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변화

聖變化

[라]consecratio · [영]consec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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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변화는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거룩한 몸과 피로 변화되는 신앙의 신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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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변화는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거룩한 몸과 피로 변화되는 신앙의 신비이다.

미사 중에 하느님께 봉헌된 빵과 포도주가 축성 기도와 성찬 제정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과 피로 변화되는 신앙의 신비. 사제는 그리스도가 최후 만찬때 성체성사를 제정하면서 했던 말씀과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빵과 포도주를 예수의 몸과 피로 축성하고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한다. 그리고 사제가 바치는 성찬 기도 즉 감사와 축성의 기도에 의해 성변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성찬례 거행은 그 핵심과 절정에 이른다. 미사 중 사제는 감사송을 외운 후 성령 청원 기도(epiclesis)를 바치는데, 이 기도로 하느님 아버지가 빵과 포도주 위에 성령을 보내어 그 봉헌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이 되게 하기를 청원한다. 이어서 사제는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이는.....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내 피다" 라는 성찬 제정의 말씀을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의 능력 그리고 성령의 힘에 의하여 빵과 포도주 안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 즉 십자가 위에서 바쳐지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이 '성사적 방식으로' 현존하게 한다.
성변화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본질' 로 변화된 제물안에 그리스도가 실제로 또 온전히 현존함을 뜻하므로 그 개념을 올바로 파악하려면 무엇보다 우선 그리스도의 현존을 알아야 한다. 성변화는 '실체 변화' (transubstanti-atio)이므로 이 개념은 물론이고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인 '의미 변화' 또는 '목적 변화' 의 개념들도 이해하여야 한다.
[실제적 현존] 그리스도는 다양하게 현존한다. 생전의 그리스도는 사람들 가운데서 전도 활동을 하면서 누구나 보고 만질 수 있게 그들 가운데 '사실적' 으로 현존하였다. 이를 물리적 · 육체적 혹은 외적 현존이라고 한다면, 그와 다른 방식의 현존 즉 현양되는 그리스도의 현존은 영적 또는 내적 현존이라고 할 수 있다. 부활하여 영광스럽게 된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는 영이 되었다"(1고린15, 45). 그리스도는 "영적인 몸"(1고린 15, 44) 즉 생명을 주는 성령의 능력이 가득한 인간성으로 세상과 역사안에 현존하면서 여전히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다. "믿
음을 통하여 여러분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머물도록 해주시기를 빕니다"(에페 3, 17). 부활한 그리스도는 믿는 이들과 함께 있지만 신앙인들은 일상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알아보고 체험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특히 미사 중에 주님의 식탁에 모여 성서 말씀을 듣고 성체 를 받아 모실 때 그리스도의 현존을 '성사적 방식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현양된 그리스도의 현존은 성사적이며 인격적인 현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표징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신앙인과 만나지만 여전히 숨겨진 채 현존한다. 성사는 두 가지 요소 즉 표징과 실재(res)를 내포하는데, 이는 성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 즉 하느님의 은총을 표시하고 전달해 주는 유효한 표징이기 때문이다. 성사적 현존이란 그리스도가 감각적인 표징 안에 감추어져 있지만 실제로 또 온전하게 현존함을 뜻한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그리스도의 존재를 구성하는 주요한 부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고 죽고 부활하여 영광스럽게 된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격을 가리킨다. 따라서 성사적 현존이란 표징을 통해서이지만 그리스도의 온 인격이 그 표징 안에 있음을 말한다. 다시 말해 성체와 성혈 안에 하느님이요 동시에 인간으로서 살고 죽고 부활한 그리스도의 전 인격이 생생하게 현존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체 안에 완전하게 현존하는 이가 동시에 성부 오른편에 앉아 있는 부활한 주님이라는 것은 초자연적인 신비이다.
물론 그리스도는 교회와 세상 안에서 다양하게 현존한다. "사실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거기 그들 가운데 나도 있습니다"(마태 18, 20). 그리스도는 우선 자신의 말씀 안에, 교회의 기도와 신자들의 모임 안에 있다. 그리스도는 교회가 믿고 기도하고 자선 사업과 신앙활동을 할 때에 분명히 특별한 방식으로 교회와 더불어있다.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 병든 이들,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 안에(마태 25, 31-46), 또 자신이 몸소 제정한 성사들 안에, 미사와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인격 안에도 현존한다.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는 성체 형상 안에 현존 한다(전례 7항).
