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하늘로 들어올려진 것" (DS 3903)을 기념하는 대축일. 8월 15일에 거행되며, 한국 교회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승천이 '올림을 받음' (asummptio)이기에 예수 승천과 구별하기 위하여 '몽소 승천' (夢召昇天)이라고 표현하였다.
〔성모 승천에 대한 교리〕 원천 : 성모 마리아의 육신과 영혼의 승천에 관한 기록은 신약성서와 가장 오래된 초대 교회의 문헌에도 직접적으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처음으로 성모 승천에 대해 언급한 인물은 살라미스의 주교 에피파니오(315-403)였는데, 그는 성모 승천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하느님 흠숭과 성모 공경을 구별하면서 지나친 성모 신심을 경고하였다. 당시 성모 공경과 신심은 매우 활발하여 4세기 말경 그노시스주의 경향의 신약성서 외경 작품들에서 성모 승천이 많이 언급되었다. <성모의 죽음>이나 <성모의 장례식>이라는 제목의 이 문헌들은 그리스어 · 라틴어 · 시리아어 · 콥틱어 · 아라비아어 · 에티오피아어로 번역되었으며, 복음사가 요한이나 사르디스(Sardis)의 멜리토(Melito, +190) 등이 그 저자였다. 이 기록들에는 성모 마리아가 예루살렘에서 사망했다고 되어 있으며, 성모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 이를테면 성모가 무덤으로 옮겨지던 중 육신이 살아나 승천하였다거나 혹은 죽은 지 3일 후에 부활했다는 이야기들도 수록되어 있다. 성모 마리아가 사망한 시기는 예수 승천 이후 3일 혹은 50일 등 의견이 다양하다. 이 작품들은 '젤라시오 교령' (Decretum Gela-sianum)을 통해 오류로 선언되었는데 교령이 단죄한 부분은 육신이 들어올려짐에 대한 교리보다는 그노시스주의적인 관점에서였다. 4~5세기의 예루살렘의 디모테오 설교 사본은 성모 마리아가 살아 있는 중에 육신과 영혼이 승천하였다는 신앙 고백을 담고 있다.
형성 과정 : 성모 마리아의 육신 승천 교의가 서방 교회에서 처음으로 정식화되어 거론된 것은 투르의 그레고리오(Gregorius Turonensis, 538~594)에 의해서였는데, 그는 멜리토의 저작 사본을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동방 교회에서는 크레타의 안드레아(Andreas Cretensis, 660~740)가, 아레오파지타의 디오니시오(Dionysius Areopagita)가 쓴 논술 <하느님의 명칭들>(Περὶ Θείων ὀνομάτων)에서 성모 승천을 증언하는 몇몇 구절들이 있다고 했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제르마노(Gemanus Constantinopolitanus, 634~733)의 작품들과 7세기의 다른 저자들의 작품들에서도 이 당시에 성모 승천 교리를 받아들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요한 다마세노(Joannes Damascenus, 655~750)는 강론을 통해, 마르치아누스(Marcianus, 396~457) 황제와 풀케리아(Pulcheria)황후가 예루살렘의 세례자 유베날리스(Bp. Juvenalis Hiero-solymis, +458)에게 성모의 시신을 인도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성모가 하늘로 올림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콘스탄티노플 근처 발케르네에 경당을 세웠다고 하였는데, 이는 성모 승천 교리를 교회 초기의 전승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성모 승천 교리가 신학적인 근거를 갖고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8~9세기경 아우구스티노의 서한에 의해서였다. 이후 대 알베르토(Albertus Magnus, 1206~1280),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보나벤투라(1217~1274), 교황 베네딕도 14세(1740~1758)에 의하여 성모 승천 교의가 재확인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1870년부터 교황들은 이 교의를 공식화하자는 요청을 끊임없이 받게 되었다. 결국 교황 비오 12세(1939~1958)는 1950년 11월 1일에 회칙 <무니피첸티시무스 데우스)(Munificentissimus Deus)를 통해 성모 승천 교리를 믿을 교리로 반포하였다. 그 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성모 승천에 관하여 "티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으며 지상 생활을 마치신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으시어, 주님으로부터 천지의 모후로 추대받으셨다. 이로써 마리아는 다스리는 자들의 주님이시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을 더욱 완전히 닮게 되셨다" (교회 59항)고 하였고, 이로써 성모 승천 교리는 교회의 정통 교리가 되었다.
