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공경과 그 표현. 교회의 공적 신심들 가운데 하나인 성모 신심은 초대 교회 때부터 시작되었다. 즉 성모에 대한 공경은 2세기부터 시작되었고, 4~5세기경 동방 교회에서는 성모의 축일이 제정되어 전례적인 공경이 시작되었으며, 431년 에페소 공의회의 결정을 계기로 마리아에 대한 공경이 널리 보급 · 권장되었다. 성모와 관련된 축일은 세계 교회가 다 함께 거행하는 것들과 일부 지방 또는 교구나 수도 단체에서만 거행하는 것들이 있는데, 공식적인 교회의 신심은 주로 미사 전례와 시간 전례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구원 경륜에 있어 탁월한 위치와 직능 및 덕행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전례적으로 성모 축일은 그리스도의 축일 다음으로 많다.
〔가치와 성격〕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천사들과 그 어떤 성인보다 높이 공경받아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어머니 · 천상의 모후 · 은총의 중개자 · 교회의 보호자 · 모든 그리스도인의 대도자(代禱者, 전구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모에 대한 합당하고 올바른 신심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신앙 생활을 더욱 알차게 만듦으로써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바칠 수 있게 도와 준다. 또 성모 신심은 가톨릭과 동방 교회 신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인 동시에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 문제(ecumenism)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따라서 성서학적 · 교리 신학적 · 영성 신학적 · 전례학적으로 중요한 논제가 된다.
그리스도교의 '신심' 은 하느님이나 하느님과 관련된 어떤 대상에 마음을 둠으로써 하느님을 섬기고 경배하려는 인간의 경건한 태도와 자세를 의미한다. 그런데 신심은 언제나 신앙의 내용-하느님의 계시 진리-과 일치해야 하고, 신심 행위는 신앙의 내용을 올바로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하느님과 관련된 대상에 대한 특수한 신심은 오직 신심의 궁극적인 대상인 하느님께 대한 경배를 증진하고 풍요하게 할 때에만 그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신자들이 올바른 신심 생활을 할 수 있게 배려하고 감독하며 교도권을 통하여 신심과 신심 행위를 인준하는 것이다.
성모 신심은 마리아가 성자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구원 신비에 특별하고 탁월하게 관여하고 참여함으로써 하느님과 결합함을 인정하고 공경하는 행위이다. 이 성모 공경은 모든 성인 위에 높임을 받아야 할 특이한 것이기는 하지만, 성자가 성부와 성령과 함께 받는 흠숭(adoratio)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신인(神人)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 일체인 하느님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모 신심은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참되고 합당한 공경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성모가 지닌 존엄성이 성모 마리아 자신의 구원사적인 위치와 직능에서 나옴을 인정하고 공경하는 행위(vene-ratio)여야 하고, 성모의 모성적이고 모후적(母后的)인 전구(傳求)를 청하는 기원(祈願, invocatio)이 되어야 하며, 성모 마리아에게 우리 자신을 바치는 봉헌 및 성모의 덕행을 본받는 모방의 성격을 지녀야 한다.
〔성서 및 신학적인 근거〕 신심이 신앙의 표현인 만큼 성모 신심의 근거는 성서와 교회의 전통에서 찾아야 한다. "때가 찼을 때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셨으니, 그이는 한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갈라 4, 4). 그런데 그 여인은 바로 악마의 권세를 짓밟고 승리할 구원자 그리스도의 어머니이다(창세 3, 15). 이렇듯이 성모는 그리스도를 낳음으로써 구약과 신약 및 대망과 성취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 루가 복음 1장 46-55절에서 마리아는 믿음과 겸손 가운데 메시아를 기다리는 모범적이고 완전한 신앙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마리아는 '주의 여종' (루가 1. 48)으로 구약의 희망을 성취시키는 시온의 딸인 것이다.
성서는 처녀에게서의 그리스도 탄생이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으로 인한 특전적인 사건임과 동시에 마리아에게서 탄생할 아기가 약속된 구원자요(루가 2. 11), 영원한 왕이며 하느님의 아들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루가 1, 30-35). 교회는 전통적으로 원조의 타락 후에 하느님이 메시아를 보내겠다는 최초의 약속인 원복음(原福音, 창세 3, 15)을 마리아와 결부시켰으며, 마리아를 새로운 하와로 여겨 왔다.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차지하는 이러한 특이하고 탁월한 구원사적인 위치가 마리아로 하여금 인류의 어머니와 교회(하느님의 백성과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어머니가 되게 한 것이다. 첫 여인 하와는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세상에 죽음과 불행을 가져왔으나,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생명의 원천인 그리스도를 낳고 마침내 세상에 구원과 축복을 가져온 여인이 되었으며 아울러 교회를 표상하게 되었다. 마치 첫 하와가 아담의 늑골에서 태어났듯이, 교회는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늑방으로부터 흘러 나온 물(세례의 상징)과 피(성체성사의 상징)로 태어나고 양육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요 신비체로서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또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적인 은총으로 매일같이 수많은 자녀들을 낳고 기르기 때문이다.
