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의리지학' (性命義理之學)의 준말로 '인간의 본성' [人性]을 선천적인 자연 및 도덕 원리〔理〕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학문. 정주학(程朱學) 또는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한다. 넓은 의미로는 송 · 명 시대의 유학을 일컫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북송(960~1127)의 주돈이(周敦頤, 1017~1073) · 소옹(邵雍, 1011~1077) · 장재(張載, 1020~1077) · 정호(程顥, 1032~1085) · 정이(程頤, 1033~1107)에서 시작해 남송(1127~1279)의 주희 (朱熹, 1130~1200)가 집대성하여 완성시킨 학문이다.
〔의미와 특성〕 성리학은 경전의 훈고(訓詁)나 장구(章句)에 치우쳐 문자 해석에 그친 한당 유학(漢唐儒學)을 비판하고, 공자 · 맹자의 원시 유학(原始儒學)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하여 경전의 철학적 원리(義理)를 중시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노장 사상과 불교 철학의 영향을 받아 유학을 새롭게 일으켰다고 해서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 또는 양명학 및 청대 기학(氣學)과 구별하여 '실재론적 신유학' (Realistic Ner-Confucianism)이라고도 칭한다.
성리학이 '새롭다' [新]라는 것은 종래의 유학이 인간 사이의 도덕 문제[仁]를 위주로 논의했던 것과는 달리, 그 범위를 우주 대자연(天)으로 확대시켜 방외(方外), 출세간(出世間)의 문제까지 논의한 점에 있다. 이것은 물론 노장 사상과 불교 사상을 창조적으로 흡수하여 새로운 유학 체계를 만들어 놓은 것으로, 이때부터 내재적 · 초월적인 원리를 가지고 인성(人性)을 새롭게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즉 송대 성리학에서는 인성을 이기론(理氣論)으로 설명하면서 인간 본성을 천리와 일치시켜 순선(純善)하게 보고 있다.
성리학은 일명 도학(道學)이라고도 하고, 간단히 줄여 이학(理學)이라고도 한다. 도학이란 성인(聖人)이 성인에게 전해 준 도(道)가 요(堯) · 순(舜) · 우(禹) · 탕(湯) · 문왕(文王) · 무왕(武王) · 주공(周公) · 공자(孔子) · 맹자(孟子)에까지 전해 오다가 끊어진 뒤, 북송 시대에 이르러 주돈이 · 장재 · 정호 · 정이가 다시 계승하고, 이를 주희가 집대성하였다는 도통(道統) 사상에 근거한 말이다. 이에 원대(元代)에 편집된 송사(宋史)에는 유학자들의 전기인 유림전(儒林(傳)과는 별도로 주돈이에서 주희에 이르는 도학자들의 전기인 도학전(道學傳)이 있다. 이 도(道)는 불교나 도가의 '도' 와는 달리 인의(仁義)와 인륜(人倫)의 도이며, 내성 외왕(內聖外王)의 정신을 잘 드러내는 학문이기 때문에 성학(聖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주희는 이러한 도통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공자에서 맹자에 이르는 100여 년 간의 공백을 증자(曾子)와 자사(子思)에서 찾아내어 전자가 《대학》(大學)을, 후자가 《중용》(中庸)을 각각 저술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성리학은 천리(天理)를 새로이 내세우고, 이기(理氣)의 개념을 중심으로 우주 대자연 및 인생과 사회의 모든 원리와 규범을 새롭게 설명한 것으로, 그 구체적인 내용은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인 존재인 태극론(太極論), 그 본체론적 근거인 이기론(理氣論), 인간과 만물의 본성을 논한 심성론(心性論), 그리고 인간이 지향해야 할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수양론(修養論) 등이다.
〔태극론〕 태극이란 "역(易)에 태극이 있다. 이것이 양의(兩儀 : 陰과 陽)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팔괘(八卦 : 乾 · 兌 · 離 · 震 · 巽 · 坎 · 艮 · 坤)를 낳고, 팔괘는 만물을 낳는다"는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는 태극이 만물을 낳는 근원이고 우주의 궁극적 실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에서는 '무극이태극' (無極而太極)이라고 하여 '태극' 앞에 '무극' 을 덧붙였는데, 성리학자들은 이것이야말로 불교의 연기성(緣起性)이나 공(空) 또는 도가의 귀무론(貴無論)의 무(無)에 대한 성리학의 해답이요 그 극복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육왕학자(陸王學者)들이 '태극' 위에 '무극' 을 더할 필요가 없다고 비판함으로써 '태극론' 은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주자는 '무극이태극' 에 대해, 태극의 본체는 아무런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므로 '무극' 이라 하였고, 이것은 우주 만물의 본체로서 모든 조화(造化)의 근저(根底)이므로 태극이라고 하였다. 주돈이가 말한 무극이란 천리라는 무한한 초월적 실재를 나타내는 말이며, 태극이란 끊임없이 생생(生生)하는 창조적 실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양자를 분리하여 태극 밖에 또 하나의 무극을 상정한 것이 아니라, 이(理)가 '무극인 동시에 태극'이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자는 만일 무극을 말하지 않으면 태극은 어떤 한정된 물건과 같게 생각되어 모든 변화〔萬化〕의 근본이 되기에 부족하고, 태극을 말하지 않으면 무극은 텅 비고 적막한 것〔空寂〕으로 떨어져 역시 모든 변화의 근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주희는 우주의 본체로서의 태극뿐만 아니라 인간 도덕의 본체로서의 인극(人極)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육구연(陸九淵)은 태극 위에 무극을 덧붙이는 것은 노자의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有生於無)는 취지와 같기 때문에 용인할 수 없다고 하였고, 그의 형 육자미(陸子美)도 태극이란 도의 본원이므로 결코 만물과 하나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초월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무극을 덧붙이는 것은 '머리 위에 머리를 얹는 것' 이라고 비판하였다.
