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토〕 지금의 그리스 본토와 펠레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 지협 이스무스 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고린토 자체는 항구 도시가 아니지만 양편에 두 항구를 끼고 있었다. 북쪽 고린토 만에는 레카이온 항구가 있어 아드리아해로 통했고, 동쪽 사론 만에는 겐크레아 항구가 있어 에게해로 통했다. 이처럼 고린토는 육로로는 남북으로 통하는 통로요, 해로로는 동서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따라서 고린토는 동서간의 자연적인 무역 중심지가 되어 상업이 번창했다. 호머는 이 도시를 일컬어 '부유한 고린토 라고 하였다.
기원전 146년 고린토 역사에 중요한 분기선이 그어졌다. 그것은 로마가 고린토를 초토화시켰기 때문이다. 초토화된 후에 시민들은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팔려 갔다. 도시는 파괴되었고 재건은 금지되었다. 이후로 고린토는 대부분이 로마의 공유지가 되었다. 고린토는 그 후 100년 동안 폐허가 된 채로 있다가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체사르에 의해 로마식민지로 재건되었다. 마침내 기원 전 27년 고린토는 아카이아(지금의 펠레폰네소스 반도) 속주의 총독부로 승격되었다. 당시 고린토는 그리스인, 로마인, 유대인, 동방인 등 여러 인종이 어울려 사는 인종박람회 같은 도시였다. 따라서 인종적으로 다양한 주민들 사이에는 종교적 혼합주의가 성행하였다. 우선 그리스인들은 미남신 아폴로, 사랑의 미녀신 아프로디테, 예술의 여신 아테나, 운명의 여신 튀케,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지하의 남신에게 강간당한 코레, 이스무스에 신전을 지닌 바다의 신 포세이돈 등을 섬겼다.
로마인들은 율리우스 체사르,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를 신격화하여 섬겼는데, 고린토 서쪽 박물관 옆에 그들을 모신 신전이 있었다. 고린토인들은 이집트 치유의 신 사라피스, 이집트 바다의 여신 이시스도 섬겼다. 유대인들은 물론 유대교를 믿었다. 이렇듯 바울로가 전도한 고린토는 글자 그대로 종교 다원 사회였다.
일상 통용어는그리스어였고, 행정 기관에서는 라틴어도 썼다. 고린토는 교통과 상업이 발달해서 경제적으로는 윤택했으나, 문화적으로는 천박하고 윤리적으로는 퇴폐한 도시였다. 빈부의 차는 극심했는데 그리스도인들 절대 다수는 빈민층에 속했다.
〔고린토 교회 창립〕 고린토는 에페소 다음으로 중요한 바울로의 선교지였다. 바울로는 제2차 전도 여행 때 (50~52년경) 오늘날의 터키에서 그리스로 건너가서 네 교회를 설립하였다. 우선 그리스 북부 지역 마케도니아에 필립비 교회, 데살로니카 교회, 베레아 교회를 창설했다. 바울로는 실라와 디모테오를 베레아에 남겨 두고(사도 17, 14) 홀로 남행하여 문화 도시 아테네에서 전도했 으나 실패하고 교회를 세우지 못했다(사도 17, 16-34). 실라와 디모테오가 아테네로 내려오자 바울로는 데살로니카 신도들의 신앙 생활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또 한편 그들을 재교육하려는 뜻으로 디모테오를 데살로니카에 파견하고(1데살 3, 1-5), 바울로 자신은 그리스 남부 지역 아카이아 속주로 내려갔다. 이때 실라도 동행한 것 같다. 바울로는 아테네에서 행정과 상업의 중심지 고린토로 내려가서 무려 18개월 간 머무르면서 고린토 교회를 세우고 활발히 전도하였다(사도 18, 1-17). 바울로는 아테네에서 고린토로 내려가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칙령에 의해 고린토로 쫓겨온 유대계 그리스도인 부부 아퀼라와 브리스킬라를 만나 그 집에 얹혀 살면서 천막 만드는 일을 하는 한편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가르쳤다(사도 18, 1-4). 그 후 이 부부는 바울로를 따라 에페소에서도 전도했다(사도 18, 18-28). 실라와 디모테오가 마케도니아에서 고린토에 도착하였다(사도 18, 5). 그리스도 설교 때문에 유대인들과 충돌이 생겨(사도 18, 5) 바울로는 회당을 떠나야만 했고, 유대교에 동조하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방인 디디오 유스도의 집에 기거하면서 주로 이방인들을 상대로 전도하였다(사도 18, 6-7). 좋은 결과로 인하여 회당장 그리스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사도 18, 8 ; 1고린 1, 14). 또한 고린토인들 가운데서도 많은 이들이 바울로의 설교를 듣고는 믿고 세례를 받았다(사도 18, 8).