성체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방식은 유일무이하다. 성체성사 안의 그리스도 현존에 대해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는 '참되고 실제적이고 실체적' 이라고 단언하였다. "빵과 포도주의 축성 후에, 성체성사 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참으로' , '실제적으로' 또 '실체적으로' 당신의 영혼과 천주성이 결합되어 담겨 있으므로 그리스도 전체가 담겨 계신다" (DS1651). 성체성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현존이 '실제적'이라 함은, 다른 현존 방식이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성체 현존이 탁월하게 실제적임을 지적하고 강조하는 것이다. 즉 성체 현존으로 하느님이고 인간인 그리스도가 온전히 현존한다는 뜻에서 참되고 실제적이고 실체적이라는 것이다. 칠성사 중 다른 여섯 가지 성사는 신앙인으로 하여금 활동하고 은총을 주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예식이지만 성체성사만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체 변화함으로써 그리스도는 성체성사 안에 실제적으로 또 온전하게 현존하게 된다.
공관 복음서와 사도 바오로의 증언에 따르면, 예수는 빵과 포도주를 손에 들고 제자들에게 주면서 "이는 내몸이다" , "이는 내 피다"라고 선언하였다. 이 표현이 하느님의 진실하고 능력 있는 말씀이라면, 빵은 더 이상 단순히 빵이 아니고, 포도주는 더 이상 단순히 술이 아님이 명백하다. 예수의 말씀이 실제로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무(無)에서 창조할 수 있었다면,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그 이전에 존재하지 아니하였던 것으로 변화시킬 수 없겠는가?"(암브로시오, 《신비론》, 9, 50~52). .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식탁 위에서 여러분이 보는 것은 빵과 포도주입니다. 그러나 이 빵과 포도주에 말씀이 부가됨으로써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됩니다. 만일 말씀이 제외된다면 그것들은 빵과 포도주입니다. 말씀이 덧붙여 진다면, 그것은 이미 다른 것 곧 그리스도의 몸과 피입니다. 말씀이 배제되면, 그것은 성사가 됩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여러분은 '아멘' 이라고 응답합니다. 아멘은 서명하는 것입니다. '아멘' 은 '참입니다' 를 뜻합니다"(아우구스티노, 《설교》, 6, 3).
성체성사를 제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성변화된다는 사실을 지적할 뿐 실제적인 변화의 과정을 해석하는 지침을 주지는 않았다. 이 일은 신앙 이해를 추구하는 즉 신앙을 신빙성 있게 해설하는 신학에 맡겨진 과제이다.
〔실체 변화〕 성변화는 정확히 말해서, 미사의 제물 축성 때에 빵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성체로,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성혈로 변화되는 '실재' 이다. 사도 시대이래 신자들은 가톨릭 교회의 이 기본 교리를 꾸준히 믿어 왔으며, 교부들과 역대 교황들이 이 교리에 관해 증언하였다.
"눈에 띄는 현상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발설하는 사제에게 속한 것이지만 능력과 은총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다. '이는 내 몸이다' 라고 사제가 선포하는 하느님 말씀이 봉헌물들을 변화시킨다" (요한 그리소스토모, 《유다의 배신에 관한 설교》, 1. 6). "그리스도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 이 하나의 형상이라고 여러분이 생각하지 않도록 하시기위하여 '이는 내 몸이다' , '이는 내 피다' 라는 명시적인 표현문을 사용하셨다. 이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실제 봉헌되는 것이 전능하신 하느님에 의해 감추어진 방식으로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셨다" (차릴로, 《마태오 복음서 주해》, 26, 27). "이것(성변화)은 자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산물이 아니라 축복이 거룩한 것으로 변화시킨 것이고 또한 자연까지도 축복에 의하여 변화되기 때문에 축복의 능력이 자연의 능력보다 더 출중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암브로시오, 《신비론》, 9, 50~52). "성스러운 기도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신비가 제단 위에 놓여져 있는 빵과 포도주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참되고 생명을 주는 몸과 피의 실체로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것을 나는 믿고 고백하는 바이다"교황 그레고리오 7세, 《공의회에 관한 중보 전집》 22, 524D). 성체는 "실제로 그리스도 자신을 내포하고 있으며 또 '영성 생활의 완성이요 모든 성사의 목적' (토마스아퀴나스, 《신학 대전》 Ⅲ, q. 73a. 3c)과도 같다.