〔축일의 기원과 변천〕 성모 승천을 기념하는 축일은 4세기경 안티오키아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공적으로 지켜진 곳은 5세기 초 예루살렘이었는데 이것이 8월 15일의 '하느님의 어머니' (Θεοτόκος) 축일이다. 훗날 이 축일은 성모 무덤 성당에서 기념되다가 3~4세기부터 순교자나 성인들을 사망한 날짜에 공경하게 되자 6세기경 명칭이 '성모 안식 축일' (Dormitio)로 바뀌었으며, 동로마 제국의 마우리치우스(Mauricius, 582~602) 황제는 자신의 제국 전체에서 이 축일을 지내도록 선포하였다.
이 축일이 로마에서 받아들여진 것은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피난 온 동로마 제국 내의 수도원들의 영향인 듯하다. 이 축일이 7세기에 서방 교회로 전해져 성모를 공경하는 축일로 지내졌음이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Sacra-mentarium Gelasianum)에 나타나며, 740년의 《복음집》에서는 이 축일을 '성 마리아의 안식 대축일' (Solemnitias de pausatione sanctae Mariae)이라고 하였고, 770년의 《그레고리오 성무 집전서》(Sacramentarium Gregorianum)에서는 '승천' 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교황 세르지오 1세(687~701)는 '주님 봉헌 축일' ,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 '마리아 성탄 축일' 처럼 이 축일에도 행렬을 하도록 함으로써 축일을 더욱 성대하게 하였다. 이 축일은 점차 갈리아 전례를 거행하는 지역들로 확산되었는데 서방 교회와는 달리 이 지역에서는 8세기 말까지 성모 승천 축일이 1월 18일에 기념되었다.
그러나 이 축일에 대한 확실한 근거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9세기경 서방 교회에서는 이 축일을 기념하는 것에 대해 다소 망설이는 경향이 있었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특히 로마 사람들은 라테란 대성전에 보관하던 그리스도 이콘을 로마 공회당으로, 다음에는 성모 마리아 대성전(Santa Mariaa Maggiore Basilica)으로 모시고 행렬하였으며,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서는 <로마 백성의 구원>(Salus populi romani)이라고 불리는 마리아의 이콘이 그리스도의 이콘을 영접하는 행사를 거행하였다. 그 다음에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가 거행되었는데, 이 행렬 예식은 교황 비오 5세(1566~1572)가 금지시키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847년에 교황 레오 4세(847~855)는 이 축일을 팔부 축일로 거행하도록 하였으며, 863년에 교황 니콜라오 1세(858~867) 역시 이 축일을 예수 부활 대축일이나 예수 성탄 대축일과 성령 강림대축일 등과 같이 대축일로 기념하도록 하였다. 중세 때에는 특히 남부 유럽 지역에서 이날에 첫 수확물들에 대한 축복이 이루어졌다. 한편 동방 교회에서는 1549년부터 이 축일이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여러 지역의 동방 교회에서는 현재까지도 이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서방 교회에서는 16세기의 《로마 성무 일도》(Breviarium Romanum)에 성모 승천 팔부 축일을 삽입하였는데, 현재까지 이 축일은 마리아 축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날로서 교회 전례력상 대축일이다. 1970년 미사 경본 개정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은 전야 미사가 인정되는 유일한 마리아 축일이 되었고, 한국에서는 이날이 의무 축일 중 하나이다.
