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

聖事

〔라〕Sacramentum · 〔영〕Sacr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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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녀로 새로이 태어나는 세례성사(왼쪽)와 성유 도유를 통해서 세례를 보충하고 완성하는 견진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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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녀로 새로이 태어나는 세례성사(왼쪽)와 성유 도유를 통해서 세례를 보충하고 완성하는 견진성사.

예수 그리스도가 제정하고 교회에 맡긴 은총의 효과적인 표징들. 이 표징을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들에게 틀림없이 전달되며,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성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서 이 은총은 결실을 맺는다.
〔용어 사용〕 신약성서 : 신약성서에서는 구원에 중요하다고 간주되는 예식들, 즉 세례 · 성찬례 · 안수 · 병자 도유(塗油) 등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을 포괄하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사용된 '성사' 라는 단어는 발견되지않는다. '성사' 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사크라멘툼'(sacramentum)은 2~3세기의 고대 라틴어역 성서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그리스어 '뮈스테리온' (μυστήριον )의 번역이다. 일반적으로 '신비' 라고 번역되는 이 용어는 복음서에 3번(마르 4, 11 : 마태 13, 11 : 루가 8, 10), 그외의 신약 문헌에 24번 나오는데, 이 용어는 본래 종말의 비밀을 가리키는 묵시 문학적인 표현으로서 사도 바오로를 비롯하여 초대 교회에서 즐겨 사용하였다.
바오로에게 있어 '신비' 란 "하느님의 심오하고 감추어져 있던 지혜" (1고린 2. 7)를 뜻하며, 이 지혜는 역사적으로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1고린 1, 23) 안에서 실현되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신비는 바로 그리스도(골로 2, 2)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신부인 교회(에페 5, 32)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그 신비가 여러 세기와 여러 세대 동안 숨겨져 있었으나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났습니다"(골로 1, 26). 그러므로 바오로 서간에 나타난 '신비' 란 그리스도안에서 실현된 하느님의 숨겨진 구원 경륜이며, 신비인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현존한다.
초대 교회와 교부들 : 초대 교회에서 '신비' 라는 용어는 신약성서에서와 비슷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해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노시스주의와 밀교(密敎) 예식과의 대결을 통해서 호교론자들에 의해 그 의미가 점차로 확장되었다. 그노시스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비밀 교리를 신비라고 주장하고 이방 민족은 자신들의 종교 예식을 신비라고 주장하자 이에 대항해서 그리스도교 호교론자들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 오리제네스 등)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내용이야말로 진정한 신비라고 내세웠다. 즉 성서에 증언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역사적으로 이루는 사건들이 바로 '신비' 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구원 역사의 정점을 이루는 그리스도 생애의 여러 사건, 특히 그리스도의 탄생, 십자가 상의 죽음이 포함된다. 또한 교부들은 구약의 사건이나 제도들은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옴으로써 시작된 구원 실재를 예시 · 선취한다고 해석하였고, 그래서 이것들도 신비라고 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교회 공동체의 예식들(세례와 성찬례)을 신비라고 일컬었다.
세례와 성찬례에 최초로 성사 즉 '사크라멘툼' 이라는 라틴어를 적용한 사람은 테르툴리아노(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 160~223)였다. 그 당시 이 낱말은 복무 선서' , '금전적 담보' 외에도 '군기(軍旗)에의 선서'를 뜻하였는데, 이런 측면에서 세례 서약과 구조적으로 비교될 수 있었다. 즉 군기에의 선서를 통해서 군인이 되듯이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된다는 것이다. 테르툴리아노 이후에도 수백 년 동안 '신비' 라는 낱말과 비슷하게 '성사' 라는 용어는 세례와 성찬례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신구약 성서에 담긴 구세사의 사건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 · 죽음 · 부활 · 신앙 교의 · 교회의 여러 가지 예식 · 서약 · 성서적 비유 등을 지칭하였다.
[칠성사] 체계화 : 신약성서에서 가장 분명한 형태로 등장하는 성사는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인데, 이 두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을 맺고 그분의 구원 업적에 참여하는 데에 결정적인 방식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 외에도 병자 치유 · 성령 전달 · 특별한 봉사직에의 임명을 위해서 안수가 실시되었다는 사실과 병자를 방문해서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는 권고도 발견된다.
