며, 1897년 5월 7일에는 성령에 관한 회칙 〈디비눔 일룻 무누스>(Divinum illud munus)를 반포하면서 전세계 모든 본당에서 성령 강림 대축일을 준비하는 9일 기도를 바치도록 거듭 촉구했다. 또 구에라 수녀는 교황 레오 13세에게 보낸 1900년 10월 15일자 편지에서 새로운 세기의 첫해를 전 교회의 이름으로 "오소서, 성령님" (Veni, Spiritus, 성령 송가)을 노래하면서 시작할 것을 제안하였다.
미국 캔자스 주의 토페카에서 성서 공부를 하던 프로테스탄트의 한 모임이 1900년 12월 31일 밤에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뒤 이를 전함으로써 오순절 교회(Pentecos-talism)라는 새로운 교파가 생겨났는데, 이들의 성령 운동을 거부하던 기성 프로테스탄트 교파들도 오순절 교회의 성장을 보고 1957년 이후부터는 이 쇄신의 물결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편 가톨릭 교회에서는 1897년에 반포된 교황 레오 13세의 성령에 관한 회칙으로 성령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켰으며,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신자들은 성령이 풍성한 약속을 이행해 주는 분임을 체험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디비눔 일룻 무누스>를 통하여 20세기 성령 쇄신의 물결을 선도한 교황 레오 13세의 성령에게 간구하라는 호소는, '성령의 사도' 라고 불린 구에라 수녀가 1959년 4월 26일에 교황 요한 23세(1958~1963)에 의하여 시복됨으로써 다시 한번 명백하게 선언되었다.
교황 요한 23세는 구에라 수녀의 고향에서 온 순례자들에게 "우리는 성령 강림과 같이 성령께서 계속적으로 일해 주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피력하였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시작하기 전과 공의회 동안에도 계속하여 "오, 주님! 새로운 성령 강림과도 같이 당신의 놀라우신 일들을 오늘날 새롭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면서 모든 신자들에게도 기도를 당부하였다. 그 결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의 성령 쇄신 운동이 시작되었고, 공의회 문헌 여러 군데에서도 성령에 관하여 언급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오늘날의 성령 쇄신 운동을 예견한 것과 같은 문구도 들어 있다(교의 12항).
시작과 전파 : 공의회가 끝난 이듬해인 1966년부터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성령회(Holy Ghost Fathers)가 운영하는 듀케인(Duquesne) 대학교의 몇몇 젊은이들이 성령 강림에 대한 동경을 품고 성서를 연구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들 중 일부는 일 년 내내 "오소서, 성령님"으로 시작되는 성령 송가를 바쳤다. 그들은 1967년 2월에 있은 주말 피정에서 성체 조배를 하며 기도하던 중 성령의 은사들을 체험하였는데, 그들의 주말 피정 주제는 '성령' 이었고 피정 지도는 힐레이 신부가 맡았다. 이때 그들은 사도 행전을 1장부터 4장까지 각 장을 읽고 토론하며 기도하였다. 또 그들 가운데 맨건(David Mangan)이라는 학생은 토요일 초저녁에 성체가 모셔진 성당에서 기도하다가 예수의 현존과 이상한 언어를 체험하였고 다른 학생들도 성당에서 기도하다가 같은 체험을 하였는데, 피정이 끝난 후에 그들은 이 체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체험을 들은 이들은 함께 기도함으로써 같은 체험을 하게 되었고 이렇게 하여 가톨릭 성령 쇄신 운동이 각 대학과 본당 및 수도원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성령 쇄신 운동은 성령 세미나와 성령 기도회를 통하여 급속도로 전파되어 이 운동이 시작된 지 불과 6년 후인 1973년 6월에 노틀담 대학교에서 개최된 세계 대회에는, 35개 국에서 온 약 600명의 사제들과 수십 명의 주교들을 포함하여 22,0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오늘날 성령 쇄신 운동은 전세계 모든 나라에 전파됨으로써 교회 역사상 가장 빨리 세계적으로 전파된 운동이 되었으며,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의 저변에는 교황들의 격려와 여러 신학자들의 뒷받침, 그리고 수많은 성직자 · 수도자 · 평신도들의 노력이 있었다.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수에넨스(Léon Joseph Suenens, 1904~1996)추기경의 주도로 설립된 '국제 성령 쇄신 봉사회' (Inter-national Catholic Charismatic Renewal Services, I.C.C.R.S.)를 담당하도록 대주교를 임명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과 주교들이 성령 쇄신 운동에 가담하고 있으며 성직자와 수도자 · 평신도 사이에서도 보편적인 현상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성령 쇄신의 효과 : 성령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가 성령을 통하여 당신 백성에게 주는 능력을 재발견하고 있다. 그들은 성령의 도움으로 하느님이 살아 계시며 자신의 아버지임을 체험하고, 예수 그리스도와도 더 깊고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또 성령의 도움으로 새롭고 다양한 방법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더욱 깊은 기도 생활로 이끌리고 있고, 성서 말씀에 맛들이고 그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임을 체험하기에 전보다 더 그 말씀에 따라 살고자 힘쓰며 이웃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상한 언어의 은사 · 치유의 은사 · 예언의 은사 등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더욱 효과적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며, 사랑 · 기쁨 · 평화· 인내 같은 성령의 열매를 전보다 더욱 많이 맺는 생활로 나아가고 있다. 이렇듯 성령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할 수 있도록 그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 주고 있는 것이다.
