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자상

聖母子像

[라]imagines Mariae et Filii · [영]imagees of blessed Mary and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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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교회 전승에 의하면 루가가 성모자상을 최초로 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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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교회 전승에 의하면 루가가 성모자상을 최초로 그렸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초상화 성격이 짙은 그림이나 조상(彫像) .
[기 원] 동로마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성모자상은 복음사가인 루가에 의해 최초로 그려졌는데, 성모 마리아는 이 그림을 보고 "이 그림과 함께 언제나 나의 축복이 함께 있으리라" 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그림은 루가가 안티오키아에 있는 테오필로(Theophilus)에게 자신의 복음서와 함께 보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5세기 중엽에 이 성화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408~450)와 결혼한 아테네 철학자 레온시우스(Leonius)의 딸 에우도치아(Eudocia, 본래 이름은 Athenais) 황후에 의해 발견되어 황제의 누이인 성녀 풀케리아(Pulcheria, 399~453)에게 보내졌고, 풀케리아는 이 성화를 호데곤 클로이스터(Hodegon cloister)라는 곳에 보관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라는 뜻을 지닌 '아케이로포이에토스' (ἀχειροποίητος)라는 이 성화의 양식은, 이후 동로마 제국에서 제작되는 성모자상에 형식상 많은 영향을 미쳤다. 현존하는 최초의 성모자상은 3세기경 로마에 있는 프리실라(Priscila)의 카타콤바에 그려진 것으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유 형] 초기 교회 때부터 그려지기 시작한 성모자상은 오늘날에도 화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시대에 따라, 또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 성모자상을 구분하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여왕으로서의 성모(La Vierge de Majeste) : 이 유형의 성모자상은 성모와 예수가 정면을 향하여 있으며, 성모는 옥좌에 앉아 있고 예수는 성모의 무릎 위에 서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예수는 아이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형태는 축복을 내리는 어른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왕으로서의 성모는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 즉 '테오토코스' (Θεοτόκος)라고 선포한 이후 성모 공경에 대한 교의를 시각화한 것이다. 즉 성모는 신성(神性)을 지닌 인물을 낳은 여왕으로서 옥좌에 앉아 모든 성인과 사람들에게 상경(上敬)을 받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동로마 제국의 성모자상은 성모가 예수를 방패처럼 들고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니코포로스' (Nocopo-ros, 또는 Nikopoia)와 성모가 축복을 주는 그리스도를 한 손으로 가리키는 '호데게트리아' (Hodegetria)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유형의 성모자상은 대성전의 앱스(apse) 부분에 모자이크로 제작되었는데, 12~14세기 서유럽의 성당 건축에서는 출입문(facade)의 팀파눔(tympanum) 조각에도 도입되었다. 한편 13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호데게트리아나 니코포로스와 같은 동로마 제국의 이콘(Icon)이 유입되어 제단화가 발전하기도 하였으며, 특히 성모에 대한 신심이 깊었던 시에나에서는 큰 규모로도 제작되었다. 15세기에는 인문주의의 유행으로 여왕으로서의 성모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옥좌에 앉은 성모자를 중심으로 여러 성인이 대화하는 형태인 '사크라 콘베르사치오네' (Sacra Conversazione)라는 형식이 자주 그려지게 되었다. 이런 성모자상의 대표적인 예가 두치오(Ducio di Buoninsegna, 1255~1318)의 <왕좌의 성모>(Maesta)와 프랑스 샤르트르 주교좌 성당 서쪽 출입구의 오른쪽 문 위의 팀파눔 조각 등이다.
자비로운 성모(La Vierge de Tandresse) : 이 유형은 성모와 아기 예수가 모자로서의 인간적인 친밀감과 예수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강조한 것이다. 즉 성모가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갈락토트로포우사' (Galaktotrophousa, Maria Lactans)나 모든 이를 불쌍히 여기는 성모의 모성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집트에서 그 형태가 유래된 젖을 먹이는 성모의 모습은 로마 프리실라의 카타콤바에서도 나타나지만, 동로마 제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가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인문주의 사상이 태동하면서 다시 그려지게 되었다. 한편 젖을 먹는 아기 예수의 모습이 옥좌가 아닌 땅에 앉은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이러한 형식은 '겸손의 마돈나'(Madonna of Humility)라고 한다. 이 유형은 성모의 가난함과 겸손함을 본받기 위하여 수녀원의 독방에 걸도록 그려진 그림이 점차 확산된 것으로 15세기경에도 자주 그려졌다. 슬퍼하는 마리아의 모습은 9~10세기에 동로마 제국에서 제작된 '엘레오우사' (Eleousa) 유형의 성모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성모와 아기 예수가 다정하게 속삭이지만 성모의 눈은 슬픔으로 가득 차게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이콘의 대표적인 예가 <블라디미르의 성모>로, 1130년경에 모스크바로 전해져 지금도 러시아의 수호자로 모셔지고 있다. 13세기에 와서는 성모와 아기 예수가 더욱 가깝게 그려져, 아기 예수가 성모의 옷을 잡아 당기거나 뺨을 비비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보호자로서의 성모(La Vierge protectrice) : 인간 구원을 위한 중재자로서의 모습이 강조되어 표현된 유형으로 14세기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최후의 심판 때 성모의 망토 안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성모를 바라보며 자비를 구한다는 내용을 시각화한 것인데, 심판관으로 묘사된 예수와 세례자 요한도 삼각형 구도로 함께 그려진다. 보호자로서의 성모라는 도상을 탄생하게 한 것은 하느님께 인간 개개인을 변호하여 주는 변호자이자 중개자이며 중재자라는 성모 신심 때문이다. 동로마 제국의 이콘에서는 사람들이 망토 안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성모가 기도하는 자세로 서 있고 예수가 만돌라(mandola) 속에 있는 것으로 표현된 계시의 성모가 보호자로서의 성모 도상의 기본이 되었다. 14세기 후반에 이르면 성모와 함께 있는 그리스도는 사라지고, 성모의 망토 안에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끓고 있거나 성모 혼자 기도하는 모습이 세 폭으로 된 제단화 중앙에 단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가 제작한 보르고 산 세폴크로(Borgo S. Sepolcro)의 제단화가 대표적인 예이다.