고린토 교회의 초창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는 유대인들이 더러 있었다. 아컬라와 브리스퀼라 부부(사도 18, 1-4 · 18-29 ; 1고린 16, 19 ; 로마 16, 3-5), 회당장 그리스보(사도 18, 8 ; 1고린 1, 14), 회당장 소스테네(사도 18, 17 ; 1고린 1, 1)는 모두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밖에도 이름은 알려져 있으나 어떤 인종인지 성분을 밝힐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예를 들면 고린토에서 제일 먼저 예수 신앙을 받아들이고 바울로에게 세례를 받은 스테파나 집안 사람들(1고린 1, 16 ; 16, 15-17), 바울로에게 세례를 받고 나서 자기 집을 고린토 신도들의 집회 장소로 제공한 가이오(1고린 1, 14 ; 로마 16, 23), , 에페소에서 전도하던 바울로에게 고린토 교회 소식을 전한 여신도 클로에 집안 사람들인데(1고린 1, 11), 이들이 유대인들인지 이방인들인지 분명치 않다. 고린토에서 로마 신도들에게 문안한 이들(로마 16, 21-23) 가운데 상당수도 고린토 교회의 초창기 신도들이다. 곧, 루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드로 같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로마서를 대필한 데르디오, 고린토 시의 재정관 에라스도, 과르도 등이다. 그리고 고린토 동쪽 외항 겐크레아 신도 중 이름이 알려진 이는 여신도 페베인데, 바울로는 그를 일컬어 "겐크레아 교회의 봉사자"라고 한다(로마 16, 1). 54년경 에페소에 있던 바울로를 스테파나와 함께 찾아간 포르두나도와 아카이고(1고린 16, 17) 역시 고린토 교회의 초창기 신도였다.
고린토 전도 말엽 유대인들이 바울로를아카이아총독 갈리오의 법정에 끌고 가서 그를 종교 이단자로 고발하였다. 그래서 바울로는 고린토를 떠나야만 했다. 이 무렵에 사도 바울로는 고린토 교회 창립을 마무리하고, 아퀼라와 브리스킬라를 데리고 겐크레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에페소, 가이사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곳 교회에 인사한 다음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사도 18, 18-22).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현재의 신약성서에서, 바울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오직 고린토 1 · 2서 두 편만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바울로는 적어도 고린토인들에게 네 개의 편지를 썼다(1고린 5, 9 ; 2고린 2, 3-9 ; 7, 8).
바울로는 제3차 전도 여행 때(53~58년경)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 에페소에서 27개월 가까이 머무르면서(사도 19, 8-10 ; 1고린 16, 8-9) 고린토인들에게 편지를 발송한 바 있다. 이것이 신약성서에 들어 있는 고린토 전서이다(B). 그러나 바울로는 이 편지에 앞서 고린토인들에게 또 한 통의 편지(A)를 써 보냈다고 한다(1고린 5, 9). 불행히도 이 편지는 전해 오지 않는다. 이 편지(A)에서 바울로는 음행하는 자들과 상종하지 말라고 신도들에게 명했다. 바울로가 고린토 전서(B)를 보낸 다음에 고린토 신도들에게 편지를 몇 통이나 더 보냈느냐 하는 점을 밝히기란 매우 어렵다. 즉, 지금의 고린토 후서가 한 통의 편지냐, 아니면 적어도 두 통(1-9장, 10-13장)을 한데 묶은 것이냐, 혹은 대여섯 통을 한데 모아 놓은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아직도 분명하게 내려지지 않은 실정이다. 다만 지금의 고린토 후서에는 바울로의 편지 두 통이 들어 있다는 것(1-9장, 10-13장), 10~13장 편지가 1~9장 편지보다 먼저 쓰여졌다는 것이 통설이다. 10~13장 편지는 바울로가 고린토 신도들에게 보낸 세번째 편지(C)로서 "눈물 편지" 라 하고, 1~9장 편지는 바울로가 고린토 교회로 보낸 네번째 편지D로서 "화해 편지"라 부른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 구 조