성령 쇄신 운동으로 말미암아 교회도 점점 더 쇄신되어 가고 있다. 교회는 성령 쇄신 운동을 통하여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초대 교회 때 충만하게 주어졌던 성령의 은사들을 오늘날도 뚜렷하게 체험하고 있다. 또한 초대 교회 때와 유사한 나눔의 공동체들이 형성되고 있으며, 여자와 아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우려되는 지역 교회에 성령 쇄신 운동이 전해지자 남자와 젊은이들이 점점 더 많이 교회로 몰려드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성령 쇄신 운동의 영향으로 인하여 성사와 전례의 가치가 올바로 인식되고 있으며 더욱 활력에 찬 교회의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다.
〔한국의 성령 쇄신 운동〕 배경 : 미국에서 시작된 성령 쇄신 운동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인 1968년에 기도 중에 성령의 은혜로 여러 가지 병을 치유받은 김제원이 기도 모임을 시작하였으며, 1971년 5월 말에는 13명의 외국인 성직자 · 수도자 · 평신도가 성령 강림 대축일을 맞이하여 성령 체험을 위한 주말 피정을 했었다. 이때 피정을 도와 준 사람이 한국 가톨릭 신자들에게 성령 운동을 전하기 위해 스웨덴에서 온 크누타스(Minam Knutas)와 성공회의 토리(Archer Tomey) 신부였다. 그리고 주말 피정에 참석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기도 모임을 하고 있을 때 미국으로 휴가를 갔다가 가톨릭 성령 쇄신 운동에 참석하고 1971년 7월에 돌아온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제럴드 파렐(Gerald Farrell) 신부가 합세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의 성령 쇄신 운동은 초기부터 미국의 가톨릭 성령 쇄신 운동과 쉽게 연결될 수 있었고, 처음에는 초교파적인 성격을 띤 외국인 기도 모임이었지만 가톨릭 성령 쇄신 운동과 관계를 맺으면서 가톨릭적인 모임이 되었다. 미국의 성령 쇄신 공동체에서 개발한 성령 세미나를 1973년에 미 8군에서 두 번 실시한 제럴드 신부는, 같은 해 12월 5일 '가톨릭 성신 운동 협의회' (현재의 한국 가톨릭 성령 쇄신 봉사자 협의회)를 창설하였다.
성령 세미나의 시작과 전파 : 1973년 가을에 서울의 신학교에서 10여 명에게 성령 세미나를 실시하였던 제럴드 신부는 이듬해 1월 15일 한국 평신도들을 위한 첫 성령 세미나를 실시하였으며, 그 후 성령 쇄신 운동은 세미나를 받은 평신도들의 도움으로 급속히 전파되었다. 그 결과 여러 본당에 성령 기도회와 성령 봉사회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 후 성령 쇄신 운동은 전국적으로 전파되어 현재까지 수십만 명이 성령 세미나를 받았고 성직자 · 수도자 수천 명이 세미나를 수료하였으며, 지금도 매년 3만 명 내외의 사람들이 성령 세미나를 받고 있다.
현재 한국 성령 쇄신 운동의 조직은 주교 회의 인준을 받은 '한국 가톨릭 성령 쇄신 봉사자 협의회' 라는 전국기구가 있고 각 교구에는 '성령 쇄신 봉사회' 가 있다. 그리고 몇몇 교구에서는 성령 쇄신 봉사회 산하에 지구 봉사회 · 특수 봉사회 · 청년 봉사회 등을 두고 있고 각 본당에는 본당 기도회가 있다. 기도회는 주로 저녁 기도회가 많지만 철야 기도회와 낮 기도회도 늘어가고 있다.
특징과 방향 : 한국 성령 쇄신 운동의 특징은, 첫째 교구와 본당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고(미국의 경우는 계약 공동체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곳도 있다), 둘째는 성령 세미나가 활성화되어 있으며 전국적으로 통일 성령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여러 형태의 세미나가 있어 통일성은 부족하지만 세미나 후의 교육 과정이 많다. 셋째는 외국에서는 거의 없는 철야 기도회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성령 쇄신 운동이 신자들의 신앙을 활성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래서 사목자들은 신자들의 신앙 쇄신을 위한 교육으로 성령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고, 앞으로도 신자들의 신앙 쇄신을 위한 대중 교육으로 성령 쇄신 운동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도회 또한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현재 성령 쇄신 운동은 다양한 교육 과정을 개발하여 기존 신자들의 재교육과 적극적인 선교를 통하여 민족 복음화를 추구하고, 북한과 아시아의 복음화도 준비하고 있다. → 성령 ; 성령의 열매 ; 성령의 은사 ; 심령 기도)
※ 참고문헌  이범주, 《이상한 언어에 대한 신학적 · 실천적 고찰》, 불모임, 1995/ 불모임 엮음, 《성령 세미나를 위한 성서 공부와 매일 묵상》, 불모임, 1997/ 一, 《기초 봉사자 교육 교재》, 불모임, 1997/ 《가톨릭 사전》 제럴드 파렐 · 조지 코시키, 《성령과 신부가 '오소서!' 하고 말씀하십니다》, 크리스찬출판사, 1985/ L.J. Suenens, 김 마리 로사 역, 《성령은 나의 희망》, 신학 총서 8, 분도출판사, 1976/이동수 · 김영화 역,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 크리스찬출판사, 1980/ 교황 레오 13세, 《성신에 관한 회칙》, 분도출판사, 1967/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7. 〔李範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