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발현

聖母發顯

〔라〕apparitio Mariae · 〔영〕apparition of 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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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루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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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루페.

성모 마리아가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방법을 초월한 특이한 방법으로 어떤 특정인에게 나타난 현상. 교회에서는 여러 곳의 성모 발현과 그 발현 때 이루어진 사적 계시(私的 啓示)를 인정한 바 있다.
〔성모 발현과 메시지〕 교부들이 전하는 발현 : 성모 발현에 대한 이야기는 교부 시대로까지 소급된다. 니사의 그레고리오(335?~395?)는 기적자 그레고리오(Gregorius Thaumaturgus, 213~270?)에게 성모 발현이 있었다고 전하였는데, 성모가 사도 요한과 함께 나타나 요한에게 신앙의 진리를 그레고리오에게 알려 주도록 했다고 한다. 투르의 그레고리오(538~594) 역시 《기적의 책》(Miraculorum Libr)에서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을 지으려는 건축가에게 무거운 기둥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해 나타났다는 이야기와, 유대인 어린이가 친구들과 함께 성모 경당에 가서 영성체를 했다고 화가 난 아버지에 의해 불속에 던져졌는데 성모가 나타나 자신의 망토로 보호하여 살려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는 성모 마리아가 소녀 무사(Musa)에게 발현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교황으로서 성모 발현을 인정한 것이다. 무사는 약속대로 성모 발현이 있은 지 30일 후에 죽어 성모 마리아에게 봉사하는 어린이 대열에 합류하였다고 한다.
과달루페 : 1531년 12월 9일 성모 마리아가 멕시코 원주민 후안 디에고(JuanDiego)에게 나타난 후 모두 4차례에 걸쳐 메시지를 주었다. 이때는 콜럼버스(C. Colum-bus, 1451~1506)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지 40년,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지 10년째 되는 해로서 원주민들은 정복자의 폭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발현 장소는 원주민들이 신전을 세웠던 테페약 언덕이었고, 성모는 인디언의 피부를 하고 장밋빛 옷에 푸른 망토를 두르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으로 발현하였다. 성모는 "나는 평생 동정이며, 하느님의 어머니임이 알려지기를 원하고, 어려울 때에 정성을 다해 나를 찾는 이들에게 나의 자비를 드러내도록 이 자리에 성당을 짓기를 바란다" 고 하였다.
파리 : 1830년 11월 27일 파리의 뤼 뒤 박(Rue du Bac)에 있는 성 빈천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Compag-nie des Filles de la Charité) 지원자였던 가타리나(Cathérine Labouré, 1806~1876)에게 성모 발현이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가치관의 혼란으로 교회의 신앙이 흔들리고 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는 등 사회의 변혁기였다. 성모는 지구 위에 서서 두 팔을 지구 위로 활짝 펼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그 주위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성모는 이때 자신이 보여 준 모습대로 메달을 만들어 지니는 사람은 큰 은총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고, 그 후 메달 착용이 늘어나면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 '기적의 메달' (Médaille miracul-euse)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발현으로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신심이 고조되었으며, 마침내 교황 비오 9세(1846~1878)는 1854년 12월 8일에 대칙서 <인에파빌리스 데우스>(Ineffabilis Deus)를 통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를 믿을 교리로 선포했다.
라 살레트 : 1846년 9월 19일 프랑스 가르가스(Gar-gas) 산 기슭에 있는 라 살레트(La Salette)에서 11세의 막시망 지로(Maximin Giraud)와 15세의 멜라니 마티유 칼바(Melanie Mathieu Calvat)에게 발현한 성모는 순백색의 부인복에 황금색 앞치마를 두르고 장미 술이 달린 망토를 어깨에 걸치고 장미 관을 쓰고 있었다. 당시는 과학 만능주의 · 자유주의 · 무신론 등으로 교회의 전통 신앙과 성서의 가르침이 위기를 맞고 있었다. 성모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죄인들의 화해자' 라고 밝히면서 인류가 회개하여 하느님과 화해하면 축복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벌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이 메시지를 무시하였으나, 1846년 이래 대흉년으로 유럽에서만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고 1870년에는 보불(普佛) 전쟁까지 발발하자 회개하는 순례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루르드 :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루르드의 동굴에서 14세의 소녀 베르나데트(Ber-nadette de Lourdes, 1844~1879)에게 발현했다. 이때는 교황 비오 9세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교리를 반포한 지 4년째 되는 해였는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유주의 사상의 팽배로 지식층이 교회의 가르침을 불신하고 속속 교회를 떠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모 마리아는 흰옷에 푸른 색 허리띠를 두르고 오른팔에 묵주를 늘어뜨리고 양손을 가슴에 모은 모습으로 발현하였다. 성모는 자신을 '원죄 없는 잉태된 자' (Immaculata Conceptio)라고 밝히면서 기도와 보속 행위, 회개를 촉구하였으며 특히 묵주 기도를 권장하였다. 그 후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루르드를 방문하였고 기적도 자주 일어났다.