빵과 포도주의 축성 후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로 변화된다는 뜻으로 '실체 변화' (transsubstantiatio)라는 전문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훗날 교황 알렉산델 3세(1159~1181)가 된 반디넬리(R. Bandinelli)이다. 그에 의해 1140~1142년 사이에 최초로 사용된 이 용어는 11세기 후반부터 성체 신앙의 내용을 표현하는 낱말로 널리 통용되었다. 이 용어가 채택된 배경은, 중세 시대에 빵과 포도주를 단순한 표지로 보려는 상징주의(symboli-smus)의 입장과 빵과 포도주가 그 물질적인 요소조차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고 주장하는 사실주의(phy-sicalismus) 사이의 첨예한 논쟁 때문이었다. 9세기의 라드베르토(Paschasius Radbertus, 790~860)는 성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을 예수의 역사적이며 지상적 몸과 동일시하였는데, 이 같은 사실주의에 맞선 것이 예수의 영신적인 현존을 주창한 상징주의였다. 라트람느(Ratramne deCorbie, +868)에게 관건이 된 것은 진리가 아니라 상징이었고, 그의 입장에서 성체는 상징적인 요소에 상응하는
성사적인 능력을 지니는 상징일 뿐이었다. 11세기에 베렌거(Bérenger de Tours, 1010~1088)는 사실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는 상징주의의 노선에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지 않고 다만 그것들의 형상(figura) 또는 모상(imago) 비유(similitudo)일 따름이라고 주장하였다. 성찬의 빵과 포도주의 실재들 안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며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symbolum)이 되는 '변화' 만 발생될 뿐이고, 그리스도는 이 상징들을 통하여 신앙인들의 마음 안에 자신의 은총으로써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후에 캔터베리의 대주교가 된 랜프랭크(Lanfranc, 1010~1089)는 상징주의를 거슬러 성체성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실제적' 현존을 주장하였다. 그는 빵과 포도주의 일부 속성들, 즉 외적 형태는 변함없이 존속한다고 강조하면서 빵과 포도주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본질로 변화된다는 '본질 변화설' 을 최초로 제기하였다. 이리하여 11세기 후반기에 신학자들은 성체성사 중에 발생하는 변화를, 주님의 몸과 피의 실체로 변화되는 빵과 포도주의 실체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1215년의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빵과 포도주가 하느님의 능력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체 변화된다면서 '실체 변화' 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DS 700).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12세기의 신학자들은 성체성사의 실체(주님의 몸과 피)와, 빵과 포도주의 우연적 요소(무게 · 색깔 · 맛 따위)를 점차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로 변화될지라도 우연적 요소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스도의 성찬 제정 말씀이 선언된 후 제단 위에 있는 것은 겉으로만 빵과 포도주일 뿐이다. 우연적인 것 곧 빵의 형상(species : 맛, 색깔)은 그대로 남아 있는 반면, 실체 곧 빵의 실재 내지 본성은 그리스도 자신이 된다. 감각에 의해 지각될 수 없는 빵과 포도주의 깊은 실재 즉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로 변한다. 빵과 포도주에 있어서 '보다 깊고' 비현상적인 실재는 사제가 발하는 성찬 제정의 말씀에 힘입어 바로 그리스도의 인간성이라는 실재로,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보다 깊은' 실재로 대치된다. 이 변화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단지 그 상징들의 실제 효과를 통해서만 현존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하고 영광스럽고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의 인간성이 성체성사의 표징 아래 그 자체로 현존한다. 외적 실재인 현상은 그대로 있으나 거기에는 신적 위격(성자의 위격)과 결합된 그리스도 자신의 인간성이 극히 신비로 운 방식으로 숨어 있다. 이 축성에 의해 변화된 봉헌물은 실제로 '하느님의 어린 양' 이고 '그리스도의 몸' 이다.