〔전 례〕 교황 비오 12세가 마리아의 승천을 교의로 선포한 이후, 이 대축일은 교회 안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으며 이 축일에 거행되는 미사 전례도 발전되었다. 새로운 로마 전례력에 따르면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 미사는 8월 14일 저녁에 거행된다. 전야 미사의 본기도는 성모의 육체가 하늘에 올림을 받았음을 강조하는데, 하늘에 올림을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 차원에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한다. 성모 마리아의 완전함과 복됨, 동정의 몸과 흠없는 영혼이 누리는 영광, 그리고 부활한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음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느님의 아들을 낳은 분으로서 그분의 육체는 무덤에서 부패될 수 없다는 신앙이 드러나 있으며, 그러한 영광은 우리들도 참여하게 될 영광을 의미한다는 신앙도 표현되어 있다. 아울러 성모 마리아는 천상에서도 우리를 위해 중재한다는 '성인의 통공' 신앙도 포함되어 있다.
대축일 낮 미사는 대축일의 주제에 상응하게 거행된다. 미사 기도문은 대부분 1950년에 만들어졌는데, 새로운 것으로는 제1 독서와 제2 독서 그리고 고유 감사송이 있다. 이날의 복음(루가 1, 39-56)은 '마리아의 방문 축일' (5월 31일)의 복음과 같고, 제1 독서(묵시 11, 19a ; 12, 1-6. 10ac)는 여인과 그녀의 아이와 용과의 투쟁 이야기이다. 하느님의 백성과 사탄의 왕국 사이에 일어나는 투쟁을 묵시 문학적으로 묘사한 이 이야기는 하느님의 권능으로 승리를 얻는다는 것으로 끝난다. 수많은 교부들이 주장하였듯이 성모 마리아가 교회의 신비와 운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례에서도 묵시록의 여인이 마리아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제2 독서(1고린 15, 20-27a)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한 첫번째 사람이며 우리 부활의 보증이라는 내용이다. 이 축일의 신비는 고유 감사송에 잘 드러나 있는데, "완성될 당신 교회의 첫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네길에 있는 당신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라는 감사송의 기도문은 교회와 마리아의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의 의〕 교회의 모상인 마리아가 하늘에 올림을 받은 신비를 기념하면서 교회는 마리아 안에서 완성될 구원의 업적을 보고 희망을 갖는다. 따라서 성모 승천 대축일은 마리아 성탄 축일(9월 8일)과 함께 구원의 열매로서의 성모 마리아를 기억하는 축일이다. 원죄 없는 잉태가 구원의 첫 열매인 성모 마리아 신비의 출발점이라면 하늘에 올림을 받음은 성모 마리아 신비의 종착점이다. 그래서 이 두 축일은 성모 마리아 안에서 완수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이루는 두 기둥인 것이다. (⇦ 몽소 승천 ; 성모 몽소 승천 ; → 마리아론 ; 마리아 축일)
※ 참고문헌 C.E. Grady, 《NCE》 1, pp. 971~9751 David Bryan, The Modern Catholic Encyclopaedia, A Michael Glazser The Liturgical Press, 1994, pp. 56~571 J.P. Lang, O.F.M. 《DL》 p. 45/ Adolf Adam, The Litur-gical Year, New York, Pueblo Publishing Co., 1979, pp. 215~217/Elizabeth Johnson, Encyclopaedia Catholicism, pp. 104~ 105/ LH. Dalmais · P. Jou-nel, 김인영 역, 《전례 주년》,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6, pp. 163~163/ 조규만, 《마리아, 은총의 어머니 - 마리아 교의와 공경의 역사》,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8, pp. 421~422. [편찬실]
성모 승천 대축일
聖母昇天大祝日
〔라〕Sollemmitas in Assumptione Beatae Mariae Virginis · 〔영〕Solemmity of Assumption of the Virgin Mary into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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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의 사망 시기는 예수 승천 후 3일 혹은 50일 등 의견이 다양하나(왼쪽) 성모 승천 교리는 교회의 정통 가르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