[이기론] 주희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이(理)와 기(氣)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 란 원래 살결〔肌理〕 · 나뭇결[木理] 등의 용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결' 을 뜻하였으나, 송대에 이르러 우주의 궁극적인 실체를 뜻하는 천리(天理)가 되어 도(道)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 는 기운 · 힘 · 숨 등을 뜻하며 천지 만물은 모두 이 '기' 가 모여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요컨대 '이' 는 천지 만물의 존재 원리를 가리키고, '기' 는 천지만물을 구성하고 있는 어떤 힘을 지칭한다. 주희는 '이'를 형체를 초월해 있는 도(道)이며 만물을 낳는 근본(生物之本)으로 생각하였고, '기' 를 형체 속에 내려와 있는 구체적인 도구(器)요 만물을 낳는 재료[具]라고 생각하여, "인간과 만물이 생겨나는 데는 반드시 '이' 를 부여받은 뒤에 본성(性)을 가지게 되고, '기' 를 부여받은 뒤에 형체(形)를 가지게 된다" 고 하였다. 즉 '이' 는 생명의 원리로서 모든 만물이 '이' 때문에 본성을 갖게 되는 것이며, '기' 는 생명의 힘 또는 재료로써 모든 만물이 '기'때문에 그 형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주희는 또한 '이'와 '기' 는 서로 분리되어 있지도 않고〔不相離〕 뒤섞여 있지도 않는〔不相雜〕 묘한 관계에 있다고 하면서, '이'는 정감과 의지(情意)도 없고 계획과 헤아림〔計度〕도 없고 만들고 지어냄(造作)도 없으며, 단지 '기' 가 엉기어 모인 곳에 있다고 하였다. 즉 '이' 는 '기' 가 작용하는 까닭〔所以然〕으로서 '기' 가 작용하는 곳에 늘 내재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것이 생겨난 까닭〔所以然之故〕과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법칙〔所當然之則〕을 가지고 있다. '이' 는 이처럼 만물의 존재 원인인 동시에 만물의 당위 법칙이기도 하다. 예컨대 배〔舟〕는 물위를 다니게 만들어진 까닭에 반드시 물위로 가야만 하듯이, 인간은 인간인 까닭에 마땅히 인간된 도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 따라서 성리학에서의 '이' 는 이론 이성(所以然)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실천 이성(所當然)으로서 존재와 당위가 일치되어 있다.
이처럼 '이' 는 궁극적으로 하나이면서 또 모든 사물에 내재해 있는데, 이것을 이일분수(理一分殊)라고 한다. 즉 주희는 '이' 는 본래 하나이나, 그 나누임〔分〕은 다르지 않을 수 없고, '이' 가 하나이기 때문에 자기를 미루어서 남에게 미칠 수 있으며, 나뉘어 다르기〔分殊〕 때문에 사람을 세움에는 반드시 어버이로부터 시작한다" 고 하였다.
〔심성론〕 《중용》에는 "하늘이 명한 것을 본성이라고 한다" (天命之謂性)고 하였는데, '하늘' [天]을 '천리' 로 생각하는 성리학자들에게는 천리가 명한 것이 본성이므로, 이 본성의 내용이 바로 성리(性理)가 된다. 따라서 인간과 만물이 생겨나는 데는 반드시 '이' 를 부여받은 뒤에 본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은 순선하며, 이러한 본성을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인간과 만물은 또 '기' 에서 품부받은 구체적인 형체를 가지고 있다. 이 형체가 가지고 있는 성질은 '기' 에서 유래되기 때문에 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고 한다. '기' 에는 맑고 흐림[清濁], 온전함과 치우침[全偏], 두루 통함과 막힘(通塞), 순수함과 뒤섞임〔粹駁〕 등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만물과 인간이 순수한 '이' 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 의 차이로 인하여 인간과 동물이 차이가 나며, 같은 사람이라도 똑똑함과 어리석음〔智愚〕, 현명함과 못남〔賢不肖〕이 생기게 되어 성인(聖人)과 보통 사람[凡人]의 차이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성리학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선천적으로 본연지성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요순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지만, 기질지성으로 인하여 타고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을 발현시키지 못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성인이 되려면 흐린 기질을 본성을 잘 발현시켜주는 맑은 기질로 변화시켜야 한다.