골고타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서 있는 마리아는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와는 좋은 대조가 되기도 한다. 루가 복음과 마태오 복음에서는 마리아가 남자의 힘을 빌리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하였다고 언급하였다(루가 1, 34-35 : 마태 1, 20-25). 이와 같이 성서에 언급된 동정녀의 그리스도 잉태는 하느님의 구원 행위가 인간의 능력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개입과 권능에서 나오는 것임을 드러내는 징표이다. 그리고 마리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출산한 후에도 평생 동정으로 지냈다는 교회의 전통은, 에페소 공의회에서 공인되어 종교 개혁 시기까지 모든 그리스도교가 믿어 왔다. 모든 여성 중에서 마리아만이 모성과 동정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음은 성모의 또 다른 특전이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인 그리스도를 잉태한 신령한 그릇이요,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된 영적인 신부(新婦)이다. 따라서 성모의 동정성은 모성과 더불어 완전한 것인 만큼 영구적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독생자이자 첫아들이고, 성령은 마리아를 그리스도만을 모시는 성전으로 삼았으므로 마리아는 온전히 그리스도에게만 자신을 바칠 어머니가 되었다. 따라서 성서는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를 복된 여인으로 묘사하였는데(루가 1, 43. 48), 이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자기 증여적인 사랑(sel-givinglove)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함을 뜻한다. 교부들은 마리아를 '지극히 거룩한' (all holy)이라는 말로 불렀으며, 동방 교회에서는 오늘날까지 이 칭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은총을 입은"(루가 1, 28) 마리아는 성령에 의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죄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잉태되는 첫 순간부터 성덕의 빛으로 꾸며졌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구속 공로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천상 유산을 이어받을 공동 상속자들(로마 8, 17)로서 성부를 영원한 아버지로 섬기고, 성자의 모친 마리아를 영적 모친으로 삼는다. 마리아는 인류와 교회의 어머니로서 모든 성인들의 통공(communio sanctorum)에 있어서도 그 어느 성인에 비길 수 없이 월등하다. 이런 이유에서 교회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전례적인 공경과 교도권이 권장해 온 신심 행위를 높이 평가하고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성모 공경은 그 본질상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 6)이며 은총과 덕행의 근원인 성자 그리스도에게로 향하는 것이므로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중심적인 의미를 지닌다. 즉 성모가 합당한 공경을 받음으로써 "성자가 옳게 이해되시고, 사랑과 영광을 받으시며 성자의 계명이 준수되도록 하는 것이다" (교회 66항).
〔마리아와 관계된 사적 신심들〕 교회의 전례적이고 공적인 공경 외에도 성모에 대한 사적인 공경과 신심 행위를 교회는 승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권장해 왔다. 교회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사적 신심은 지역적으로나 시대적으로 매우 다양하였고 변화 또한 많았다. 오늘날 온 교회에 널리 행해지고 보급된 신심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마리아 신심을 가장 잘 나타내는 기도로는 묵주 기도가 있는데, 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루르드(Lourdes, 1858) · 파티마(Fatima, 1917) · 보랭(Beauraing, 1932~1933)의 발현에서 묵주 기도를 특별히 권장하였음을 인정하고 있다. 둘째는, 가르멜의 성의(聖衣) 즉 스카풀라(sca-pulare)이다. 셋째는 기적의 메달인데, 이는 원죄 없이 잉태된 성모에 대한 공경을 위한 것으로서 1830년에 성모 마리아가 성녀 라부레(Catherine Labouré, 1806~1876)에게 친히 계시한 것이다. 1832년에 교회의 인가를 받아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라자로회(Lazanstae)의 사제들이 이 메달을 보급하기에 힘썼다. 가르멜 산 성모의 스카풀라와 기적의 메달은 준성사(準聖事, sacramentals)에 속한다. 넷째는 성모 칠고(聖母七苦)의 로사리오이다. 이 묵주 기도는 성모 통고를 묵상하면서 주님의 기도 한 번과 성모송 7번을 바친다. 다섯째는 성모 성심에 대한 신심이다. 이 신심은 특히 파티마의 성모 발현으로 널리 전파되었는데, 매월 첫 토요일에 5번 연이어 미사 참례와 영성체를 하고 묵주 기도 5단을 바친다. 특히 소련의 회개와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목적으로 조직된 '푸른 군대' 와 관련이 있다.