그리스 교부들은 신약성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로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숙고하였다. 그들은 원형(原型)은 모형(模型) 안에서 현존하면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플라톤 철학의 '원형-모형' (Urbild-Abbild) 사고 방식을 배경으로 성체성사를 이해하였다. 즉 원형이 그를 모사한 모형에 현존하며 자신을 드러내듯이 원형인 그리스도는 모형인 성찬례 안에 현존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성찬례는 그리스도라는 실재를 포함하는 '실재상징' (實在象徵)이라는 것이다. 신자들은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성찬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고 그분의 구원 공로를 나누어 받는다.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는 이미 신약성서에서 분명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다른 성사들은 분명하게는 언급되지 않다가 교부 시대를 거쳐서 12세기에 이르러 그 형태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고해성사의 예절에 관한 최초의 확실한 자료는 2세기 중반에 저술된 헤르마스(Hermas)의 작품이며, 최초의 서품 예절과 서품에 관한 것과 병자들을 위한 도유에 사용되는 기름의 축성은 히폴리토(Hyppolytus, +235)의 《사도 전승》에 명백히 서술되어 있다. 신빙성 있는 역사 자료에 따르면 교회 직무자가 혼인 예식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400년경부터였지만, 신학자들이 혼인을 성사로 인정한 것은 12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견진성사는 원래 세례성사의 한 부분이었으나 1000년경에 세례성사에서 분리되어 별도의 성사로 거행되었다.
12세기에 이르러 성사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의가 이루어지는데, 결정적인 기준은 그리스도에 의한 제정 여부였다. 대표적으로 생 빅톨의 후고(Hugo a SanctoVictore, +1141)는 성사 개념에서 가시적인 표징, 그리스도에 의한 제정, 은총의 포함이라는 세 가지가 필수 요소라고 규정하였다. "성사는 감각적으로 지각될 수 있는 육체적 또는 물질적인 외적 요소로서, 그것은 보이지 않는 영신적인 은총을, 비슷함을 근거로 표현하며, 설정을 근거로 의미하고, 거룩한 축성을 근거로 포함한다" (De Sacramentis Christianae fidei, 1, 9, 2). 이러한 성사의 개념 정의와 함께 이전에 30개에 달하였던 성사의 수는 7개로 고정이 되었다.
종류와 내용 :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 를 통하여 성령으로 깨끗이 씻겨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이 탄생한다. 이렇게 새 사람이 된 사람은 '견진성사' 로 성령 칠은(슬
기 · 통달 · 의견 · 굳셈 · 지식 효경 · 두려워함)의 은혜를 주는 성유 도유를 통해서 세례를 보충하고 완성하며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다. 그리스도의 사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해 하느님과 인간들 서로간의 일치를 가져다 주는 '성체성사' 를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서 영혼 생명의 양식을 먹고, 신적인 희생을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자신을 함께 봉헌하며 하느님 백성의 일치를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또 '고해성사' 를 통하여 세례 후 범한 죄를 참회하여 하느님의 용서를 받고 죄로 인해 끊어진 하느님과 이웃과 교회와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그리스도인은 '혼인성사' 를 통하여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느님과 공동체 앞에서 자유로이 계약을 맺고 결합하여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성품성사' 를 통하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이어받아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사하며, 세상의 구원 사업을 계속 이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의 축성을 받는 것이다. 죽을 위험에 처한 병자들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도록 도와 주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위로와 치유의 은총을 주는 '병자성사' 를 받는다.
〔성사 교의의 형성〕 중세 시대에 성사는 루터(M.Luther, 1483~1546), Zwingli, 1484~1531), 칼뱅(J. Calvin, 1509~1564) 등의 종교 개혁자들로부터 도전을 받았다. 종교 개혁자들은 은총 · 신앙 · 성서를 절대적 규범으로 내세우면서 성사 신학에도 이 규범을 적용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약성서가 분명히 증언하는 세례와 성만찬 두 가지만을 그리스도로부터 설립된 진정한 성사로 인정하였고 다른 성사들은 거부하였다. 또 신앙을 강조하여 성사가 사효적(事效) 효력을 지닌다는 가르침을 부정하기도 하였다. 루터는 성사 안에서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의 힘을 믿음으로써, 칼뱅은 성사 자체의 힘이 아닌 성령의 힘에 의해서 은총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종교 개혁자들은 하느님 말씀 중심의 신학을 전개하면서 성사는 말씀에 비해서 이차적인 것으로 보았다.