1, 1-3 : 인사와 축복
1, 4-9 : 하느님께 감사 기도
1, 10-4, 21 : 고린토 교회의 분열
5, 1-6, 20 : 고린토 교회의 음행과 송사 문제
7, 1-40 : 결혼 문제
8, 1- 11, 34 : 우상에게 바친 고기, 성만찬 문제
12, 1- 14, 40 : 성령의 은사 문제
15, 1-58 : 그리스도와 죽은 자들의 부활
16, 1-24 : 맺음말과 축복 기도
(2) 집필 동기 : 바울로가 에페소에서 한창 전도하고 있을 때 고린토 교회에는 여러 가지 불상사가 있었다. 바울로는 두 갈래 경로로 고린토 교회 신도들의 소식을 들었다. 우선 "클로에 집안 사람들이" 고린토로부터 에페소에 와서, 고린토 신도들이 네 파로 갈라졌다는 소식을 전했다(1고린 1, 11-17). 클로에가 누구인지 그 신원을 밝힐 수는 없으나, 고린토 교회의 유력한 여신도임에는 틀림없다. 그런가 하면 고린토 신도들이 결혼과 독신에 관한 질문서를 작성하고 심부름꾼들을 시켜 바울로에게 보냈다(1고린 7, 1). 이 질문서를 바울로에게 전하고, 그에 대한 답서로 고린토 전서를 받아 가지고 돌아간 이들이 고린토 신도들의 심부름꾼들인 스데파나와 포르두나 도와 아카이고였다(1고린 16, 17). 바울로는 인편과 서면으로 걱정스러운 소식들을 접하고 편지를 써 보냈으니 그것이 곧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이다. 바울로는 이 편지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시고 부활하신 예수께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고린토 교회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풀어 나간다.
(3) 바울로가 이 편지에서 다룬 문제들 : ① 고린토 교회는 바울로파, 아폴로파, 게파파, 그리스도파 등 네 당파로 분열되었다(1, 12-17). ② 신도들 중에는 "아버지의 처"를 데리고 사는 패륜아가 있는 데도 신도들은 그를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 바울로는 이 사람을 교회에서 제거하라고 지시한다(5, 1-13). ③ 신도들끼리 재산 문제로 사회 법정에 고소하는 사례가 있었다(6, 1-11). ④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구실삼아 사창가를 출입하는 신도들도 있었다(6, 12-20). ⑤ 7장에서는 결혼, 이혼, 독신 등 성 윤리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⑥ 당시 지중해 고린토 도살장에서는 우상 앞에서 제사를 지낸 다음 짐승을 잡거나 또한 고기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 신도들 가운데서 약한 양심을 지닌 이들은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귀신 씌인 것이라 하여 먹지 않았다. 반대로 강한 양심을 지닌 이들은 귀신 따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만물은 주님이 지어 내신 것이라는 확신을 지닌 까닭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고기를 먹었다. 바울로는 원칙적으로는 강한 양심을 지닌 이들의 편을 든다. 그러나 두 부류의 신도들이 함께 식사하는 경우에는 강심장을 소유한 이들은 소심한 신도들을 고려하여,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상에 차려서도 안되고 먹어서도 안된다는 입장을 표명한다(8장 ; 10, 1-11, 1). ⑦ 11, 2- 14, 40에서는 공동체 모임을 다루는데, 특히 11, 17-34에서는 성만찬 때에 야기된 비행을 다룬다. ⑧ 12- 14장에서는 성령의 은사 문제를 다룬다. ⑨ 15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주장한다. ⑩ 예루살렘 신도들을 위한 모금을 촉구한다(16, 1-4).
