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년 12월 25일 달종(E.d' Alzon, 1810~1880) 신부가 동유럽의 선교 사업을 목적으로 프랑스 님므(Nimes)에서 창립한 수도회. 총본부는 로마(Rome)에 있으며, 한국 본원은 전남 함평군 학교면 학교리 600-2번지에 있다. 가족 수도회로는 4개의 수녀회, 즉 성모 승천 봉헌자 수녀회 (Oblates del'Assomption) 성모 승천 교육 수녀회(Reli-gieuses de l'Assomption), 성모 승천의 관상 수녀회(Orantes de l' Assomption), 성모 승천의 작은 자매회(Petites Soeurs de l' Assomption)가 있는데, 이 가운데 '성모 승천 봉헌자 수녀회' 가 한국에 진출해 있다.
〔창립자의 생애와 수도회의 창립〕 1810년 8월 30일 프랑스 세벤느(Cévennes) 지방의 비강(Le Vigan)에서 태어나 13세 때 파리로 이주한 달종은 그 뒤 스타니슬라(Stanislas) 대학과 소르본(Sorbome)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여러 지성인들과 친분을 맺었는데, 특히 라므네(Lamennais, 1782~1854) 신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사제가 될 것을 결심했다. 그리고 몽펠리에(Montpellier)신학교를 졸업하고 로마에서 신학을 더 공부한 뒤 1834년 12월 26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듬해 11월 28일 님므 교구의 총대리 신부로 임명되어 그곳에서 45년 간 봉직하면서 교구 행정과 청소년 단체, 가난한 이들과 윤락 여성들의 보호 장소를 마련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1843년에는 님므에 있는 '성모승천 중고등학교' (collège de I' Assomption)를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한편 이 무렵부터 정치적 혼돈과 권력의 횡포로 교회가 분열되고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온갖 위협에 노출되어 있음을 직시하게 된 달종 신부는, 1845년 12월 25일 성모승천중고등학교의 교사 5명을 모아 '성모 승천 수도회' 를 창립하고, 5년 후인 1850년 12월 25일에 첫 서원식을 가졌다. 그리고 그 이듬해 파리에 중학교를 설립한 데 이어 가난한 가정의 청소년들이 성직에 나아갈 수 있도록 프랑스 곳곳에 신학교(Alummats)를 설립한 회원들은, 1873년에는 대중 신앙 교육을 목적으로 <순례자>(Le Pèlerin)를 창간하였고 1880년에는 신앙 일간지 <십자가>(La Croix)를 창간하기도 하였다. 한편 1862년에 로마를 순례하던 달종 신부는 교황 비오 9세(1846~1878)로부터 동유럽의 선교 사업을 축복한다는 말을 듣고 본격적으로 선교 사업에 투신하게 되었다. 열렬한 교황 지상주의자(ultramontanisme)였던 달종 신부는 1880년 11월 21일 님므에서 사망하였고, 1991년 12월 2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되었다.
〔세계 진출과 성장〕 성모 승천 수도회는 반성직주의(anticlericalisme)로 인해 1900년 한때 프랑스에서 추방당하기도 하였으나, 회원들은 그 후 스페인 · 네덜란드 · 벨기에 · 영국 · 미국 · 남아메리카 등지로 진출하기 시작하였고, 1903년에는 미국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주 우스터(Worcester)에 진출하여 성모승천고등학교(Assump-tion Preparatory School)를 설립하였다. 또 1939년 이전에는 콩고 · 브라질 · 튀니지 · 만주로 진출하였고, 1945년에는 아이보리 코스트 · 마다가스카르 · 알제리 · 뉴질랜드 등지로 진출하였다. 그러나 동유럽 국가에 진출한 회원들은 공산 정권으로부터 많은 고초를 겪기도 하였고, 만주에서는 진출한 지 얼마 안되어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성모 승천 수도회는 1923년 1월 30일 교황 비오 11세(1922~1939)로부터 회헌을 인준받았는데, 당시 700명 가량이던 회원수가 1950년대 초에는 1,800여 명으로 증가하였고, 1989년 공산권이 몰락한 뒤에는 창립 초기에 시작했던 동유럽 선교를 재개하였다. 그리고 케냐 · 탄자니아 · 한국 · 에콰도르 등의 국가로도 새롭게 진출하였다. 1999년 5월 현재 29개 국에서 956명(사제 653, 종신 서원 수사 120, 유기 서원 수사 158, 수련자 25)이 활동하고 있다.
〔영 성〕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명이었던 "주님의 나라가 임하소서"(루가 11, 2)를 모토로 하는 성모 승천 수도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어머니인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그의 배우자인 교회를 사랑한다. 이를 위해 달종 신부는 회원들이 3대 서원 외에 천국의 확장에 봉헌한다는 네 번째 서원을 하기를 원하였고, 회원들 역시 "우리를 분열시키는 이보다 우리를 일치시키는 분의 힘이 더 세다"(회헌 8항)라는 정신에 따라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정신을 일치시키고 애덕 안에서 마음을 일치시키며 생활하고 있다.
〔한국 진출〕 1991년 12월 25일 광주대교구장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대주교의 초청으로 광주시 금호동 723-10번지에 거처를 마련한 성모 승천 수도회 회원들은, 진출 즉시 회원 양성 등 본격적인 활동 준비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1996년 6월부터 3개월 동안 안동교구 옥산 본당에서 사목을 담당하였으며, 1999년 2월 4일에는 광주대교구 학다리 준본당의 사목을 담당하면서 본원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1999년 7월 현재 종신 서원자 2명, 청원자 1명 등 3명의 회원이 한국에서 성모 승천 수도회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몽소 승천회 ; → 성모 승천 봉헌자 수녀회)
※ 참고문헌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G.H. Tavard, 《NCE》 1, pp. 975~9761 L. Merklen, 《Cath》 1, pp. 386~3871 A. Odii, 《Cath》 1, pp. 954~955. 〔金成喜〕
성모 승천 수도회
聖母昇天修道會
〔프〕Augustins de l' Assomption(A.A.) · 〔영〕Augustinians of the Assumption(Assumption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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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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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승천 수도회를 창립한 달종 신부(왼쪽)와 신앙 일간지 <십자가>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