실체 변화를 부정하는 16세기 종교 개혁자들의 반대에 직면한 트리엔트 공의회는 1551년에 실체 변화설을 교의로 확정 · 공포하였다.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고 단언하면서 "기묘하고 독특한 변화(conversio)"라고 규정한 뒤 "거룩한 가톨릭 교회는 이 변
화를 적절하고도 정확하게 실체 변화라고 부른다" 고 부언하였다. 또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성체성사에 관한 교령>(Decretum de SS. Eucharistia)을 통하여 우선 성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현존 사실을 천명하였다. 성체성사안에 주님의 몸과 피가, 다시 말해서 온전한 그리스도가 자신의 영혼 및 신성과 함께 "참으로, 실제적으로 또 실체적으로" 현존한다(DS 1651~1652)고 하였다. 그리고 '실제적' 현존의 존재론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하여 실체변화를 언급하였다. 빵과 포도주는 형체는 남으면서도 그것들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로 변화된다는 것이다(DS 1652). 이는 자연 질서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하고 독특한' 변화이고, 교회의 성령 청원 기도와 성찬 제정의 말씀으로 하느님이 개입하여 일으키는 작용의 결과이다. 하느님의 개입을 통해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변화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동정 마리아로 부터 탄생되었던 그리스도의 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이 용어를 사용한 의도는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발생되는지를 묘사하는 용어를 제공하려는 것이었다.
〔의미 변화 · 목적 변화〕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은 현대인의 사고 방식에 친숙한 새 표현을 통하여 이 신비를 설명하고자 고심해 왔다. 스미스(L. Smith)가 현상학적인 접근 방법을 택한 반면에 스킬러벡스(E.C.F.A. Schille-beecckx, 1914~ )는 존재론적인 노선을 따르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이 두 신학자들은 한결같이 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의미 변화' (transsignifictio) 또는 '목적 변화' (trans-finalizatio)의 개념을 선택하였으며, 이 두 이론은 서로 밀접한 견해로서 '사물의 존재론' 이 아니라 '인격의 존재론 에 근거한 것이었다.
빵과 포도주가 기묘한 변화 후에 새로운 의의와 목적을 지니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들이 참으로 온전한 그리스도 자신을 간직하고 표시하며 영성체 때에 그 은총과 사랑의 샘인 그리스도 자신을 전해 주기 때문이다. 빵의 실체와 의미와 목적은 동일하나 한 사물의 의미는 그 재화를 손상함이 없이 변화될 수 있다. 예컨대 한 채의 집은 재료들의 정돈으로 이루어져 그 본성과 목적을 지니지만, 그 재료들이 허물어져 교량 건설에 사용되면 본성과 본질의 변화가 일어나 의미가 달라진다. 집은 사는 터전이지만 교량은 다른 곳을 건너가는 수단이다. 그러나 재료의 손실은 없다.
이와 비슷하게 빵과 포도주가 축성되었을 때 의미가 크게 변한다. 지상의 음식과 음료수를 의미하던 것이 축성에 의해 이제는 다르고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즉 그리스도의 현존을 의미한다. 우리가 보는 것의 목적도 변한다. 자연적인 육체의 생명을 양육하는 현세 음식의 목적이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기르고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우리를 강하게 하는 음식으로 그 목적이 변한다. 의미 변화 또는 목적 변화는 관계의 연관성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간혹 인간과 관계를 맺게 되는 자연 사물이나 변화된 인간 행동의 의미의 연관성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기보다는 다른 것과의 연관 속에서 존재하고, 또 이 관계 연관성 안에서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된다. 한 실재의 존재는 근본적으로 관계 안에서 진정한 실재가 되며, 한 실재는 다른 실재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 의미와 목적을 새로이 부여받게 된다. 실체 변화는 우선 음식물로서의 빵과 포도주가 그 자체로 존속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관계 속에서 존속함을 뜻한다. 음식은 식사와의 관계 연관성으로부터 고유한 '음식' 이 되고, 식품은 실제적 식사 또는 화학적 분석에 따라 그 존재 의미가 변한다. 이와 같이 빵과 포도주가 더 이상 자체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가리키고 실제로 실현시켜 주는 '유효한 표지' 가 될 때 의미 변화 및 목적 변화가 발생한다.
