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회의 게마인더(G. Gemeinder, 1900~1985) 신부가 1954년 2월 11일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창립한 재속회. 정식 명칭은 '동정으로 어머니 되신 성 마리아의 카테키스타회' (The Secular Institute of the Catechists of Mary Virgin and Mother)이며, 한국 지부는 서울시 강북구 미아 9동 133-21번지에 있다.
〔기원과 창립〕 성모 카테키스타회를 창립한 게마인더 신부는 1900년 11월 독일 피시바흐(Fischbach)에서 태어나 신언회에서 운영하던 학교에서 초 · 중등 교육을 마친 뒤, 21세 때에 신언회 신학교에 들어가 1929년 5월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일본에 파견되어 아키타(秋田)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듬해 11월 23일 도쿄(東京)에서 젊은 여성들의 수양(修養) 모임인 '성모 자매회' 를 결성하였다. 교회에 봉사하는 지도자들을 양성하려는 데 목적을 둔 이 모임은 훗날 성모 카테키스타회를 창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35년에는 이미 회원수가 5,000명에 달할 만큼 급속히 성장하였다.
한편 게마인더 신부는 1941년부터 브라질로 건너가 일본인 이민 2세들의 교육 사업에 종사하다 1948년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는데, 당시 일본 사회는 패전 후의 재기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마인더 신부는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세상 속에서, 그리고 자기가 속한 환경 안에서 세상을 안으로부터 복음화하는 단체가 필요하다" 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황 비오 12세가 1947년 2월 2일 발표한 교황령 <프로비다 마테르 에클레시아>(Provida Mater Eccle-sia)를 통하여 재속회가 정식으로 공인되자 게마인더 신부는 이를 하느님의 섭리라 믿고 나고야에서 성모 카테키스타회 창립 준비를 시작하는 한편, 1950년 4월부터는 남산(南山) 대학의 교수를 겸하면서 성모 카테키스타회 학원을 운영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게마인더 신부는 1954년 1월에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 복음화성)으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고 같은 해 2월 11일 나고야 교구의 승인을 얻어 성모 카테키스타회를 설립했으며, 1980년 4월 24일에는 교황청 직속의 재속회로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10년 뒤인 1990년 5월 12일에 현 회헌을 인준받았다.
〔세상 안에서의 봉헌의 삶〕 성모 카테키스타회는 "주님의 복음이 만민의 것이 되기를"이라는 이상을 가지고 사도직을 수행한다. 특히 교회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국가와 사회 전체의 복음화에 협력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한다. 이 같은 사명 아래 부르심을 받은 회원들은 그리스도 안에 특별한 가족으로서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도우며 나눈다. 혼자 생활하느냐 아니면 다른 회원들과 함께 공동 생활을 하느냐는 생활 현장과 조건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며, 다른 수도회와는 달리 회원 개개인이 신자로서 공소 · 학교 · 유치원 · 사회 복지 단체 등에서 자신의 전문직을 통해 사회와 관계를 갖는다. 성모 카테키스타회의 사도직은 일정한 활동이나 방법을 고수하지는 않는다. 어떠한 직종에서도 활동할 수 있으나, 그 활동은 그리스도교적 쇄신으로 바꿀 사명을 지닌 카테키스타(교리 교사)의 자세로 임하여야 한다.
성모 카테키스타회는 복음적 권고에 따라 청빈 · 정결 · 순명의 3대 서원과 사도직에 전생애를 봉헌할 것을 서약한다. 또 세속에서 신자로서 자신의 일을 갖고 있는 이들은, 누룩이나 소금과 같이 세상이 내면에서부터 그리스도교적인 쇄신이 되어 가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재속회의 명칭 그대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로 그분의 뜻대로 생애를 바친 티없으신 동정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께 대한 봉헌의 탁월한 모범으로 모신다.
〔사도직 활동〕 1982년 4월 20일 서울대교구장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초청으로 입국한 시모츠지 미호코(下辻三保子)와 나리타 도모코(成田友子)는 수유동(옛 가톨릭 교리 신학원 건물)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였으며, 이듬해 6월 25일 현재의 본부 건물을 완공하여 이전하였다. 그리고 1984년 3월 19일에 첫 지원자가 입회하였고, 1987년 5월 24일에는 첫 번째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에 앞서 1985년 3월에 전주교구 해성중학교의 종교교사로 회원 1명이 파견된 데 이어 1986년 1월에는 사북 본당 및 모니카의 집에 파견되었고, 1987년 4월 5일에는 원주교구 태백 지구 사회 복지 센터(1993년 2월 28일 폐쇄)에도 파견되었다. 이어 1989년 3월에는 '대철 베드로의 집' 에, 그리고 같은 해 10월에는 '대건의 집'에 파견되었다. 1999년 4월 말 현재 회원수는 21명이며, 그중 영구 봉헌자는 12명이다. (→ 재속회)
※ 참고문헌 한국 수도자 장상 연합회 양성위원회 편, 《오늘의 수도자들》, 분도출판사, 1983/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원주교구 삼십년사》, 천주교 원주교구, 1996/ 上智大學 편, 《カトリック大辞典》 4, 東京, 富山房, 1954, pp. 49~50, 76. [金成喜]
성모 카테키스타회
聖母 - 會
〔라〕Institutum Catechistarum B. Mariae Virginis et Matris · 〔영〕Institute of the Catechists of 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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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자 게마인더 신부(왼쪽)와 서울 강북구 미아9동에 소재한 성모 카테키스타회 한국 지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