《서경》 <대우모>(大禹謨)에는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미미하다. 오직 정성스럽고, 오직 한결같이(양자를 잘 살펴서) 진실로 그 중용을 지켜라”(人心惟危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하여 '인심' 과 '도심'을 처음으로 언급하였고, 정이는 인심은 사욕(私慾)이고, 도심은 천리라는 설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인간에게 두 가지 마음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천리, 즉 본성을 따라가는가 아니면 기질에 의하여 생긴 사욕을 따라가는가에 따라 도심도 되고 인심도 된다는 것이다. 도심은 현실 생활에서 도덕적 원칙을 지키려는 마음이고 인심은 자기의 욕심대로 하려는 마음으로, 전자는 거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미미하다고 한 것이며, 후자는 지나친 자기 욕심으로 인하여 위험에 처할 수 있으므로 위태하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언제나 천리를 배반하고 사적인 욕망에 떨어져 버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수양(修養)을 통하여 자기의 마음속에 늘 천리를 간직하고 [存天理] 인욕을 막으려는[遏人欲]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성리학에서 마음[心]은 어디까지나 '기' 의 알맹이〔精爽〕일 뿐 결코 그 자체가 천리가 될 수 없으며, 오직 본성만이 천리이다〔性卽理〕 . 이 점에서 심즉리(心卽理)를 주장한 양명학과 견해를 달리한다. 마음이 본성과 정감을 통괄한다는 심통성정(心統性情)에 따르면, 천리인 본성은 자신의 고유한 덕성 즉 인의예지를 정감을 통하여 발현시키는데, 정감에는 도덕적인 순수 정감인 4단(四端)과 일반적인 정감인 7정(七情)이 있다. 4단은 《맹자》에서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 · 수오지심(羞惡之心) · 사양지심(辭讓之心) · 시비지심(是非之心)이며, 7정은 기뻐함〔喜] · 성냄〔怒〕 · 슬퍼함〔哀〕 · 두려워함〔懼〕 · 사랑함〔愛〕 · 미워함〔惡〕 · 욕심 냄〔欲〕이다.
〔수양론〕 성리학은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을 하기 때문에 성학(聖學)이라고도 한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리고 천리를 늘 간직하는 수양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공부에는 외적인 격물치지(格物致知)와 내적인 거경(居敬)의 방법이 있다. 전자를 도문학(道問學) 후자를 존덕성(尊德性)이라고 한다.
격물 · 치지의 요점은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간직하는 데 있다. 주희는 "이른바 지식을 넓히는 것〔致知〕은 사물을 탐구(格物)하는 데 있다. 이것은 사물에 다가가서〔卽物〕 그 '이' 를 끝까지 캐묻는 것(窮其理)으로, 인간의 영특함〔靈〕은 앎〔知〕을 갖지 않음이 없고, 천하의 만물은 '이' 를 갖지 않음이 없다. 오직 '이' 에 끝까지 캐묻지 않은 곳이 있기 때문에 그 앎도 충분하지 못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 주희는 "인간의 본성은 본래 밝다. 마치 보석(珠玉)이 구정물[澳水] 속에 가라앉아 있으면 밝음이 드러날 수 없다가, 구정물을 제거하면 옛날처럼 저절로 밝아지는 것과 같다. 만약 자기 스스로 인욕(人欲)이 가리었음을 안다면 이것이 곧 밝은 것이며, 여기서 더 나아가 오늘 하나의 사물을 연구〔格-物〕하고 내일 또 하나의 사물을 연구하면, 마치 유격병이 공격하여 수비를 무너뜨리듯 인욕은 저절로 사그라질 것이다" 라고 하여 격물치지가 인간의 욕심을 제거하는 공부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다음으로 인의예지의 덕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敬)을 생활화(居)해야 한다. '경' 이란 "두려워하고 공경한다"는 외경(畏敬)의 뜻을 가지고 있다. 외경은 머리 위로는 하늘〔天 · 上帝〕과 귀신(鬼神)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이 두려워하고, 발 아래로는 깊은 못〔深淵〕과 살얼음(薄水)이 있는 듯이 조심하는 것이다. '경'은 또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뜻을 가지고 있다. '주일'〔主一〕이란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는 것이며, '무적' 이란 마음이 딴 곳으로 달아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 '경' 하게 되면 천리가 언제나 밝게 되고, 인간의 욕심은 막혀 나오지 못하여 사그라져 버린다"고 하여 '경'공부의 실천을 중시하였다.