그러나 의미 변화나 목적 변화보다 더 깊고 또 그 기초가 되는 것은 존재론적 변화 곧 실체 변화이다.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는 <신앙의 신비>(Mysterium Fidei, 1965)에서, 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새로운 의미와 목적은 주님의 성체와 성혈의 현존의 새로운 존재론적 실재에 근거한다고 천명하였다. "실체 변화가 발생할 때 의심없이 빵과 포도주의 외형은 새로운 표현과 새로운 목적을 취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더 이상 보통의 빵과 보통의 포도주가 아니며 성스러운 요소의 표징과 영적음식의 표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가 마땅히 존재론적이라고 불러야 하는 새로운 실재를 내포한다는 이 이유로 말미암아 새 표현과 새 목적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한 형상하에는 그 이전의 것은 없어지고 그것과 전혀 다른 어떤 것이 있게 되기 때문이다. · · 빵과포도주의 실체 또는 본질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 될 때에 다만 빵과 포도주의 형상들로서 현존하신다. 그렇다고 해서 육체가 어떤 장소에 현존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의 현존은 아닌 것이다"(46항). 빵과 포도주의 외형이 이제 새로운 실재를 내포하는 까닭에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빵과 포도주 안에서
일어나는 의미와 목적의 변화, 이 이중 변화는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 결과이다. 이 변화로 인하여 성체성사의 표징 안에는 생명의 빵인 그리스도가 들어 있으며, 따라서 그 표징들은 우리가 영적으로 양육된다는 사실을 표시하고(의미 변화) 또 실현하는 것이다 (목적 변화). 축성된 빵과 포도주는 이제 실제로 '생명의 양식' 이고 '구원의 음료' 이다.
의미 변화 및 목적 변화를 내포하는 실체 변화에 의해 그리스도는 빵과 포도주의 각 형상하에 온전하게 현존한다. 성체 안의 그리스도는 영광스럽게 된 분이고 또 그분의 몸과 피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빵의 축성은 말씀에 힘입어 성체의 유효한 표징이 된다. 그런데 주님의 몸은 주님의 피와 절대 분리될 수 없으므로 성혈역시 성체와 함께 '병행' 현존한다. 포도주 축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는 몸과 분리될 수 없는 영혼을 지니고 또한 인성에 늘 결합되어 있는 신성을 지닌 채 현존한다. 그리스도는 성체의 두 가지 각 형상 안에 각기 온전히 현존하며 또 각 형상의 부분에도 현존하므로 빵을 나누어도 그리스도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축성 순간부터 미사 이후에라도 성체의 형상이 존속하는 동안 그리스도가 현존하므로 감실 안에 모셔져 있는 성체에 대하여 마땅한 흠숭과 조배 를 드리며, 병자들에게 가져 가 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부활한 주님의 현존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실현되므로 주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신자들의 모임 자체 안에, 교회 내에서 봉독되는 말씀 안에, 성체성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인격 안에, 그리고 무엇보다 성체의 형상 아래에 현존한다. 성체성사 안에 있게 되는 그리스도의 현존은 교회 안에 현존하는 유일한 양식은 아니다. 성체 안의 신비로운 현존 양식은 독특한 것이기는 하나, 다른 현존 방식들과 연속 관계에 있다. 성체 현존은 어떤 의미에서 다른 존재 방식들을 전제로 하고 동시에 그것들을 능가하지만, 이로 인해 다른 현존 방식들이 불필요한 것이 되거 나 그 의미와 중요성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같은 성체성사 내에서의 현존은 하느님에게 제물로 바쳐진 빵과 포도주가 축성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안에 하느님이고 인간이 된 온전한 그리스도가 실제로 현존한다. (⇦ 실체 변화 ; 변화지례 ; → 성체 논쟁 ; 성체성사 ; 영성체)
※ 참고문헌  교황 바오로 6세, 《신앙의 신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0/ 심상태, <그리스도의 성체 현존 교의 이해>, 《신학 전망》 84호(1989. 봄), 광주 가톨릭대학 전망 편집부, pp. 2~231 C. Vollert, transubstantiation, 14, pp. 259~261/ E. Gutwenger, transubstan- tiation, 《SM》 pp. 292~295. . [崔榮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