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교황(251~253). 순교자. 축일은 9월 16일. 로마의 사제이던 고르넬리오는 251년 4월 성 파비아노 교황의 후임으로 선출되었다. 고르넬리오가 재임 기간 동안에 특히 주력한 일은 배교를 선언했던 신자들을 용서하여 다시 교회로 받아들이는 화해 정책이었다. 왜냐하면 데치우스 황제(249~251)의 대박해 동안 배교한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에서 박해가 끝난 뒤 다시 교회로 복귀하기를 희망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르넬리오가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약 14개월 간의 교황 공위(空位) 시기에 교회를 통치했던 노바시아노는 고르넬리오와는 달리 배교를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죄로, 심지어 죽을 때까지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단정하면서 교회 역시 그러한 죄를 용서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자신이 교황이라고 선언하며 고르넬리오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그러나 고르넬리오는 교회가 통회하는 배교자들을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재천명하고 합당한 보속을 이행한 후에는 교회에 나올할 수 있고 성사도 받을 수 있다고 선포하였다. 고르넬리오의 제의로 251년 10월에 개최된 로마 회의는 60명의 주교와 많은 사제와 부제들이 참석한 모임으로, 카르타고 교회 회의에서 천명한 사실을 재확인하였으며 노바시아노 일파의 가르침을 단죄하고 교회 질서를 바로잡았다. 그러나 이듬해 6월, 고르넬리오는 갈루스 황제 박해 때에 체포되어 쳄툼첼레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순교자로서의 삶을 마감하였다. '순교자' 라는 말은 4세기 순교록에는 없으나 그 후 이장된 성 갈리스도 카타콤바에 있는 그의 무덤에 적혀 있다. 교회는 고르넬리오와 치프리아노가 노바시아노 이교와의 대결 중에 맺은 굳은 우정을 기억하기 위해 두 사람의 축일을 9월 16일 같은 날 지내고 있다. 태양이 있는 곳에도 어두운 그늘은 있듯이 교회에도 언제나 이단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요한 1, 5) . (→ 노바시아노 이교)
※ 참고문헌 김정진 편역, 《가톨릭 黑人傳》, 가톨릭출판사, 1987/ 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출판사, 1987/ 배문한, 《그리스 도의 향기》, 성모출판사, 1993/ John Coulson, The Saints, Guild Press, New York/ 《NCE》. 〔裵文漢〕
고르넬리오 (?~253?)
Comel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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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고르넬리오(성 갈리스도 교황의 카타콤바에 있는 프레스코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