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송

聖母誦

〔라〕Ave Maria · 〔영〕Hail 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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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렛 성모 영보 성당 벽에서 발견된 '기뻐하소서 마리아' 라는 뜻의 'X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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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렛 성모 영보 성당 벽에서 발견된 '기뻐하소서 마리아' 라는 뜻의 'XEM'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기도. 신자들이 가장 많이 바치는 기도 가운데 하나로, 신심 기도로 사용되고 있다.
〔구 성〕 이 기도는 '천사의 인사' (salutation angelique)와 엘리사벳의 찬양, 그리고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근거한 중재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모송 첫 부분은 천사 가브리엘이 나자렛으로 마리아를 찾아와서 했던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 이여,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라는 인사말(루가 1, 28)이고, 두 번째 부분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엘리사벳이 했던 "당신은 여자들 가운데서 축복받았으며 당신 태중의 아기 또한 축복받았습니다" 라는 인사말(루가 1, 42)이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은 후기에 덧붙인 청원의 기도이다.
〔기원과 변천〕 최초의 기도문 : 이 기도의 내용인 천사 가브리엘과 마리아의 대화(루가 1. 26-38)는 초기부터 묵상의 주요 주제였다. 나자렛의 성모 영보 성당 벽에 새겨진, 3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뻐하소서 마리아' 라는 뜻의 글자 XEM' 이 발견되었으며, 로마 프리실라 카타콤바의 벽화에 그려진 천사의 탄생 예고 장면도 3세기 초의 것으로 여겨진다. 식스토 3세 교황(432~440) 때에도 성화 가운데 천사의 예고 장면을 그린 것들이 많았으며, 레오 1세 교황(440~451)은 성탄 강론을 통하여 매일 그리고 매 순간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그리스도가 탄생한 사실을 기억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4세기 말 동방 교회에서는 마리아에게 했던 천사의 인사를 되풀이하며 마리아를 기념하였다. 천사의 인사는 에프렘(Ephraem, 306~ 373)의 시와 유명한 성모 찬미가인 <아카디스토스>(ἀκάθιστος)에도 나타나 있으며, 6세기경에는 천사의 인사말로 성모를 찬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편 천사 가브리엘의 인사와 엘리사벳의 인사가 함께 포함된 기도문은 《야고보의 원복음서》(11, 1)와 테르툴리아노(160~220?)의 작품(De virginibus velandis, 6 ; PL Ⅱ, 897)과 에우세비오(260~340)의 작품(Demonst. evang., 1. Ⅶ, c. I : PG XXⅡ 517) 등에 나와 있는데, 이 기도문이 전례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안티오키아의 세베루스(465~538) 이후 동방 교회에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도문에는 "당신은 영혼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잉태하셨기에" 라는 문구가 첨가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7세기의 이집트 룩소르(Luxor)에서 발견된 '콥트 교회의 점토판'(Coptic ostraca)과 서부 시리아와 이집트 전례에서도 발견된다(F.E. Brightmann, Liturgies Eastern and Westem, Oxford, 1896, pp. 128, 281).
서방 교회에서의 확산과 규정 : 서방 교회에서는 6세기경 대림 제4 주일 봉헌송에 천사의 인사말과 엘리사벳의 인사말이 조화를 이루어 나타나 있다. 이렇게 해서 천사의 인사와 엘리사벳의 인사말은 성모송의 전반부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 전반부에는 현재의 기도문처럼 예수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고, 15세기 말경에 와서 "태중의 아들" 다음에 "예수님"이라는 말이 삽입된 것으로 여겨진다. 성모송 전반부가 합성된 기도문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의 《응송집》(Liber Anㅅ=tiphonianus)에서였으며, 7세기에는 이 기도문이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과 대림 시기의 수요일과 대림 제4 주일 때의 봉헌송으로 사용되었다.