[성모자 조각상] 성모자상이 조각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7세기경부터였다. 주로 옥좌에 앉은 성모상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성모는 여왕의 모습이고 무릎에 앉은 아기 예수는 왕관을 쓰고 있거나 복음서를 펼쳐 든 모습이다. 옥좌에 앉은 성모자상 역시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결정된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의를 시각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시기에 만들어진 성모자상은 규모가 작고 주로 목재에 도금을 한 형태였다. 9~11세기의 로마네스크 시대에는 목조로 된 옥좌의 성모자상에 금박을 입혀 감실 주위에 보관하였다.
12세기경부터는 성당이 고딕 양식으로 건축되면서 성당 외벽 기둥에 성상들이 원주 형태로 덧붙여졌는데, 이때는 독립된 조각 작품이라기보다는 건축의 일부처럼 제작되었다. 또 로마네스크 시대에는 성당 출입문의 팀파눔에 최후의 심판이 조각되었으나 이 시기에는 성모 신심이 고조됨에 따라 성모자의 모습이나 천상 모후의 관을 쓰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대체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미앵(Amiens) 주교좌 성당의 남쪽 출입문 트루모(trumeau)에 부조로 조각된 성모자상이다. 그러다가 14세기부터 건축과 조각의 기능적인 결합이 해체되면서 건축의 외관을 장식하고 기둥의 역할을 하던 조각상이 성당 내부에 독립되어 안치되게 됨으로써, 성모자상이 성당 내에 많이 안치되었는데 1200~1250년 사이에 프랑스 샤르트르의 주교좌 성당과 랭스 주교좌 성당에 안치된 성모자상이 대표적인 예이다. 15~16세기에는 목조 성모자상이 많이 제작되어 성당 내에 안치되었고 개인 소장을 위한 성모자상도 많이 제작되었다. 특히 성모의 얼굴 아랫 부분을 열면 세 폭 제단화 형태가 되는 15세기경의 성모자상도 있는데, 여기에는 중앙에 성부와 성령과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조각되어 있고, 양 측면에는 성인들이 조각되어 있다.
〔의미와 평가] 가톨릭 미술에서 성모자상은 신앙의 표상으로서 기도 생활 및 전례와 관련이 있으며, 교회사적으로는 각 시대의 성모 신심과 교의가 반영되어 만들어 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성모자상은 개인적인 기도 목적이나 공적인 전례를 위해 제단화로 주로 제작되었으며, 표현 양식은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성모 신심이 최고조에 달한 중세 시대에는 옥좌에 앉은 여왕의 모습으로, 인문주의가 유행하던 르네상스에는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인간적인 관계가 강조된 모습으로 그려졌으며,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이후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사라지고 성모의 승천이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나타내는 모습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또 1858년의 루르드와 1917년의 파티마와 1933년의 바뇌에서의 성모 발현 이후에는 발현 모습 그대로 제작된 성모상이 널리 보급되었으며, 각 지역과 국가 또는 민족 단위로 토착화된 모습으로 제작되는 경향이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한 성모상의 제작은 인간을 구원하고 하느님 나라로 이끌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온 구세주는 '마리아에게서 탄생한 하느님의 아들' 이라는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없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 마돈나 ; 성화상 ; 이콘 ; 피에타)
※ 참고문헌  Louis Réau, Iconographie de L'Art Chretien,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aris, 1957/ Hans Belting, Bild und Kult, C.H. Beck, Miinchen,1990/ F. Hartt, History ofltalian Reneissance Art, Harry N. Abrams Inc. Publishers, 1987/ James Snyder, Medieval Art, Harry N. Ab rams Inc. Publishers, 1989/ E. Panofsky, Gothic Architecture and Schola-ticism, New American Library, 1976/ P.A. Murray, The Oxford Companion to Christian Art andArchitecture, Oxford Univ. Press, 1996/ J. Le Gofff · R. Rémond, Histoire de la France Religieuse, Seuil, Paris, 1988.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