(4) 집필 장소와 연대 : 바울로는 에페소에서 오순절 이전 봄철에 고린토 전서를 썼다(16, 8). 바울로는 제3차 전도 여행 중에(53~58년경) 에페소에서 무려 27개월 가까이 전도했다(사도 19, 8-10 ; 20, 31). 짐작컨대 사도 바울로는 54년 봄에 고린토 전서를 쓴 것 같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1) 구 조
화해 편지(1~9장)
1, 1-2 : 인사와 축복
1, 3-11 : 환난 중에 위로하시는 하느님께 감사 기도
1, 12-2, 13 : 바울로가 세번째 방문를 늦추게 된 사연
2, 14- 7, 4 : 사도직에 대한 소신
7, 5-16 : 디도를 고린토로 파견하다
8- 9장 :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을 촉구하다 눈물 편지(10~13장)
10, 1-18 : 반대자들과 고린토 신도들을 꾸짖다
11, 1- 12, 13 : 바울로가 본의 아니게 자기 자랑을 하다
12, 14- 13, 10 : 고린토 교회를 세번째 방문할 계획을 세우다
13, 11-13 : 맺음말과 축복 기도
(2) 집필 동기 : 바울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를 집필, 발송한 다음에 고린토 교회에 거짓 전도사들이 와서 바울로의 사도직 권위를 부인하였다. 바울로는 사태가 다급함을 인식하고 고린토 교회를 찾아갔지만 이미 대부분의 신도들은 바울로의 반대자들에게 동조하였고 어떤 무례한 이는 바울로에게 심한 모욕을 가하였다(2, 5-11 ; 7, 12). 바울로는 한없는 슬픔을 안고 에페소로 돌아와서 몹시 괴롭고 마음이 답답하여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한 통의 편지를 발송했다. 이것이 소위 "눈물 편지"이다(2, 4). 바울로는 디도를 고린토로 보내어 눈물 편지를 전하고 고린토 신도들의 맹성을 촉구하게 하였다. 디도를 시켜 고린토 신도들에게 "눈물 편지"를 띄우고 나서 바울로는 에페소를 떠나 트로아스를 거쳐 그리스 북부 지역 마케도니아로 가서 디도가 돌아오기만 기다렸다(2, 12-13 ; 7. 5). 마침내 디도가 와서 뜻밖의 좋은 소식을 전했다. 고린토 신도들 대부분이 잘못을 뉘우치고 바울로와 화해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요, 전에 바울로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신도들을 처벌했다는 것이다(2, 5-11 ; 7, 6-16). 바울로는 기쁜 소식에 대한 답신으로 고린토 교회로 편지를 띄웠는데 이것이 곧 지금의 고린토 후서 1~9장으로 소위 "화해 편지"이다.
(3) 내 용 : 바울로가 이 편지에서 다룬 문제는 크게 세 가지이다. 우선 자기 자신의 사도직에 관해서 언급하고(1-7장), 이어서 바울로가 예루살렘의 가난한 신도들을 위해서 전개해 온 모금 운동에 고린토 신도들도 동참하라고 호소하며(8-9장), 마지막으로 자기의 사도직을 부인하는 반대자들과 일대 논전을 벌이면서 자신이 한평생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서술한다(10-13장). 지금의 고린토 후서에서 바울로는 모처럼 신상 발언을 많이 한다. 다른 편지들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자기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고린토 후서에서만은 자기 이야기를 비교적 많이 하고 있다. 따라서 고린토 후서야말로 바울로의 인간성과 사도관을 살피는 데 더없이 좋은 보고이다.
(4) 바울로의 반대자들 : 고린토 교회에 침입하여 바울로의 사도직을 부인한 바울로의 반대자들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고린토 후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의 정체를 밝히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는 "화해 편지"(1-9장)와 "눈물 편지"(10-13장)에서 바울로와 반대자들의 긴장과 대립 관계를 암시하거나 명시하는 단락들을 살펴봄으로써 정체를 밝히고자 한다.