기타 신심 단체 : 이외에도 성모 신심과 관련된 조직이나 기구들 중에는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된 '레지오 마리애' (Legio Mariae)를 비롯하여 '성모회' (Sodality of Our Lady) '성모 성심회' (Confraternitas Ssmi et Immaculati Cor-dis Mariae pro conversione peccatorum) 등이 있다. 본래 예수회에서 시작된 평신도 모임으로 1563년에 로마에서 창설된 성모회는 개인 성화와 사도직 활동을 목적으로 하고, 성모 성심회는 1836년 12월에 프랑스 파리 '승리의 성모 대성당 의 주임 신부 데즈네트(Desgenette)가 창설한 신심 단체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1831~ 1846)에 의해 인준되었다. 특히 한국 교회에서의 성모 성심회는 병오박해(丙午迫害) 직후인 1846년 11월 2일에 창설되어 한국의 성모 신심 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 기적의 메달 ; 마리아론 ; 마리아 축일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 성모 발현 ; 성모 성심 ; 성모 성심회 ; 성모 승천 대축일 ; 성모 통고 ; 푸른 군대)
※ 참고문헌 E.R. Carroll, 《NCE》 9, PP. 364~368/ Elizabeth A. Johnson, Marian Devotion in the Western Church, Christian Spirituality, vol. 17, ed. by Routledge & Kegan Paul, London, 1987/ Rev. Valentino de Massa, Our Lady among Us, St. Paul Editions, 1978/ Sheeben, Mariology, vol. 1, B. Herder Book Co., 1946/ National Conference of Catholic Bishops, Behold Your Mother, United States Catholic Conference, 1973/ Karl Rahner · Herbert Vorgrimler, Concise Theological Dictionary, Burns & Oates Herder & Herder/ <교회 헌장>,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3. [李洪根]
〔한국에서의 성모 신심〕 한국 천주교회의 성모 신심은 다른 어느 신심보다도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성모 신심은 이미 교회 창설기에 형성되었고, 박해 시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자들의 신심 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으며, 순교 영성이나 일상 생활등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전승(傳承)과 기록들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1791년에 순교한 권상연(權尙然, 야고보)과 윤지충(尹持忠, 바오로)은 순교하기 전에 예수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을 여러 번 불렀다고 하며, 1798~1799년 사이에 순교한 이도기(李道起, 바오로)와 방(方) 프란치스코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였다. 또 1801년에 순교한 홍낙민(洪樂敏, 루가)은 매일 묵주 기도를 드렸으며, 김광옥(金廣玉, 안드레아)은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묵주 기도를 그치지 않았다. 이종국은 죽기 전에 성모의 도움으로 천당 복을 누리게 될 것으로 생각하였고, 이순이(李順伊, 루갈다)와 김사집(프란치스코)은 순교에 앞서 가족들에게 언제나 성모 마리아에게 의지하며 살 것을 당부하였다. 그뿐 아니라 신유박해 당시 관청에 압수된 성물과 서적 가운데는 여러 개의 묵주와 《성모 매괴경》 등의 책자가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들은 바로 조선 신자들이 성모 신심을 간직한 채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증거하고자 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초기 신자들의 성모 신심을 확연히 보여 주는 증거는 동정녀(童貞女)의 존재였다. 신유박해 당시까지 알려진 동정녀로는 윤점혜(尹占惠, 아가다), 정순매(鄭順每, 바르바라), 김경애(金景愛) , 조도애(趙桃愛), 박성염(朴成艷), 이득임(李得任)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 등으로, 동정녀의 출현은 초기 교회의 특기할 만한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신앙 형태는 정결(貞潔)을 강조한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와 당시 널리 보급된 《칠극》(七克)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동정에 대한 인식의 확산은 바로 성모 신심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으며, 1801년에 순교한 윤점혜가 성모의 발현을 목격하였다고 한 것은 그 단적인 예라 하겠다.
