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 대성전

聖母 - 大聖殿

〔이〕Santa Maria Maggiore Basilica · 〔영〕St. Mary Major Basilica, Our Lady ofthe S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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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 대성전(왼쪽)과 그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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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 대성전(왼쪽)과 그 내부 모습.

유럽에서 최초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 로마에 있는 4개의 대주교좌 대성전 가운데 하나로 성모 마리아가 생애의 대부분을 안티오키아에서 보냈다는 전승에 따라 안티오키아 대주교좌 성당이 되었다. 에스컬리노(Esquilino) 언덕에서 가장 높은 곳(55m)에 세워져 있으며, 봉헌 기념일은 8월 5일이다.
〔설립 경위] 1250년경 바르톨로메오(Batolomeo da Trento) 수사에 의해 처음으로 쓰여진 전설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가 로마의 귀족인 요한 부부의 꿈에 나타나 성당을 지을 땅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인 358년 8월 5일 에스컬리노 언덕에는 무더운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내렸는데, 이곳은 성모 마리아가 리베리오 교황(352~366)의 꿈에도 나타나 알려 준 곳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에 교황은 이곳에 성당을 짓도록 지시하였으며, 요한 부부도 사재(私財)를 내어 이 성당 착공을 도왔다고 한다.
그 후 교황 식스토 3세(432~440)는 431년에 열린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 라는 교의를 발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현재의 구조와 모습으로 재건축하였다. 그리고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중 주요 사건과 신비들이 새겨진 화려하고 오래된 모자이크가 있는 회중석 부근의 아치(triumphal arch)를 에페소 공의회 후에 '에페소' 라고 불렀다. 현재의 성당이 식스토 3세 교황에 의해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성당은 '리베리오 대성전' 혹은 '성모 설지전(聖母雪地殿) 성당'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건축 구조와 역사〕 재건축 후 오랫동안 유지되던 성모 마리아 대성전은 9세기 후부터 여러 교황에 의해 새로운 내부 장식이 만들어졌고 구조도 변하였다. 현재 이 대성전의 정면은 동남쪽을 향해 있으며, 회중석(nave)의 장축(長軸) 길이는 105m, 신랑과 측랑을 합한 폭이 42m, 천장 높이가 35m인 전형적인 바실리카식 성당이다. 정면 출입문(poricum)은 푸가(F. Fuga, 1694~1781)가 1743년에 만든 작품인데, 4개의 기주(基柱)와 5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출입문과 상층의 로지아(loggia)가 이루는 긴장 · 박력 · 웅장 · 균형의 건축미가 인상적이다. 왼쪽 출입문은 1500년 성년(聖年) 때 축성된 성문(聖門)이고, 출입문 오른편에는 1671년에 베르니니(G. L. Bernini)와 라이날디(G. Rainaldi)에 의해 제작된 교황 글레멘스 9세(1667~1669)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성전 내부는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는데, 일부는 1290년 익랑 증축 때 파괴되었고, 중앙 회중석 위의 모자이크들은 5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구약성서의 내용들로 꾸며져 있다. 교황 제대 윗 부분부터 시작되는 이 모자이크는 왼쪽에는 아브라함이 멜키세덱에게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는 장면(창세 14, 17-20)부터 야곱과 천사가 씨름하는 장면(창세 32, 23-30)까지, 그리고 오른쪽에는 모세부터 다윗 시기까지의 주요 사건들이 묘사되어 있다. 제대 아래에는 베들레헴의 구유 잔해가 보관되어 있으며, 이를 경배하기 위해 무릎 끓은 비오 9세 교황(1846~1878)의 상이 1880년에 야코메티(Jacometti)에 의해 제작되어 세워져 있다. 