종교 개혁자들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처음으로 포괄적인 성사 교의가 작성되었다. 이 공의회에서는 모든 성사에 공통된 사항과 각 성사에 대한 교의를 결정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종교 개혁자들의 오류를 단죄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 내의 잘못된 실천과 오류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대립적인 상황 때문에 개혁자들의 주장 중에서 긍정적인 측면, 이를테면 성사에 있어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과 신앙의 적극적 역할 등을 토의하거나 수용하지는 못하였다. 그로 인해서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의 성사 교의는 전반적으로 이 공의회의 영향 안에 머물렀고, 반종교 개혁적으로 강조되었다. 프로테스탄트측이 성서의 하느님 말씀과 그 선포만을 배타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가톨릭측은 성사에 치중하였던 것이다.
〔현대의 성사 이해〕 12세기 이후 성사는 7개로 규정되었고, 외적인 표지 · 은총의 포함 · 그리스도에 의한 제정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성사의 정의에 포함되었다. 그리스도에 의한 성사 제정은 종교 개혁 이래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종교 개혁자들은 성서에 분명히 나타나는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만을 성사로 인정한 반면에, 가톨릭 교회는 칠성사 모두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되었다고 인정하였다. 그리스도에 의한 성사 제정에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는데, 스킬러백스(E.C.F.A. Schillebeecckx, 1914~ )는 성사의 '핵심' 과 '표현 양식' 을 구분하면서 예수는 단지 '성사적 표징의 핵심' 즉 성사적 표징이 의미하는 은총만을 규정하였고, 나머지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맡겨졌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하느님이 원한 자유 속에서, 그러나 하느님이 원한 한계 내에서 교회의 실천적인 상황을 고려하면서 성사의 표현 양식을 다양한 예식의 형태로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라너(K. Rahner, 1904~1984)는 성사가 '근본 성사' (Grundsak-rament)인 교회의 자기 실현이라는 자신의 신학 이론을 근거로 성사 제정의 문제에 대해서 포괄적이고 사변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즉 그리스도가 교회를 근본 성사라는 특성과 함께 세웠다는 것에서 그리스도에 의한 성사의 제정은 간단히 결론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교회가 항상 성사의 실행 방식 · 발전 · 변형을 규정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한다는 것이 라너의 주장이다.
성사의 외적인 표지는 표징 행동과 그 의미를 밝혀 주는 말씀으로 구성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래로 성사를 말씀과 밀접한 연관성 안에서 고찰하려는 견해가 지배적이 되었다. 교회는 성사가 교회의 의향에 따라 거행되면 집전자의 개인적인 성덕과 관계없이 은총을 전한다고 가르쳐 왔다. 즉 성사는 사효적 효력을 지닌다고 가르쳐 온 것이다. 오늘날에는 성사에서 사효적 효력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지 않고 성사 참여자의 신앙도 중요시하면서, '원인' . '도구' 라는 인과적인 의미의 개념보다는 '대화' · 만남' . '교류' 라는 인격적인 의미를 지닌 낱말로 성사를 설명하려는 노력들이 등장하였다. 스킬러백스는 성사란 하느님 혹은 그리스도와 각 신앙인 사이의 인격적인 만남의 순간이라고 정의하였다. 현대에 들어 학문의 각 분 야 특히 심층 심리학의 발달은 상징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상징은 인간의 삶과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가 근본적으로 상징적인 존재라는 것을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상징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성사 이해에도 영향을 미쳤다. 성사는 단지 외적으로 어떤 사실을 알려 주는 역할에 그치는 '정보(情報)의 상징' 이 아니라 표현하는 바를 실제로 실현하는 '실현의 상징' 인 것이다. (⇦ 칠성사 ; → 성사 신학 ; 트리엔트 공의회)
※ 참고문헌  Alexander Ganoczy, 《NHThG》, pp. 94~104/ Giinter Koch, 《LKD》, pp. 443~447/Theodor Schneider, Zeichen der Naihe Gottes, Mainz, Mattias · Griinewald · Verlag, 1982/Edward Schillebeeckx, Christ the Sacrament of the Encounter with God, New York, Sheed and Ward, 1963(김영환 편역, 《교회와 성사》, 성신출판사, 1981)/ Giinter Koch, 손희송 역, <말씀과 성사 : 교회의 자기 실현 방식>, 《가톨릭 신학과 사상》 17호(1996. 가을),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pp. 188~218/ 손희송,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나타난 성사 이해>, 《신학 전망》 114호(1996.가을), 광주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pp. 2~171 배문한, <성사와 그리스도인의 생활>, 《신학 전망》 36호(1977. 봄), pp. 48~52. 〔孫熙松〕