풍멩 : 1871년 1월 17일에는 브르타뉴(Bretagne)와 노르망디(Nomandie) 접경 지역인 라발(Laval) 교구의 작은 마을 풍멩(Pontmain)에서 12세의 외젠느(Eugène)와 11세의 요셉 바르베데트(Joseph Barbedette)에게 발현하였다. 성모는 허리띠 없이 빛나는 별이 그려진 짙은 하늘색 부인복에 검은 면사포를 쓰고 그리스도가 못박힌 붉은 십자가를 양손에 잡은 모습이었다. 당시는 프러시아 군대가 프랑스 전역을 침략하여 위태로웠던 때였다. 성모는 하얀 깃발 위에 쓴 "얘들아, 언제나 기도하여라. 내 아들은 너희의 기도를 들어 허락하신다" 라는 글씨를 보여 주었다. 마침내 1월 28일에 휴전 협정이 조인되었고 그 후 많은 순례자들이 성모를 '희망의 여인' 으로 칭하며 순례하였다.
노크 : 1879년 8월 21일 아일랜드의 노크(Knock)에서 마을 주민 15명에게 발현하였다. 당시는 영국의 가혹한 식민지 형법과 엄청난 소작료 등으로 주민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었고, 또 대기근이 들었던 때였다. 성모는 흰옷을 입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오른편과 왼편에는 성 요셉과 사도 요한도 함께 있었으며, 제대와 어린 양 주위로 천사들이 돌고 있었다. 이 발현에서는 말씀으로 전한 메시지는 없었으나 미사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였다. 그리고 1979년에는 발현 100주년을 기념하여 교황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하였다.
파티마 : 제1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달했던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6차례에 걸쳐 포르투갈 레이리아 교구의 작은 마을 파티마(Fatima)에서 순박한 목동인 10세의 루치아(Lucia dos Santos)와 루치아의 사촌 동생들인 7세의 히야친타(Jacima)와 9세의 프란치스코(Francisco Marto)에게 발현하였다. 발현 때마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흰옷에 흰 망토를 걸치고 묵주를 든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맨발로 구름을 밟고 선 모습이었다. 성모는 자신을 '로사리오의 여왕'이라고 칭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칠 것과 죄인을 위해 희생할 것, 그리고 성모 성심을 공경할 것을 요청하였다. 특히 러시아를 당신 성심에게 봉헌하고 매월 첫 토요일에 영성체할 것을 요청하면서,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과 보속을 통해서만 세계 평화와 러시아의 회개 및 교회의 안정과 평온이 이루어지리라고 예언하였다. 1917년 10월에 소련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이듬해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으며, 1942년 10월에 교황 비오 12세(1939~1958)는 전세계 특히 러시아를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에게 봉헌하였다.
보랭 : 1932년 11월 29일부터 이듬해 1월 3일 사이에 벨기에 남부 지역의 보랭(Beauraing)에서 9~15세의 다섯 아이들(Gilberte · Albert Degeimbre · André · Gilberte)에게 33회에 걸쳐 발현하였다. 당시는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하였으며 주민의 반 이상이 공산주의 사상에 현혹되어 신앙을 버리고 냉담 상태에 있었다. 흰옷에 황금 관을 쓰고 양손을 들어 티없는 황금빛 성심을 드러내 보인 성모는 자신을 '원죄 없이 잉태된 티없는 동정녀, 하느님의 어머니요 천상 여왕' 이라고 밝히면서 끊임없는 희생과 기도 및 죄인들의 회개를 원하였다. 그 후 보랭의 주민들은 회개하여 많은 이가 교회로 돌아왔으며, 발현 첫해에 순례자가 200만 명이 넘었고 병의 치유와 더불어 영적 치유(회개)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바뇌 : 1933년 1월 15일 독일 국경에서 가까운 벨기에의 바뇌(Banneux)에서 비신자인 12세의 소녀 마리에트(Mariette Beco)에게 발현하였다. 당시는 독일의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있던 때였는데, 성모는 루르드 발현 때처럼 흰옷에 푸른 허리띠를 두르고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숙인 채 합장하고 오른팔에는 묵주를 늘어뜨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성모는 자신을 '가난한 자의 동정녀' 라고 칭하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러 왔다고 하면서 기도를 많이 바치라고 하였다. 그 후 수많은 성당이 바뇌의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다.