제대 뒤편 반월형 부분(apse)에는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을 중심으로 천사들과 사도들, 성인들, 교황 니콜라오 4세와 콜론나(G. Colonna) 추기경과 다른 상징들이 모자이크되어 있다. 또 바로 밑에는 가브리엘 천사의 예수 잉태 예고, 예수 탄생, 삼왕의 경배, 아기 예수의 성전 봉헌과 성모 마리아의 죽음이 모자이크되어 있는데, 이 작품은 프란치스코회 수사인 토리티(G.Torriti)가 교황 니콜라오 4세의 지시와 콜론나 추기경 형제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 1295년에 완성하였다.
오른편 측랑에는 폰치오(F. Ponzio)가 1605년에 제작한 세례소와 1825년에 발라디에르(Giuscppe Valacdier)에 의해 제작된 세례대가 있다. 세례소에 근접해 있는 제의실도 폰치오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여기에 장식된 프레스코화 <마리아의 죽음>은 파시냐노(Passignano)의 작품이다. 교황 식스토 5세(1585~1590)의 지시로 폰타나가 건축한 '시스티나 경당' (Cappella Sistina)과 돔(dome)에는 16세기의 많은 미술가들에 의해 그려진 성모 마리아와 유년기 예수의 모습이, 천사들과 대천사들이 천국의 영광에 싸여 있는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었다. 또 이곳에는 네 명의 천사가 어깨 위에 성당을 지고 있는 모습의 아름다운 감실을 중심으로 오른편에는 폰타나가 제작한 식스토 5세 교황의 기념비가 있고 왼편에는 비오 5세 교황(1566~1572)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는데, 후자는 제의실 담당 사제에 의해 고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성전 왼쪽 뒤편의 측랑에는 1565년에 론기(M. Longhi)와 귀데티(G.Guidet)에 의해 제작된 '체시 경당'(Cappella Cesi)이 있는데, 이곳에는 알렉산드리아의 가타리나(Catharina Alexandriae)의 순교화를 비롯하여 마수치(A. Masucci)의 <성가정> 그림과 형제 추기경이었던 에밀리오(Emilio Cesi)와 페데리코(Federico Cesi)의 무덤이 있다. 본래 성 피오라와 루칠라(St. Fiora et Lucilla)에게 봉헌된 '스포르자 경당' (Cappella Sforza)은 미켈란젤로가 스포르자(G.A. Sforza di S. Fiora) 추기경을 위해 설계한 것이지만, 칼카니 (T. Calcagni)와 포르타(G. della Porta)에 의해 1573년에 완성되었다. 이 경당에는 성모 승천과 미카엘 대천사 그림이 있다. 바오로 5세 교황(1605~1621)의 지시로 폰치오가 1613년에 완공한 '보르게세 경당' (Cap-pella Borghese)의 둥근 천장에는 카르디(L. Cardi)가 그린 <복되신 마리아의 승천>이라는 작품이 있으며, 6개의 성인상이 세워져 있고, 중앙 제대에는 <로마 사람들의 구원>(Sallus populi romani)이라는 성모 마리아의 이콘이 모셔져 있다. 왼편 측랑쪽에 있는 제대에서 비오 12세 교황(1939~1958)이 최초로 미사 집전을 하였다고 전해지며, 보르게세 가문 출신인 바오로 5세 교황(1605~1621)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부속 종탑은 13세기 말에 설치되었으며, 전면 광장 중앙에는 하나의 돌로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원주형의 성모 기념주가 있는데, 그 윗 부분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의 상이 세워져 있다. 성모마리아 대성전은 15세기 말부터 19세기 말까지 증축과 개수가 계속되어 고딕 · 르네상스 · 바로크 · 로코코 등의 다양한 양식이 혼재되어 있지만, 바실리카식 성당으로서의 원형만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대성전 ; 로마)
※ 참고문헌  Sir Banister Fletcher, A History ofArchitecture, Charles Scribner's Sons, 18th ed., 1975/ Enrico Verdesi ed., Nouveau Guide de Rome et ses Environs, Rome, pp. 124~127/ Domenico Marcucci, Santuari Mariani d'Italia, Roma, 1983, p. 45/ Pierre Grimal · Caroline Rose, Churches ofRome, New York, 1997, pp. 54~59, 112/ 박학재, 《서양 건축사정론》, 상조사, 1981. [金正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