1) 눈물 편지(2고린 10-13장)
① 10, 1 : 바울로는 고린토 신도들을 마주 대하면 겸손하지만 떨어져 있을 때에는 기고 만장하다. ② 10, 2 : 바울로는 육적인 동기(세속적인 동기)에서 처신한다. ③ 10, 7 : "누가,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고 확신한다면, 자신이 그리스도께 속해 있듯이 우리도 그렇다는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명심하시오." ④ 10, 10 : "혹자는 말하기를, 비록 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차지만, 정작 나타나면 보기에 몸도 약하고 그 말주변도 부끄러울 정도라고 합니다." ⑤ 10, 12-18 : 반대자들은 자신들을 내세운다. ⑥ 11, 4 : "실상, 누가 와서 우리가 선포한 적이 없는 다른 예수를 선포하거나, 여러분 자신이 받은 적이 없는 다른 영을 여러분이 받게 되거나 혹은 여러분 자신이 받아들인 적이 없는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어도 여러분은 잘도 참습니다." ⑦ 11, 5 ; 12, 11 : 반대자들은 "거물급 사도들"로 자처한다. ⑧ 11, 6 : "내가 비록 말에는 서투르다 할지라도, 지식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⑨ 11, 7-12 : 바울로는 물질적 도움을 사양했다. 그러자 바울로는 사도가 아니라서 사양한다고 반대자들을 헐뜯었다. ⑩ 11, 13-15 : "이들은 가짜 사도들이요 속여 먹는 일꾼들이며, 다만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사탄)의 봉사자들이 의로움의 봉사자들로 가장한다고 해서 별로 큰일이랄 것도 없습니다." ⑪ 11, 18-23 : "많은 사람들이 육적으로 자랑하고 있으니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 실상 누가 여러분을 종살이시켜도, 누가 (여러분을) 등쳐먹어도, 누가 거드름을 피워도, 누가 여러분의 얼굴을 때려도 여러분은 잘 참아냅니다. 그들이 히브리 사람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봉사자들입니까? 정신나간 사람처럼 말합니다마는 나는 훨씬 더 그렇습니다." ⑫ 12, 1-12 : 반대자들은 현시와 계시를 받았노라고 자랑하면서 바울로에게는 그런 신비 체험이 없다고 비방했다. 또한 반대자들은 기적을 행한다고 뽐내면서 바울로는 기적을 행하지 못한다고 비방했다. ⑬ 12, 16 : “그렇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짐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간교해서 여러분을 속임수로 휘어잡았다고 합니다." ⑭ 12, 17-18 : "내가 여러분에게 보낸 이들 중에서 누군가를 앞잡이로 세워 여러분을 등쳐먹기라도 했습니까? 나는 디도에게 청하여 (그곳으로 가도록 했고) 또 그 형제를 함께 딸려보냈습니다마는 디도가 여러분을 등쳐먹기라도 했습니까?" ⑮ 13, 3 : "더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고 계시다는 증거를 요구합니다."
2) 화해 편지(2고린 1-9장)
① 1, 17 : 고린토 교회 방문 계획을 변경하고 또 미룬 까닭에 바울로는 변덕스럽다는 평을 받았다. ② 2, 17 : "실상 우리는 저 많은 사람들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팔아 먹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순수한 동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어), 하느님을 마주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말합니다." ③ 3, 1-2 :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시 새삼스럽게 내세워야 할까요? 혹은 우리도 어떤 이들처럼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또는 여러분이 (써 주는) 추천 서한들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우리의 (추천)서한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④ 4, 2-3 : "우리는 간교하게 행동하거나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오히려 진리를 밝히 드러냄으로써 하느님 앞에서 사람들 각자의 양심에 우리 자신을 내세웁니다. 혹시 우리의 복음이 가리워지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멸망할 자들에게만 가리워져 있을 뿐입니다." ⑤ 5, 11-12 : "실상 우리는 하느님(앞에) 밝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여러분의 양심 안에서도 밝히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또다시 우리 자신을 여러분에게 내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자랑거리로 삼을 만한 기회를 여러분에게 드리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겉으로만 자랑할 뿐 마음속으로는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대꾸할 말을)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⑥ 5, 16 : "그래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육적인 (판단으로) 알아보지 않으렵니다. 설령 우리가 그리스도를 육적 (판단으로) 알아보았더라도 이제 더는 (그렇게) 알아보지 않으렵니다." "눈물 편지" 와 "화해 편지"에 나타난 바울로와 반대자들의 긴장과 대립 관계를 언급하는 단락들을 바탕으로 바울로의 반대자들에 대한 평가를 내리면 다음과 같다. 