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성북구 성북2동 39 소재. 1975년 9월 8일 혜화동(惠化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성탄. 관할 구역은 성북1 · 2동전 지역. 〔교 세〕 1976년 1,404명, 1981년 1,656명,1986년 2,265명, 1991년 1,616명, 1996년 1,922명. 〔역대 신부〕 초대 박귀훈(朴貴勳) 요한(1975. 9~1980. 5) , 2대 최선웅(崔善雄) 야고보(1980. 5~1982. 8), 3대 최치규 (崔致奎)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82. 8~1988. 8), 4대 양홍(楊弘) 에우세비오(1988. 8~1993. 2), 5대 최준웅(崔俊雄) 바르나바(1993. 2~10), 6대 이계광(李啓光) 요한(1993. 10~1996. 2), 7대 백성호(白性澔) 세례자 요한(1996. 2~현재).
1970년대 초에 들어 혜화동 본당 신자수가 날로 증가하자 본당 주임 박귀훈 신부는 관할 구역 가운데 가장 거리가 먼 성북동 지역을 분리하기로 계획하고 1974년 7월 15일 이를 교구에 건의하였다. 그리고 8월 29일 인준을 받음과 동시에 '성북동 성당 설립 기성회' 를 구성하여 모금 운동을 전개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5월 성북동 본당 신설 준비 책임자로 임명된 박귀훈 신부는 임시로 교우들의 사가에서 미사를 집전하다가 같은해 6월 15일 성북동 163-13번지의 가옥을 전세 얻어 임시 성당으로 삼고 사목 위원회와 주일학교 등을 차례로 조직하였다. 그리고 그 해 9월 8일 '성북동 본당' 이 설립됨과 동시에 박귀훈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본당에서는 교구에서 마련해 준 성북동 13-22번지의 부지(403평)에서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1976년 3월 말에 사제관을 준공하고, 4월 3일 이곳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러나 최선웅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 한 후 성당 건축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이에 본당에서는 교구와 협의하여 현 본당 부지 245평을 새로 마련한 뒤, 1981년 4월 1일부터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 내의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신축 공사를 계속하여 이듬해 6월 26일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또 1987년 4월에는 교육관 및 지하 교리실 건립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2월 축복식을 가졌다. 한편 1990년 8월에는 1980년 8월 이래 본당의 사목을 도와 오던 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철수하면서 대신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분원이 마련되었다. 최근 들어 성북동 본당에서는 소공동체 운동의 정착, 친교 및 신심 활동의 활성화에 노력하고 있으며, 1997년 1월에는 성당 구내에 외국인 자녀들을 위한 '놀이방' 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 서울대교구 ; 혜화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백동 70년사 편찬위원회 편, <백동 70년사》, 천주교 서울대교구 혜화동 교회, 1997. 〔金善美〕
성북동 본당
城北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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