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성월

聖母聖月

[라]devotio mensis Mariae · [영〕monthof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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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5월을 성모 성월로 정하여 신자들이 자주 성모를 공경하고 성모의 모범을 따라 살아가도록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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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5월을 성모 성월로 정하여 신자들이 자주 성모를 공경하고 성모의 모범을 따라 살아가도록 요청한다.

한 달 동안 성모 마리아를 꾸준히 기억하고 묵상하도록 정해진 달.
교회는 매년 5월을 성모 성월로 정하여 신자들이 이 기간 중 매일 또는 보다 자주 성모를 공경하고 성모의 모범을 따라 기도와 은총의 삶을 살아가도록 요청하고 있다. 동방 교회에서의 성모 성월은 전례적인 목적이지만, 서방 교회에서는 전례적인 면만이 아니라 신자들의 신심을 북돋우는 목적도 있다.
〔유래와 신심 행위] 동방 교회 : 이집트 중심의 콥틱 전례에서는 6세기부터 성모 마리아의 안식(죽음)과 하늘에 오르심을 1월 16일과 8월 22일에 기념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공백은 206일이나 되는데 8월 축제 때에는 다른 동방 교회와 마찬가지로 그 전 15일 동안 단식을 했다. 콥틱 교회에서 고유한 성모 성월을 지내기 시작한 것은 11세기에 와서였다. 콥틱 전례력에서 키악(Kiahk)이라는 네 번째 달은 12월 10일부터 1월 8일에 해당되는데, 그 중심과 절정은 예수 성탄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 동안 기념한 성모 성월은 예수의 탄생과 예수를 세상에 낳은 마리아를 찬미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 성탄을 준비하기 위하여 신자들이 행한 단식을 '마리아의 단식' (digiuno di Mana)이라고 불렀다. 콥틱 전례에서는 성모 마리아도 예수를 낳기 전에 그런 단식을 하였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한 달 동안 신자들은 마리아와 관련된 기도서를 갖고 매일 저녁 기도를 바쳤다.
13세기부터 8월을 성모 성월로 정한 비잔틴 전례에서는 8월 15일을 '성모 안식(Domitio) 대축일' 로 기념하였는데, 대축일이 성모 성월의 중간에 위치한 것은 단지 시간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깊은 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대축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15일 동안 단식을 하고 이후 15일은 축제의 연속으로 큰 기쁨을 표현하였는데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으로 이 축제는 더 발전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서방 교회 : 서방 교회에서 성모 성월의 유래는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반 민중들의 봄 축제나 5월 축제가 서서히 그리스도교화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5월을 성모 마리아의 달로 봉헌하는 관습은 13세기 말부터 시작되었으며, 5월과 성모 마리아를 처음으로 연결시킨 인물은 카스티야의 왕 알폰소 10세(Alphonsus Х, 1221~1284)였다. 그는 5월이 주는 자연의 풍성함을 노래하면서 영적으로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는 마리아에게 기도할 것을 암시하였다. 14세기경에 파리의 보석상 조합에서는 5월 1일에 노틀담의 성모에게 보석으로 장식한 꽃다발을 바쳤으며, 1549년에는 베네딕도회의 지들(Wolfgang Siedl, +1562)이 《성모 성월》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영적 5월》(Ⅱ Maggio spirituale)을 출판하였다. 로마에서는 성 필립보 네리(St. Filippo Neri, 1515~1595)에 의해 미약하나마 5월을 성모 성월로 지내기 시작하였는데, 네리는 젊은이들에게 5월 한 달 동안 성모 마리아에게 꽃다발을 바치거나 찬미의 노래를 부르고, 또 선행으로 마리아를 공경하도록 하였다.
5월이 성모 성월로 구체화된 것은 17세기 말엽의 마리아 운동과 더불어서였다. 1677년에 피렌체 부근의 피에솔레(Fiesole) 도미니코회 수련원에 특별한 모임(comunella)이 생겼고, 이 단체는 5월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고 자신들의 신심을 고취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매주일 피렌체 지방의 5월 1일 축제를 반복하다가 1701년부터는 5월 한 달 동안 매일 축제를 지냈는데, 이 축제 때 '성모 호칭 기도'를 노래로 바치고 마리아에게 장미 화관을 드렸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은으로 만든 심장을 봉헌하였다. 독일에서는 1692년에 카푸친회의 슈네우피스(L. von Schneuffis)가 5월의 성모를 위한 노래들을 모아 출판하였는데, 이는 이탈리아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17세기 말 신자들은 나폴리의 글라라 성당에서 5월 한 달 동안 매일 저녁 성모에게 찬미가를 바치고 성체 강복을 하였으며, 만토바의 성당에서도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행사가 장엄하게 거행되었다.