〔한국의 성리학〕 충렬왕(忠烈王, 1236~1308) 때 원(元)나라로부터 도입된 성리학은 당시 새롭게 성장하던 신진 사대부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사상적 근거가 되었다. 이때 성리학을 처음으로 신봉한 사람은 안향(安珦)이었고, 뒤이어 백이정(白頤正) · 이제현(李齊賢) 등이 그 뒤를 이었으며, 고려 말기에는 이숭인(李崇仁) · 이색(李穡) · 정몽주(鄭夢周) · 길재(吉再) · 정도전(鄭道傳) · 권근(權近) 등이 성리학자로서 유명하였다. 이들은 조선의 건국 과정에서 둘로 나뉘어 역성 혁명을 반대한 정몽주는 죽음으로 성리학을 실천한 선비의 표상이 되었고, 정도전 등은 새 왕조 건설에 참여하였다. 특히 정도전은 《불씨잡변》(佛氏雜辯) 등의 글을 통하여 성리학의 입장에서 불교를 철학적 · 윤리적 · 제도적으로 비판하였고, 또 조선 건국의 제도적 기반이 되는 법률 제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편 조선의 문물 제도가 어느 정도 정비 단계에 들어간 성종대에는 정몽주의 학풍을 이은 김종직(金宗直) · 김광필(金宏弼) 등 소위 사림(士林)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들의 의리학(義理學) 정신은 중종대 사림파(士林派)가 이상 정치의 실현을 시도하는 지주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림파의 정신은 이후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토대가 되어 조선 성리학의 한국적 특색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16세기 말 이후에는 조선 성리학이 의리 실천의 차원이 아닌 보다 높은 수준의 이론적 탐구로까지 발전했는데, 그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이언적(李彥迪)은 조한보(曹漢輔)와의 태극 논쟁에서 '이' 의 초월성과 내재성(人倫日常)을 밝혔으며, 서경덕(徐敬德)은 태허(太虛)가 곧 '기' 라는 명제로 그의 기학(氣學) 사상을 전개하였다. 또한 이황(李滉)은 기대승(奇大升)과의 사단 칠정에 관한 논변을 통해 '4단은 이가 발현된 것'(四端理之發)이며, '7정은 기가 발현된 것' (七情氣之發)이라는 이기 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고, 기대승은 4단은 7정의 선(善)한 부분을 가리키므로 오직 '기'의 발현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사단 칠정에 관한 논변은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에게까지 이어졌고, 이이는 기대승의 입장에서 기의 발현(氣發)만을 인정하는 기발 이승 일도설(氣發理乘-途說)을 주장하였다. 이이는 성리학의 최고 범주인 '이' 와 '기' 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하나이지만, 또 서로 섞여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둘이므로, '이' 와 '기' 는 하나이면서 둘이요(-而二) 둘이면서 하나(二而一)라는 '이기의 묘 (理氣之妙)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의 보편성과 '기' 의 특수성을 이통기국(理通氣局)이라는 용어로 표현하여 이일분수(理一分殊)를 더욱 명료하게 하였다.
한편 18세기에 이르러 조선 성리학계에서는 또 하나의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즉 '이통' 의 입장에서 인간과 동물의 본성이 같음을 강조하는 이간(李柬)과 '기국' 의 편에서 그 다름을 주장하는 한원진(韓元辰) 사이의 인물성 동이론(人物性同異論)이 그것인데, 이 문제 역시 한국 성리학의 고유한 논쟁 중의 하나로 조선조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성리학은 '이' 를 주로(主理)하여 정감의 발현을 논하였는가, 아니면 '기' 를 주로(主氣)하였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는데, 전자는 영남학파, 후자는 기호학파를 각각 형성하여 주리론적인 영남학파는 기정진(奇正鎮, 1798~1876)의 유리론(唯理論)으로, 주기적인 기호학파는 임성주(任聖周, 1711~1788)의 유기론(唯氣論)으로 각각 양극화되기도 하였다. (⇦ 이기론 ; 이학 ; → 사단 칠정 ; 양명학)
※ 참고문헌 黎靖德 편, 《朱子語類》 권1, 北京, 中華書局, 1981/陳榮捷 《朱熹》, 台北, 東大圖書公司, 1990/ 金春峰, 《朱熹哲學思想》, 台北, 東大圖書公司, 1998/ 張君 , 《新儒家思想史》, 台北, 張君 先生獎學基金會, 1979/ 玄相允, 《朝鮮儒學史》, 民衆書館, 1970. 〔鄭仁在〕
성리학
性理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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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을 최초로 소개한 안향(왼쪽)과 성리학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정몽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