모자라빅(Mozarabic) 전례에서는 이 기도문이 7세기경부터 사용되었으며, 톨레도의 일데폰소(Ildefonsus Toleta-nus, 607~667)의 전기에서는 그가 이 기도문을 암송하였다고 한다(Mabillon, A.S. Bened., saec. II , Venise, 1733, p. 499). 이 인사말 기도문은 10세기 이후 성모 공경의 전례에서 화답송으로 사용되었으나, 이때까지도 이 기도문이 대중에게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11세기 이후 일반 신자들 사이에서 대중 신심으로 확산되었으며, 《성모 소성무 일도》(Officium Parvum B.M.V.)에서 두 개의 인사말이 암송되면서 수도원 공동체로 확산되었다. 또 1090년경에 독일 헨네가우의 아다(Ada V. Hennegau) 부인은 이 기도를 매일 150번씩 외우면서 매번 무릎을 끓거나 부복하였다고 한다(Acta SS Apr. I, 1865, p. 674). 이후 이 인사말 기도는 시편 150편을 대신하는 것으로 발전하였으며, 특히 가시아노(Joannes Cassianus, 360~432/435)와 아일랜드의 수사들은 이 기도문을 외울 때 장궤를 하였다.
베드로 다미아노(Petrus Damiani, 1007~1072)는 이 인사말 기도를 천상적이고 복음적인 단구(短句)라고 하면서 자주 암송하라고 신자들에게 권장하였으며, 1198년에 파리의 주교 오돈(Oddone)이 이 기도문을 '주님의 기도'나 '사도 신경' 처럼 암송하라(Statua Odonis, n. 1 : Mansi 22, p. 681)고 요구한 것은 이 기도 암송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인 규정이었다. 그 후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지역 교회 회의를 통하여 이와 유사한 규정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 기도는 실제적으로 '주님의 기도' 에 덧붙여서 암송되었으며, 이에 대한 규정도 발표되었다. 1266년에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사들에게 이러한 규정이 제시되었고, 1287년에 열린 밖르츠부르크(Würzburg) 교회 회의에서도 이 규정이 채택되었으며, 부분적으로 이 기도는 전례에서도 사용되었는데 1955년까지는 낮 기도의 시작 부분에 이 기도를 바쳤다. 교황 우르바노 4세(1261~1264)는 이 기도문 끝에 예수 이름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청원 기도의 첨가 : 후반부의 청원 기도는 1440년에 시에나의 베르나르디노(1380-1444)에 의하여 처음으로 덧붙여졌는데, 이때의 청원 기도는 "하례하나이다. 마리아 예수여, 천주의 어머니 성 마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Ave Maria Jesus, Sancta Maria, mater Dei, Ora pro nobis)였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교회 개혁자인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의 글에도 이러한 첨가문이 있었다.
현재의 청원 기도는 16세기 초에 여러 수도회의 공식 기도로 사용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즉 1514년에 메르체다리오회(Mercedariani)의 시간 전례에 유입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베네딕도회의 카말돌리 연합회(Camaldoles)에서 사용되었으며, 1525년에는 프란치스코회의 시간 전례 때에 사용되었고, "이제와 저희 죽을 때" 라는 표현이 이 수도회의 《성무 일도서》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현재와 같은 형태로 나타난 것은 교황 비오 5세(1566~1572)에 의하여 1568년에 개정된 《성무 일도》(Breviarium)에서였는데, 이때 성모송을 의무적으로 암송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리고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교황청에서 발간한 성무 일도서를 사용하도록 강조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형태의 성모송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1955년 3월 23일 발표된 <쿰 노스트라>(Cum Nostra)에서는 이 기도를 시간 전례에서 의무적으로 암송하도록 한 규정을 폐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모송은 지금도 신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기도문이며, 가장 많이 암송되는 기도이다. (→ 묵주 기도 ; 삼종 기도 ; 성모 신심)
※ 참고문헌  J.A. Jungmann, 《LThK》 1, p. 1141/R. Steiner, 《NCE》 1, p. 1123/ G. Jacquemet, (Cath》 1, pp. 1110~1111/ 《ODCC》, pp. 729~730/J.P. Lang, O.F.M., p. 241/ 조규만, 《마리아, 은총의 어머니 -마리아 교의와 공경의 역사》,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8, pp. 432~434. [李洪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