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있는 '승리의 성모 성당' (N.D. des Victo-ries) 주임 데쥬네트(Desgenettes) 신부가 1836년 12월 16일에 창설한 신심회로, 1838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인준되었다.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고 성모의 전구로 하느님께 죄인의 회개를 청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회원들은 날마다 성모를 향하여 "죄인의 의탁이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기도하면서 그 끝에 성모경 한 번을 외워야 하며, 이러한 의무 외에도 '성모 무염원죄 패' 를 몸에 지녀야 하고 "원죄 없이 잉태하신 마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고 기도하고, 본회에서 정한 날에 자주 성체를 영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회원들은 전대사와 한대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한국에서의 성모 성심회〕 한국의 성모 성심회는 다블뤼(Daveluy, 安敦伊) 신부에 의해 1846년 11월 2일 공주 수리치골(현 공주군 신풍면 봉갑리)에 세워졌다. 설립 배경은 초기 교회 때부터 내려온 성모 신심이지만, 직접적인 동기는 1841년에 교황청에서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 를 조선교구의 주보로 결정한 것과 1846년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의 체포로 일어난 병오박해(丙午迫害)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병오박해 당시 교우촌을 순회하고 있던 페레올(Ferrèol, 高) 주교와 다블뤼 신부는 박해가 일어나자 활동을 중지하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였다. 얼마 후 사태가 진정되자 선교사들은 다시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때 선교사들은 지방 순회를 떠나기에 앞서 특별히 전능하신 이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였다. 이를 계기로 성모 성심회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는데, 즉 그들은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 가 조선교구의 주보로 정해진 것과 김대건 신부가 라파엘(Raphael)호를 타고 위험한 여행을 하면서 성모 마리아에게 의지하고 보호를 받았던 일을 상기하면서 성모 마리아께 감사를 표시하고, 또 성모의 보호 아래 활동을 시작하고자 성모 성심회를 설립하였던 것이다. 이에 앞서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학생도 스승 리브와(N. Libois) 신부를 통해 성모 성심회에 가입할 의사를 밝힌 적이 있었고, 이에 따라 리브와 신부는 1843년 6월에 데쥬네트 신부에게 그 가입을 청원하였다.
성모 성심회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죄인의 회개를 위하여 성모께 정성으로 기도드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한국의 성모 성심회가 설립된 시기가 박해시기였고, 또 조선 선교사들이 교회의 재건을 위해 여러 단체들을 정비하거나 조직하였다는 사실에서 볼 때, 성모 성심회는 순수한 신심 단체 이상으로 전교 활동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성모 성심회는 성모 신심이 확산되어 가는 과정에서 이를 수렴하는 신심적인 측면과 선교의 측면을 아울러 지니고 있었다.
이후 한국의 성모 성심회는 꾸준히 성장하였다. 1888년에 한국으로 진출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는 1893년 5월에 성모 성심회를 도입한 이래 한국 전쟁 이전까지 이를 유지하였고, 각 본당에서는 '성모 성심회' 또는 '성모회' 라는 이름으로 평신도 사도직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특히 회장들의 필독서로 1923년에 간행된 《회장 직분》 안에 '성모 성심회' 가 수록되었다는 사실은, 성모 성심회가 회장들을 통하여 각 본당 및 공소에 널리 보급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아울러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1887년에 간행된 《한국 교회 지도서》(Coutumier da la Mission de Corée)는 물론 1912년, 1923년, 1932년, 1958년에 간행된 교회 지도서에도 '성모 성심회' 를 한국 교회의 공인된 단체로 소개하면서 그 설립 및 활동을 적극 장려하였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그 기원과 목적, 그리고 지도 방법상의 약점으로 인해 단지 소규모 단체로만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으며, 여러 마리아 운동 단체들(레지오 마리애, 파티마 세계 사도직, 성모의 기사회)이 활성화되면서 그 활동이 위축되고 정체성마저도 확연히 드러내지 못하게 되었다. (→ 성모 신심)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美收園》,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1 田類斯, 《聖母聖心會要》, 1878/ 《한국 교회 지도서(Coutmier de la Mission de Corée)》, 1887/ 《경향잡지》 337호(1915. 11. 15), pp. 491~492 ; 919호(1940. 3), pp. 59~63/ 崔正福, 《大邱天主敎會史》, 천주교 대구 계산동 교회, 1952/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주, 《드망즈 주교 일기》, 가톨릭신문사, 1987/ <한국 교회의 성모 성심과 수리치골>, 《교회와 역사》 158호(1988. 7), 한국교회사연구소, pp. 4~71 한국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1991/ 이정운, <조선 교구 설정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 수원 가톨릭대학 출판부, 1994/ 배티 사적지 편, 《스승과 동료 성직자들의 서한》, 천주교 청주교구, 1997/ 方相根, <성모 성심회>, 《교회와 역사》 263호(1997. 4), pp. 8~12. [方相根]
성모 성심회
聖母聖心會
〔라〕Confraternitas SanCtissimi et Immaculati Cordis Mariae · [영]Confraternity of the Sacred Heart of Mary
글자 크기
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