성모 성월 신심 행사는 18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프랑스와 스페인으로 전해지고, 19세기 초에는 벨기에와 스위스, 그리고 19세기 중엽에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도 거행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성모 성월은 예수회의 디오니시(A. Dionisi)가 1725년에 베로나에서 《마리아 성월》(Mese di Maria)을 출판함으로써 시작되어 동료 회원들에 의해 로마 · 밀라노 등으로 확산되었다. 이 책에는 성당에서만이 아니라 집과 일터에서 성모 성월에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제시되어 있고 마지막 날에는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의 마음을 봉헌하도록 하였다. 1747년에는 훗날 제노바의 주교가 된 사포리티(G. M. Saporit)의 《성모 성월》이 출판되었고, 이어 1758년과 1785년에 여러 저자들에 의해 《성모 성월》이라는 책이 출판되어 성모 성월의 정착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19세기 중엽에는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에까지 확산되었으며, 교황 비오 7세(1800~1823)의 성년(聖年) 대사 선포와 함께 널리 퍼지게 되었다. 현재 유럽에서도 성모 성월은 완전히 보편화되어 있다. 1854년 12월 8일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가 교황 비오 9세(1846~1878)의 헌장 <인에파빌리스 데우스>(Ineffabilis Deus)를 통하여 선포된 후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은 절정에 달하였으며, 성모 성월 행사는 공적으로 장엄하게 거행되었다. 역대 교황들은 성모 성월 신심을 잘 지켜 가도록 여러 차례에 걸쳐 권장하였는데, 교황 비오 12세(1939~1958)는 교서를 통하여 "성모 성월 신심이 엄격한 의미에서는 전례에 속하지 않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전례적 예배 행위로 간주할 만한 신심"이라며 이 신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마리아 신심 운동이 기적이나 발현에 치우치지 말고 전례적인 공경 안에서 올바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5년에 발표한 성모 성월에 관한 교서에서 "성모 성월은 세계 도처의 신자들이 하늘의 여왕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달이라며 "교회 공동체와 개인 · 가정 공동체는 이 기간 동안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을 마리아에게 드리고, 기도와 찬양을 통하여 마리아 어머니의 승고한 사랑을 찬양해야 한다" 고 역설하였다. 그렇지만 성모 성월 신심을 위해 교회가 공식적으로 정한 전례 예식은 없다. 단지 성모상을 아름답게 꾸미고 말씀의 전례 양식을 빌려 새롭게 구성한 '성모의 밤 행사를 하거나, 매일 성모상 앞에서 묵주 기도를 함께 바치는 등 본당이나 가정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성월 기도회를 봉헌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글이나 시 낭송, 성모 호칭 기도, 꽃이나 촛불 봉헌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성모의 밤 행사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다.
〔의 의〕 성모 성월을 정한것은 인간 구원을 위하여 간구하는 성모 마리아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한 것이고, 성모의 사랑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얻기 위한 것이다. 또 모든 성인 성녀들이 성모를 공경하였던 것처럼 성모 마리아의 하느님께 대한 순명과 사랑을 본받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당 혹은 가정에서는 성모 성월을 기념하는 예절을 특별히 거행하는 것이고, 성모의 모범을 따라 선행과 기도로써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하는 것이다. (→ 마리아론 ; 《성모 성월》 ; 성모 신심)
※ 참고문헌  P.F. Mulhern, 《NCE》 9, p. 1094/ 《성모 성월》, 한국교회사연구소, 1996/ G. Mathon, 《Cath》, pp. 464~465/ 조규만, 《마리아, 은총의 어머니-마리아 교의와 공경의 역사》,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8. [李洪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