바울로의 반대자들은 고린토 신도들이 아니고 밖에서 온 방랑 전도사들이다(11, 4). 그들이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임에는 분명하나 팔레스티나 출신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인지, 그리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인지 밝히기는 쉽지 않다. 그들이 고린토에까지 와서 활발히 전도한 사실로 미루어, 아마도 그리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처신, 그들의 바울로 비방, 그들에 대한 바울로의 비평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① 바울로는 마주 대하면 겸손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는 기고 만장하다고 반대자들은 비방했다(10, 1). ② 바울로는 남이 전도한 곳에 가서 전도하지 않은 데 반해 반대자들은 바울로의 전교지인 고린토를 침범했다(10, 14-16). ③ 반대자들은 어느 교회 또는 어느 실력자의 추천서를 지니고 왔다(3, 1). ④ 바울로와 달리 그들은 언변(10, 10 ; 11, 6)도, 건강(10, 10)도 좋았다. ⑤ 그들은 자신들을 내세우고(10, 12-18 ; 11, 18-23 ; 5, 12), 거드름을 피우며(11, 20), 거물급 사도들(11, 5 ; 12, 11)로, 참 사도들(11, 13)로, 그리스도의 봉사자들(11, 23)로 행세했다. ⑥ 그들은 그리스도께 속한다고 자부하고(10, 7) 그리스도께서 자기들 안에서 말씀하신다고 자만했다(13, 3). 아울러 신앙의 지식을 과시했다(11, 6). ⑦ 그들은 신도들에게 헌금과 환대를 요구하고(11, 20) 하느님의 말씀을 팔아 먹었다(2, 17). 바울로가 신도들의 물질적 도움을 사양하자 물욕이 없는 척 간교하게 속임수를 부린다고 악평했다(12, 16). ⑧ 예루살렘의 굶주린 신도들을 위해서 모금 운동을 전개한 바울로를 모함하여, 헌금을 착복하려 한다고 헐뜯었다(12, 17-18). ⑨ 스스로 육에 따라(세속적 기준에 따라) 자랑하는 주제에(11, 18 ; 10, 12-18 ; 5, 12), 감히 바울로더러 "육에 따라 거닌다"고 헐뜯었다(10, 2). 그러나 바울로는 절대로 육에 따라 어느 누구든 평가하지 않았다(5, 16). ⑩ 반대자들은 바울로가 선포하지 않은, 다른 예수와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을 선포하였다(11, 4). ⑪ 반대자들은 기적을 자랑하면서 바울로는 기적을 행하지 못한다고 비방했다(12, 12).
(5) 집필 장소와 연대 : 바울로는 반대자들이 바울로의 사도직을 부정함으로써 교회의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몸소 고린토 교회로 찾아갔다. 고린토 교회 창립 때의 방문에 이은 두번째 방문이다(13, 2). 그러나 이미 사태는 악화되어 고린토 신도들 대부분은 바울로의 반대자들에게 동조하고 바울로에게 심한 모욕까지 가하였다(2, 5-11 ; 7, 12). 이에 바울로는 에페소로 돌아와서 몹시 괴롭고 마음이 답답하여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고린토 신도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2, 4). 이것이 소위 "눈물 편지"이다. 바울로는 고린토 신도들에게 "눈물 편지"를 띄우고 나서 에페소를 떠나 트로아스를 거쳐 그리스 북부 지역 마케도니아로 건너갔다. 거기서 디도로부터 고린토 교회의 희소식을 전해 듣고 기쁨과 고마움에 겨워 고린토 신도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써 보냈다(2, 12-13). 이것이 소위 "화해 편지"이다. 따라서 "눈물 편지는 에페소에서, "화해 편지"는 마케도니아에서 쓰여졌다. 고린토 후서의 집필 시기는 55년이나 56년으로 추정된다.
※ 참고문헌 정양모, 《고린토 후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 성서, 분도출판사, 1991/ D.E. Fascher, Der erste Brief des Paulus an die Korinther, 《THNT》/ V.P. Furnish, Ⅱ Corinthians,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B》/ H.J. Klauck, 1. Korintherbrief, 《NEB》/ H.J. Klauck, 2. Korintherbrief, 《NEB》/ F. Lang, Die Briefe an die Korinther, 《NTD》/ E. Lohse, Die Entstehung des Neuen Testaments (Stuttgart : W. Kohlhammer GmbH, 1983)/ W. Schrage, Der erste Brief an die Korinther1 kor 1, 1-6, 11, 《EKK》/ A. Strobel, Der erste Brief an die Korinther, Züricher Bibelkommentare ; Zürich, 1989/ C. Wolff, Der erste Brief des Paulus an die Korinther, 《THNT》/C. Wolff, Der Zweite Brief des Paulus an die Korinther, 《THNT》. 〔柳忠熙〕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둘째 편지
— 人 — 便紙
〔라〕epistolae ad Conrinthios · 〔영〕epistoles to the Corinth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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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비 기념 성당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