이상의 성모 발현들은 모두 교회의 정식 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순례자가 많아진 유고슬라비아의 메주고리예(Madjugorje)는 아직 교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유고슬라비아 주교 회의에서는 메주고리예의 성모 발현이 초자연적 발현이나 계시가 아니라고 공식 표명하였다. 이외에도 1928~1975년 사이에 발생하였던 성모 발현들 중에서 교회의 공식 인가나 동의를 받지 못한 성모 발현은 232건에 달한다(Bernard Billet, Le fait apparitions non reconnues par I'Eglise, Vraies etfausses apparitions dans l'églese, pp. 7~58)
[교회의 입장] 사적 계시와 성모 발현 :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적 계시' 를 인정해 왔다. 사적 계시는 공적 계시의 진실성을 확인하고 재조명할 뿐만 아니라 변천하는 시대의 특수 상황에서 신앙이나 윤리에 관한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종속적 · 보조적인 계시라고 할 수 있다. 공적 계시는 그리스도가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을 통하여 가르치고 보존하고 전달하는 신앙의 유산인 반면에, 사적 계시는 신앙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공적 계시가 신앙의 대상인 교리와 실천 규범인 계명을 가르치는 기능을 수행한다면, 사적 계시는 어떤 지시 사항을 전달한다. 그런데 사적 계시들이 전달하는 지시 사항들은 역사 안에서 교회의 특수한 순간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사적 계시가 진실한 것이 되려면 언제나 성서와 전승 및 교회의 가르침에 일치하고, 또 그것을 통해 교회에 유익을 주고 하느님의 영광을 증진시켜야 한다. 사적 계시가 신앙 생활에 유익이 될 수 있지만, 초대 교회 이후 이에 대한 호기심과 지나친 관심은 많은 이단을 낳았었다. 즉 사적 계시 및 이에 결부된 신비 현상에 지나친 관심을 가질 때 흔히 오류나 기만에 빠져 신앙 생활에 큰 해독을 끼칠 수가 있다. 그러나 교회가 사적 계시를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고 실제로 그것이 신앙 생활에 좋은 열매를 내는 경우라면, 신자들은 인정된 사적 계시에 유의하고 교회가 가르치는 실천적인 교훈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모 발현에는 통상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메시지가 있는데, 이 메시지가 바로 사적 계시에 해당한다. 이 사적 계시의 진실성을 증거하기 위해 흔히 기적이나 신비 현상 등이 나타난다. 그런데 파티마나 루르드 등의 성모 발현 메시지들이 복음 자체는 아니다. 그것이 비록 복음적인 내용을 전하고 있지만 하느님의 말씀 자체는 아니다. 교회 역시 그 메시지들이 복음을 대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성모 발현의 어떠한 메시지라도 그것이 공식적인 교도권의 교의에 부합되어야만 진정한 사적 계시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교회의 판별 : 교회는 성모 발현을 승인하는 일에 대단히 신중을 기하고 있다. 자칫 주관적인 환시를 발현으로 승인할 수도 있고, 이와 반대로 발현을 통하여 하느님이나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와 어느 특정한 인물의 카리스마적인 기능을 거부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판별 기준은 매우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준에 따른다. 첫째, 발현은 그리스도에 의해 계시된 차원과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둘째, 교회는 객관적인 발현과 주관적인 착시를 구별한다. 모든 발현을 주관적인 환시로 보는 일도 피하고, 금지 조처를 내릴 때도 철저히 조사한 후에 내린다. 셋째, 발현 목격자의 건강 상태도 헤아린다. 병리학에서는 정상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병약자들이 보는 경우가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왜 성모가 발현하였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다. 발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지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성모를 통해서 하느님 신앙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모의 메시지는 그리스도 신앙을 위한 것이다. 성모 신심이 그리스도 신앙을 능가할 수 없으며, 목격자가 성모보다 앞설 수도 없다. 이러한 기준에서 교회는 발현의 진실성 여부를 판단한다. 그 책임자는 소속 교구의 교구장이므로 발현 장소의 공적인 공경과 메시지 선포는 교회권위의 결정 후에만 가능하다. 그리고 어떤 발현이든 그 발현은 반드시 모든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내적으로 동의하도록 강요하는 구속력을 지니지 않는데, 이는 발현과 그 메시지가 신앙 조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국 나주(羅州)의 성모 메시지에 대한 광주대교구장의 금지 조처는 이러한 기준에서 타당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죄 중에 있는 사제가 미사를 집전할 때 그 성체가 옮겨져 왔다" 는 성체에 관한 기적은 분명 그리스도교 신앙과 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사람들을 위협하는 종말 신앙도 분명 잘못된 가르침이다. 그리스도교의 종말 신앙은 희망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적 현상에 연연해 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 안에서 추구해야 하는 그리스도 신앙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고, 교회의 권위에 순명하지 않는 것 역시 교회 공동체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회가 인정한 성모 발현의 목격자들은 교회 권위에 순명하거나 자신들을 감추고 침묵한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성모 마리아 자신은 모든 것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뒷전에 머물러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 활동에 협력한 분이기 때문이다.