신유박해 이후에도 조선 신자들의 성모 신심은 계속 이어졌다. 우선 1811년에 조선 신자들이 북경 주교에게 보낸 서한에 성모의 전구를 통해 조선 교회가 재건될 수 있기를 청한 사실이 나타나며, 1827년에 옥사한 이경언(李景彥, 바오로)은 천주와 성모께 의지하여 모든 시련을 극복하였고 매질을 당할 때마다 예수 마리아를 불렀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1836년경에는 성모를 특별히 공경하고 성모의 전구를 청하기 위해 묵주 기도를 바치는 매괴회(玫瑰會)가 설립되었고, 교우들이 자신을 성모의 종으로 바치고 그의 특별한 보호를 구하고자 하는 성의회(聖衣會)도 이 무렵에 설립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1830년대에 이르러 교우들의 성모 신심이 신심 단체를 설립할 정도로 확대되고 조직화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L. Imbert, 范世亨) 주교는 1838년 12월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 를 조선 교회의 주보로 정해 줄 것을 교황청에 요청하였다. 1831년에 이미 조선교구가 설정되었지만, 당시까지도 조선 교회에서는 북경교구의 주보인 성 요셉을 주보로 모셔 오고 있었다. 앵베르 주교의 요청을 받은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성 요셉을 주보로 함께 모실 것을 조건으로 1841년 8월에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 를 조선교구의 주보로 승인하였고, 이를 계기로 조선의 성모 신심은 더욱 활성화되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이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는 라파엘(Raphael)호를 타고 항해를 하는 동안 성모 마리아에게 의지함으로써 보호를 받고자 하였고, 페레올(Ferreol, 高) 주교와 다블뤼(Daveluy, 安敦伊)신부는 이러한 성모 신심을 배경으로 1846년 11월 2일 공주 수리치골(현 공주군 신풍면 봉갑리)에서 '성모 성심회' (聖母聖心會)를 설립하였다. 또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는 1861년에 조선교구 전 지역을 8개 구역으로 나누면서 그중 7개 구역을 성모의 축일로 명명하였고, 1887년에 간행된 《한국 교회 지도서》에서는 성모 성심회 · 매괴회 · 성의회를 교회 내의 공식적인 신심회로 승인하였으며, 1898년에는 종현(鐘峴, 현 명동) 성당이'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에게 봉헌되었다. 이러한 신심은 일제 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1914년의 《대구교구지도서》, 1923년의 《서울교구 지도서》, 1932년의 《한국 교회 공동 지도서》 및 <회장 직분》(1923)과 《경향잡지》(1915, 1940) 등에도 성모 성심회 · 매괴회 · 성의회가 소개되어 있고, 또 여러 본당에 이러한 단체들이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1926년에 신축된 용산 공소에서 '성모 성심' 을, 1930년에 신축된 장호원(현 감곡) 성당에서는 '매괴의 성모' 를, 그리고 1937년에 신축된 공주(현 중동) 성당에서는 '성모 성탄' 을 주보로 정한 것에서도 교회 내의 성모 신심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광복 이후에는 광복일(1945.8.15)과 건국일(1948. 8. 15)이 성모 승천 대축일과 겹치면서 그것이 곧 한국 교회의 주보인 성모 마리아가 보살핀 결과라는 인식 아래 성모 신심이 특별히 강조되었다. 아울러 기존의 마리아 관련 단체와 더불어 외국으로부터 새로운 신심 단체들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는데, 1953년 3월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 군대)에 이어 그 해 5월에는 레지오 마리애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성모 무염 시태의 교리 선포 100주년이 되는 1954년에는 한국 교회가 다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고, 1976년에는 이탈리아로부터 마리아 사제 운동과 성모의 기사회가 도입되었으며, 1984년 5월 6일에는 방한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명동 성당에서 한국의 겨레와 교회를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는 장엄 예절을 거행하였다. 이러한 역사와 전통 속에서 성모 신심은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적인 신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아 오게 되었다. (→ 매괴회 ; 성모 성심회 ; 성의회)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方相根, <매괴회>, 《교회와 역사》 257호(1996. 10), 한국교회사연구소, pp. 7~12/ -, <성모 성심회>, 《교회와 역사》 263호(1997. 4), pp. 8~12/ -, <성의회>, 《교회와 역사》 266호(1997. 7), pp. 12~15. [方相根]
성모 신심
聖母信心
〔라〕devotio Mariae · 〔영〕devotion to 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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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신심은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구원 신비에 참여함으 로써 하느님과 결합함을 인정하고 공경하는 행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