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2월 8일 미로하나(M. Mirochna, 1908~1989) 신부가 일본 나가사키(長崎)의 고나가이(小長井)에서 설립한 수녀회. 본래 이름은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 성 프란치스코 수녀회' 이며, 성 콜베(Maximilian Kolbe, 1894~1941) 신부가 조직한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회'(Militia of Mary Immaculate)와 같은 정신으로 생활한다. 총본부는 나가사키에 있으며, 한국 지부는 충남 논산시 상월면 대촌리 122-1번지에 있다.
〔설립과 변모〕 1908년 11월 21일 폴란드 크라쿠프(Krakow)에서 7형제 중 넷째로 태어난 미로하나는 성장하면서 신심 깊은 부모의 영향을 받아 사제 성소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Ordo Fratrum Minorum S. Francisci Conventualium)에 들어간 형을 통해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회' 를 조직한 콜베 신부에 대해 알게 되어 곧 이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신학생 시절 그는 일본에서 활동하다 관구 회의차 폴란드에 잠시 들른 콜베 신부를 우연한 기회에 만날 수 있었는데, 미로하나는 이때 콜베 신부에게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그 결과 미로하나 신학생은 1930년 8월에 일본 나가사키에 파견되어 그곳에서 꼰벤뚜알의 정신과 성모 기사의 정신을 지도받았고, 1935년 9월에는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5월 콜베 신부가 귀국함에 따라 미로하나 신부는 28세의 젊은 나이로 소신학교 교장, 수도원장, 수련장을 차례로 역임하게 되었다.
이처럼 일본 꼰벤뚜알 회원들을 양성하는 동안 스승의 유산을 훌륭히 키우겠다는 일념에서 수녀회 설립 계획을 세운 미로하나 신부는, 1949년 12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에 나가사키의 고나가이에서 '성모의 기사 수녀회' 를 설립함과 동시에 회원 7명의 착복식을 거행하였다. 성모의 기사 수녀회는 이듬해 12월 15일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회헌을 인준받았고, 1953년 12월 15일에는 7명의 회원이 첫 서원을 하였으며, 1955년 2월 11일에는 수녀원과 성당을 완공하였다. 그리고 1959년 12월 15일 첫 종신 서원자를 배출하였다.
당시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가 운영하고 있던 오무라(大村)의 '성모 기사원' (원폭 피해 고아 시설)에서 첫 활동을 시작한 초창기 회원들은, 점차 활동 범위를 양로원과 유아원으로 확대하여 1961년 5월에는 중증 장애인 시설인 '하느님의 영광원' (みさかえの園)을 처음으로 운영하였으며, 현재는 사회 복지 및 교육 · 출판을 통한 선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 콜베 신부가 1982년 10월 1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면서 성인의 희생적인 삶이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 결과 성인의 모국인 폴란드와 한국인 지원자들이 일본에 와서 입회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8년에는 폴란드에 수도 공동체가 마련되었는데, 1999년 5월 현재 일본 나가사키 · 사가(佐賀) · 오이타(大分) · 도쿄(東京) 등 18개 공동체에 139명(종신 서원자 127, 유기 서원자 7, 수련자 5)이, 폴란드에는 20명(종신 서원자 8, 유기 서원자 7. 수련자 3, 청원자 2)의 회원이 있다.
〔영 성〕 성모의 기사 수녀회의 정신은 '성모 마리아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여 마리아의 도구로서 마리아의 이끄심 아래 자기 성화와 인류의 구원을 위해 힘쓰는 것'이다. 즉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께 대한 전적인 봉헌과 성모 마리아에 의해, 성모 마리아와 함께,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 성심의 왕국을 전파하기 위해 기도하고 일한다. 이처럼 수녀회는 성모 마리아의 뜻에 따라 무조건적인 헌신을 실천하는 한편, 콜베 신부가 평소에 충실히 본받고자 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난과 겸손, 그리고 사랑과 희생의 정신으로 살며 복음을 전한다.
〔한국 진출〕 성모의 기사 수녀회에서는 1989년에 두 번째 해외 지부를 한국에 설치하기 위하여 회원 2명을 울산에 파견하였으나, 공단이 위치해 있었던 관계로 지부 설립이 원활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90년에 대전교구로부터 진출 요청을 받게 되어 울산 수녀원을 폐쇄하고, 이듬해 8월 1일 2명의 일본인 회원이 대전으로 재진출하여 현재의 본원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 후 1992년 12월 21일에는 사회 복지 법인 '성모의 마을' (Niepo-kalanów)이 인가를 받았으며, 이듬해 9월 22일에는 논산시에 총 2,000평 규모의 중증 장애인 시설인 '성모의 마을' 기공식을 갖고 1995년 6월 10일 이를 완공하였다. 1999년 5월 현재 이곳에서 3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 콜베, 막시밀리안)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Maria Winowska, 金東昭 역, 《막시밀리안 콜베》, 성바오로출판사, 1974/ 《NCE》 16, pp. 239~240/ 上智大學 편, 《カ 卜 リ ソ 7 大辭典》 4, 東京, 富山房, 1954/ 《 キリㅈ卜敎 人名辭典》, 日本基督教團出版局, 1986. 〔金成喜〕
성모의 기사 수녀회
聖母 - 騎士修女會
〔라〕Congregatio Sororum Franciscananmab Militia Immaculatae(M.I) · 〔영〕Franciscan Sisters of Militia Immacu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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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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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자 미로하나 신부(왼쪽)와 성모의 기사 수녀회 초창기 회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