〔시대적인 의미〕 성모 발현과 이와 관련된 기적과 메시지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전과 비난을 받아 왔다. 자유주의와 유물론, 인본주의 및 과학 만능을 부르짖던 근대와 특히 19세기 이후는 하느님과 신앙, 교회와 구원의 진리를 버렸거나 부인하는 시대가 되었다. 합리주의자들은 복음서의 모든 기적을 날조된 것이나 신화로 생각하였다. 이렇게 신앙을 잃은 시대, 하느님을 등지고 사는 시대에 성모 발현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보이는 징표로서 하느님의 은사였다. 즉 불신자들과 죄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잃었던 신앙을 일깨우기 위해 보이는 과분한 은혜였던 것이다. 예컨대 1531년에 멕시코에서 있었던 과달루페 성모 발현은 발현 후 불과 8년 만에 당시 800만 인구 중 700만 명이 영세 입교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은 하느님이 특이한 방법으로 베푼 크나큰 구원의 은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루르드의 성모 발현 후 1959년까지 5,000건의 기적이 보고되었지만 엄밀한 심사를 거쳐 58건만 기적으로 판정되었다.
성모 발현과 기적 및 메시지는 불신자들을 신앙으로 이끌어 줄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생활에도 자극제가 되고 활력을 제공한다. 평소 열심하지 못한 이들도 파티마나 루르드를 순례한 후 신앙 생활에 열의를 갖고 생활을 개선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흔히 구원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재생의 기쁨을 맛본 것이다. 성모 발현과 관계된 사실을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받아들인다는 것은 바로 성모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실천해야 함을 뜻한다. 성모는 단순히 자신을 현시하러 오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모친이요 교회의 어머니로서 당신 아들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러 오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는 경고와 호소와 간청으로 가득 차 있다. "너희는 세상의 죄악을 슬퍼하고 회개하라. 닥쳐올 징벌을 피하도록 보속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라." 이것이야말로 성서에 서 말하는 회개하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회개는 하느님의 백성이 세상 끝 날까지 이루어야 할 일이며, 신앙의 전제 조건인 동시에 받아들인 복음을 활성화시키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끊임없이 죄로 떨어지려는 나약한 인간성은 끊임없이 회개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모 발현· 메시지 · 기적 등은 바로 이 회개와 신앙의 활성화를 불러오는 촉진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과달루페의 성모 ; 루르드 ; 바뇌 ; 보랭 ; 사적 계시 ; 성모 신심 ; 파티마 ; 풍멩)
※ 참고문헌  Jordan Aumann, Spiritual Theology, Sheed & Ward, London, 1980(이홍근 역, 《영성 신학》, 분도출판사, 1987)/ E.R. Carroll, Mary, Blessed Virgin, Devotion to, 《NCE》 9, pp. 364~368/ Robert C. Brodericks, The Catholic Encyclopedia, Thomas Nelson Inc., Publisher, 1976/ Graber Rudolf, Marienersheinungen, Wiirzburg, Echter, 1984(강성위 역, 《성모 마리아의 발현》, 도서 출판 요한사, 1988/ René Laurentin, Quand Notre Dame parle le langage de larmes, Chrétiens 1, Paris, 1988/ 조규만, 《마리아, 은총의 어머니 : 마리아 교의와 공경의 역사》,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8. [李洪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