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매장하였던 예루살렘의 동굴. 이스라엘 성지(聖地)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에는 무덤에 관한 언급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특히 신약성서에서는 서로 다른 세 개의 그리스어(μνημεῖον, τάφος, 'ἐνταφιασμός)가 사용되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가 묻혔던 무덤이 아리마태아의 요셉(Josephus ab Arimathaea)의 소유였으며, '바위를 뚫어 만든 새 무덤' 이었다고 하였으나(마태 27, 60 ; 루가 23,53), 복음서 어느 구절에도 그 무덤 위치가 분명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또 마르코의 복음서에는 그 무덤이 한번도 장사를 지낸 적이 없는 '새 무덤' 이었다고 언급되어 있지도 않다(마르 15, 46). 반면에 요한의 복음서는 다른 공관 복음서와 상당히 차이가 있는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신 곳에는 동산이 있었고···(그날은)유대인들의 준비 일이었고 또 무덤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거기에 예수를 안장했다" 고 하였다(요한 19,41-42). 즉 아리마태아의 요셉의 소유나 새 무덤도 아니었으며, 단지 무덤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안장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변 천] 3세기까지 성묘의 정확한 위치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단지 135년경에 로마의 하드리아누스(Hadri-anus, 117~138) 황제가 골고타 언덕 위에 제우스 신전을 세우고 성묘 위에는 아프로디테 신전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골고타와 성묘가 있는 장소는 교회 내의 전승으로 전해졌다. 그러던 중 신자가 된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Helena, 255~330)가 326년경에 예수가 못박힌 골고타 언덕과 예수가 매장되었던 묘를 찾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왔다가 그리스도가 못박혔던 십자가를 발견하였다. 헬레나는 콘스탄틴 대제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콘스탄틴 대제는 십자가가 발견된 장소와 골고타 언덕, 그리고 성묘가 있는 장소에 대성전을 짓기로하였다. 콘스탄틴 대제는 우선 예루살렘의 주교인 성 마카리오(Macarius, +334)에게 성묘가 있는 위치를 알아내도록 명령하였는데, 마카리오는 그 무덤이 매몰되었기 때문에 다시 파내야 했지만 하느님의 도움으로 그 위치를 찾아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에우세비오(EusebiusCaesariensis, 260?~339)가 자신의 저서 《콘스탄틴의 생애》(Vita Constantini)에서 '마카리오에게 보낸 콘스탄틴 대제의 편지' 를 소개하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콘스탄틴 대제는 335년경에 무덤 위에 서 있던 아프로디테 신전을 허물고 원형 돔 형식으로 주의 무덤 성당(Church of the Holy Sepulcher), 즉 '부활 성당' (ἀνάστασις)을 세워 336년에 축성하였다. 이 성당은 언덕의 서쪽 끝에 있었다. 콘스탄틴 대제는 또 동산 안에 '골고타 성당'도 세웠는데, 콘스탄틴 대제의 이러한 성지 개발은 4세기 말경에 쓰여진 《에테리아 여행기》와 에우세비오에 의해 밝혀졌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당한 장소와 예수의 무덤을 둘러싼 위치에 세워지도록 설계된, '성묘 성당' 으로 불리기도 하는 주의 무덤 성당은 614년경에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629년에 대수도원장 모데스토(Modestus)에 의하여 복구되었다가 1009년경 카이로 출신의 무슬림 칼리프 하킴(Caliph Hakim)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다. 무슬림들에 의한 성전 파괴는 11세기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 1149년에 현재의 성전으로 재건되었는데, 여러차례의 재건 작업이 이루어졌음에도 이 성전의 본래 모습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1852년에 터키가선포한 '현상 유지법' 에 따라 이 성전은 현재 6개 종파(서방 교회 · 그리스 정교회 · 아르메니아 정교회 · 롭트 교회·시리아 정교회 · 에티오피아 정교회)에 의해 나뉘어 관리되고 있다.
이 성당의 평면을 보면, 전면에 아트리움이 있고 배랑(拜廊, narthex)을 지나 5랑식 바실리카식 성당인 '순교자 기념 경당' (martyrium)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순교자 기념 경당 에는 금색으로 칠한 우물 천장이 있고 벽은 대리석으로 되었으며, 앱스(apse) 부분의 벽에는 12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원주가 둘러서 있다. 그 뒤에는 제2 아트리움(atium)이 있는데, 그 안쪽에 있는 회랑(rotuna) 중앙에 예수가 묻혔던 성묘가 있고 그 주위에 중층의 주회랑(周回廊, amburatory)이 둘러 있어 '부활의 회랑' (anastasis rotunda)이라고 불린다. '순교자 기념경당' 앱스 부분에 인접한 제2 아트리움의 한쪽 구석에는 예수가 못박힌 자리를 기념하는 '예수 십자가가 발견된 경당' (crux)이 있다.
성묘로 지정된 장소는 현재의 성전 성벽 안에 있는, 훗날 보다 더 크게 지어진 둥근 모양의 건물(aedicule)에 있다. 러시아풍의 둥근 지붕이 있는 현재의 성묘는 1816년에 그리스 정교회와 러시아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내부의 대리석판이 있는 곳이 예수의 시신이 있었던 곳이다. 바로 그 밑에 원래의 무덤 돌이 있다고 믿어지고 있다. (→ 성지 순례 ; 예루살렘)
※ 참고문헌 정양모 · 이영헌 공저, 《이스라엘 성지, 어제와 오늘》, 생활성서사, 1988, pp. 29~33/ Sami Awwad, 동정 성모회 우리 성서 모임 역, 《이스라엘 성지》, 1994, pp. 63~64, 671 Jerusalem, PalphotLtd., Israel/ Sir Banister Fletcher, A History ofArchiecture, Charles Scrib-ner's Sons, 18판, 1975/ Peter & Linda Murray, The Oxford Compamion toChristian Art and Architecture, Oxford Univ. Press, 1996, p. 231/ RivkaGonen, Biblical Holy Places an Illustrated Guide, Jerusalem, 1994, pp.129~136/ 《ODCC), pp. 782~783. [金正新]
성묘 [라]Sacrum Sepulchrum [영]Holy Sepulche
聖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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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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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당한 장소와 예수의 무덤을 둘러싼 위치에 세워진 '주의 무덤 성당' (왼쪽)과 내부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