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기 말부터 3세기까지 성행하였던 삼위 일체론에 관한 이단. 극단적인 모나르키아니즘(Monarchianismus)의한 유형으로, 동방 교회에서는 이 이단의 주창자 이름을 따서 '사벨리우스주의' (Sabellianismus)라고 했고 서방 교회에서는 그 핵심 내용에 의거하여 '성부 수난설' 이라고 불렀으나, 현대 신학자들은 이를 '모달리즘' (modalismus,樣態論)이라고 부른다.
〔유 래〕 그리스도교는 초기부터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기본 교리로 삼고 선포하였다. 그렇지만 성부와 성자를 하느님으로 고백하면서 어떻게 유일신 신앙을 고수할 수 있느냐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2세기의 교부들은 '로고스-그리스도론' (Logos-Christologia)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그리스도이신 신적 로고스가 성부와 일치되어 있는 동시에 그분과 구별되고, 성부의 뜻을 따라 세상을 창조하고 보존하시는 분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 '로고스-그리스도론' 은 성자를 이차적인 의미의 하느님으로 보는 '성자 하위론' (聖子下位論)의 약점을 지니면서 동시에 신적 유일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180년경에 스미르나의 노에투스(Noetus)가 "그리스도가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은 분명히 성부이시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은 하느님이 아니실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리스도가 수난을 받으셨다면, 하느님이 수난을 받으신 것이니, 하느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히폴리토, 《노에투스 논박》 2)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이 한 분이시라면,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일한 분이시다. 성자이신 그리스도가 성부와 동일한 분이시라면, 결국 성부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시고 수난을 받으신 것이다' 라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이 설을 '성부 수난설' 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서에서 하느님의 유일성(唯一性, unitas)에 관한 구절들(출애 3, 6 : 20, 3 : 이사 44, 6 등)을 사용하였으며, 성부와 성자가 동일한 한 분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요한 복음 10장 30절과 14장 9-10절, 이사야서 44장 6절, 바룩서 3장 36-38절, 로마서 9장 5절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노에투스는 성자인 로고스와 성부를 분명히 구별하였고, 당시 '로고스-그리스도론' 에서 흔히 사용되던 요한 복음 1장 1절을 은유적인 표현으로 해설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보존하면서 하
느님의 유일성을 고수하기 위하여 이런 주장을 편 것이다. 그에 의하면, 성부와 성자를 각기 하느님이라고 할때 이신론(二神論, ditheismus)이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노에투스 논박》 11, 14). 이처럼 신적 유일성을 극단적으로 고집한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궁극적으로 '모나르키아니즘' 이다. 결국 성부와 성자의 명칭은 인정하되 위격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상황과 관점에 따라 다른 양태(modus)로 나타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같은 유일한 하느님께서 때로는 보이지 않는 불사(不死)의 성부로 나타나시는가 하면 때로는 보이고 죽을 성자로 나타나신다" (히폴리토, <철학총론》 9, 10, 11)라고 하였다. 그래서 현대 신학자들은 이이단을 '모달리즘' 이라고 부른다.
〔발 전〕 노에투스는 200년에 스미르나 교회의 사제단에 의해 단죄를 받았다. 그는 스미르나 교회의 주교였던것으로 여겨지는데, 사제단은 그의 주장에 반대하여 성부와 구별되는 성자의 신성을 고백하면서 그를 교회에서 몰아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교회 밖에서 제자들을 모아 계속 자신의 주장을 가르쳤고, 그의 주장은 교부들의 '로고스-그리스도론' 적 설명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고 유일신 사상을 엄격하게 보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추종하는 사람이 많았다.
로마 교회의 성직자로서 노에투스의 주장을 추종하였던 사벨리우스(Sabellius)는 테르툴리아노(160~223)의 《프락세아 논박》(Adversus Praxean)을 염두에 두면서 노에투스의 설을 보다 체계화하였다. 그래서 220년에 사벨리우스도 갈리스도 1세 교황(217~222)에 의해 이단자로 파문되었다. 이로써 3세기에는 로마의 사벨리우스와 카르타고의 프락세아가 성부 수난설을 주도적으로 유포하였는데, 이들의 주장에 대한 직접적인 사료는 모두 상실되었고 다만 이들을 논박한 교회의 문헌들에서 인용된 간접적인 사료만 남아 있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에 대한 정확성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들은 노에투스의 기본적인 학설을 따르면서 교회의 단죄를 피하기 위하여 약간 변형한 듯하다. 프락세아에 의하면, 육화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적 요소는 성부이고 인간적인 요소는 성자이다. 이 인간적인 요소만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성부가 고난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성자와 함께 고난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루가 복음 1장 35절을 인용하면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분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입증하려 하였다. 본래의 성부 수난설은 성부와 성자의 문제였는데, 사벨리우스는 여기에 성령을 첨부하여 유일한 하느님이 구약에서는 성부로, 육화에서는 성자로, 성령 강림 때에는 성령으로 사도들 위에 나타났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성삼의 한 본성 안에 세 개의 위격이 있다고 하는 오리제네스의 가르침에 반대하여 하나의 본성과 하나의 위격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영 향] 사벨리우스에 의해 체계화된 이 이단은 동방교회의 여러 지방에 유포되었기 때문에, 동방 교회에서는 '사벨리우스주의' 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로써 성부수난설은 동서방 교회 모두에 가장 위험한 이단으로 부각되었다. 결국 동방 교회에서 시작된 노에투스의 성부수난설은 서방 교회에서 발전되어 다시 동방 교회로 전파된 것이다. 그 후 40여 년이 지난 260년경에 펜타폴리스 지방에 만연해 있던 사벨리우스 이단 때문에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오(190~265?) 주교와 디오니시오 교황(259/260~267/278)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공동으로 대처하였고, 정통 교리를 확인하였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성부 수난설은 아리우스주의(Arianismus) 이전에 성삼론에 관한 가장 위험한 이단이었기 때문에 이를 논박하기 위한 교부들의 저술 활동은 성삼론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테르툴리아노는 《프락세아 논박》에서 '본성' (substantia) · '위격' (persona) '성삼' (trinitas) 등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삼위 일체의 개념을 언급함으로써 451년에 개최된 칼체돈 공의회의 결정 내용을 200년 전에 이미 제시한 셈이 되었다. 4세기에도 이 이단은 안치라(Ancyra)의 마르첼루스와 실미움의 포티누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었지만 교회 안에서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였다. (⇦ 사벨리우스주의 ; → 모나르키아니즘 ; 모달리즘 ; 삼위 일체론)
※ 참고문헌 A. Hilgenfeld, Die Ketzergeschichte des Urchristentums,Leipzig, 1884, pp. 615~626/ G. Bardy, Monarchianisme, 《DTC》 10-2, pp. 2196~2200/ E. Evans, Tertulliani adversus Praxean, London, 1948, pp. 6~ 13/ J.N.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London, 1958, pp. 119~123/ J. Daniélou · H. Marrou, Des origines a saint Grégoire le Grand, vol. 1, Nou-velle histoire de I'Eglise, Paris, 1963, p. 138/ C. Moreschini, Opere scelte di Quinto Settimio Florente Tertullicmo, Torino, 1974, pp. 78~80/ M. Simonet-ti, Sabellio e il sabellianismo, 《SSR》4, 1980, pp. 7~28. 〔李瀅禹〕
성부 수난설
聖父受難說
〔라〕patinpassianismus · 〔영〕patripssianism
글자 크기
7권

사람들 눈에는 성자 그리스도가 수난한 것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성부가 수난하였다는 것이 '성부 수난설'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